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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명화] 부모가 이미 스마트폰 중독인데 뭘… 〈소셜 딜레마〉

씨네플레이

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이러다 돌잡이도 휴대폰으로 잡겠네”

조동(조리원 동기)들과 수다를 떨다 나온 이야기. 아기가 스스로 무엇을 집을 수 있는 월령이 되면 엄마의 휴대폰에 관심을 가진다. 휴대폰 혹은 리모컨.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 하지 않던가. 휴대폰을 하는 엄마아빠, TV를 보는 엄마아빠를 유심히 지켜보다 아기들도 이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 아기들의 공통 관심사. 우리 아기도 이 두 물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데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죄책감으로 무겁다.

물론 휴대폰을 (일부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TV를 (매일) 켜놓지도 않는다. 미디어 노출을 금하는 것은 언젠가부터 부모들의 역할로 여겨졌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소아과학회는 영유아의 미디어 노출에 대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2세 미만 아기들의 미디어 노출을 완전히 피할 것을 권고한다. 우리 아기 또한 미디어를 금하고는 있는데… 그때마다 또 죄책감이 밀려든다.

〈소셜 딜레마〉
미디어를 못 끊겠어.. 아기가 못 보게 병풍으로 가리고 TV를 보자..

엄마 아빠가 이미 미디어 중독인데..

〈소셜 딜레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소셜 딜레마〉

엄마 아빠가 미디어를 못 끊는데 아이에게 강요를 할 수 있을까. 아기를 낳고서야 휴대폰의 위험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그러다 보게 된 <소셜 딜레마>. 2020년 미국에서 제작된 제프 올롭스키 감독의 2020년 다큐멘터리 영화다.

우리는 매일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하루를 시작하고 끝낸다. 하지만 이 익숙한 기술이 어떻게 우리의 선택을 조종하고 사회 구조까지 뒤흔들 수 있는지 이 영화는 말한다.

영화는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전 직원들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심지어 페이스북 ‘좋아요’ 버튼을 만든 직원과 핀터레스트 전 회장까지 참여했다. 그리고 이들은 말한다. “선을 위한 것인 줄 알았는데…”. “동전의 앞면만 봤던 거죠”. “이런 결과를 의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거예요”.

이들의 폭로는 다소 위험할 수 있다. IT 기업들이 키워가는 기술들이 인간에게 해가 된다는 것이 요지기 때문. 이들은 본인들의 전 회사가 인간이 선물로 거래되는 대규모 시장을 구축 중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거래된다고? 그저 본인들의 앱이 스마트폰에서 잘 팔리게끔 발달시키는 것 아니었어?

 

 

〈소셜 딜레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소셜 딜레마〉

이들은 우리의 모든 온라인 활동이 감시되고 추적되고 축적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앱을 켜서 무슨 이미지를 얼마나 오래 봤는지도 기록이 된다는 것. 이를 토대로 우리의 성격까지 유추해 낸다. 내성적인지 외향적인지, 외로움을 얼마나 느끼는지. 그들은 우리에 대한 정보를 우리가 상상 못할 정도로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고보니 남편과 나의 인스타그램 피드는 ‘아기’로 도배됐다. 처음에는 신기했다. 아기를 키우다보니 아기 피드를 몇 번 본 건데 이게 계속 나와준다고? 신나서 클릭했던 때가 생각나 소름이 끼쳤다. 검색 엔진에서도 이는 동일하다. 아기 용품을 많이 사서인지 곳곳에 아기 관련된 팝업들이 떠오른다. 남편과 나는 그저 신기해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한다. 이는 ‘꽤나’ 무서운 일이라고.

해당 IT 기업들은 우리의 온라인 활동을 감시하며 데이터를 축적한다. 그리고 그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우리의 행동을 예측한다. 점점 더 정확한 모델을 만들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 광고를 끼워 넣는다. 어쩌면 이것이 그들의 최종 목표일 테다.

그리고 영화는 사례 하나를 보여주는데 여자친구에게 관심을 갖느라 휴대폰을 보지 않는 남성을 비춘다. 이러한 남성에게 IT 기업은 자신을 클릭하게끔 유도하는 앱을 보여준다. “네 친구 타일러가 앱에 가입했어, 환영해주도록 해”. 알람이 뜨고 남성은 곧장 휴대폰을 터치한다. 그러자 IT 기업은 남성이 좋아하는 여성의 게시글을 띄우고 외친다. 광고 볼 준비가 됐네. 이제 왁스 광고를 띄워보자!


그러고보니.. 아기 용품 광고가 너무 뜨네..

이를 우리 부부에게 적용시켜 본다면, 놀랍게도 불과 며칠 전 겪은 일이었다. 아기를 보느라 휴대폰을 보지 않는 나에게 알람이 떴다. “회원님이 알 수도 있는 ___가 인스타그램을 사용 중입니다”. 프로필 사진을 보니 얼마 전 문화센터에서 연락처를 교환한 OO맘. 나는 곧장 휴대폰을 터치했고, 그곳에 접속해서 피드를 둘러봤다. 그리고 얼마 전 검색만 하다 구매는 참은 아기용 보냉백이 광고에 떠올랐다. 뭐지? 80% 세일이라고? 곧 주문이 마감된다고? 뭐에 홀린 듯 주문을 하는 나를 보고 IT 기업은 외쳤겠지. “야호! 낚았다!”

이렇게 스마트폰은 우리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극단적으로 설계됐다. 사용자가 스크롤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마치 슬롯머신 당기듯. 친구가 당신을 태그했다는 알림에는 왜 친구가 올린 사진은 안 뜰까. 인간 심리의 깊숙한 곳을 건드린다. ‘하.. 클릭하고 싶네’.

메신저에서 타이핑을 치고 있다는 것은 ‘...’ 같은 말줄임표로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이는 사용자가 해당 앱에서 나가는 것을 막는다.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한데 어떻게 앱을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우리는 실험실의 쥐가 됐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도 모르게 사용자들의 실제 행동과 감정을 끌어낼 수 있게 됐다. 인간 심리의 취약한 면을 착취한 것이다.


우리 애는 어쩌지

영화를 보다보니 계속 드는 생각. 성인이 된 우리가 겪는 이 일을 미성숙한 아이들이 겪는다면. 이는 더욱 큰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그리고 나의 이 생각마저 읽은 듯 영화의 다음 이야기는 10대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셜 딜레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소셜 딜레마〉

영화는 한 가족의 식사 장면을 보여준다. 엄마가 말한다. “한 시간 동안 휴대폰을 잠금 기능이 있는 통 안에 넣고 밥을 먹어보자. 대화도 하면서 말이야”. 자녀들은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내민다. 하지만 휴대폰에 울리는 알람. 자식들은 대화를 하면서도 휴대폰을 흘깃흘깃 쳐다본다. 그러다 쾅! 딸은 통을 부수고 휴대폰을 꺼내 방으로 올라간다.

물론 아이들은 이것이 별일 아니라고 한다. 휴대폰은 기계일 뿐 자신의 인생을 바꾸지 않을 거라 말한다. 하지만‘좋아요’를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이 초조해 보인다.

소셜 미디어는 뇌간 깊숙이 파고들어 아이들 자존감과 정체성을 장악했다. 필터 씌운 카메라로 자신을 꾸미지만 주변 사람들의 비평에는 당해낼 정신적 성숙함이 없다. 물론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비평에 관심 갖도록 진화했다. 하지만 우리가 1만 명의 비평을 인식하도록 진화했나? 우리는 5분마다 사회적 인정받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10대는 더더욱 그걸 감당할 수 없다.

영화는 수치로도 이러한 심각성을 알려준다. 미국 10대의 우울증과 불안이 엄청나게 증가했다고 한다. 이는 2011년과 2013년 사이에 시작했는데, 이 시기 10대 소녀 중 10만 명이 자해를 하며 매년 병원에 입원을 했다. 이 시기 자살률도 늘었다. 이 시기는 소셜 미디어의 사용량이 늘어난 때다.


이대로 괜찮을까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는 수십 번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그들의 폭로대로 스크롤을 수십 번 당겼다. 이런 내가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자제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딩!동! 울리는 휴대폰 알람. 나도 모르게 또 휴대폰을 쥐어 든다. 남편이 보내온 릴스를 보고 또 한 번 한숨을 쉰다. 우리가 이런데… 아이한테 뭘 가르치겠어! 휴!

남편이 보내온 메시지의 정체는 책으로 둔갑한 스마트폰 거치대. 몰폰을 할 수 있는 육아템으로 떠오르고 있다는데…
남편이 보내온 메시지의 정체는 책으로 둔갑한 스마트폰 거치대. 몰폰을 할 수 있는 육아템으로 떠오르고 있다는데…

심란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