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은 C, L, M 멀티플렉스 전부가 아니다. 조금만 눈을 돌려 살펴보면 동서고금 걸작들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언제나 열려 있다. 2019년 하반기를 여는 7월은 특히 그 기회가 많고 넓다.


‘영화와 공간: 도쿄’

7월 2일~21일

@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

2015년부터 매해 여름 특정 도시를 테마로 영화들을 상영하는 '영화와 공간' 기획전. 우디 앨런과 마틴 스콜세지의 뉴욕을 시작으로 홍콩, 파리를 거쳐 올해는 도쿄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일본을 대표하는 도시인 만큼 일본영화 황금기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 나루세 미키오, 구로사와 아키라, 이마무라 쇼헤이, 오시마 나기사 등의 고전을 트는 한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2004), 구로사와 기요시의 <도쿄 소나타>(2008), 신카이 마코토의 <언어의 정원>(2013) 등 2000년대 작품까지 아우른다.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와 함께 빔 벤더스가 도쿄에서 오즈의 흔적을 더듬는 다큐멘터리 <도쿄가>(1985), 오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허우 샤오시엔의 <카페 뤼미에르>(2003)를 상영하는 세심한 큐레이팅이 특히 돋보이는 기획전이다. B급 영화의 제왕 새뮤얼 풀러의 할리우드 진출작이자 전후 일본에서 촬영된 첫 번째 영화 <대나무 집>(1955)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카페 뤼미에르


‘여름의 빛’

7월 2일~30일

@ 서울아트시네마

폭풍우

서울아트시네마의 기획전 '여름의 빛'은 4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193-40년대 할리우드 고전기에 발표된 스크루볼 코미디 프랭크 카프라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 레오 맥커리 <이혼 소동>(1937), 조지 쿠커 <필라델피아 이야기>(1940) 등은 벼락처럼 대사를 쏟아내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쾌락을 완전치로 선사한다. 장 그레미용이 192~50년대 발표한 영화 8편을 선보이는 회고전 <아사코>의 하마구치 류스케 등 요즘 들어 실력 있는 감독들이 영향 받은 감독으로 그를 손꼽고 있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될 때마다 높은 객석점유율을 자랑하는 에릭 로메르의 '여름' 영화 4편은 바캉스 시즌 해변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희극'으로써 보여준다. 로메르의 여름 이야기들과 달리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일식>(1962), <붉은 사막>(1964), <여성의 정체>(1982)는 마치 일식처럼 야위다 끝내 사라지고 마는 사랑의 흔적을 포착한다.

필라델피아 스토리


레지스탕스 영화제

7월 4일~7일

@ 서울극장

코뮌

레지스탕스 영화제는 종로 서울극장에서 나흘간 '투쟁의 회고', '저항의 인물사' 등 5개 섹션, 약 30여 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사살에 반대한 '퍼거슨 봉기'를 토대로 만든 다큐멘터리 <후즈 스트리츠?>(2017)로 닻을 올려 <체 게바라> 1-2부 (2008), <김군>(2018), <파업전야>(1990) 등 최근 개봉작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연출과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이 만난 <자브리스키 포인트>(1970), 임권택 감독의 데뷔작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 등의 고전도 볼 수 있다. 1871년 파리 코뮌의 현장을 다큐멘터리'처럼' 촬영한 극영화 <코뮌>(2000)과 잔 다르크의 유년을 뮤지컬로 풀어낸 브루노 뒤몽의 근작 <잔 다르크의 어린 시절>(2016) 등 국내 상영이 드문 작품도 이번 기회를 통해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제는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한 <1919 유관순>과 1945년 해방 이후 재일 조선인들의 삶을 그린 일본영화 네 작품도 포함시켰다. 티켓은 무료, 당일 현장에서 선착순 배부된다.

잔 다르크의 어린 시절


충무로 뮤지컬 영화제

7월 10일~13일

@ 충무아트센터

오즈의 마법사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충무로 뮤지컬 영화제는 사정상 이번이 마지막이 될 전망이다. 그간 길게는 10일간 서울 중구 근방의 여러 공간에서 개최됐던 것과 달리, 이번 4회는 4일 동안 충무아트센터 한 군데에서만 진행된다. 할리우드의 명 뮤지컬 연출가 밥 포시의 대표 안무를 재구성한 공연과 한국영화 걸작선의 맨꼭대기에 있었던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으로 문을 연다. 국내외 뮤지컬 영화 신작들과 1969년 전설적인 록 페스티벌 '우드스탁'의 실황을 담은 <우드스탁: 사랑과 평화의 3일>(1970), 스티븐 달드리 연출 - 제이미 벨 주연의 <빌리 엘리어트>(2000), <레미제라블> 25주년 특별 콘서트 실황, 뮤지컬 영화의 영원한 고전 <오즈의 마법사>(1939)의 베리어프리 버전 등이 상영된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2016)는 다함께 노래하고 환호하며 즐기는 싱어롱 프로그램으로 즐길 수 있다. 티켓은 무료, 충무아트센터 홈페이지에서 예매 가능하다.

라라랜드


‘시네마 어덜트 베케이션’

7월 11일~24일

@ CGV아트하우스 전국 상영관

양들의 침묵

CGV아트하우스의 여름 프로그램은 '성인용'을 내세웠다. '공포', '빌런', '29금' 테마에 맞춘 동서고금 다양한 장르 영화들을 전국 CGV아트하우스 상영관에서 만날 수 있다. 로만 폴란스키의 걸작 호러 <악마의 씨>(1968), 한국 대중에게도 상당히 친숙한 고전 공포영화 <엑소시스트>(1973)와 <오멘>(1976), 극단적인 수위의 에로티시즘으로 악명높은 <감각의 제국>(1976), 조나단 데미의 완숙한 연출과 안소니 홉킨스와 조디 포스터의 명연이 만난 <양들의 침묵>(1991), 2000년대 좀비영화 명작 반열에 오른 <28일 후>(2002)와 <28주 후>(2007) 등이 상영된다. 한편 짐 자무쉬 표 좀비 영화 <데드 돈 다이>, <유전>(2018)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아리 애스터가 1년 만에 내놓는 신작 <미드소마>, 청춘 로맨스와 호러를 제대로 접목한 <팔로우>로 극찬을 이끌어낸 데이빗 로버트 미첼의 야심작 <언더 더 실버레이크>는 정식개봉보다 이르게 만날 수 있다.

언더 더 실버 레이크


‘디어 시네마: 오래된 이미지, 다른 언어’

7월 5일 ~ 9월 8일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필름앤비디오

너무 이르거나/너무 늦은

국립현대미술관 필름앤비디오는 전통적인 영화와 급진적인 비주얼 아트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의 프로그래밍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봄 '차이와 반복'을 주제로 삼았던 프로그램 '디어 시네마'는 올 여름 '오래된 이미지, 다른 언어'라는 테마를 내세웠다. "작가 개인의 내면에 비친 세계의 이미지, 외부세계의 풍경에 개입하는 작가의 말이 고유한 울림을 전달하는 작품"들을 두 달에 걸쳐 소개한다. 캘리포니아에서 머물던 시기 자연과 일상을 담은 스페인의 라이다 라순다, 문학과 장르영화를 차용해 전혀 낯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영국의 베아트리스 깁슨, 자국 푸에트리코의 정치적 현실을 탐구하는 베아트리스 산티아고,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김응수 등 다양한 나라의 작가군이 모였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독창'으로 똘똘 뭉친 정치영화를 내놓고 있는 장 뤽 고다르의 신작 <이미지 북>(2018)도 정식 개봉에 앞서 상영된다. 다니엘 위예와 장 마리 스트로브의 <구름에서 저항으로>(1978)와 <너무 이른, 너무 늦은>(1980)은 고다르의 <이미지 북>과 함께 골수 시네필들의 구미를 자극한다. 영화 보기 전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박서보와 안톤 비도클의 전시를 보는 것도 추천한다.

이미지 북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7월 24일~31일

@ 시네마테크 KOFA, 아트선재센터, 스페이스 셀 등

콜로폰(아버리텀 연작을 위하여)

매해 동서고금의 실험영화를 소개하는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올해도 어김없이 영상예술의 가능성을 넓히는 작업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국제경쟁부문은 16개국에서 엄선된 25개 작품이 16mm, 35mm, 디지털 등 다양한 포맷으로 상영된다. 아시아 영화계 기대주로 주목받던 비묵티 자야순다라와 존 토레스,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이 꾸준히 편애를 드러내고 있는 너새디얼 도스키 등의 신작이 포함됐다. 앞서 언급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디어 시네마'와 연계해, 다니엘 위예-장 마리 스트로브와 하룬 파로키가 존경해 마지 않던 독일의 다큐멘터리스트 페터 네슬러의 대표 단편 여섯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아시아 포럼' 부문에선 대만, 인도네시아, 일본의 실험영화 작가들의 단편이 소개된다.

죽음과 악마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