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영화를 연출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리고 그 영화가 관객과 다수 영화제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감독으로서 얼마나 큰 행운이자 축복인가. 여기 단 두 편의 영화를 찍고 칸 영화제의 부름을 받은 감독이 있다. 데뷔작 <도희야>(2014)로 제67회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 초청받았던 정주리 감독이 무려 8년 만에 들고 온 신작 <다음 소희>는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다.
<다음 소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2017년 1월, 전주에서 대기업 통신회사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던 한 고등학생이 5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며, 콜센터 노동자의 극심한 감정노동의 실태와 열악한 업무환경이 드러났고,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우리는 제주도의 생수 공장에서, 여수의 요트 업체에서, 그 밖의 수많은 일터에서 또 다른 어린 이름들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
전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다음 소희>는 당찬 열여덟 살 고등학생 소희(김시은)가 현장실습에 나가면서 겪게 되는 사건과, 이를 조사하던 형사 유진(배두나)이 같은 공안, 다른 시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강렬한 이야기이다.
정주리 감독은 <다음 소희>에서 소희의 죽음을 의심의 여지 없이 다뤘고, 그보다 더 큰 암담함으로 유진이 느꼈을 무력감을 현실적으로 그렸다. 세상의 모든 ‘다음’ 소희를 위한 희망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정주리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 소희> 국내 개봉 앞두고 있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너무 떨리고요. 너무 운이 좋게도 지난해 봄부터 해외 여러 곳에서 상영하긴 했지만, 역시 국내 개봉의 느낌은 차원이 다른 거 같아요. 본격적으로 국내 관객을 만나는 건 걱정도 되면서 한편으로는 기대도 되는 일이거든요. 그래도 언론배급시사회에서 반응이 걱정했던 것보다는 잘 넘어간 거 같아서 한시름 놓은 상황이에요.
칸 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님이 너무 엄살이신 거 아닌가요?(웃음)
전혀요. 정말 엄살 아니에요. 사실 첫 영화를 만들고 공개했을 때는 하나도 모르던 상태였거든요. 정신없이 여기저기 다니기도 했고요. 지금은 영화를 만든지 너무 오래되었기도 해서 좀 다른 기분이에요. 기다리는 느낌이랄까요.
말씀하신 대로 데뷔작 <도희야>(2014) 이후 복귀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도희야>가 2014년에 개봉했어요. 그런데 개봉하고 관객들 만나고, 해외 영화제에 다니고 하면서 한창 일이 많았죠. 그런 일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이 2016년 초였던 거 같네요. 그때부터 조금 시간이 생기면서 바로 다음 작품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어요. 한 3~4년 정도 틀어박혀서 시나리오만 썼던 거 같아요.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던 거죠.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나서는 제작사랑 투자사를 만나면서 영화화를 시도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제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 하려다 보니 시간이 길어진 측면도 있는데, 투자가 지연되면서 완전히 단념하게 된 게 거의 2020년 초였습니다. 그렇게 훌쩍 시간이 흘렀네요.
그 영화는 다시 나오겠죠?
글쎄요(웃음). 계속 마음 속에 있긴 해요.
어떤 내용이었어요?
반응이 되게 재밌는 게요. 보신 분들이 대부분 ‘어떤 이야기인 줄 모르겠다’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이제 시간이 좀 지났으니 들춰보고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꼭 극장에서 볼 수 있길 기대하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해볼게요. <다음 소희>는 어떤 영화인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2017년 초에 전주에서 통신회사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여학생이 불과 5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어요. 실화죠. 그걸 바탕으로 비록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어찌 보면 그 사건을 기억하고, 그 전에 비슷한 일들이 있었음을 함께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출발하게 된 영화입니다.
맞아요. 안타까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죠. 영화로 해야겠다는 결심은 언제,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해요.
그 당시 저는 몰랐어요. 처음에 이 사건으로 영화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도 몰랐고요. 뒤늦게 알게 된 사건이었죠. 2017년이면 아시다시피 온 나라가 대통령 탄핵 이슈로 시끄러웠던 시기였잖아요. 모든 관심이 거기에 집중되었죠. 그런데 한편에서는 이 사건을 보도하고 꾸준히 후속 취재한 분들이 있더라고요. 어찌 보면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난 이후 되짚어보게 된 건데요, 그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어요.
어떤 면에서요?
어떻게 보면 당시 대다수는 주목하지 않았을 일이었는데요,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있었고, 포기하지 않고 취재를 이어나갔다는 점이었어요. 그뿐 아니라 노동계에서도 이 사건이 단순히 콜센터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계와 연계된 아주 심각한 문제라는 점에 주목했어요.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 분들이 토론회를 열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간 거죠. 저는 너무 늦었지만, 그분들이 하신 이런 일들을 통해 뭐랄까요, 좀 연결된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고 왔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느꼈던 사건을 다 알고 나니 이건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구나, 나도 전체의 일원이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더욱 영화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실제 사건의 주인공 이름이 엔딩크레딧에도 나오더라고오.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유족들도 만나 보셨나요?
시나리오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마칠 때까지 전혀 만나지 않았어요. 심지어 저는 제가 직접 취재하지도 않았어요. 콜센터를 가본다거나 콜센터에 전화해본 적도 없었고요. 우연히 카드사의 판촉 전화를 받긴 했지만요(웃음). 모든 이야기의 정보는 이미 취재된 기사들과 책을 통해서 접했습니다. 이 사건을 최초로 보도하고 꾸준히 후속취재를 이어갔던 허환주 프레시안 기자의 책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를 보고 이 사건의 전체 모습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현장 실습생으로 일하다가 변을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러 친구의 이야기를 취재한 책이죠. 이 책이 전체 일에 대한 전말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되었어요.
또 현장 실습생 출신인 허태준 작가의 책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도 참고했어요. 여기서 힌트를 얻어서 소희의 남자친구 이름을 작가 이름을 따서 태준이라고 짓기도 했고요. 산업재해 사망 사건 유가족을 만난 이야기를 담은 은유 작가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라는 책을 통해서는 상황들과 유가족들의 감정을 간접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번 언급하기도 했듯이 이 사건을 알린 <그것이 알고 싶다>(SBS)도 참고했고요. 감독인 저는 창작을 하는 입장이다 보니, 이런 취재 기사들과 르포, 책, 에세이들이 충분한 재료가 되었죠. 저로서는 제가 만든 인물의 감정을 현실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는 토대가 되었고요. 시나리오 집필을 마치고 사건의 주인공인 고 홍수연 양 아버지인 홍순성 선생님을 찾아뵈었죠.
아버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왜 이렇게 힘든 걸 하려고 하느냐고 말씀하셨죠. 굉장히 담담하셨어요. 또 전적으로 믿어주셨습니다. 어떤 영화를 만들든 하고 싶은 대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힘도 실어주셨어요. 전주에서 촬영할 때는 현장에도 가끔 오셨고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 <다음 소희>라는 제목이 더 울림을 갖고 다가오더라고요. 제목은 어떻게 정하신 건가요?
‘다음’ 소희는 영화를 구상한 초기에 떠올렸던 제목입니다. <도희야>를 찍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제목이 주제를 담고 있듯이, <다음 소희>도 처음에 모든 것이 완벽하게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 만들어지는 와중에 제목과 함께 담고 싶은 영화, 이야기가 완성된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유진이 만나는 소희의 친구 중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친구가 태준이잖아요. 언제 다 실을지 모르는 택배상자를 싣고 있는 태준이의 모습을 보는 순간, 아 저 친구가 다음 소희구나 하는 마음을 받았어요. 대사를 직접적으로 쓰진 않았지만, 그 순간 이 영화의 주제가 완성된 거 같았어요. 그러면서 소희만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고, 정말 이런 일이 다음 소희들에 대한 것들이 영원히 반복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이것이 제가 진짜로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던 거 같아요.
그러면 태준의 택배 상하차 씬을 촬영 초반에 찍은 건가요?
영화 촬영은 전적으로 공간 위주였어요. 처음부터 찬찬히 찍었으면 좋았겠지만…. 우선 콜센터 장면부터 다 찍고 전주로 내려가서 찍은 거죠. 당시 코로나19 상황이 정말 엄중했거든요. 스케줄대로 하지는 못했고요. 태준이 택배 상하차 씬은 전체 분량으로 따지면 2/3 쯤에서 찍었던 거 같습니다.
배두나 배우가 연기한 오유진은 영화에서 직업이 형사로 설정되었더라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유진이라는 인물이 형사로 설정되기는 했지만, 우리 삶에서 정확히는 기자라고 생각했어요. 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 고민했던 노동계 관계자들, 현장실습 문제를 고민했던 교육계 분들 그러니까 이분들이 실제 모델이라고 할 수 있죠. 저도 몰랐던 그 당시 사건을 꾸준히 취재한 기자들이나 시사고발 프로그램 PD들에 대해 말씀드렸잖아요. 사회 전체가 집중하고 있는 이슈가 아닐지라도 계속해서 지적하고 목소리를 낸 분들이요. 그분들이 아마 유진의 모델이겠죠. 굳이 형사로 설정한 이유는 단순한 계기인데요. 소희가 죽자마자 그 자리에 나타나야 하는 사람이 누굴까 생각해보니, 수사해야 하는 경찰이어야만 했고요. 한편으로는 그 인물이 공직에 있는 사람이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경찰 유진이 탄생했습니다.
데뷔작 <도희야>부터 이번 <다음 소희>까지 배두나 배우를 주인공으로 선택하셨어요. 이쯤 되면 배두나 배우가 감독님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싶은데요. 배두나 배우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건지, 또 배두나 배우의 어떤 점이 감독님을 사로잡았는지 궁금합니다.
아시다시피 <도희야> 때 만난 사이죠. 그때 저는 솔직히 말하면 경력이라고 할 거는 하나도 없는 심지어 영화 다른 장편의 스태프로 일해본 적도 없는 말 그대로 ‘듣보잡’ 신인감독이었거든요(웃음). 간신히 시나리오를 마친 상태였는데, 배두나는 당시 톱스타였고요. 그런데 저는 이 사람이 내 영화에서 ‘영남’ 역을 꼭 했으면 좋겠다는, 반드시(!) 했으면 좋겠다는 강한 느낌이 있었어요(웃음). 저에게는 먼 발치에서 보는 톱스타가 아니라 당장 이역을 해야 하는 배우였던 거죠. 당시 배두나 배우가 영화 촬영으로 독일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작자였던 이창동 감독님을 통해 부탁했어요. 꼭 배두나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전달해 달라고요. 이창동 감독님이 메일로 시나리오를 막 보냈다고 문자를 주셨어요.
그리고는요?
문자를 받은 이후 저는 할 일이 있었죠. 이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찍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를 그 과정들을 노트에 한번 차근차근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시나리오가 배우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 저로서는 뭔가 다른 단계로 접어드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죠. 노트 적은지 한 세 시간쯤 지났을까? 문자가 왔어요. 배두나 배우가 하겠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때 전달 받은 메시지 내용이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요. 영화 꼭 같이 하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만나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쉬워요. 서울에 돌아가는 대로 꼭 만나고 싶어요’였어요. 헉. 전 아직 노트 정리를 끝내지도 못했는데,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었죠. 믿기지도 않았고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바로 그게 시작이었어요. 제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배두나 배우가 시나리오만 보고 선택한 거예요.
첫 만남은 기억나세요?
잊을 수 없죠. <도희야> 촬영 전날이었어요. 순천에 있었는데, 배두나 배우가 서울에서부터 직접 운전해서 촬영 현장까지 왔어요. 마치 영화 속의 영남처럼요. 그것도 정말 신기한 일이었죠. 그러면서 촬영하는 내내 저는 배두나라는 배우가 저의 가장 강력한 영화적 동지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서로에 대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서로의 역할에 대한 신뢰가 있거든요. <도희야> 때는 여러 여건들이 다 힘들었지만, 함께 영화 작업을 하면서 동지애도 생겼습니다.
그렇게 동지애를 가진 배두나 배우에게 7년 만에 연락을 하셨다고요(웃음)
제가 성격이 좀 그런 편이에요. <도희야>로 바빴던 일상이 좀 정리되면서 저는 두문불출했어요. 거의 아무와도 연락을 안 했고요. 오래 준비했던 작품이 끝내 엎어졌고, 우연한 기회로 <다음 소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시나리오 마치자마자 배두나 배우에게 다시, 7년 만에 연락을 하게 된 거죠. 배두나 배우가 ‘감독님 연락 없길래 이민간 줄 알았다’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런데 <도희야> 때처럼 <다음 소희>도 바로 하겠다고 해줬죠.
그렇게 배두나 배우에게 신뢰를 갖는 이유는 아무래도 연기겠죠?
그런 것 같아요. 배두나라는 배우가 없었다면, <다음 소희>가 애초에 이런 야심찬 구성으로 시도되지 못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유진은 영화에서 중간에 탁(!)하고 등장해요. 첫 번째 주인공이 죽고 나서 등장하는 다음 주인공인데, 너무 힘든 역할이잖아요. 이런 구성의 시나리오를 만들었을 때 모두가 위험하다고 말했어요. 그래도 저는 배두나 배우가 연기하는 유진을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완성한 부분도 있습니다. 분명히 제대로 해낼 거라고 믿었거든요. 뭔가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연기하는 순간에 이 배우가 표현해내는 감정이나 무언가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너무 기대가 되었어요. 잘해낼 거라는 확신도 분명히 있었지만, 그 너머를 보여줄 것이란 기대도 있었죠. 그래서 유진은 처음부터 배두나 배우였습니다.
마침 영화 구성에 대해 말씀하셨으니 여쭤보겠습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가 지적한 부분이기도 해요. <다음 소희>를 상업영화 문법으로 접근했다면, 처음 변사체 발견 후 수사에 착수하는 경찰의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해, 중간중간 플래시백 형식으로 과거의 단서를 관객에게 제공하는 형식을 취했을 거라고요. 그런데 이 영화는 1부는 소희, 2부는 유진의 이야기로 나뉘어 진행합니다. 두 주인공이 만나는 장면도 거의 없고요. 일부러 시간상의 구성을 취한 이유가 궁금해요. 그럼으로써 관객들에게 주고 싶었던 의도는 무엇이었는지도요.
소희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떠한 미스터리도 있어서는 안 된다 생각했어요. 과연 어떻게 죽었는지를 찾아가는 형식이 된다면 100% 실패할 거라 판단했습니다. 우리가 똑똑히 지켜봤는데, 이 아이가 어떤 아이였고 어떤 일을 하다가 어떻게 죽었는지 완벽하게 본 다음에, 그렇게 죽음에 아무런 여지가 없게 된 다음에 들여다보면 또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도 그렇고요. 저한테는 더 비참했던 것이 한 아이가 그렇게 죽은 것도 너무나 비극적인데, 죽음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 더 참담했어요. 그리고 이 일들이 반복된다는 사실도요. 왜 그렇게 된 건지 알아보고 싶었고, 처음에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어요.
이거를 어쨌든 제가 이해할 수 있는 한 이해하고 영화라는 형식 안에서 납득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다음 소희>입니다. 그래도 걱정은 되었죠. 소희의 죽음으로 한 줄기의 이야기는 끝나잖아요. 암전도 되고. 앞으로 영화가 한 시간이 더 남았는데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전체 영화로 책임져야 하는 감독이고, 끝까지 봐야 온전한 영화라고 관객들이 납득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 부분을 조율하는 차원에서 시나리오 쓰는 단계부터 고심을 많이 하긴 했습니다.
소희 역을 맡은 이시은 배우의 연기가 놀랍더라고요. 첫 만남에서 캐스팅을 결정했다는 이야기도 하셨죠. 신인 배우인데 현장에서 가장 많이 디렉션을 주셨던 부분은 무엇인지도 궁금하니다.
특별히 제가 많은 디렉션을 주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이건 비단 김시은 배우뿐만이 아니에요. 같이 연기하는 상대 연기자들, 전 팀장, 새 팀장, 콜센터 직원들, 친구들을 다 포함해서 최대한 그 장면 속에서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노력한 건 있죠. 물론 전체적으로 정해진 콘티도 있고 반드시 이렇게 담아야 하는 컷과 분량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씬별로 촬영하려고 노력했고, 자연스럽게 이어가게 하려고 했아요. 처음에는 스태프들이 고생이었죠. 제가 언제 컷을 할지 모르니 준비를 다 해야 했거든요. 초반에 그런 스타일이 잡히고 나서는 스태프도 배우도 다 준비가 된 거죠. 본인이 더 할 수 있는 데까지 연기하는 거예요. 거기서 예기치 못했던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카메라에 담기기도 했고요. 첫 테이크에서 좋은 감정이 나와서 영화에 담긴 경우가 꽤 많아요.
하나만 예를 들어주신다면요?
콜센터 분량을 몰아서 찍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런데 사실 콜센터 씬들도 차례로 찍을 수 없었어요. 배우들 스케줄도 다 다르니까요. 소희와 새 팀장이 부딪히는 장면을 거의 초반에 찍었는데요, 소희가 새 팀장을 때리기 전까지 격돌하는 장면, 클로우즈업 장면도 첫 테이크에서 나온 컷이에요.
제가 <다음 소희>에서 첫 번째로 주목한 키워드는 ‘경쟁’이었어요. 대한민국은 경쟁사회라는 점을 영화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는 그래프나 수치로 시각화됩니다. 콜센터에서는 인터넷 해지 방어율, 학교와 교육지원청에서는 취업률로 보이죠. 시나리오 작업 중에 이런 비인간적인 경쟁, 수치로 사람을 평가하는 모습을 접하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저도 학창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다른 많은 분들처럼 취업전선에 뛰어든 건 아니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던 거잖아요. 우리 사회가 이렇다는 걸요. 그런데 이걸 거리를 갖고 다시 들여다볼 일은 없었던 거 같아요. 어찌 보면 저는 막 치달아 가는 과정에 속해있지 않았으니까요. 감독은 그래도 창작하는 일이고, 좀 다르다고만 생각했던 거였죠. 그런데 제 친구들이 살아온 모습을 옆에서 보고 듣고 있으니까요.
<다음 소희>를 만들면서 다시 이런 부분을 들여다 본 소감은, 좀 충격적이었고요. 어쩔 수 없이 현장실습 나간 아이들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든 생각은 책임이 클수록, 권한이 있는 쪽일수록 이 개별적인 사건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거였어요. 얼마든지 멀어질 수 있구나, 되게 뻔뻔해질 수 있구나 하는 것이죠. 사실 그런 수치들이나 수량화되어서 보이는 그래프들을 보면 아무런 느낌이 없잖아요? 그런데 마치 이 수치와 그래프들이 큰 것을 대변해 주는 것처럼 되게 당연시하고 있고요. 저도 아무런 비판없이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취업률이 높으면 좋은 거고, 실업률이 낮으면 좋은 거지 하면서요. 그런데 실업률이 떨어지면 좋은데, 과연 아이들이 어떤 곳에서 들어가서 일하고 있는지 더 헤아려볼 생각은 못했으니까요.
사회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성인 그러니까 어른이겠죠. 그런데 <다음 소희>에서는 몸은 성인인데 어른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요. ‘걔가 원래 그런 애가 아니었어요’, ‘적당히 하시죠’, ‘원래 문제가 많았던 애예요’, ‘아이 하나 죽은 거 갖고 뭘 그러세요?’, ‘오히려 우리가 더 손해를 입었어요’, ‘다음엔 교육부 찾아가시렵니까?’ 책임지지 않는다는 건데요. 이런 말을 내뱉는 인물들을 보면서 참다운 어른의 부재가 안타까웠습니다. 우리 사회가 쓴소리를 하는,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어른을 잃어버리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또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다고 느끼셨나요?
지적하신 그 대목이 참 아프게 다가오는데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도대체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된 건지요. 그러니까 지금 이제 영화도 만들고 나니까 책임이라는 말을 감히 떠올리게 된 거지만, 사실 하나하나 들어가서 보면 다 선량한 개인들이에요. 그리고 실제로 정말 그 사람들이 그렇게 일부러 책임지지 않으려는 거 같지도 않아요. 그냥 그 상황에서 본인은 본인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했고, 핑계를 댄다거나 변명을 늘어놓는다기보다는 자기 입장을 드러내는 거라고 볼 수도 있어요. 제가 이야기 만들면서 이해한 것이기도 하죠. 변하지 않고 지속된 채로 지금까지 이르게 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글쎄요. 나름대로는 간신히 이해한 바를 바탕으로 만든 인물들이고 그리고 쉽게 비난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다 어떤 거대한 조직, 시스템에 충실한 톱니바퀴들로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저도 약간 느슨한 형태의 한 톱니바퀴를 담당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전체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은 차원에서 만든 이야기인 거 같기도 해요.
나름 인간적으로 대우해줬던 팀장이 자살한 이후 소희는 극심한 혼란을 겪죠. 그러다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선택을 합니다. 주변의 비판은 듣지 않고 방어율 1위를 달성하죠.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해요. 실습생에게는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거죠. 여기서 <다음 소희>가 주목하는 두 번째 문제가 드러나는데요. 이른바 착취사회입니다. 콜센터도 하청에 하청을 거듭한 업체일 뿐이고, 학교조차 학생의 취업을 위해 교사가 영업을 해야 하는, 가르침이라는 본분을 잃은 장소가 되는 거죠. 감독님은 왜 이런 구조가 발생했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답을 찾아내셨나요?
제가 알아내고 이해한 건 일단 다 영화에 담겨 있어요. 넘어간 건 제가 더 공부를 해야겠죠? 그런데 약간 아직 제가 명확하지는 않은데 한편으로 여전히 갸우뚱 하는 게 하나 있어요. 그걸 말씀드릴게요. 저희 때도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많은 아이들이 인문계, 실업계를 나눠서 갔어요. 저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가서 실업계로 간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졌죠. 지금은 그런 학교들이 특성화고라는 이름으로 바뀐 거 같은데요. 그때와 지금이 같은가, 그건 자신하지 못하겠어요. 다만, 지금 이 형태의 실업계 고등학교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영화를 준비하면서 알아보게 되었는데요. 느낌이 싸해요.
느낌이 싸하다고요. 어떤 의미일까요?
뭐라 그럴까요. 수 년 전부터 지금의 특성화고와 산업현장의 친구들이 현장실습이라는 형태로 일을 나가고, 그 다음에 그 업체에서 일을 하거나 아니면 이직을 하죠. 남학생의 경우는 군대 문제까지 연계가 되어 있어요. 이 모든 과정이 너무 싸하다고 할까요? 제가 탐사보도 기자처럼 그 문제를 더 파고들지는 못했지만, 많은 수의 학생이 실업계 고등학교를 가고, 같은 형태의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고3때부터 일하는 것이 이어져 오고 있는데요. 모르겠어요. 일단은 분명히 전공이라는게 있는데 전공 살려서 일하는 거 같지도 않고요. 물론 잘 하는 고등학교도 있죠. 그런데 절대 다수가 그러지 못한 걸로 알고 있어요. 이것도 들여다봐야 하는 일 아닐까요? 다른 게 아니에요. 교육제도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니까요.
이 영화를 처음 보고 어쩌면 제2의 <도가니>(감독 황동혁, 2011)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곱씹어볼수록 그러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국한된 한 공간에서 일정 기간 동안 벌어진 일이 아니라, 학교부터 직장까지 온 사회가 얽혀있기 때문이어서요. 사회 전체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대한민국이 경쟁사회, 수치공화국에서 벗어나려면, 또 착취사회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부분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말씀하셨듯이 그게 만약 문화라면, 어떤 문화가 바뀌면 좋겠다고 말하면 왠지 공허해질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 드는 생각은 있습니다. 수능날에 대한 단상인데요. 수능날이면 마치 대한민국의 모든 고3이 수능ㄹ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건 누군가가 그렇게 하기 때문이잖아요. 그날은 하루 종일 라디오부터 포털에 예상 점수, 평균 점수 등 하루 종일 수능 관련 뉴스로 도배가 되어요. 좋아요. 큰 일이니까요. 그런데 대한민국의 모든 고3이 그날 수능을 보지는 않잖아요. 한편으로는 그런 뉴스도 나오고, 수능의 중요함도 이야기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수능을 보지 않고 이미 일하고 있는, 현장실습을 나간 같은 나이의 고3 친구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제 영화도 수능날로 시작을 하죠. 그런데 주인공도 사실 관심이 없어요. 그날이 수능날인지(웃음).
<다음 소희>는 칸 영화제 국제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죠. 상영 중 눈물을 흘리는 외국 관객도 있었다고요.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다음 소희>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공감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더 놀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사실 외국 관객들은 이해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 자신도 몰랐던 것에서 출발한 거니까요. 그래서 너무나 한국적인 상황일 거라고만 생각했고 오로지 우리나라 관객만 생각하면서 영화 만든 면도 있어요. 그랬는데 외국 관객들 특히 젊은 관객들이 호응해주는 것에 고마웠어요. 해외 영화제에서 들었던 그들의 말을 찬찬히 되짚어 생각해 보니, 영화의 상황들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어린 친구가 겪는 일들과 상황들 자체를요. 하나하나 따지자면 다른 나라에는 특성화고가 없어서 그런 부분을 이해 못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젊은 세대들이 자기들에게 가해지는, 본인이 뭘 잘못해서도 아니고, 뭔가 구조적으로 전체 속에서 가해지는 압박이나 조건들을 충분히 본인들의 상황에 대입해서 영화를 본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저로서는 한국적이고 개별적인 사례라고 생각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보편적으로 공감해주신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징어게임>처럼요(웃음). 영화감독의 꿈은 언제부터 가지게 된 건가요?
중2 올라가는 2월 일기장 첫 장에 썼어요. ‘나는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라고요. 아마도 사춘기 막 지나는 무렵에 비디오 엄청 많이 보면서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저는 VHS 테이프들을 쌓아두고 보던 마지막 세대인데요. 겨울방학 내내 방에 틀어박혀서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는 생활을 했어요. 한편 한편 영화가 너무 좋았고, 이 멋진 걸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영향을 받은 감독이 있을까요? 좋아하는 영화라든가요.
그 당시에 그렇게 살면서 홍콩영화 헐리우드 영화, 유럽 영화들을 봤어요. 그냥 잡히는 대로 다 봤어요.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가 생각나네요. <패왕별희>(감독 천카이거, 1993), <데미지>(감독 루이 말, 1994) 같은 영화들이었습니다.
영화 공부는 어떻게 하셨어요?
희안한 게 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당장 4년 공부하고 졸업하면 바로 영화감독이 될 거 같지는 않았거든요. 느낌이(웃음). 그래도 매체 쪽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영상학과에 들어갔습니다. 애니메이션 등 당시 각광받던 분야를 실기 위주로 배울 수 있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다양하게 배울수록 그냥 영화만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은 생각에 한예종 영화학과 대학원으로 진학했습니다. 저의 20대는 학교만으로 가득합니다(웃음).
학생 때가 가장 행복하죠(웃음). 감독님께 영화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제가 저를 표현하는 수단이었어요. 영화를 만드는 일 자체가, 뭔가 제가 표현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만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영화는 제가 생각하는 방법인 거 같기도 해요. 시나리오를 쓰고, 만들고 싶은, 영화의 장면을 만들고 완성하는 것들이 어떻게 보면 제가 생각하는 것 자체인 것 같아요.
또 어떤 영화를 찍고 싶으세요? 어떤 영화감독이 되고 싶으세요?
지금 가장 큰 바람은 4년 안에 차기작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죠(웃음). 아직은 여전히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이건 영화 형식적인 면에서 리얼리즘만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SF 영화도 만들고 싶다는 원대한 꿈이 있습니다(웃음). 그런데 모든 것의 기본은 굉장히 현실적인 감정 아닌가 싶어요. 그런 걸 만드는 감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차기작은 뭐로 준비하고 계세요?
아직 몰라요. 하지만 4년 안에는 꼭이요(웃음)!
너무 길지 않은 4년 안에 다시 인터뷰 할 수 있길 기다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볼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미 너무 많은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정작 영화를 보실 때는 최대한 아무것도 모르고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훨씬 더 집중하실 수 있고, 심지어는 재미있게 보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나름대로 저도 그렇고 스태프들과 배우들도 그래요. 최대한 담담하게 거리를 두고 이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관객분들이 느끼시는 감정은 제가 뭔가를 어떻게 봐달라고 하는 것보다는, 관객들이 직접 소희와 연결되고 유진과 연결되어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