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코믹스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게임의 역사는 무려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소위 오락실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던 벨트스크롤 대전격투 게임부터니까. 오락실 좀 다녀본 그 시절 어린이였다면 기억할 법한 게임사 캡콤에서 제작한 <마블 vs 캡콤>이나 <엑스맨 vs 스트리트 파이터>라든지. 어찌 보면 그때부터 IP 콜라보레이션(!!)은 꽤나 핫한 주제였던 모양이다.

2017년에 오랜만에 출시된 <마블 VS 캡콤 인피니트>

지금이야 실사화 프로젝트에서 나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덕에 게임에 등장하는 코스튬도 꽤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코믹스 원작의 히어로 코스튬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기에 추억 속 그 모습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호크아이의 보라색 가면이라든지, 머리에 날개가 달린 캡틴 아메리카의 오리지널 코스튬이라든지.

여기에 게임 특유의 재해석으로, 최종 보스격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독특한 형태로 등장하기도 했다. <캡틴 아메리카 앤 디 어벤져스>라는 파티 대전 격투 게임의 보스는 캡틴의 대표적 아치 에너미인 레드 스컬이었는데, 이 레드 스컬이 '메카 스컬'이라는 이름의 로봇 합체 형태로 변신(?)하기도 했다.

<캡틴 아메리카 앤 디 어벤저스>의 레드 스컬


이후 90년대에 이어 2000년대까지도 대전 액션 게임이 다수 출시된다. 당시까지만 해도 대중적인 인지도는 어벤저스보다 엑스맨이 높았던 탓으로 엑스맨과 뮤턴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게임이 대부분이었다. 2000년 7월에 최초 개봉한 시리즈의 첫 편 <엑스맨>이 성공을 거두면서 이 영향을 받은 것인데, 개중 휴 잭맨이 열연을 펼친 울버린 트릴로지가 인기를 끌자 영화와 동일한 이름인 <엑스맨 탄생: 울버린>으로 게임이 제작되어 인기를 누렸다.

<레고 마블 슈퍼 히어로즈 2>

이때까지만 해도 스토리 비중은 크지 않거나 영화 내용을 그대로 만드는 선에 그쳤지만, 게임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시장이 커지면서부터는 원작을 기반으로 하되 자체 시나리오를 탄탄하게 짜 넣은 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히어로들이 레고 캐릭터 형태로 등장하며 MCU의 명장면을 오마주하기도 했던 <레고 마블> 시리즈도 있고, 초반 공개된 영상에 등장한 좀 애매한 캐릭터 모델링 때문에 수많은 영화팬들을 당황하게 했던 게임 <마블 어벤저스>도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스마트폰 시장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모바일 게임으로도 제작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 <아이언맨> 1편에 이어 <어벤져스> 시리즈가 인기를 끌자 한참 찾아보기 어려웠던 어벤저스 히어로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게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간 기술의 발전을 거친 덕으로 2D 도트 그래픽이었던 히어로들은 입체감 있는 3D 모델링으로 재탄생해 화려한 이펙트를 선보이게 된다.

게임 <마블 어벤저스>… 크흠.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모든 게임이 잘 된 건 아니었다. 뭐 모바일 게임 시장이라는 게 하루에도 몇십 개씩 신작이 출시되고 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마블 코믹스 혹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강력한 IP에 기대 게임으로서의 재미를 챙기지 못했거나… 길게 서비스를 이어가기에는 운영상의 이슈가 있었거나, 복잡한 사정이 많았다.

<마블 퓨처파이트>, 루나 스노우(가운데)는 심지어 디지털 싱글도 나왔다

물론 재미있는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마블 퓨처파이트>의 경우 순수 한국인(지금까지 동양인 캐릭터는 순수 아시아인보다는 미국 국적인 경우가 대다수였고, 실크도 그랬기 때문에)인 오리지널 캐릭터 '루나 스노우'와 '크레센도(이오)'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 캐릭터들은 「퓨처파이트 퍼스트」라는 제목으로 이슈 발간에도 성공했고, 아마데우스 조나 지미 우 같은 기존 코믹스 캐릭터들과 함께 '에이전트 오브 아틀라스'라는 히어로 팀업에도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콜렉팅 카드 배틀을 멀티플랫폼으로 이식해 많은 게이머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하스스톤> 총괄 기획자 출신 벤 브로드가 블리자드를 나와 설립한 게임사 세컨드 디너에서 <마블 스냅>이라는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기도 했다. 이 게임의 경우 PC(스팀: Steam)와 모바일 모두 출시되어 서비스 중인데, 아무래도 빠른 순발력과 조작 능력(소위… 피지컬)이 필요한 액션 게임보다는 접근성도 높고 잠시 잠깐 한두 판 하기 딱 좋은 스타일이다. 히어로들은 카드 형태로 들어가 있는데, 미묘하게 캐릭터 본연의 성향이나 매력을 잘 살린 부분이 많아 흥미로운 부분이 꽤 많다.

<마블 스냅>의 오늘의 동료가 내일의 적이 되는 네이머와 그의 왕국 아틀란티스

이외에도 다수의 게임들이 최신 플랫폼을 통해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캡틴 아메리카와 블랙 팬서의 액션 어드벤처를 다룬 <마블 앙상블>이라든지 아이언맨을 원톱 주인공으로 내세운 <마블 아이언맨> 같은 게임들이다. 또한 스파이더맨 판권의 소유자이자 플레이스테이션 제작사인 소니 역시 다양한 스파이더맨 게임들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2차 세계대전 배경의 <마블 앙상블>


게임을 좋아하고 히어로 코믹스도 좋아하는 향유층에게 할만한 마블/DC 게임이 나온다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액션 롤플레잉 게임을 만든다고 했을 때 히어로 코믹스 IP만큼 방대한 소재도 없다. 출중하고 다양한 능력의 소유자들이 차고 넘치는 데다가, 히스토리도 깊고 멀티버스 세계관으로 다채롭기까지 해 같은 '아이언맨'이라도 여러 가지로 만들어서 선보일 수 있지 않은가. 거기에 코믹스 이슈는 계속해서 발간되고 있으니 정말 만들기 나름인 셈이다.

특히 히어로끼리의 대결에서 과연 누가 승리할 것인가(!!)의 문제는 일견 익숙한 질문이면서도 어쩐지 팬 커뮤니티에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갑론을박하게 되는 주제인 만큼 게임으로 만들어졌을 때 꽤 흥미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극찬을 받았던 게임 중 하나인 PS4 <마블스 스파이더맨>의 경우 스파이더맨이 되어 직접 방대한 뉴욕시를 웹 스윙으로 날아다니면서, 지금까지 다양한 매체에서 등장했던 코스튬들을 수집해 직접 입어볼 수도 있다. 공사장 구조물에 매달리거나 어벤져스 타워 꼭대기에 올라가 뉴욕시를 구경하는 경험은 꽤나 새로울지도 모른다.

PS4 <마블스 스파이더맨>

다만 여전히… 게이머들에게 영화를 소재로 한 게임은 그리 호평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기는 하다. 직접 조작해 움직이며 상호작용하는 경험은 충분히 매력적인 반면 영화에서 이미 보았던 장면들이나 스토리를 그대로 진행하는 건 그다지 새롭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3D 모델링이 아무리 잘 구현되어 있다 한들 실사영화만큼 생동감이 있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 미묘한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타이틀마다 특유의 재해석을 통해 새롭게 펼쳐 나가는 마블 히어로들의 이야기는, 히어로 팬들에게는 꽤나 재미있는 부분이다. 어쩌면 영화에서 이제 만나보기 힘들어진 MCU 캐릭터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혹은 실사화나 코믹스에서는 접점이 없던 캐릭터들이 같은 공간에 마주해 서로 칼끝을 겨누기도 한다.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최애' 히어로들을 게임이라는 또 다른 멀티버스에서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아닐까.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