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효율적인 지역색이 뚜렷하지만 보편적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봉준호 감독이 한국영화 100년 역사의 새 장을 열어젖혔다. 지난 5월25일 오후 7시(현지시각) 팔레 드 페스티벌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72회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가 칸영화제에서 본상을 수상한 것은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가 각본상을 수상했던 63회 이후 9년 만의 일이다. 물론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칸에 초청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괴물>이 59회 감독주간에 초청된 이후, 미셸 공드리, 레오스 카락스 감독과 만든 옴니버스영화 <도쿄!>가 61회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마더>가 62회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넷플릭스 영화 <옥자>가 70회 경쟁부문에 진출한 바 있다. 하지만 모두 수상권에 들지는 못했고 이번 <기생충>의 첫 수상으로 무려 황금종려상을 거머쥐게 됐다.
환호성이 터저나온 수상자 발표의 순간
폐막식 당일,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폐막식 레드카펫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오후 6시 무렵에는 이미 본상 수상이 확실시된 상황이었다. 영화제 시상식이 스포츠 경기 결과와는 다르지만 첫 상영 이후 줄곧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영화이기에 팔레 드 페스티벌 프레스 센터에서 폐막식을 보던 한국기자단은 함께 응원하는 마음으로 결과를 지켜봤다. 특히 봉준호 감독이 황금종려상 수상자로 호명되는 순간, 한국 기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감격했고 현장에 있던 많은 해외 기자들도 박수를 보냈다.
불어 연설은 준비하지 못했다
시상은 황금종려상 시상자인 배우 카트린 드뇌브와 심사위원장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맡았다. 이냐리투 감독은 수상작을 호명하기 직전, “전세계에서 모인 9명의 심사위원들이 책임감을 갖고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도전적이고 강력한 힘을 지닌 감독들이 내는 새로운 목소리에 주목했다”며 간단하게 심사 총평을 소개했다. 그가 심사 총평을 이야기하던 도중 TV 중계화면에 봉준호 감독의 얼굴이 스치듯 잡히며 사실상 수상 결과를 미리 공개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배우 송강호, 제작자인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와 함께 무대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상을 받을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불어 연설은 준비 못했다”면서 수상 소감을 이어나갔다.
위대한 배우이자 동반자 송강호
그는 “언제나 프랑스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받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큰 영감을 준 앙리 조르주 클루조와 클로드 샤브롤 두분께 감사드린다”며 프랑스 관객을 향해 먼저 인사했다. 이어서 그는 “<기생충>은 큰 영화적 모험이었다. 독특하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 작업은 함께한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홍경표 촬영감독, 이하준, 최세연, 김서영 등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많은 아티스트들이 마음껏 실력 발휘를 할 수 있게 지원해준 바른손과 CJ에도 감사드린다”며 무대에 오른 곽신애 대표와 제작진에게 가장 먼저 공을 돌렸다. 또한 봉준호 감독은 감격의 기쁨을 배우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다. “무엇보다 <기생충>은 위대한 배우들이 없었다면 단 한 장면도 찍을 수 없었던 영화다. 함께해준 배우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해준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저의 동반자인 송강호님의 멘트를 꼭 이 자리에서 듣고 싶다”고 하자, 마이크를 이어받은 송강호가 “인내심과 슬기로움과 열정을 가르쳐주신, 존경하는 대한민국 모든 배우분들께 이 영광을 바친다”고 화답했다. 뒤이어 봉준호 감독은 2층의 가족들을 가리키며 “가족에게 감사하고, 나는 그냥 12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다. 이 트로피를 이렇게 손에 만지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소감을 마무리했다.
피가 마른 40분이라는 시간
수상 직후 공식 기자회견이 시작하기 전에 한국 기자들이 모여 있던 프레스센터를 찾은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는 폐막식 당일 오전, 영화제측으로부터 참석 요청 소식을 전해들은 후일담을 들려줬다. 송강호는 “영화제에서 당일 오후 12시에서 1시 사이에 연락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연락이 딱 12시41분에 왔다. 그 40분 동안 피가 말랐다”고 전했고, 봉준호 감독은 연락을 받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국에 돌아가서 돌팔매를 맞지는 않겠구나 하고 안도했다”고. 하지만 그때까지도 황금종려상 수상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영화제 기간 내내 기자와 평단의 반응은 뜨거웠지만 그 반응이 수상으로 연결되지는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특히 올해 경쟁작 21편의 면면이 심사위원단의 취향과 예술적 고민에 부합하는 작품들이 많았다는 점도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요인이다. 이냐리투 감독은 수상 결과 기자회견에서 <기생충>에 대해 “심사위원단 모두가 이 예상치 못한 미스터리를 경험했다”면서 “웃기고 재치 있고 시의적절한 문제의식을 여러 장르에 뒤섞어” 담아낸 점, “지역색이 뚜렷하면서도 보편성을 띠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 영화가 뭘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를 아주 아름답고 효율적으로” 보여준 점 등을 <기생충>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심사위원 모두가 이 영화를 보자마자 매료되었고 확신은 점점 커졌다. 그렇게 (황금종려상 수상을) 만장일치로 결론내렸다”고 이야기했다.
빈부, 인간에 관한 예의에 대한 영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개봉을 앞두고 언론시사회 등의 행사를 치르며 국내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 봉준호 감독은 “칸은 과거가 됐다. 벌써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사람들에게서도 금방 잊혀질 거다”라면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지난 며칠간 휘몰아치듯 일어났던 일들을 돌이켜보며 처음 <기생충>을 구상하던 시기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2013년에 처음 스토리를 구상하기 시작해서 2017년 가을에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의 영화가 한국 사회의 현실을 날카롭게 반영하고 있지만 영화의 제작과정 공정상 1, 2년 사이의 실시간 이슈를 반영하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4, 5년의 숙성과정을 거치다가 본격적으로 쓰고 찍고 후반 작업하는 게 1년 반에서 2년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지금보다는 광범위한 ‘시대’라는 개념이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운을 뗀 그는, “빈부 문제,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인간에 관한 예의가 바로 <기생충>의 테마다. 이는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할 수 있는 지속적인 테마”라고 강조했다. 아마도 많은 한국 관객은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에서 보여주는 ‘상생’의 가능성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 같다. “영화를 준비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스토리보드를 그리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나는 늘 그렇게 반복되는 삶을 살아갈 거다. 그런 무한반복의 삶을 사는 게 내 꿈이다.” 소박한 꿈을 지닌 영화광인 영화감독 봉준호, 그가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엄청난 결실을 맺었다. 이제 <기생충>에 대해 더 크게, 더 오래 이야기할 때가 됐다.
“봉준호 자체가 장르 라는 말 감격스럽다
<기생충> 봉준호 감독 황금종려상 수상 기자회견
정말 멋진 영화였다. 칸영화제에 오기 전, <기생충>이 “한국 사람이 봐야 뼛속까지 이해할 수 있는 영화”라고 했다. 그런데 칸에서 이 영화를 본 모두가 다 좋아했다. 당신은 왜 이 영화가 한국적이라고 생각했나.
미리 엄살을 좀 떨었다. 그 말을 국내 제작보고회 때 했는데, 일단 칸영화제에서 먼저 영화가 소개되지만, 나중에 한국에서 개봉할 때 우리끼리 킥킥거리면서 즐길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서 한 말이었다. <기생충>은 부자와 가난한 자에 관한 이야기고, 가족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당연히 전세계적, 보편적으로 이해되리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있었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최초의 한국 감독으로서, 한국에 있는 젊은 감독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나. 또 포스터 디자인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
마침 올해가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칸영화제가 한국영화계에 의미가 큰 선물을 준 것이 아닌가 싶다. 포스터를 왜 그렇게 디자인했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른다. (웃음) 디자이너가 훌륭한 사람이고, 그 역시 한국의 영화감독이다(<심야의 FM> <걸스카우트>를 연출한 김상만 감독). 그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포스터 등 여러 훌륭한 포스터들을 만들어냈다. 멋진 센스를 가진 디자이너다.
봉준호 감독 영화의 쾌거, 한국영화의 쾌거이기 이전에 장르영화의 쾌거였다고 본다. 장르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 질문을 해줘서 되게 고맙다. <기생충>이란 영화도 내가 계속해온 작업의 연장선이라는 느낌이 든다. 비록 내가 장르의 법칙을 이상하게 부서뜨리기도 하고, 장르를 이상하게 뒤섞거나 여러 유희를 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장르영화 감독이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황금종려상을 받게 된 것 자체가 놀랍고, 스스로도 아직 실감이 잘 안 난다.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심사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결정했다고 해 정말 놀랍고 기쁘다.
영화를 본 뒤 “봉준호 감독 자체가 장르다”라는 얘기가 나왔다. 이번 영화를 보니 감독의 전작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떤 측면에서는 더 나아갔다는 생각도 든다. ‘봉준호 유니버스’ 안에서 이 작품은 어떤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하나.
유니버스라고 하면 이건 마블 영화 하는 분들이 잘 아는 세계인데. (웃음) <기생충>은 나의 7번째 영화이고, 앞으로 8번째 영화를 준비하려 할 뿐이다. “봉준호 자체가 장르”라는 멘트를 한 외신 매체가 썼는데, 이번 영화제에 와서 들은 말 중 나로서는 가장 감격스러웠고, 또 듣고 싶었던 멘트였다.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에는 완벽한 시나리오도 한몫했다고 본다. 당신은 굉장히 다양한 장르영화를 만들어왔는데 시나리오를 어떻게 썼나.
나는 시나리오를 항상 커피숍 구석 테이블에 앉아 쓴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 커피숍에서 여러 자극이나 아이디어를 얻어 쓴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대사나 장면이 어떤 장르적 분위기인지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다 찍고 완성하고 나면 나도 ‘이 영화의 장르가 뭐지?’라는 고민을 한다. 단 한 작품, 장르의 관습을 깨고자 하는 마음으로 만든 작품이 있다. <괴물>(2006)이다. 나는 괴수영화에서 기대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1시간30분 만에 몬스터가 등장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괴물>을 작업하면서 30분 만에 대낮을 배경으로 괴물을 등장시켰다.
올해는 한국영화가 100주년을 맞이한 의미 있는 해다. 당신의 황금종려상 수상이 한국영화계에 새 흐름을 만들고, 자극이 될 것 같다.
2006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김기영 감독님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려 참가한 적 있었다. 그때 프랑스 관객이 열광적으로 김기영 감독님의 영화를 봤다. 내가 이렇게 황금종려상을 받고 <기생충>이란 영화가 관심을 받게 되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서 이 영화를 만든 게 아니다. 한국영화 역사에는 김기영 감독님 같은 위대한 감독님들이 계시다. 구로사와 아키라, 장이머우 등 아시아의 거장들을 능가하는 많은 한국의 마스터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올 한해를 거쳐서 많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씨네21 www.cine21.com
칸 김현수 장영엽·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