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자살과 사회적 괴롭힘에 관련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으시는 분들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혹시라도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있으신 분들은 다음의 번호로 연락해 전문가들의 도움을 구하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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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드는 밤이면 다시보기로 MBC <심야괴담회>를 본다. 어차피 잠이 안 올 거라면 무서운 이야기라도 듣자 싶어서. 온갖 귀신과 초자연적 현상을 경험했다고 호소하는 시청자들의 사연이 넘쳐나는 이 프로그램은, 잠을 설칠 만큼 무섭진 않지만 잠들기 전 한번 찝찝한 입맛 정도는 다시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데 정작 가장 무서웠던 회차는, 의외로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였다. 베테랑 형사 출신의 김복준 교수를 게스트로 초대해 대화를 나눈 그 특집은, 사람이 저지른 온갖 기이하고 무서운 범죄 이야기를 나누고는 “역시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결론을 남기고 끝이 났다. 귀신이야 인간이 알 수 없는 초자연계의 일이라서, 물리법칙에 구애를 받지 않아서, 그 정체가 모호해서 무섭다고 하지만, 사람은 그런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같은 도시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길거리에서, 지하철역에서, 퇴근길 마트에서 마주쳤던 이들 중 누군가는 그런 끔찍한 속내를 숨기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 정말 흉흉해서 잠이 안 온다. 귀신이 정말 사람을 해치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확실히 사람을 해친다.

카카오TV 드라마 <우수무당 가두심>(2021~ )의 첫 두 에피소드를 보고 들었던 생각도 그런 것이었다. 그래, 어디 귀신이 무섭나. 사람이 더 무섭지. 할머니와 엄마, 자신까지 3대째 무당이라는 소리가 듣기 싫었던 두심(김새론)은, 열여덟 살을 무사히 넘기고 나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할머니 묘심(윤석화)의 유언대로 살기 위해 잔뜩 몸을 사린다. 눈에 뻔히 보이는 귀신도 못 본 척, 안 보이는 척 무시하고, 할머니 능력은 다 이어받지도 못했으면서 어설픈 실력으로 영업에만 혈안이 된 엄마 효심(배해선)도 꾹꾹 참아내고…. 유년시절 무당집 딸이라는 손가락질과 악의 어린 조롱에 시달려 온 두심은, 그냥 쥐 죽은 듯 조용히 이 시기를 넘기고 싶다.

그런데 그게 두심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돈 많은 집 학부형들을 단골 손님으로 유치하려는 엄마 효심은 두심의 등을 떠밀어 명문고인 송영고등학교로 전학을 보낸다. 그런데 이 학교, 어딘가 좀 이상하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성적이 나올 때마다, 전교 꼴찌가 자살로 세상을 떠난다. 두심은 자신과 할머니가 과거에 잡으려다가 놓친 악령이 벌이는 짓이라는 걸 직감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학교 전체가 너무 태연하다. 학생들은 다들 “이번엔 종근이일 줄 알았다”고 수근대고, 학생주임은 죽은 학생의 담임 교사에게 학교로 불똥이 튀지 않게 가정불화로 몰라고 지시한다. 마치 때 되면 피었다가 시들어 떨어지는 꽃을 보듯, 모두가 익숙하고 무심하다.

첫인사를 “너랑 오래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그러려면 네가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재수 없는 멘트로 시작한 수정(이지원)은, 전교 꼴찌를 하면 자살을 하는 거냐는 두심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자살이 아니야. 그렇다고 타살도 아니고. 어쨌든 죽어. 그래서 죽기 싫으면 죽어라 공부해야 하는 게 여기 송영고야.” 대부분의 자살이 사회적 타살이라는 걸 생각하면, 특히나 성적 비관 자살은 더더욱 그렇다는 걸 생각하면 수정의 말은 매우 정확한 이야기다. 왜 아니겠나? 전교생들의 성적 등락을 교무실 칠판에 적어두고는 “무능한 자에게 기회는 없다”는 말을 대단한 격언처럼 덧붙인 학교인데, 매번 “이번엔 누가 죽을까” 전교생들의 관심이 스포츠 중계 보듯 쏠리는데, 그게 어떻게 그냥 자살일 수가 있나?

설정을 살펴보면, <우수무당 가두심>의 세계 안에서 이런 세상의 시선들은 귀신의 형태로 의인화가 된 듯하다. 공부를 못하는 애들의 몸속으로 파고 들어가 자살로 위장한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귀신. 하긴, 자연스럽다. 성적 비관 자살이라고 하면 누구도 죽음의 이유를 크게 의심하지 않으니까. 겉으로는 웃어도 쟤도 고민도 많았겠지 하고 무심히 넘기는 인간들의 시선 속에서, 귀신도 편하게 다른 이들의 영혼을 거두고 웃었겠지. 이제 제 운명을 지켜내야 하는 두심과, 얼떨결에 귀신을 보는 눈을 갖게 된 전교 1등 우수(남다름)은 그 귀신을 잡아 봉인하기 위한 싸움에 나서야 한다. 두심이 무사히 성인이 되도록 하기 위해, 혹은 전교 꼴찌에서 간당간당한 친구들도 죽지 않고 계속 곁에서 함께 살아가게 하기 위해.

그래, 차라리 귀신이 그랬다고 하는 쪽이 나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죽음에 이를 때까지 창피를 주고, 모멸감이 들도록 만들고, 숨 쉴 구멍 하나 없는 경쟁 속으로 몰아넣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인 인권과 행복조차 ‘능력이 되는 사람’에게만 허락하고, 그렇게 외롭게 고립시킨다고 생각하면 너무 막막하니까. 그딴 짓을 하는 게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사람인 게 너무 초라하고 창피해지니까. 그냥 귀신이 그러는 거라고 하는 게 좋겠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잠을 청하려 누우면 두 눈은 근심으로 감기지 않겠지. 귀신보다 무서운 사람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기회가 된다면, 할머니의 신통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두심이에게 물어봐야겠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