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원작 영상화가 대세인 요즘,
게임 업계를 다루는 드라마는 없나요?
HBO의 <라스트 오브 어스>가 올해 최고 드라마라는 호평이 끊이지 않고, 여름에는 <슈퍼 마리오>가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온다. 이 밖에 유명 게임들이 쏙쏙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지며 게임팬과 영화팬들의 흥분은 계속된다. 한때 게임 원작 영화(드라마)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진 시절도 있었는데, 요즘 같은 분위기에 비춰보면 좋은 의미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다만 게임 원작 영상화는 계속해서 나오는데, 정작 게임 업계에 대한 이야기는 보기 힘들까? 이 같은 갈증을 충족하는 드라마가 최근 일본에서 방영되어 화제다. 제목부터가 요즘 유행어인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파워가 샘솟는 <아톰의 도전>이다.
일드 <아톰의 도전>은?
<아톰의 도전>은 <한자와 나오키>의 역대급 성공으로 현재 일드계 최고 브랜드가 된 TBS 일요극장의 2022년 4분기 드라마다. ‘게임업계의 뱅크시’라고 불리는 정체를 감춘 천재 프로그래머가 도산 직전의 완구업체를 살리기 위해 다시 게임 제작에 나서는 이야기를 총 9부로 담았다. 디즈니+ 독점으로 전 세계에 스트리밍 되고 있는 중이다.
캐스팅도 요즘 일본에서 주목받는 젊은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일본판 <굿 닥터>, 넷플릭스 <아리스 인 보더랜드>의 야마자키 켄토가 주인공이자 천재 프로그래머 나유타 역을 맡았고, 일드 <스칼렛> <최애>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인 마츠시타 코헤이가 나유타의 절친 프로그래머 하야토로 출연한다. 여기에 2022 일본 최고의 영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의 키시이 유키노가 도산직전 완구업체 ‘아톰’을 살리려고 고군분투하는 사장 우미 역을 맡았고,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오다기리 조가 극중 빌런이자 대기업 사가스의 대표 오키츠 역을 맡아 극의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여담으로 이 작품의 원제는 ‘アトムの童’ (아톰의 아이)인데 국내에서는 영어명 ‘Atom’s last shot’을 따라 <아톰의 도전>으로 지었다. 처음에는 <아톰의 아이>라는 모호하고 가족극 같은 제목보다, ‘도전’이 드라마의 분위기에 알맞게 잘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극의 중반쯤 왜 이 작품의 원제가 ‘아톰의 아이’인지 나오는 결정적이고 극의 전환점을 맞는 장면이 나온다. 그 점을 생각하고 드라마를 보시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즐기는 게임에서 게임 산업 전반을 파고드는 드라마
게임 프로그래머가 주인공인 만큼 드라마는 게임과 관련된 흥미진진한 요소가 많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스트리트 파이터’ ‘뿌요뿌요’ 등 레트로 게임 등이 스토리에 중요한 요소로 등장해 게임 팬들에게 반가움을 건넨다. 여기에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유통, 배급의 개발 외적인 모습도 디테일하게 그린다. 이제는 일상 생활에 한 부분인 게임이 어떻게 우리에게 전달되는지를 속도감 넘치게 보여줘 극의 재미를 더한다. 드라마는 단순히 ‘즐기는 게임’에만 그치지 않는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기능성 게임의 필요성과 실제 올림픽에서도 논의되는 e-스포츠의 중요성까지 강조하며 게임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포부도 펼친다. 1화 처음과 마지막화의 나레이션에는 게임의 순기능과 해당 산업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여줘 게임팬들에게 뭔가 모를 뿌듯함도 전한다.
이런 과정에서 좌절과 기쁨, 패배와 성취 등 다양한 경험을 하는 주인공 프로그래머들의 모습도 꽤 감동적이다. 극을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 나유타와 하야타는 대기업 사가스의 계략으로 함께 개발하던 게임의 소유권을 잃고 만다. 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친구가 죽는 등 다시는 게임 세계로 돌아오기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럼에도 꿈을 향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던 주인공들은 눈앞에 놓인 장애물을 이겨내며 결국 손을 합치게 되고, 죽은 친구를 위해 더 멋진 게임을 만들기로 한다. 이런 모습들이 드라마틱한 구성 속에 몰입감을 자아내며 극중 인물을 응원하게 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들이 개발한 몇몇 게임은 실제로 플레이하고 싶을 정도.
Here comes a new challenger!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도전
게임을 중요 소재로 그리지만, <아톰의 도전>의 핵심은 대기업 VS 중소기업의 대결이다. 자본과 로비로 게임 산업을 지배하려는 대기업 사가스와 부도 위기를 맞고 있지만 오랫동안 좋은 장난감을 만들며 매니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중소기업 아톰 완구가 특허권을 둘러싼 한판 승부를 벌인다. 이 과정에서 아톰 장난감을 보며 꿈을 키워온 주인공이 참여해 완구와 게임을 결합하는 멋진 아이디어를 내놓고, 이야기는 더욱 절정을 향해 나아간다.
일본 드라마의 소위 교훈적이고 오글거리는 분위기가 많이 나오지만, 동료와 신념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부조리에 무릎 꿇지 않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사실 일드를 시청하는 것도 이 맛으로 보는 게 아닌가? 일본 오피스 드라마 특유의 베테랑과 장인정신을 중시하는 모습도 마음을 뜨겁게 한다. 그런 점에서 <아톰의 도전>은 순진하면서도 솔직하게 시청자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또박또박 전하는 드라마다.
게임오버 같았던 후반부
다만 후반부에 이르면 이런 실드도 치기가 힘들어진다. 대기업 사가스와 대결에서 ‘졌지만 잘 싸웠다[?]’같은 지점에 도달하는데, 이때 뜬금없이 새로운 적이 등장해 오히려 그들과 손을 잡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장면이 등장한다. 전 에피소드에서 동료를 죽음으로 몰게 하고, 그들의 꿈이 담긴 사업체를 비열하게 빼앗은 기업과 함께한다고? 그 과정이 드라마의 핵심 소재인 완구 특허권이 일본이 아닌 곳에서 악이용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함은 아슬아슬하게 지탱하던 작품의 설득력을 완전히 망가뜨린다.
이 과정에서 의견이 달라 각자 길을 걷는 주인공들의 모습도 이해불가며, 또한 이들이 어떤 사건으로 함께하는 것도 보는 이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전반부의 뜨겁고 감동적인 빌드업이 후반부에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이다. 게임 개발을 둘러싼 대결이 갑자기 주주총회로 클라이막스를 맞는 것도 작품의 성격과 너무 동떨어져 보인다. 작가가 갑자기 바뀌었나? 제작진의 불화가 있나? 생각들 정도로 전/후반부 완성도의 차이가 너무 크다. 한 마디로 후반부의 서사는 게임 오버수준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정이 가는 것은 역시 ‘게임’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도 게임의 가치를 여러 번 물어본다. 많은 이들이 접하는 문화이자 산업임에도, 게임이기에 여러가지 제약에 묶이고 천대받는 모습이 가끔 나온다. 주인공 나유타가 방과후 교사로 일하다가 게임을 한다는 이유로 학부모에게 항의받는 모습이 그렇다. 그때마다 그는 게임이기에 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그것의 가치를 호소력 있게 말한다. “게임 따위가 아니라 게임이기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대사처럼.
비록 후반부가 많이 아쉬웠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게이머로서 받았던 뿌듯함은 다른 드라마에서 느낄 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머니 볼>의 명대사를 바꿔 인용하자면 “이래서 게임을 사랑할 수밖에 없지.” 그렇기에 드라마의 후반부를 좀 더 잘 다듬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홍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