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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명화] 만학도를 꿈꾼다면 〈나이트 스쿨〉

씨네플레이

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마침내 종강을 했다. 졸업이 아닌 ‘겨우’ 종강이지만 감회가 새롭다. 8개월 된 아기를 키우며 완주한 학업 레이스기 때문. 하지만 이번 학기는 꽤 힘들었다. 출산 휴학 후 다시 찾은 학교는 이전과는 크게 달랐다. 시간 맞춰 등교하는 것부터 어찌나 힘든지. 거기다가 중간, 기말 준비에 발표까지. 하지만 어찌저찌 4개월을 잘 버텼다. 이 모든 것은 우리 남편 덕분이다.

 

영화를 빌어 남편에게 무한 감사를!

부부명화

[부부명화] 만학도를 꿈꾼다면 <나이트 스쿨>

 씨네플레이 ・ 2025. 6. 17.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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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마침내 종강을 했다. 졸업이 아닌 ‘겨우’ 종강이지만 감회가 새롭다. 8개월 된 아기를 키우며 완주한 학업 레이스기 때문. 하지만 이번 학기는 꽤 힘들었다. 출산 휴학 후 다시 찾은 학교는 이전과는 크게 달랐다. 시간 맞춰 등교하는 것부터 어찌나 힘든지. 거기다가 중간, 기말 준비에 발표까지. 하지만 어찌저찌 4개월을 잘 버텼다. 이 모든 것은 우리 남편 덕분이다.

영화를 빌어 남편에게 무한 감사를!

만학도는 여러모로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상사의 너그러움이 필요할 테고, 가정이 있다면 배우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 영화에서 내가 주목한 점도 조력자에 있다. 주인공보다는 주변 인물들에 눈길이 갔다. 영화 <나이트 스쿨> 또한 나와 같은 만학도의 이야기다.

주인공 테디 워커는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야간학교에 등록해 공부를 시작한다. 테디는 우연한 사고로 직장을 잃고, 새로운 직업을 얻으려면 GED(미국 고졸 검정고시)를 따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에게 야간학교 졸업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리고 <나이트 스쿨>에는 다양한 이유로 학업을 중단했던 성인들이 함께 수업을 듣는다. 싱글맘, 전과자, 지폐를 앓는 학생, 파산한 사업가. 이들은 모두 각자의 사연과 한계를 안고 늦은 배움에 도전한다. 이들을 이끄는 베테랑 선생님도 있다. 10대 20대가 아닌 여러 연령의 학생을 가르쳐야 하는 위치이기에 포스도 남다르다.

캐리 선생님의 단호함, 우리 남편을 닮았네요

 

영화 〈나이트 스쿨〉

캐리는 테디의 강력한 조력자이자 훈육자다. 테디가 수업에서 장난치고 온갖 핑계를 대며 학업의 울타리에서 빠져나가려고 할 때 단호하게 현실을 직면시킨다. 테디가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어물쩍대자 그를 복싱장으로 데리고 간다. “진짜로 배우고 싶어?”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테디와 스파링을 하며 수업을 하는데, 테디가 질문에 틀리면 펀치를 날린다. 수업 시간에 웬 스파링이냐 생각할 수 있지만 이에는 스승의 심오한 뜻이 담겼다. “인생은 시험이 아니야. 넌 지금도 맞고 있잖아. 인생은 피할 수 없어. 제대로 안 살면 계속 맞는 거야”.

시험 칠 준비가 안됐다며 도망가려는 테디를 붙잡는 것도 캐리 선생이다. “넌 바보인 척하면서 아무도 너한테 기대 안 하길 바라. 하지만 너는 바보가 아니라 겁쟁이야, 테디”. 테디에게 케리는 인생에서 유일하게 혼내주면서도 믿어준 어른이었다.

 

영화 〈나이트 스쿨〉

낮에 온종일 육아를 하다 학교를 가는 것은 꽤 피곤한 일이었다. 아기가 유난히 보챈 날에는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다. ‘하루만 빠질까…’ 그럴 때마다 나를 다잡아 주는 것은 남편 몫이었다. 캐리 선생처럼 나를 나약한 정신을 후드려(?) 패는 일침을 쐈다. “등록금 아깝지 않아? 뭐 힘들면 빠져도 되긴 하지”.

아기와 함께한 한 학기를 다니고 보니 다음 학기가 벌써 걱정이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또 한마디 한다. 일종의 충격 요법이랄까. “복직하고 다니면 더 힘든 거 아냐? 졸업장 따기 싫으면 여기서 멈춰도 좋아”.

 


약혼자 리사의 다정함, 우리 남편을 닮았네요

 

대학원 가는 날의 스케줄은 대략 이렇다. 남편이 퇴근하면 나는 곧장 학교로 가고, 내가 학교에 간 시간에 남편이 아기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과. 개강과 함께 이앓이가 시작된 탓에 잘 자던 우리 아기가 중간중간 깨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이를 감내해야 하는 것은 남편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한번도 힘들다는 말을 안 했다. 수업 중간 홈캠을 통해 아기를 재우는 남편의 모습을 볼 때면 고마움이 울컥 울컥 올라왔다.

 

아기와 자는 남편. 홈캠 속 이 부자가 너무 사랑스럽다.

아기와 함께 배웅을 나오는 것도 남편의 또 하나의 배려였다. 아기와 남편을 두고 가는 불편한 마음을 상쇄시켜 준달까. 항상 아기와 손을 흔들어주며 “열심히 공부하고 와”, “운전 조심해”라는 따뜻한 말을 건넸다. 그리고 나에게 남편이 있듯, 영화 속 테디에게는 리사가 있었다. 리사는 테디의 약혼녀다.

 

영화 〈나이트 스쿨〉

사실 테디는 리사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리사에게 프로포즈를 할 때까지도 자신이 고졸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리사가 알게 되고, 리사는 말한다. “성공하지 못한 게 실망스러운 게 아니야. 나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다는 게 더 실망스러워”.

리사는 테디의 외면을 보고 사랑한 것이 아니다. 신뢰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말한다. “너를 있는 그대로 봐도 난 괜찮았을 거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테디에게 리사는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유일한 존재다. 모두가 테디의 외면에 주목할 때 리사는 그의 내면을 바라봐줬다.

 


동기들의 유쾌함, 우리 남편을 닮았네요

 

영화 〈나이트 스쿨〉

테디의 동기들은 직업도 다양하다. 다양한 직업만큼 캐릭터도 풍성하다. 과거 부동산 사업자이자 파산을 한 제이슨은 자기 파괴적 유머의 끝판왕이다. 게으른 테디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바닥 찍고도 공부하는데, 넌 왜 빼냐?” 시험 전 테디에게는 “넌 약혼녀라도 있잖아”라는 푸념을 늘여놓는다. 테디는 그의 웃으며 견디는 자세에서 힘을 얻는다.

테레사는 전업주부이자 다둥이 엄마다. 테레사는 무한 긍정의 에너지를 테디에게 발산한다.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일 뿐이라고. ‘다둥이 엄마도 공부하는데 왜 ?’라며 문제집을 피라고 명령하는 엄마미를 보여준다.

이들이 모이면 유쾌함의 시너지는 더욱 커진다. 시험을 앞두고, 테디가 공부는 하기 싫고 불안은 쌓이자 친구들을 모아 “학교에 몰래 들어가서 정답지를 훔치자”고 제안하는데, 동기들은 이에 동의하고 이들은 진짜로 밤중에 고등학교에 침입한다.

맥스는 군대식 무전을 쓰고, 제이슨은 손전등을 꺼버리며, 테레사는 다 큰 몸으로 환풍구를 타다 테디는 교장에게 딱 걸린다. 시험은 안 봐도, 팀워크 점수는 만점인 셈이다.

수업이 끝나고는 치킨 파티를 즐긴다. 공부도 못 하고 시험도 못 보고 있지만 치킨 앞에서는 다들 평등하다. “이 닭다리는 내 논술 과제야”, “고졸 못 해도 이건 내 졸업식 식단이야” 다 함께 웃음을 터뜨린다.

남편은 수업을 듣고 있는 나에게 웃긴 사진을 전송했다. 아기의 우스꽝스러운 모습, 남편의 피곤함이 담긴 셀카. 남편이 발산하는 유쾌함은, 대학원을 다닌다는 미안함과 수업 중 밀려오는 졸음을 퇴치하는 비타민 역할을 했다.

테디와 동기들처럼 남편은 중간고사를 치르고 온 나를 위해 햄버거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아기는 쿨쿨 자고, 남편과 둘이 즐기는 햄버거 파티. 맥주 한잔 짠하니, 무엇 하나 부러울 게 없었다.

 

영화 〈나이트 스쿨〉

나처럼 행복한 만학도가 있을까!


매일신문 임소현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