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유지 작가

사카모토 유지. 이름만 들으면 초면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일본 작품을 많이 보지 않았더라도 이 작가의 작품을 적어도 한 개 이상은 들어봤을 테니. 사카모토 유지는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각본가이자, 2018년 한국에서 방영한 두 리메이크 작품, 이보영 주연의 드라마 <마더>와 차태현, 배두나 주연의 드라마 <최고의 이혼>의 원작 드라마를 집필한 작가이다. 이 외에도 드라마 <그래도, 살아간다>, <woman>, <콰르텟> 등 많은 이들의 인생작으로 꼽히는 작품을 만들어낸 명실상부 일본의 '믿고 보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가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모든 작품이 '세련됐다'는 점이 아닐까. 사카모토 유지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은 소재, 캐릭터는 물론 대사 한 줄, 단어 하나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다. 그 때문에 그가 펜을 잡았던 작품은 몇 년이 지나고 다시 꺼내 봐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으며 마음을 울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 사실은 앞서 말한 두 편의 리메이크작이 일본 현지 방영 후 각각 8년, 5년이 지난 뒤 리메이크된 것이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정말 오랜만에 한국 관객들을 찾았다. 국경, 세대, 시간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야말로 '사카모토 유지다운'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로.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서면으로나마 나눈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늘 이런 트렌디함을 유지할 수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그와 나눈 대화를 전한다.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쭉 드라마 작업을 하고, 정말 오랜만에 영화로 관객들을 만나셨는데, 일본 개봉 당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록했어요. 이런 뜨거운 반응에 기분이 어땠나요?

TV 드라마와 영화관은 관객층이 크게 달랐어요. 최근에는 TV를 잘 보지 않게 된 젊은이들이 영화관에 많이 와 주셔서 감격했습니다. 상영 후에 의자에 앉은 채로 (영화의) 이야기를 하거나 화장실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고요. 프로듀서는 "관객들이 영화와 싸우고 있다"고 하기도 했어요. 영화를 본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 나누고 싶어지는 영화가 된 것이 무엇보다 기뻤습니다.

그런 반응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정식 개봉을 하게 됐는데, 한국 관객들과 영화로 만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에 한국 관객들과 만나는 소감이 어떠신가요?

저는 항상 한국 영화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줄곧 짝사랑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드디어 한국분들께도 영화를 선보일 수 있게 돼 행복합니다.

이번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도 그렇고 최근 작품에서 내레이션이 굉장히 돋보이는데요. 다른 작품들에 비해 분량이 많기도 하고 기억에 남는 대사들도 많은데, 내레이션 대사 작업을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내레이션을 그다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만, 최근에는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내레이션이 영화적이지 않고, 설명적인 것이라고 여겨졌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그 긴 역사 속에서 내레이션도 받아들여 왔습니다. 이번 작품의 모놀로그도 등장인물의 말투나 줄거리의 일환으로 사용했어요. 주의 깊게, 복잡하게, 다면적이고자 했죠. 대화가 그렇듯 모놀로그 또한 등장인물은 관객들에게 거짓말을 하듯이 썼습니다.

드라마 <오마메다 토와코와 세 명의 전남편>

이번 영화에서 토스트를 떨어뜨리면 꼭 버터를 바른 쪽이 바닥에 닿는다는 것이라든지, 얼마 전 일본에서 종영한 드라마 <오마메다 토와코와 세 명의 전남편>에서 후르츠 샌드위치는 꼭 입에 넣으려고 할 때 후르츠가 떨어진다는 것 등 생각지도 못한 일상의 소소한 공감대를 작품에 녹여내서 웃음을 불러일으킬 때가 많아요. 이런 것들은 평소에 영감을 얻어 작품을 위해 기록을 해두는 것인가요?

전부 취재를 했습니다. 그리고 실존하는 인물이 선호하는 고유명사를 사용했어요. 거기에 거짓말은 없죠. 우리는 평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고유명사를 사용합니다. 픽션에서도 고유명사를 사용하는 것은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을 그리는 데 있어 중요한 일이에요. 고유명사도 또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해요. 관객은 그 고유명사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없어요. 등장인물이 자신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에게 있어 비밀의 언어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일본 문화의 고유명사를 접하지 않은 사람들이야말로 이 작품의 의미를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화 초반에 키누(아리무라 카스미)의 엄마가 키누와 무기(스다 마사키)를 타이르며 했던 "산다는 건 책임이야" 라는 대사를 후에 무기가 자신의 후배에게 똑같이 하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변해가는 무기의 가치관, 감정 등을 작품에 담아내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쓰셨던 부분이 있나요?

경제와 문화는 밀접해 있어 서로를 보완할 때가 있으면 반비례할 때도 있습니다. 경제가 쇠퇴하면 문화 또한 쇠퇴하고, 경제를 우선시하면서 문화가 버려질 수도 있어요. 이 영화에서는 문화가 쇠퇴해 가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무기와 키누는 바로 그 소용돌이 속에 있으면서 가치관이 멀어져 가죠.

돈도 물론 중요하지만 문화는 사람이 사는 데에 필요한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에게 문화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작품 속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주인공 야마네 무기 역시 일러스트 작가라는 꿈과 취직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인물인데요. 반면, 작가님은 이 길을 계속 걸어와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되셨는데,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면 언제였나요?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힘듭니다. 항상 작은 포기는 존재하고, 글을 쓰는 일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도 있죠. 글 쓰는 것을 그만두려 했던 때는 몇 번이고 있었습니다. 무기군과 다른 점은 단지 조금 운이 좋았던 점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받아들이고 일을 해준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어요. 그게 정말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내 능력이 아니라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사카모토 유지 각본 드라마 <콰르텟>, 왼쪽부터 타카하시 잇세이, 미츠시마 히카리, 마츠 다카코, 마츠다 류헤이

대표적으로 마츠 다카코, 타카하시 잇세이, 마츠다 류헤이, 미츠시마 히카리 등, 사카모토 유지 군단이랄까요, 같은 배우들과 여러 번 작업을 하곤 하시는데 캐스팅을 진행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또, 혹시 요즘 새롭게 눈에 들어온 배우나 앞으로 함께 한 번 작업해 보고 싶은 배우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하나의 대사에 다면적인 의미를 갖게 할 수 있는 배우를 좋아합니다. 감정이 너무 명확해지지 않는 배우가 좋고, 함께 일하는 배우는 그런 분들뿐입니다. 궁금한 배우는 많이 있지만, 젊은 배우들과는 항상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드라마 <오마메다 토와코와 세 명의 전남편>이 최근 종영했습니다. 혹시 정해진 차기작 계획이 있으신가요?

몇 가지 있지만, 아직은 비밀입니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오랜만에 하는 영화였는데, 앞으로는 영화 각본도 쓰고 싶습니다.

한국에도 작가님의 팬이 정말 많습니다. '믿고 보는 사카모토 유지'라는 말도 있는데, 알고 계셨나요? 마지막으로 작가님과 작가님의 작품을 사랑하는 한국의 팬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마더>가 한국에서도 리메이크됐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제가 각본을 쓰는 드라마를 한국에서도 보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좀 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항상 한국 문화를 짝사랑하고 있습니다. 빨리 만나 뵈러 가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집필하기 위한 좋은 방을 소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씨네플레이 이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