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세계 최초 슈퍼히어로 캐릭터 슈퍼맨이 DC유니버스 세계관의 문을 연다. 슈퍼맨이란 캐릭터의 인지도와 역사에 비례하듯, 7월 9일 개봉하는 <슈퍼맨>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의심 섞인 눈초리를 받고 있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극중 슈퍼맨 또한 그런 기대와 의심 섞인 눈초리를 받는다. 저 외계인, 믿어도 될까. 그렇게 의구심 가득한 세계에서 슈퍼맨은, 그리고 <슈퍼맨>은 제대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 관객들과 함께 날아오를 준비를 마친 <슈퍼맨>을 언론시사회로 미리 만난 소감을 전한다.
인간, 슈퍼맨

대대로 슈퍼맨을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라면, 하나는 ‘신성’이고 하나는 ‘인간성’일 것이다. 외계행성 크립톤에서 보내져 지구에 불시착한 슈퍼맨은 노란 태양의 힘으로 인간을 상회하는 힘과 능력, 신과 같은 힘을 얻는다. 그러면서도 미국 캔자스의 켄트 부부 아래에서 자라며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인 사려 깊은 마음씨의 클라크 켄트로 살아간다. 그렇게 그는 압도적인 신체와 고귀한 마음씨, 즉 신이자 인간이란 교집합으로서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때문에 슈퍼맨 영상화는 보통 두 가지 중 어느 한쪽에 힘을 싣게끔 돼있다. DCEU의 슈퍼맨은 전적으로 전자에 가깝다. <맨 오브 스틸>(2013)은 슈퍼맨이 방황하고, 세계를 지키는 인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리는데, 그 과정에서 ‘클라크 켄트’가 겪는 일상적인 인간사는 거의 배제돼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클라크 켄트가 데일리 플래닛에 입사하게 되니까. 이어지는 작품에서도 당시 DCEU를 이끄는 잭 스나이더는 슈퍼맨의 초인적인 면모를 강조하며 신성한 이미지와 종교적 클리셰를 더한 행적으로 그를 그렸다.

<슈퍼맨>은 인간 쪽에 좀 더 힘을 싣는다. 그 의도는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 붉은빛과 푸른빛이 번지는 타이틀은 1979년부터 이어진 크리스토퍼 리브의 <수퍼맨> 시리즈를 오마주는 하는 것이 명백하다.(구분을 위해 수퍼맨으로 표기한다) <맨 오브 스틸>과 다르게 <수퍼맨> 시리즈는 어리숙한 클라크 켄트가 일상에서 겪는 일을 유쾌하게 담아낸다. 제임스 건은 그 시절 <수퍼맨>의 흔적을 영화 곳곳에 배치하며 신성의 슈퍼맨이 아닌 인간 클라크 켄트의 면모도 놓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슈퍼맨의 능력 묘사를 뒷전에 두지 않는다. <슈퍼맨>은 괴력 같은 그의 힘을 중심 삼지 않는다. 힘의 체감은 결국 파괴를 초래하기 때문에 그의 스피드나 무적에 가까운 신체, 초능력으로 사람을 구하는 순발력을 묘사하는 데 최대한 초점을 맞춘다. 한편 여러 예고편에서 담긴 것처럼 슈퍼맨의 비행 장면을 가까이에서 포착해 관객이 그와 동행하는 듯한 느낌을 유발한다. 제임스 건은 관객에게만큼은 그가 믿음직한 인물이며 신과 같은 존재라도 파괴를 몰고 다니는 재앙이 아니라 수호신에 가깝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그 과정에서 빌런으로 그려지는 렉스 루터의 묘사가 탁월하다. 신이지만 인간적인 슈퍼맨과 대비되게끔 렉스 루터는 빼어난 전략과 집요한 신념을 무기로 삼는다. 그렇게 슈퍼맨을 제 뜻대로 통제하는 데 성공한 렉스 루터는 그러나 마냥 멋있는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의 신념은 곧 모든 것을 통제해야 성미가 가시는 모습으로 이어져 ‘천재’이자 ‘악인’인 것을 명백하게 묘사한다. 이렇게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렉스 루터를 통해 그리는데 그것이 슈퍼맨의 인간으로서 마땅한 마음가짐과 대조돼 렉스 루터를 더욱 풍부한 인간상으로 완성시킨다. 또 슈퍼맨의 연인 로이스 레인이 ‘보통의 사람’임에도 데일리 플래닛 직원들과 합심해 렉스 루터의 발목을 잡는 과정은 로이스 레인을 단순히 ‘슈퍼맨의 연인’의 위치에만 두지 않고 주체적인 인간상을 그리려는 의도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감독, 제임스 건

캐릭터에 대한 묘사는 제임스 건의 주특기로 정평이 나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 다양한 히어로를 등장시키면서도 그들 각자의 성격과 개성을 또렷하게 담았던 제임스 건은 <슈퍼맨>에서도 같은 전략을 성공시킨다. 정보 공개 당시 유니버스의 첫 영화임에도 슈퍼히어로 캐릭터가 너무 많이 등장한다며 기우를 모았는데, 영화는 이들 모두 각자의 개성을 적확하게 활용한다. 특히 이번 영화의 신스틸러는 슈퍼맨의 반려동물 크립토와 저스티스 갱의 미스터 테리픽이다. 크립토는 개의 습성을 통해 관객을 웃게 만들면서 슈퍼맨의 든든한 사이드킥으로서도 극중 활약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단위에서도 ‘마이너’인 미스터 테리픽은 가장 인상적인 명장면을 연출한다. 그가 로이스 레인을 안전하게 방어하면서 적들을 제압하는 롱테이크 장면은 제임스 건의 장기 명곡 선곡과 함께 시너지를 내며 그의 능력을 화려하게 뽐낸다. 그린랜턴 중에서도 메이저라곤 할 수 없는 가이 가드너 또한 캐릭터의 성격을 알맞게 활용하며 이번 세계관의 유머러스한 태도를 보여준다. 외계에서 온 소년에게 지구와 인간, 세상의 아름다움을 가르친 켄트 부부 역시 소탈하고도 진한 사랑을 보여주며 적은 분량에도 인상적이다. 이사벨라 메르세드의 호크걸이나 데일리 플래닛의 직원들이 다소 평면적으로 활용되긴 하지만 배우의 연기에 힘입어 생기발랄한 분위기를 채우는 데는 도움을 준다.
하나의 유니버스를 여는 영화로서, 그리고 여름 극장가를 노린 블록버스터로서 <슈퍼맨>은 손색없이 훌륭한 영화다. 다만, 보다 더 강렬할 수 있었던 여지를 둔 채 다소 흐릿한 인상만이 남는 것이 아쉽다. 제임스 건이 그동안 보여준 작품들에 비하면 <슈퍼맨>은 호불호가 없는 대신 본인만의 매력이 조금 부족하다. 제임스 건 감독의 장점, 다양한 캐릭터의 시너지를 조성하는 감각, 탁월한 유머, 평범한 스토리조차 예측불허로 만드는 적재적소의 플롯 구성은 이번 작품에서 여전하다. 다만 그동안 그가 했던 작품 대부분은 구제불능의 캐릭터나 연이어 터지는 통제 불가의 상황, 모두에게 적합하진 않지만 취향만 맞으면 킬킬거릴 수 있는 고약한 유머를 내포했다. <슈퍼맨>의 세계는 그럴 수 없다. 제임스 건은 그래선 안된다는 걸 아는 진성 코믹스 팬보이기에 이번 작품에서 적당한 ‘선’을 지켰다. 이렇게 훌륭한 균형감으로 블록버스터의 매력을 과시하는 <슈퍼맨>은 그의 장점과 한계가 이렇게나 또렷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슈퍼맨>은 슈퍼히어로물의 미덕, 슈퍼맨이란 아이콘의 가치, 온 세계가 사랑한 절대 선의 상징을 탁월하게 복원했다.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을 기억하는 팬이라면 아마 오프닝부터 마지막까지 시종일관 마음이 두근거릴 것이다(사심을 적자면 필자는 곧바로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언뜻 진입장벽이 높아보이지만, 작품 내에서 필요한 부분은 모두 설명하고 있어 체급 올리기에 급급한 유니버스에 지친 관객에게도 적당한 선택이 될 것이다. 유니버스의 첫 장으로 기대와 부담감을 동시에 짊어진 슈퍼맨이, 이번 영화의 성공으로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지 지켜보고 싶다.
+ 쿠키 영상은 2개. 하나는 메인 엔드크레딧이 끝나고, 하나는 모든 크레딧이 끝나고 나온다. 아쉽게도, 혹은 다행히도 유니버스 관련 쿠키는 아니므로 의무적으로 볼 내용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