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장 크리스틴 스튜어트

2023년 베를린 영화제가 지난 2월 26일 폐막했다. 심사위원장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비롯해 배우 골쉬프테 파라하니, 두기봉 감독, 라두 주데 감독, 카를라 시몬, 발레스카 그리스바흐 등 심사위원들이 선택한 수상작들을 정리했다.


* 황금곰상 *

니콜라 필리베르

아다망에서

Sur l'Adamant

베를린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곰상은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감독 니콜라 필리베르의 <아다망에서>에 돌아갔다. 다큐멘터리가 황금곰상을 받은 건 2016년 잔프란코 로시의 <화염의 바다> 이후 7년 만. 10명으로 이루어진 한 학급이 전부인 학교(<마지막 수업>), 24시간 라디오 방송국(<라디오의 집>), 파리의 간호사 학원(<각자 그리고 모든 순간>) 등을 기록해온 필리베르의 신작 <아다망에서>는 파리 리옹 역 근처 센 강에 정박해 있는,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주간 센터 '아다망'을 소재로 삼았다. 2010년 문을 연 아다망 센터에서 진행하는 여러 활동들과 그곳에 방문하는 환자, 그들의 보호자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다. 니콜라스 필리베르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갖고 있는 이미지를 뒤집고 우리의 차이를 넘어 우리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걸 볼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 심사위원대상 *

크리스티안 펫졸드

어파이어

Roter Himmel

독일 감독 크리스티안 펫졸드는 베를린 영화제의 꾸준한 편애를 받고 있는 감독이다. 초기작 <유령>(2005)부터 (<열망>과 <피닉스> 두 편을 제외한) 모든 장편이 베를린 경쟁부문을 통해 처음 소개됐고, 감독상과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운디네> 이후 3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 <어파이어>는 영화제 기간 셀린 송 감독/유태오 주연의 <전생>과 함께 매체들을 통해 최고 평점을 받았고, 결국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시놉시스는 한여름에 남자 셋 여자 하나로 이루어진 네 친구가 발트해로 휴가를 떠나지만 근처에서 산불이 나 발이 묶인다는 이야기로 설명하는데, 예고편은 레온(토마스 슈베르트)이 나디아(파울라 베어)를 흠모해 질투에 휩싸이는 설정이 두드러져 보인다. 올해 하반기 중 국내 개봉 예정.


* 감독상 *

필립 가렐

북두칠성

Le grand chariot

주로 칸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를 통해 신작을 처음 공개한 프랑스의 노장 필립 가렐은 전작 <눈물의 소금>(2020)에 이어 <북두칠성>이 베를린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무관에 그친 전작과 달리 이번엔 감독상을 받았다. 2000년대 들어 거의 연애하는 남자와 여자를 둘러싼 이야기를 만들어 왔지만, 오랜만에 흑백이 아닌 컬러로 촬영한 <북두칠성>은 '가족'을 그린다. 인형을 만드는 할머니, 극단을 지휘하는 아버지, 그리고 삼 남매는 유랑 인형극단을 운영하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이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 프랑스 68혁명 이후의 청춘들의 일상을 건조하게 담은 <평범한 연인들>(2004)부터 아들 루이스 가렐을 배우로 기용한 필립 가렐은 루이스, 에스더, 레나 삼남매와 함께 <북두칠성>의 삼 남매를 그렸다.


* 심사위원상 *

조아오 카니조

배드 리빙

Mal Viver

포르투갈 감독 조아오 카니조는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 두 편의 신작을 출품했다. 경쟁부문의 <배드 리빙>과 인카운터 부문의 <리빙 배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포르투갈 북부 연안에 위치한 호텔을 둘러싸고 기묘하게 연결돼 있다. <배드 리빙>은 서로 소원해진 다섯 명의 여자가 쇠락해가는 호텔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와중 손녀가 호텔을 방문하면서 오랫동안 곪아온 증오와 원한이 터지게 되는 이야기. 스웨덴의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베리(August Strindberg)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은 <리빙 배드>는 그 호텔에 방문한 손님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포르투갈에서 나고 자란 카니조 감독은 어릴 적부터 알고 있던 호텔을 비어 있는 팬데믹 기간에 섭외해 촬영을 진행했다. 공개 이후 꽤 호불호가 갈렸던 <배드 리빙>은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 주연상 *

소피아 오테로

2만 종의 꿀벌

20.000 especies de abejas

베를린 영화제는 2021년부터 연기상 부문을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이 아닌, '주연상' '조연상'으로 개편해 진행하고 있다. 2021년과 2022년 모두 여성배우들이 주연상을 차지했고, 올해도 마찬가지. 다만 꽤나 파격적인 수상 결과다. 이번 주연상 수상자인 <2만 종의 꿀벌>의 소피아 오테로는 연기 경험이 전무한 8살의 배우다. 스페인 감독 에스티발리스 우레솔라 솔라구렌의 데뷔작 <2만 종의 꿀벌>은 스스로를 여자라고 생각하는 9살 남자아이가 여름에 양봉업을 하는 집에 방문해 그곳의 여자들과 생활하며 여성성에 대해 깨달아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솔라구렌은 남자가 아닌 여자 배우가 주인공 루시아를 연기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500여 명의 배우들을 만났다고 한다. 양봉을 경유해 젠더 문제에 대해 사유하는 남다른 접근 방식과 더불어 소피아 오테로의 빛나는 재능에 대한 극찬이 쏟아졌다.


* 조연상 *

테아 에레

밤의 끝자락까지

Bis ans Ende der Nacht

조연상 수상 결과도 흥미롭다. 독일 감독 크리스토프 호흐호이슬러의 <밤의 끝자락까지>로 조연상을 받은 테아 에레는, LGBTQ 활동가로도 잘 알려진 트랜스젠더 여성 배우다. <밤의 끝자락까지>는 비밀 요원 로버트가 거물급 마약 딜러의 신임을 얻기 위해 성전환 여성 레니의 파트너로 마약 조직에 잠입해, 게이인 로버트가 레니에게 이끌리는 과정을 그린다. 복잡한 성 정체성을 가로지르는 로맨스가 주요한 콘셉트로 보이는 영화지만 그걸 섬세하게 풀어내지 못해 영화에 혹평이 많았으나, 주인공 로버트보다 상대역인 레니 역의 테아 에레의 존재감만큼은 상찬이 주를 이뤘다.


* 각본상 *

앙겔라 샤넬렉

뮤직

Music

각본상 수상작 <뮤직>은 <토니 에드만>(2016)의 마렌 아데, <베스턴>(2017)의 발레스카 그리스바흐와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여성 감독으로 손꼽히는 앙겔라 샤넬렉의 신작이다. 샤넬렉은 2019년 감독상을 받은 <나는 집에 있었지만…>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작품으로 각본상까지 차지하게 됐다. 어릴 적 부모에게 버려진 남자가 감옥에서 여자 교도관을 사랑하고 훗날 눈이 멀게 된다는 얼개는 오이디푸스 신화에게서 느슨하게 영감을 얻었다. 예고편만 봐도 서사가 단명하게 진행되지 않지만 이미지들 하나하나가 고요하고 강력하게 응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눈밝은 평자들로부터 올해 베를린 최고작으로 두루 손꼽혔다.


* 예술공헌상 *

엘렌 루바르

디스코 보이

Disco Boy

여러 은곰상 중 하나인 예술공헌상은 연출은 물론 촬영, 편집, 미술, 음악 등 기술 분야 스태프에게도 열려 있는 부문이다. 올해는 <디스코 보이>의 촬영감독 엘렌 루바르에게 돌아갔다. 당대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독일 배우 프란츠 로고스키 주연의 <디스코 보이>는 프랑스 외인 군단의 일원인 알렉세이와 니제르 델타의 게릴라 전사인 조모가 대립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알리체 로르와커의 <행복한 라짜로>(2018), 엘리자 히트맨의 <전혀아니다,별로아니다,가끔그렇다,항상그렇다>(2020), 매기 질렌할의 <로스트 도터>(2022), 알랭 기로디의 <노바디스 히어로>(2022) 등에 참여하면서 저변을 넓히고 있는 촬영감독 엘렌 루바르의 카메라에 대한 기대치가 또 한 번 높아지는 수상 결과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