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종목 스포츠 이벤트로는 가장 큰, 지구에서 가장 권위 있는 스포츠 대회인 세계 축구 축제 월드컵이 지난 615일부터 시작됐다. 러시아에서 열리는 이번 21번째 월드컵은 총 6개 대륙의 32개 나라가 참가해 한 달간 총 64경기가 펼쳐진다. 벌써 열흘 넘게 진행된 대회는 중반을 넘어서며 예선 3라운드가 끝나가는 상황인데, 이미 2패를 안은 한국팀의 16강행은 요원해보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있다. 독일을 2점차 이상으로 이기고, 멕시코와 스웨덴의 경기 결과에 따라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2패를 안고) 진출할 수도 있기에, 잠시 뒤 펼쳐질 운명의 단판승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경기 결과가 어떻든 간에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한 선수들과 코칭 스탭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경기를 응원한 국민들에게 위로(또는 기쁨)의 박수를 보내며, 아쉬움(또는 흥분)을 달래 줄 드라마틱하고 짜릿한 축구 영화의 사운드트랙들을 뽑아보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답게 축구에 대한 영화들은 꽤 많이 만들어졌고, 그에 따른 각양각색의 반짝이는 사운드트랙들도 퍽 인상적인 잔향을 남겼다. 선수들의 화려한 개인기와 멋진 팀웍, 승자와 패자의 대비되는 운명과 이를 지켜보는 관중들의 열정적인 응원을 모두 녹여낸 스펙터클한 음악은 공 하나에 열광하는 마술 같은 순간을 황홀하고도 아름답게 기록한다.

그 매력적인 5편의 축구 영화와 사운드트랙을 살펴본다.


승리의 탈출 (1981)
연출: 존 휴스턴 / 음악: 빌 콘티

<승리의 탈출> 스틸컷

축구를 소재로 한 가장 유명한 영화를 뽑으라 한다면 단연 실베스터 스탤론과 마이클 케인, 막스 폰 시도우가 주연하고, 존 휴스턴이 말년에 연출한 <승리의 탈출>을 빼놓을 수 없다. 실제 세계 2차 대전 중 우크라이나에서 나치와 죄수들 간에 펼쳐진 축구 경기 데스 매치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영화로, 펠레와 보비 무어, 오스발도 아르딜레스, 파울 판 힘스트, 카지미에슈 데이나 등 기라성 같은 전 세계 축구 스타들이 대거 출연해 더 화제가 됐던 작품이기도 하다. 실화와 다른 결말에, 조금 엉성하고 느슨한 각본이 아쉽긴 하지만, 마지막 레전드 선수들이 직접 실연하는 축구 대결 장면만큼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흥분과 전율을 선사한다.

<승리의 탈출> O.S.T / 빌 콘티

스탤론과는 <록키>를 비롯해 많은 작품을 함께 했고, 또 할리우드 스포츠 영화음악에 있어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장인 빌 콘티가 음악을 맡아 그 감흥을 더한다. 그는 권투와 레슬링, 야구와 육상, 미식축구는 물론 가라데까지 수많은 작품에서 여러 종목들을 다뤄본 베테랑으로, 땀과 열정,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누구보다 더 생생하게 음표로 표출해낼 수 있는 작곡가다. 이 작품에선 쇼스타코비치의 7번 교향곡 레닌그라드를 언뜻 연상케 하는 곡조를 활용해 작품이 가진 의미와 매력을 더욱 부각시켰다. 프란츠 왁스먼과 앨머 번스타인 등으로 대표되는 전쟁 탈옥영화 스코어의 클리셰와 스포츠 영화의 영웅적인 팡파레를 접목시킨 솜씨도 탁월하다. 후반의 축구 장면에선 쇼스타코비치의 5번 교향곡도 사용됐다.

승리의 탈출

감독 존 휴스턴

출연 실베스터 스탤론, 마이클 케인, 막스 폰 시도우, 펠레

개봉 1981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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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축구 (2002)
연출: 주성치 / 음악: 황영화

<소림축구> 스틸컷

그러나 현재 대중들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친숙하게 떠오르는 축구영화가 뭔지 묻는다면 1순위로 나올 작품은 아마 주성치가 주연·각본·제작·감독 14역을 맡은 <소림축구>가 아닐까. 정통 스포츠 영화라 할 순 없지만, 만화적인 상상력에 주성치 특유의 코미디를 버무린 이 영화는 2002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린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중국이 처음 본선 진출하는 것과 맞물리며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온갖 패러디와 병맛에 가까운 마이너 코드들이 묻어나던 주성치 개그를 전 세계적으로 알린 신호탄이자 기발한 CG가 조화를 이루며 균형을 이뤄낸 작품으로, 모범적인 열혈 스포츠물의 장르를 맘껏 비틀어낸 재기발랄한 감각이 돋보인다.

<소림축구> O.S.T / 황영화

동양적인 타악 비트와 남성 코러스에 맞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패러디한 오프닝에서 빵 터트리며 관객들을 휘어잡는 중독성 강한 테마를 만들어낸 이는 <희극지왕>때부터 주성치 영화의 음악적 페르소나가 된 황영화다. 마치 소림사 언저리에서 훈련하고 있으면 BGM으로 흘러나올 것만 같은 마성의 스코어는 영화만큼이나 단순하고 감상적이지만 강력하고 재밌다. 전반적으로 세련되지 못한 80년대식 신디 사운드로 무술영화와 신파영화 등의 관습적인 면을 뒤죽박죽 뒤섞어놓은 모양새지만, 이게 주성치만의 맥락 없는 코미디와 만나며 이뤄내는 음악적 시너지는 상당하다. 촌스럽기 때문에 더욱 그 유치한 맛과 자극성이 살아나는 코미디 스코어의 특성을 반영한다. 홍콩도 미국도 아닌 일본에서만 유일하게 사운드트랙이 발매됐다.

소림축구

감독 주성치

출연 주성치, 자오웨이, 오맹달

개봉 2001 홍콩,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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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단, 21세기의 초상 (2006)
연출: 더글라스 고든 & 필립 파레노 / 음악: 모과이

<지단, 21세기의 초상> 스틸컷

프랑스 아트사커를 진두지휘한 천재 미드필더 지네딘 지단의 모습을 담아낸 영상물로, 일반적인 다큐와 달리 그 어떤 내레이션이나 인터뷰, 자막 등이 없이 은퇴 전인 20054월 스페인 1부 리그에서 펼쳐진 레알 마드리드와 비야레알 간의 96분 경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경기 결과나 현란한 플레이에 연연하지 않고, 그냥 경기에 몰입한 선수 지단에만 주목한다. 다리우스 콘지라는 테크니션이 콘트롤한 17대의 카메라에 꼼꼼히 찍힌 지단의 평범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다소 지겹고도, 황당하게 느껴지는데, 이런 경기들이 하나하나 쌓여 위대한 축구스타를 만들었다는 걸 인지한다면 색다르고 놀라운 경험으로 바뀔 것이다.

<지단, 21세기의 초상> O.S.T. / 모과이

음악은 공동감독을 맡은 스코틀랜드 태생의 더글라스 고든이 역시 스코틀랜드 글래스코에서 1995년에 결성된 포스트록밴드 모과이에게 의뢰해 만들어진 것으로, 가사 없는 록 사운드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색채감을 들려줬던 그들의 특징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묘한 서정과 회한을 남기는 헤비한 기타와 이펙트 잔뜩 걸린 노이즈에 장황한 프레이즈는 경기장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지단이란 인물의 내면까지 들어가며, 우리가 알던 슈퍼스타가 아닌, 인간으로서 그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기존 다큐나 전기물에서 전혀 접할 수 없는 시도이자 선택으로 모과이의 스코어는 이 다큐의 가장 큰 변별력과 특유의 분위기를 제공했다. 보고나면 반드시 그들의 음악을 찾게 만드는 고독하고 서늘한 기타의 매력이 일품이다.

지단, 21세기의 초상

감독 더글러스 고든, 필립 파레노

출연 지네딘 지단

개봉 2006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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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 (2014)
연출: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 음악: 후안 발렌트

<메시> 스틸컷

크리스티아누 호날도와 함께 현재 최고 폼을 유지하고 있는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의 일대기를 다룬 동명의 다큐멘터리. 스페인에서 <야수의 날><커먼 웰스>,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 등으로 독자적인 색채를 구축하고 있는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감독이 연출해 특유의 빠른 호흡과 스타일을 과시한다. 앞서 소개한 <지단>이 독특한 실험영화에 가까웠다면 이 작품은 보다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형식을 띈다. 어린 시절의 기록들과 경기 영상 그리고 친구와 가족, 지인들의 인터뷰들을 통해 메시란 인물을 재구성해간다. 그런 의미에서 다소 찬양조의 어투가 느껴진다는 게 흠 아닌 흠. 물론 1년 뒤 라이벌인 <호날두>의 다큐도 만들어졌다.

<메시> O.S.T와 후안 발렌트

로케 바뇨스와 함께 이글레시아스 감독의 음악적 파트너로 활약하고 있는 후안 발렌트가 맡은 음악은 전통적인 관현악 사운드와 소박한 피아노를 앞세워 세계적인 슈퍼스타의 위용과 과거의 삶을 대비시켜 묘사한다. 스페인에서 유일하게 도이치 그라모폰에 소속된 작곡가답게 클래시컬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는데, 이 다큐에선 일면 영웅적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 꿈을 이룬 소년의 모습을 동시에 드러낸 장엄하면서도 서정적인 악곡으로 귀를 사로잡는다. 가히 메시를 위한 찬가라 부를 수 있는 스코어로, 보는 관객이 부담스럽거나 오버되지 않게 접근해가는 디테일과 탁월한 멜로디 감각이 인상적이다. 세련된 연출에 녹아드는 그의 음악은 메시의 본질을 미쳐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영화의 비판마저 무마시키게 만드는 힘이 느껴진다.

메시

감독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출연

개봉 2014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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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 버스 오브 어 레전드 (2016)
연출: 제프 & 마이클 짐발리스트 / 음악: A.R. 라만

<펠레: 버스 오브 어 레전드> 스틸컷

유일하게 월드컵 우승을 3번 경험한, 지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황제 펠레의 젊은 시절을 극영화한 작품. 애초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맞춰 개봉될 예정이었지만 제때 완성되지 못해 늦춰졌다. 주로 다큐멘터리를 찍어왔던 짐발리스트 형제의 극영화 데뷔작으로, 빈센트 도노프리오와 콤 미니, 서 요게, 디에고 보네타 등 다국적 배우들이 참여해 브라질에서 올로케 했다. 펠레 본인도 직접 카메오로 등장한다. 브라질 특유의 징가(Ginga) 스타일 축구를 담아내고자 한 본질과 역시 축구선수였던 아버지와 펠레의 관계에 초점을 둔 방향성이 인상적이지만 평가는 그리 좋지 못하다. 신예 케빈 드 폴라가 펠레 역을 맡아 전설의 시작을 충실히 재현했다.

<펠레: 버스 오브 어 레전드> O.S.T.

음악은 마드라스의 모차르트, 인도 영화계의 존 윌리엄스라 불리는 A.R. 라만이 담당해 특유의 리드미컬하고 흥겨운 사운드를 선사하고 있다. 남미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에 왜 타밀 작곡가를 기용한 건지 의아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질적인 두 문화가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마술적인 리얼리티는 더 브라질스러운 부분을 강조해낸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땐 자신이 없었지만, 펠레의 생애와 브라질 음악에 물아일체 된 덕분에 방향성을 찾아냈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 기타와 비슷한 남미의 차랑고, 만돌린, 엄지손가락 피아노라 불리는 엠비라 그리고 다채로운 브라질 퍼쿠션을 동원해 특유의 징가 리듬감을 살렸고, 역동적인 축구 경기를 음악으로 강렬하게 구현해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결코 밀리지 않는 아름다운 사운드트랙.

펠레와 A.R. 라만
펠레: 버스 오브 어 레전드

감독 제프 짐발리스트, 마이클 짐발리스트

출연 빈센트 도노프리오, 로드리고 산토로, 콤 미니, 디에고 보네타

개봉 2016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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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