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26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코로나의 여파에서 조금씩 회복 중인 추세에 따라 다양한 기대작들이 함께 했다. <아네트>, <드라이브 마이 카>, <히어로>, <티탄> 등 영화계에 내로라하는 기대작 사이에서 그에 못지않게 화제를 모은 드라마들이 있다. 바로 넷플릭스가 오는 10월, 11월 공개할 <마이 네임>과 <지옥>이다. <킹덤>이 포문을 열고 <오징어 게임>이 정점을 찍은 넷플릭스발 한국산 콘텐츠의 입지를 이어갈 두 작품은 극장에서 각각 3화까지 상영했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극장에서 본다는 드문 기회를 놓치지 않고 8일에 상영한 <마이 네임>과 <지옥>을 미리 맛보았다.
지옥
한편으론 '이제서야?' 싶은 만남, 넷플릭스와 연상호. 소재의 경계선이 없는 넷플릭스와 한국 영화에 B급 요소 첨가의 유행을 선도한 연상호 감독의 만남은 <지옥>으로 성사됐다. <지옥>은 연상호가 스토리 쓰고 <송곳>의 최규석 작가가 그림을 맡은 동명의 원작 웹툰을 6부작 드라마로 재편했다. '천사'에게 지옥에 가는 시간을 '고지'받은 인간은 반드시 그 시간에 지옥에 데려가는 '사자'가 죽음을 '시연'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번 실사 드라마는 연상호와 최규석이 함께 각본을 집필하고 연상호가 연출을 맡아 원작의 풍미를 그대로 가져왔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총 6부작 중 3화까지 상영했는데, 원작 웹툰의 1부·2부 분기점에 해당하는 시점이어서 한 편의 작품으로 관람하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다만 박정민과 원진아는 4화부터 주역이 될 캐릭터를 연기해 박정민만 딱 한 장면에서 볼 수 있었다.
극대화된 장점
연상호라는 이름을 신뢰한다면 그의 장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 독특한 설정, 혹은 사건을 말미암아 발생하는 군상과 갈등, 그것이야말로 연상호의 주특기다. 장편 애니메이션 데뷔작 <돼지의 왕>부터 근래 연출한 영화 <반도>까지, 그의 작품은 인물 간의 갈등을 기반으로 인간성의 이면을 내비치는 데 주력했다. <지옥> 또한 죽음의 사자라는 초현실적인 소재를 사용했으나 작품이 전개될수록 그 해명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것은 그저 존재할 뿐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 군상의 충돌이 관객들을 매섭게 흔들었다.
원작을 봤더라도 이번 실사 드라마를 지켜보라고 권하고 싶다. 최규석 작가의 작화가 말끔하고 흑백으로 짙은 음양을 표현했다면, 이번 실물 드라마는 시청자의 피부에 와닿는 실재감으로 그득하다. VFX로 여러 차례 비현실적인 순간을 묘사한 연상호 감독은 '사자'가 주변의 물체들과 상호작용하는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표현해 현실감을 채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로, 공사장, 주택가 등 친근한 장소들이 웹툰과는 또 다른 공포감을 만든다.
화려한 출연진의 안정적인 앙상블
물론 위의 장점 외에도 <지옥>을 봐야 할 이유는 또 있다. 배우들의 연기가 탁월하기 때문. 1부에 주축이 되는 유아인, 김현주, 양익준의 연기는 각각의 캐릭터를 또렷하게 표현하며 앙상블을 빚는다. 유아인의 특유의 리드미컬함 대신 좀 더 정제된 말투로 정진수라는 캐릭터의 의뭉스러움을 표현했다. 유아인은 여전히 유아인이지만 그의 연기적 변화의 징조를 보는 듯했다. 김현주와 양익준은 그와 대척점에 있는, 진경훈 형사와 민혜진 변호사라는 상대적으로 이성적인 캐릭터를 맡아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양익준은 과거의 장면에서 굵직한 감정연기로 눈시울을 붉히며, 김현주는 각종 위기 속에서도 신념을 빛내는 눈빛을 내비치며 잔상을 남긴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배우가 둘을 소개하고 싶다. 하나는 고지를 받으면서 극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박정자를 연기한 김신록. 최근 <괴물>에서 오지화 역으로 눈도장을 찍은 그는 공포 앞에서 점점 찌들어가는 와중에도 아이들을 각별히 생각하는 박정자를 완벽하게 표현했다(거기에 보는 사람에 따라 그를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는 모호함까지). 다른 한 명은 화살촉의 리더를 맡은 김도윤. 이미 <반도>에서 연상호와 호흡을 맞춘 김도윤은 이번 작품에서 라이브 방송으로 광신도들을 선동하는 해골 가면을 연기해 '미친 독백 연기'를 선보인다. 그의 연기와 제작진의 디테일한 라이브 채팅이 만나 극의 부조리함을 배가시킨다. <지옥>은 오는 11월 19일 넷플릭스로 전 세계 동시 공개한다.
"오늘 특별히 엄마 아빠도 오셨는데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드리게 됐다"
-유아인
새진리회 정진수 의장을 연기한 유아인은 GV에서 부모님이 오셨다고 언급했다. 본인은 충격적인 모습이라고 언급했지만, 관객들은 박수로 <지옥>과 그의 연기에 화답했다.
"유니버스를 총괄한다면 <진양시>를 만들 것 같다"
-연상호
이야기꾼으로 소문난 연상호 감독은 현재 <서울역>-<부산행>-<반도>, <방법>-<방법: 재차의> 등 다양한 작품의 세계관을 보유하고 있다. 한 관객이 이런 유니버스를 통합할 생각이 있는지 묻자, 그는 작품의 판권 때문에 현실적으로 힘들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만일 유니버스를 통합할 수 있는 총괄 권한이 생기면 '진양시'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진양시는 연상호 감독 작품 속 가상의 도시로 바이러스가 발견되고(<부산행>) 초자연 현상이 발생하는(<괴이>) 곳이다. 이번 <지옥>에도 진양시가 등장한다.
"<오징어 게임>을 능가하는 이슈가 돼서 제 인스타그램 (팔로워) 4천 명인데, 100만 돼보고 싶다"
-양익준
양익준은 GV에서 유머러스한 발언을 남겼다. 진경훈은 딸이 있는 아빠인데, 본인은 미혼이고 결혼하고 싶다는 폭탄 발언부터 작품이 없을 때 머리를 안 자르는데 가슴팍까지 왔을 때 <지옥>에 캐스팅돼 머리를 잘랐다는 디테일한 비하인드까지 들려줬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모두가 떠올렸을 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의 흥행을 언급한 것. 그는 <지옥> 또한 글로벌 공개가 된다면서 <오징어 게임>처럼 흥행작이 되길 바란다는 포부(?)를 밝혔다.
마이네임
<지옥>이 소문난 맛집의 새로운 메뉴라면, <마이네임>은 이름난 셰프의 신장개업이지 않을까. 10월 15일 공개될 <마이 네임>은 <인간수업>을 연출한 김진민 감독이 김바다 작가의 오리지널 각본으로 연출했다. 조직에서 일하는 아빠 윤동훈의 죽음을 목격한 윤지우가 아빠의 친구이자 조직의 보스 최무진의 도움을 받아 경찰에 위장 잠입해 아빠를 죽인 범인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조직과 경찰이란 키워드에서 보듯 누아르 장르를 표방하고 있는데, 드물게도 여성이 주인공이란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그 여성 캐릭터 윤지우를 한소희가 맡으면서 역대급 기대작 자리에도 올랐다. 부산영화제에서는 8부작 중 3화까지 상영했는데, 본격적으로 갈등이 터지는 시점에서 끝나 아쉽다는 반응도 있었다.
캐릭터만큼 처절한 열연
<마이 네임>은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신선함보다는(상영한 3화 기준) 배우들의 시너지가 유독 도드라졌다. 앞서 말한 한소희는 윤지우/오혜진 역으로 극 전체를 이끄는 원톱 캐릭터에 처음 도전한다. 대중의 기대에 부흥하고 스스로의 역량에 부흥하려는 듯 한소희는 극중 캐릭터처럼 칼을 가는 모양새로 한 컷 한 컷 착실하게 캐릭터의 감정을 쌓아간다. 그뿐만 아니라 근육량을 늘리고 액션을 대부분 소화해 윤지우의 악바리 근성을 여과 없이 전한다. 한소희와 함께 드라마를 받치는 배우는 동천파 보스 최무진 역의 박희순과 마약수사대 파트너 전필도 역의 안보현이다. 박희순은 '역시 박희순'이란 표현이 절로 나오는 중후한 연기가 극 초반에 힘을 실어주고, 안보현은 퉁명스럽고 까칠하지만 사건만큼은 전력투구하는 형사 캐릭터로 극 중후반 <마이 네임>의 암투에 활약할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최근 가장 독보적인 신스틸러 중 한 명인 윤경호는 드라마 초반에 등장하는 윤동훈을 시청자들의 뇌리에 정확하게 남는 순간들을 만든다. 윤동훈의 죽음이 극의 도화선인 만큼 윤경호라는 선택은 탁월했다. 이학주는 최무진의 오른팔 정태주 역으로 무진에겐 충성하지만 윤지우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드라마의 전개에 또 다른 키가 될 듯하다. 반면 상영한 3화 기준 가장 예측불허의 악역 도강재는 장률이 연기했는데, 미워할 수밖에 없는 악역 캐릭터를 맛깔나게 연기해서 공개된 후 대중들의 반응이 궁금해질 정도다.
누아르+실전=혈투 액션
많은 시청자들이 기대하고 있는 액션은 어땠을까. 드라마 초반임을 감안하면 3화까지의 액션은 분량이 조금 아쉽긴 하다. 그러나 장면마다의 퀄리티는 공개하지 않은 후반부까지 기대하게 한다. 적어도 컷들을 잘게 쪼개는 눈속임 없이 배우들이 펼치는 실제 스턴트들을 한 화마다 한 시퀀스 이상 보여준다. 특히 넷플릭스 오리지널답게 누아르에 걸맞은 수위로 전개되는 점에서 만족스럽다. <마이 네임>의 액션은 타격기 위주의 무술이 아니라 무기를 사용하는 실전을 표방하기에 유혈이나 폭력적인 분위기를 굉장히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3화까지만 봐도 처절한 액션 장면이 있었으니 후반에도 훨씬 더 격렬하고 치열한 액션들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액션만큼 감각적인 연출
직접 본 <마이 네임>은 액션만큼 전반적으로 감각적인 순간들이 인상적이었다. 음악은 저음이 강한 일렉트로닉과 현악기의 고음이 흐르는 클래식을 교차로 사용해 윤지우가 겪는 조직 생활과 최무진과의 관계를 대비적으로 드러냈다. 시간의 흐름을 편집으로 한 컷처럼 담아내는 장면, 서로 먼 거리에 있는 부녀를 부감샷으로 교차하는 장면 등 시각적으로도 <마이 네임>을 세련되게 만들려는 고민들이 묻어있다. 액션 장면의 카메라워크도 빠르게 움직이되 피사체의 동작을 정확히 잡아내려는 부단한 노력이 절실히 드러났다. 특히 각 화를 열고 닫는 오프닝과 엔딩곡 또한 인상적이다.
호불호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다만 <마이 네임>을 직접 관람한 후 기우가 생기긴 했다. <마이 네임>은 누아르란 장르의 허용 범위와 넷플릭스란 플랫폼의 폭넓은 허용 범위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장르 내의 사실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는데, 이 부분은 결국 시청자 개인의 취향에 따라 극명한 호불호가 발생할 것이다. 평소 폭력적인 분위기나 유혈 등에 민감한 시청자라면 <마이 네임>을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 곤혹일 수밖에 없다. <마이 네임>을 기대하고 있다면 이 점을 꼭 유의하길 바란다. 특히 <마이 네임>은 남성뿐인 조직에 합류한 여성이 주인공이기에 자연스럽게 성별에 관한 폭력적인 언행 등도 일부 담겼다. 장르나 이야기 구조로 봤을 때 필요한 부분임은 맞지만, 이에 대한 논란은 피할 수 없지 않을까 노파심이 생긴다.
"집중해서 보느라 눈이 빨개졌다"
- 한소희
최전선에서 극을 이끄는 한소희는 8일 <마이 네임>을 처음 봤다고 말했다. 전날 7일에도 상영이 있었지만 일정 문제로 관람은 하지 못하고 GV에만 참석했던 것. 이날 관객들과 같은 공간에서 <마이 네임>을 본 한소희는 관객들이 집중해서 보는 모습에 자신도 덩달아 감동했다고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제일 먼저 보셨지만 제일 오래 기다리셔야 할 분들"
-박희순
박희순은 <마이 네임>을 관람한 이들에게 "3화까지 봤으니 4부가 궁금하시지 않냐"면서 "제일 먼저 보셨지만 제일 오래 기다리셔야 할 분들"라고 농을 던졌다. 그러면서 그는 "3부보다 4부가 더 재밌다, 그리고 4부보다 5부가 더 재밌다"고 덧붙여 관객들을 웃게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갈수록 더 밀도가 있어지고 갈등이 고조된다고.
(3화 이후) "매 회마다 액션신 있다"
-김진민 감독
이날 스포일러 없이 4회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박희순은 "3회까지 액션신이 있었는데,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김진민 감독 또한 "진짜 예고를 해드리자면, 매 회마다 액션이 있다. 그리고 여기 있는 모든 배우들이 각 회마다 한 번씩 주인공 역할을 한다"고 언질 했다. "(뒤로 갈수록) 연출은 안 좋을 수 있는데 연기는 더 좋아진다. 내가 보증한다"고 확언한 김진민 감독의 자신감이 느껴지는 답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