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 전투>

국뽕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말은 아니다. 국가와 히로뽕(필로폰)이 합쳐진 말이다. 대략 무슨 뜻인지는 다들 알 거라 믿는다. 국뽕은 지양해야 할 태도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국뽕은 영화와 결합한다. 국뽕영화라는 장르는 없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하나의 구분법이다. 지금은 최악의 한일 관계를 맞이한 시기다. 항일 독립군의 승리를 다룬 <봉오동 전투> 같은 영화는 국뽕영화일까. 국뽕이라는 말은 나쁜 의미로 만들어졌지만 최근에는 좋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류현진, 손흥민 등 해외에서 활약하는 스타들을 보며 ‘국뽕에 취한다’고 표현하는 식이다. 이를 국뽕영화에 적용해보면 재밌는 국뽕과 재미 없는 국뽕, 잘 만든 국뽕과 잘 못 만든 국뽕이 있겠다. 지금까지 개봉한 영화 가운데 국뽕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찾아봤다.


시대 정신을 담은 인물에 대한 영화의 성공과 실패

<동주>

성공 사례 - <동주>

이준익 감독의 <동주>를 국뽕영화의 성공사례라고 말하고 싶다. 문학 교과서를 통해 배운 윤동주라는 시인의 이름과 그의 시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럼에도 정작 그의 삶과 그의 시가 만들어진 맥락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관객이 많았을 거다. 소박하게 보이는 흑백 화면, 윤동주를 연기한 강하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는 시, 사실상 <동주>의 주인공이라고 말해도 무방한 몽규를 훌륭하게 연기한 박정민 등.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며 어린 나이에 생을 다한 지식인이자 예술인의 고뇌를 보여준 <동주>를 칭찬할 수 있는 요소는 차고 넘친다.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살의 나이로 죽었다.


<자전차왕 엄복동>

실패 사례 - <자전차왕 엄복동>

엄복동이란 인물은 일제강점기에 유명했던 인물이다. 일본인을 이긴 한국인 자전거 선수였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자전거 절도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엄복동은 시대가 만들어낸 양면적인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때 자전차왕이었다가 절도범으로 전락한 (영화의 소재로) 매력적인 인물을 <자전차왕 엄복동>에서 볼 수 있었던가. 엄복동을 연기한 비가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말처럼 정말 엄복동 하나만 기억에 남게 됐다. 매우 안 좋은 의미로.


기억해야 할 전투를 다룬 영화의 성공과 실패

<명량>

성공 사례 - <명량>

<명량>은 역대 박스오피스 1위 영화다. 1700여만 명이 이 영화를 봤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평론가들은 <명량>의 영화적 만듦새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후반부에 명량해전을 다룬 부분은 그나마 좋게 평가했다. 대중들은 달랐다. 성웅 이순신의 위대한 승리에 열광하고 박수를 보냈다. 이 뜨거운 반응을 국뽕이라는 말로 쉽게 판단하는 건 어려울 듯하다. <명량>은 좋은 의미로, 잘 만든 국뽕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인천상륙작전>

실패 사례 - <인천상륙작전>

700여만 명이 <인천상륙작전>을 봤다. <인천상륙작전>은 꽤 많은 관객을 동원한 흥행에 성공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적 완성도는 엉성하지만 화려하고 박진감 있는 전투 신들이 보기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실패 사례에 포함하고 싶다. 이유는 <인천상륙작전>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흥행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당시 정권의 입맛에 맞게 제작된 영화를 결코 성공 사례로 분류할 수는 없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도 <인천상륙작전>이 훌륭한 영화라고 말하는 이는 극히 적을 걸로 믿는다.


한국의 현대사를 말하는 두 영화의 성공과 논란

<1987>

성공 사례 - <1987>

‘<1987>이 국뽕영화?’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1987년 6월 항쟁을 다룬 이 영화도 말하자면 국뽕의 범주에 포함할 수 있다고 본다. 독재 군부 정권에 맞선 시민들이 이룩한 민주화운동의 승리를 다루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촛불을 들어본 적이 있거나 그 촛불에 동의한 사람이라면 <1987>의 마지막 장면에서 벅차오르는 국뽕의 요소를 마주하게 된다. <1987>과 비슷한 영화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두 영화 <변호인>과 <택시운전사>도 성공 사례로 생각할 수 있다.


<국제시장>

논란 사례 - <국제시장>

<국제시장>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려 한다. 1400여 만 명이라는 <국제시장>의 관객 스코어는 거부할 수 없는 성공의 지표다. 다만 여러 논란 거리가 존재한다. 우선 눈물을 강요하는 연출이 세련되지 못한다는 평가가 있다. 평론가 혹은 기자들이 보기에 그렇지만 이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은 늘 그래왔다. 또 실제로 많은 관객이 눈물을 흘린 게 사실이다. 실패 사례로 언급한 <인천상륙작전>에 비하면 훌륭한 만듦새를 보여준다. 정말 문제가 되는 건 <국제시장>이 만들어진 맥락이다. 2014년 12월 29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2014 핵심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에도 보니까 부부싸움 하다가도 애국가가 들리니까 국기배례를 하고… 그렇게 우리가 해야 이 나라라는 소중한 우리의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이 발언이 <국제시장>이 내포하는 영화적 가치와 의의를 드러내는 지점 같다. 1400만 명의 관객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의 발언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국제시장>의 국뽕이 성공인가 실패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이와 비슷한 맥락에 있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