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25번째 시리즈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수차례의 개봉 연기를 거쳐 9월 29일 드디어 개봉했다. 시리즈의 상징과도 같은 주제가는 (시리즈 최연소 주제가 가수) 빌리 아일리시의 'No Time to Die'다. 빌리 아일리시와 친오빠이자 둘도 없는 음악 파트너 피니어스 오코넬(Finneas O'Connell)이 함께 만든 곡은 개봉예정일이었던 2020년 2월에 이미 발표된 바 있다. '제임스 본드 테마'부터 빌리 아일리시 'No Time to Die'까지, <007> 시리즈 주제가를 엄선해 발표순으로 소개한다.


John Barry & Orchestra

"James Bond Theme"

살인번호

Dr. No, 1962

제임스 본드와 본드 걸만큼이나 강력한 <007> 시리즈의 시그니쳐, 바로 '제임스 본드 테마' 곡이다. 시리즈의 포문을 연 <살인번호>의 음악감독 몬티 노먼은 소설 <비스와스 씨를 위한 집>을 뮤지컬화 하는 프로젝트를 위해 써놓았던 'Good Sign, Bad Sign'을 재활용해 그 유명한 기타 멜로디를 완성했다. 다만 <살인번호> 프로듀서들은 몬티 노먼의 편곡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존 배리(John Barry)에게 작업을 맡겨 우리가 아는 재즈 풍의 편곡으로 완성됐다. 훗날 '제임스 본드 테마' 저작권을 둘러싼 몬티 노먼과 존 배리의 법정 공방이 벌어졌는데, 법은 노먼의 손을 들어줬다. 노먼이 1976년부터 1999년까지 받은 로열티만 60만 파운드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Shirley Bassey

"Goldfinger"

골드핑거

Goldfinger, 1964

존 배리는 두 번째 시리즈 <위기일발>(1963)부터 15번째 시리즈 <리빙 데이라이트>(1987)까지 총 11편의 <007) 시리즈 음악감독을 맡았다. 변화를 꾀하기 위해 드문드문 다른 음악가가 기용되긴 했지만 결국 존 배리가 복귀하는 식이었다. 처음 두 편은 몬티 노먼과 존 배리가 함께 만든 연주곡이 오프닝 크레딧에 쓰였다면, 세 번째 시리즈 <골드핑거>부터는 당대 인기 있는 가수들을 초대한 주제가가 쓰이는 전통이 시작됐다. 'Goldfinger'는 존 배리가 작곡하고, 웨일스 출신의 가수 셜리 배시가 불렀다. 현악과 관악이 휘몰아치는 오프닝에 셜리 배시의 벼락같은 보컬이 더해져 그 거대한 기운이 줄곧 이어지는 명곡. 레드 제플린을 결성하기 전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Jimmy Page)가 세션으로 참여했다. 셜리 배시는 존 배리가 음악을 맡은 또 다른 <007> 영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1971)와 <문레이커>(1979)의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Nancy Sinatra

"You Only Live Twice"

두 번 산다

You Only Live Twice, 1967

셜리 배시의 'Goldfinger'가 초장부터 끌어올린 하이텐션을 줄곧 유지했다면, 낸시 시나트라의 'You Only Live Twice'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단출한 기타 사운드를 오가는 완급 조절이 매력을 더한다. 줄리 로저스(Julie Rogers)가 먼저 녹음했지만 결과물을 탐탁지 않아 하던 존 배리는 곡을 보완해 낸시 시나트라의 버전으로 완성해, 현재까지도 최고의 <007> 주제가를 꼽는 리스트들에서 상위권을 굳건히 차지하고 있다. 당시 낸시 시나트라의 프로듀서였던 리 헤이즐우드(Lee Hazelwood)가 다시 매만진 버전도 발매됐다. 콜드플레이, 소프트 셀, 뷔욕, 로비 윌리엄스, 씨로 그린 등 후대 뮤지션들에게 꾸준히 리메이크 되고 있다.


Paul McCartney & Wings

"Live and Let Die"

죽느냐 사느냐

Live and Let Die, 1973

1973년 작 <죽느냐 사느냐>는 'Goldfinger'의 프로듀싱을 맡고 그 이후 비틀즈(The Beatles)의 전담 프로듀서로 활약한 조지 마틴(George Martin)이 오리지널 스코어를 만들었다. 이전 주제가들을 모두 음악감독인 존 배리가 작곡했던 것과 달리, 폴 매카트니와 그의 밴드 윙스의 'Live and Let Die'는 폴 매카트니가 아내 린다와 함께 쓴 노래다. 매카트니는 <죽느냐 사느냐>의 각본이 완성되기 전에 곡 작업을 의뢰 받았고, 윙스의 앨범 <Red Rose Speedway>를 작업하던 시기에 'Live and Let Die'를 만들었다. 매카트니와 마틴의 오랜 파트너십 덕분에 좀처럼 제대로 섞이기 힘든 록 밴드 사운드와 오케스트레이션의 조합이 성공적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007> 시리즈 최초로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의 영예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ra Streisand)가 부른 <추억>(1973) 주제가 'The Way We Were'에 돌아갔다.


Carly Simon

"Nobody Does It Better"

나를 사랑한 스파이

The Spy Who Loved Me, 1977

<추억>으로 오스카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휩쓴 마빈 햄리시(Marvin Hamlisch)가 음악감독을 맡은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주제가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칼리 사이먼이 노래한 'Nobody Does It Better'다. 전작 주제가들이 영화 제목을 그대로 따왔던 전통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제목("나를 사랑한 스파이"라는 가사가 있긴 하다)을 붙였다는 점이 돋보인다. 빵빵한 브라스 사운드가 박력을 더했던 전작들에 비해 훨씬 차분한 분위기의 곡임에도 큰 성공을 거뒀는데, <그대는 내 인생의 빛>의 주제가 'You Light Up My Life'에 밀려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와 오스카 주제가상을 차지하진 못했다.


Duran Duran

"A View to a Kill"

뷰 투 어 킬

A View to a Kill, 1985

80년대는 바야흐로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댄스 뮤직의 시대였다. <007> 시리즈에 가장 많이 출연한 제임스 본드 배우 로저 무어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뷰 투 어 킬> 역시 유행에 발맞춰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신스팝 밴드 듀란 듀란을 주제가의 주인공으로 초대했다. 듀란 듀란과 존 배리가 함께 멜로디를 쓰고, 마돈나의 앨범 <Like a Virgin> 프로듀서인 버나드 에드워즈가 프로듀싱을 맡은 'A Veiw to a Kill'은 <007> 주제가로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국 빌보드 1위에 오르는 쾌거를 기록했고, 밴드의 최고 히트곡으로도 자리잡았다. 다음편 <리빙 데이라이트>에는 노르웨이 신스팝 밴드 아하에게 주제가를 맡겨 댄스 뮤직의 열풍을 이어갔다.


Gladys Knight

"Licence to Kill"

살인 면허

Licence to Kill, 1989

명실공히 <007>의 대표 음악감독 존 배리가 <리빙 데이라이트>를 마지막으로 물러난 후, <리쎌 웨폰>과 <다이 하드>의 마이클 카멘이 <살인 면허>의 음악을 담당했다. 주제가 'Licence to Kill'은 카멘이 작곡에 관여하는 대신, 휘트니 휴스턴의 데뷔 앨범을 대성공을으로 이끈 나라다 마이클 월든(Narada Michael Walden)과 월터 아파나시에프(Walter Afanasieff)와 만들고, "소울의 여제" 글래디스 나이트가 노래했다. 이 작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월터 아파나시에프는 머라이어 캐리의 음악 파트너로 활약하고, <미녀와 야수> <알라딘>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 황금기 주제가와 <타이타닉>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을 만들면서 90년대 최고의 프로듀서로 군림했다.


Tina Turner

"GoldenEye"

골든아이

GoldenEye, 1995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간격으로 신작을 이어가던 <007> 시리즈는 소련 붕괴로 냉전시대의 상징인 스파이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고민으로 6년 동안 멈춰 있다가, 여섯 번째 제임스 본드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의 <골든아이>로 돌아왔다. 오랜만의 컴백작인 만큼 주제가의 규모 또한 만만치 않았다. U2의 보노(Bono)와 디 엣지(The Edge)가 작곡하고, "로큰롤의 여왕" 티나 터너(Tina Turner)가 노래한 'Goldeneye'가 바로 그것. 록 신의 명장들이 만든 으리으리한 분위기에 90년대 초중반 힙합 기반의 댄스 뮤직의 유행을 일으킨 프로듀서 넬리 후퍼(Nellee Hooper)의 솜씨까지 더해져 보다 독특한 결과물이 나왔다.


Madonna

"Die Another Day"

어나더 데이

Die Another Day, 2002

<007> 주제가를 당대 가장 핫한 뮤지션이 도맡아 왔던 걸 떠올려보면, 2002년에야 마돈나가 <007> 주제가를 부르는 건 살짝 철지난 결정처럼 느껴지는 감이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사된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사 'MGM'이 거물급 뮤지션 중에서도 마돈나를 점찍었다. 마돈나는 2000년 앨범 <Music>부터 4개의 앨범을 같이 만든 프랑스 프로서 미르바이스 아마드자이(Mirwais Ahmadzaï)와 함께 'Die Another Day'를 만들었다. <007> 주제가인 만큼 오케스트라 편곡을 활용하긴 했지만, 2003년에 마돈나가 한창 빠져 있었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가 무엇보다 돋보인다. 마돈나의 이름값에 당시 기준 2번째로 높은 제작비를 들여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한 것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을 거뒀다.


Adele

"Skyfall"

스카이폴

Skyfall, 2012

"구관이 명관"은 <스카이폴>을 관통하는 관용구다. 아날로그가 디지털을 이긴다는 메시지가 영화 전반에 퍼져 있다. 디지털 음원 시대에 3천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리면서 최고의 디바로 떠오른 아델(Adele)이 부른 주제가 'Skyfall' 역시 유행의 영향 따위 느껴지지 않는 순도 높은 오케스트라 팝이다. 'Rolling in the Deep'의 폴 엡워스(Paul Epworth)가 프로듀싱을 맡은 77인조 오케스트라가 내뿜는 소리를 유영하는 아델의 절창! 실로 어마어마하다. <007> 시리즈 첫 개봉일의 50주년인 2012년 10월 5일 0시 07분에 공개된 'Skyfall'은 그해 가장 많이 재생된 노래 중 하나였다. 아델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Skyfall' 무대를 선보였고, 주제가상까지 수상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