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성북동 골목길 구석의 오래된 한옥의 작은 카페. 끼익 소리가 나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니 작은 마당에 키 큰 조은성 감독이 서 있었다. 2017년에 개봉한 전작 다큐멘터리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인연으로 그는 책보냥이라는 이 카페 주인과 가까운 사이가 됐다. 그런 사연으로 온통 고양이 세상인 카페에서 고양이 그림 티백의 차를 마시며 <1984년 최동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카페 한쪽에 누워 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야구에 빠진 아저씨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최동원이라는 사람한테 끌리게 된 이유다.
중학교 때까지 야구 선수였다. 프로야구 선수가 꿈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그때 최동원 선수가 출전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랑 1984년도 한국 시리즈 경기를 잠실야구장 가서 직접 봤는데 너무 멋있었다. 특히 82년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큰 서양인들을 상대로 안경 쓰고 왜소해 보이는, 어떻게 보면 마른 체형의 동양인 투수가 강속구로 삼진 잡는 게 너무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렇게 그분이 롤모델이 됐다.
어릴 때 투수를 했나.
주로 유격수를 했다. 그때는 몸이 작고 빨랐다. 모두가 투수를 꿈꾸던 시절이었다. 최동원 선수는 열정, 투혼 이런 단어 이상의 뭔가를 가지고 계셨던 분이다. 10여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스포츠 다큐멘터리 만들고 있을 때(조은성 감독은 <60만번의 트라이> <울보 권투부> <그라운드의 이방인>의 PD이기도 하다)니까 언젠가 이분을 기록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속 영웅을 이렇게 떠나보내는 건 죄송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5년 전이다.
잠깐 딴 얘기지만 최동원, 선동열의 맞대결을 다룬 <퍼펙트 게임>의 박희곤 감독도 어릴 때 야구 선수를 했다고 하더라.
아, 그 영화도 재밌게 봤다.
<퍼펙트 게임>도 봤다고 하니까 궁금해진다. 보통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자료를 많이 보는 편인가.
어떤 소재나 주제나 인물에 접근할 때 굉장히 많은 자료를 먼저 본다. 박스 3~4개 정도에 들어갈 정도의 텍스트 자료들을 미리 보고 시작한다. 텍스트, 영상, 사진 등을 다 본 다음에 나만의 매뉴얼을 만들고 구성안을 뽑는다.
구성안이라고 하면 극영화의 콘티 같은 건가.
극영화로 치면 시나리오다. 그런데 통제가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영화는 날씨 외에는 다 통제가 된다. 배우들 스케줄, 세트, 연기 동선, 대사도 일일이 다 지정을 한 거지 않나. 그런데 다큐멘터리는 날씨조차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만나거나 인터뷰를 할 때 이 사람에게 듣고 싶은 얘기가 그려져 있기는 한 상태다. 그런데 막상 촬영 들어가면 절대 그런 얘기 안 나온다. 내가 원하는 답변을 들으려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린다. 방송은 시간이 없으니까 답변을 유도하기도 하고 이렇게 물어보면 이렇게 답변을 해주세요, 라고 연출을 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걸 싫어한다.
5년 전부터 준비했다고 했는데 그정도면 극장용 장편 다큐멘터리 수준에서 오래 걸린 건가.
내 기준에서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내가 만든 첫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가 기획부터 극장 개봉할 때까지 7년 걸렸다. 통상 아무리 못해도 3년 이상 걸리는 게 평균 정도다. 그래서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번주는 최동원, 다음주는 고양이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도 있다.
영화를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낀 건 자료 화면이나 이런 것보다 사람들을 다 모은 거였다.
다큐 만들 때 제가 제일 어려워하는 게 사람들을 설득하는 문제다.
카메라 앞에 세워야 하는 문제인가.
그렇다. 예를 들면 <그라운드 이방인>이라는 제일동포 학생 야구단을 담을 때 많은 분들이 출연을 거절하셨다. 자기가 한국인이라는 걸 드러내기 싫어서 그랬다. <1984 최동원> 같은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었던 게 바빠서 거절하신 분은 계셨어도 그 사람 잘 모르는데,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은데, 하신 분은 없었다. 최동원 선수와 함께 직접 그 1984년도 한국 시리즈를 뛰었던 동료들 위주로 만났다. 부산에 계시면 부산으로 가고 일본에 계신다고 그러니까 또 일본으로 가고.
기자도 야구를 조금 좋아했다.
어느 팀 팬인가?
고향이 부산이고 롯데 자이언츠 팬이었다. 그래서 편집장이 나한테 인터뷰를 시켰다. 그런데 최동원 선수를 실제로 본 적은 없다. 1984년에는 완전 꼬마였다. 1992년 우승할 때는 직접 야구를 봤다. 그래서 당시를 회상하는 선수들의 육성을 듣는 거 자체가 좀 신기했다. 특히 김시진 감독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그분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1984 최동원>은 김시진 감독 인터뷰로 시작하고 끝나는 영화다. 김시진 감독님과 사전 취재차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절친한 동료이자 당대 라이벌이자 또 맞트레이드의 안 좋은 기억도 있는 애정과 애증이 교차하는 분이더라. 한국 시리즈에 3번 등판했는데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영화에도 잠깐 나오지만 진짜 은퇴를 생각할 정도로 충격이 컸다고 직접 증언도 하신다. 나는 이 영화가 김시진 감독님이 최동원 선수에 대한 회고를 하는 느낌을 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동료이자 라이벌이자 친구였으니. <아마데우스>라는 영화의 모차르트(톰 헐스)와 살리에리(F. 머레이 아브라함)의 느낌.
많이 알려진 이야기일 테지만 당시 김시진 선수가 한국 시리즈 1차전 당일 아침에 교통사고를 냈다거나 부상 관련 이야기를 몰랐던 입장에서 엄청 재밌게 봤다.
한국 시리즈를 당시에 직접 보셨던 분들 연령대가 지금 굉장히 높아졌다. 벌써 38년 전 이야기니까. 그래서 젊은 친구들은 그 경기에 대한 경험들을 이야기로만 듣거나 아니면 짤막한 하이라이트로만 기억을 할 거다. 1차전부터 7차전까지 이렇게 디테일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는 없었으니까 스크린을 통해서 재현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이 영화가 1984년 한국 시리즈만 딱 보여주는 이유를 알게 됐다.
왜 그러냐면 최동원 선수가 돌아가시고 나서 방송에서 추모 다큐멘터리를 많이 했다. 그건 거의 다 일대기적 구성이다. 최근에도 부산 MBC에서 <시대를 향해 던지다>라는 제목의 방송을 내보냈다.
한국 시리즈에 집중했지만 도입부에서 3분할로 당시 분위기를 자료 영상을 통해 보여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혼란스럽고 역동적인 1980년대를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주기 위해서 그런 기법을 썼다. 한쪽에는 혼란스러운 민주화 운동, 또 한쪽에는 굉장히 평화로운 일상, 가운데는 프로야구 출범과 LA 올림픽 영상으로 구성했다. 그러고 나서 이제 현재로 넘어와서 사직구장 보여주고 김시진 감독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터뷰 화면에서 얼굴에만 조명을 비추고 배경을 검게 처리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야구가 굉장히 역동적인 운동이다. 인터뷰는 좀 정적이길 바랐다. 그리고 이분들이 이야기를 할 때는 약간 추모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블랙을 좀 일부러 썼다. 또 조명이 너무 밝거나 이런 카페 같은 데서 인터뷰를 하면 보기는 이쁘지만 시선이 분산된다. 오롯이 그 양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조명을 어둡게 썼다. 한국 다큐에서 아마 그렇게 쓴 경우는 거의 없을 거다.
마지막 7차전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마운드에 서 있는 최동원 선수만 컬러로 보이고 나머지는 흑백으로 처리한 이유도 궁금하다.
한국 시리즈 9회말 투아웃에 최동원 선수가 던졌던 그 마지막 공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때는 오로지 최동원 선수만 좀 바라봐주기를 바랐다.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기도 하고. 그것도 어렵게 찾은 자료들이다. 그리고 색도 관중이나 다른 선수들은 색을 좀 빼고 최동원 선수만 따로 따가지고 색을 좀 더 과하게 입혔다. 슬로우도 좀 걸어보고. 음악도 마지막 공을 던질 때는 뺐다. (밴드 시나위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신대철 선배가 음악을 맡았는데 마지막 공은 오롯이 그냥 그 공만 보고 싶다고 했더니 동의해주셨다.
신대철 기타리스트가 영화음악을 많이 작업했나.
신대철 선배가 영화과 출신이다. “형은 영화과 왜 갔어요” 그랬더니 영화과 가면 영화음악 할 줄 알았다고 하더라. (웃음) 자이언트 팬이시기도 하다.
내레이터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다. 배우 조진웅이 유명한 롯데 팬이라서 섭외는 쉬웠을 것 같다.
기획 단계부터 조진웅 아니면 영화 접자 그런 생각을 했다. 조진웅한테 연락을 했더니 이거는 꼭 자기가 해야 되니까 딴 사람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하더라. 녹음도 한달음에 끝냈다. 다큐를 10여 년 넘게 만들다 보니까 내레이션하는 분들이 진심인지 아닌지 알게 된다. 조진웅은 진짜 진실했다. 우리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1984 최동원> 잘 부탁한다고 얘기하고 다닐 정도다.
내레이션과 함께 다큐멘터리에서 익숙한 요소가 자막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자막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에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통해 한국 영화, 드라마를 보면서도 자막을 켜고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
자막을 테스트로 몇 번 넣어봤다. 자막이 있으면 자막을 보게 되지 그 사람의 표정을 보게 되지 않더라. 인터뷰 컷을 보면 다른 다큐 인터뷰 앵글과 달리 익스트림 클로즈업이 좀 많다. 그분의 말과 표정으로 경기를 회고하는 관객들이 몰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앵글도 그렇게 설계했다. 다큐 만들 때 뭘 더 넣을까보다 뭘 더 뺄까 계속 고민했다. 연출할 때 자신 없는 사람들이 효과도 많이 넣고 자막도 많이 넣고 음악도 과도하게 넣는다. 방송이 딱 그렇다.
야구 용어에 대한 해설 자막도 없다.
(포수로 최동원 선수의 공을 받았던) 한문연 감독이 얘기하는 것 중에 프레이밍(Framing)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야구하시는 분이나 팬들은 알지만 일반분들은 모른다. 그런 부분에 자막을 한번 넣어줄까 그래서 넣어봤는데 안 어울리더라. 굳이 설명을 해야 되나 싶었다. 해석의 여지를 좀 두면 영화 보다가 옆사람한테 물어볼 수 있는 게 영화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다.
자막 대신 기억에 남는 건 한국 시리즈 기록지였다.
실제 기록지를 구해서 일일이 스캔하고 원본은 반납했다. 기록지 보면서 3번 타자가 삼진을 3번이나 당했네 이런 걸 보여주고자 한 건 아니다. 그걸 넣은 이유는 일종의 서사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1984년도 가을, 열흘간의 서사를 좀 기억해주십사 부탁드렸던 그 요소 중 하나가 기록지였다.
기록지 이외에 한국 시리즈 자료 영상을 모으는 건 어렵지 않았나.
(손사래를 치며) 어렵다. 자료가 거의 없다. 방송국 창고 뒤지고 유족분들이나 지인분들한테 녹화해 놓은 거 받아서 디지털로 복원하고 업스케일링해서 쓴 자료들이 지금 완성물에 들어간 영상이다.
원본 영상 화질은 훨씬 더 안 좋을 것 같다.
열악하다. VHS 테이프로 녹화했을 텐데 38년 전이면 안 나와도 뭐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심지어 그 테이프를 재생할 데크 구하는 것도 힘들다. 고장나면 다른 제품 분해해서 고쳐야 하니까 중고 데크를 여러 대 구매하게 됐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작업실 사진을 보여주며) 비디오 데크는 대한민국에서 아마 개인으로는 제일 많이 가지고 있을 거다. 한국에는 또 부품이 없다. 일본에서 수입하고 뭐 해서 거의 억 단위 쓴 것 같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본 미래 배경의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의 한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오래된 비디오 테이프를 보기 위해 수집가를 찾아간다.
이런 장비가 있다는 게 조금 알려져서 몇몇 은퇴한 선수들이 자기 경기한 것을 가지고 오면 디지털로 복원해서 드리기도 한다. 김대중 대통령 기념사업회에도 1970년대 연설했던 카세트 테이프가 한 몇백 개씩 있다. 그거랑 생전에 찍어놨던 영상 이런 거를 다 디지털 아카이브로 복원하는 작업을 했다.
농담 삼아 하는 말인데 그런 아카이브 관련 일만 해도 먹고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웃음) 되게 저렴하게 해드리는 편이라. 사명감 형태라서 본격적으로 돈이 되는 건 아니다. 민간 업자가 있긴 하지만 그 사람들은 업스케일은 안 해준다. 업스케일을 하려면 장비도 필요하고, 발열도 많고, 전기요금도 많이 나오고…. (하략)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다 이런 수집가이자 마니아인 건가. (웃음)
다 그런 것 같지 않다. 특별히 장비 욕심이 좀 많아서. 앞으로는 아카이브를 계속해야 될 것 같다. 아카이브 없어서 못 만든 작품들이 꽤 있다. 차범근 다큐를 만들고 싶은데 독일 방송국 자료는 비싸고 한국에는 자료가 없다. 그래서 못 만들고 있다. 넷플릭스 <마이클 조던: 라스트 댄스> 같은 거 정말 재밌고 잘 만들지 않았나. 나는 제작 기술이 부러웠던 게 아니라 아카이브를 다 갖고 있는 게 부러웠다. 한국은 그동안 아카이브에 대해서 큰 애정이 없었다. 특히 스포츠계가 더하다. 스포츠 아카이브 랩 이런 것도 없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다큐멘터리 제작에 아카이브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1시간 반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보통 200시간을 찍는다. 그럼 1시간 반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버리는 거다. 한국영상자료원도 완성본만 보관하지 촬영본은 보관하지 않는다. 그런데 극영화는 완성본이 중요하겠지만 다큐멘터리 영화는 촬영본이 훨씬 더 소중하다. 혹시 푸른영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 단체를 알고 있나. 그 단체가 올해 창립 30년이 됐다. 30년 동안 촬영한 방대한 자료가 시대성을 담고 있다. 그게 그냥 창고에 그대로 있다.
그 촬영본에서 새로운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퍼블릭 억세스가 가능한 공공기관이나 아니면 돈 많은 네이버에서 이런 아카이브를 보관해주면 좋을 것 같다. 나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다큐멘터리스트들이 꽤 있다.
조은성 감독과의 대화는 1시간이 훌쩍 넘게 이어졌다. 한 시간의 절반은 <1984 최동원>에 대한 이야기였고, 나머지 절반은 아카이브에 대한 조은성 감독의 열정으로 채워졌다. 그가 모두 가지고 있다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영상 자료에 대한 이야기, KBS의 아카이빙 프로젝트 이야기,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제안했다는 한국 야구 40년 아카이브 프로젝트 이야기 등을 모두 싣지 못해 아쉽다. 다큐멘터리 제작자, 연출자로서 조은성 감독의 꿈꾸는 아카이브 미디어 랩이 생기기를 바라고 응원한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