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의 <조스> (1964)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대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또한 블록버스터의 전통이기도 한 여름 개봉의 관행을 만들어 낸 영화이기도 하다. <조스>의 경우 한여름 해변가에서 일어나는 ‘참극’을 다룬다는 이유로 같은 배경인 여름 개봉을 택한 것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여름이 <조스>와 같은 고예산 프로젝트의 개봉 시장이 된 결정 적인 이유는 ‘여름방학’과 ‘더위’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황금기가 막을 내리고 뉴 할리우드를 거치면서 미국 영화의 관객층은 10-20대로 낮아진다. 따라서 <조스>와 같은 블록버스터의 경우 학생들이 긴 휴식기를 갖는 여름방학이 유리한 개봉 윈도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극장에서 제공하기 시작한 ‘냉방’은 더위를 피하고자 하는 관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가 되었다. 심한 더위로 야외를 즐길 수 없다면 에어컨이 장착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가장 손쉽고 만족스러운 휴식이지 않은가.
이러한 이유들로 여름은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요 마켓이자 극장의 성수기가 되었다. 한국 영화산업에서는 여름보다 추석과 크리스마스, 그리고 설날 시즌이 주요 마켓으로 인식되지만 그럼에도 극장은 영화광들이 여름을 보내기에는 완벽한 곳임이 틀림없다. 팝콘과 음료를 넘어 잡채밥과 수프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해진 극장 음식들과 함께 신나는 영화를 골라 보는 일만큼 짜릿한 바캉스가 어디 있을까.
전세계의 도시 중 뉴욕은 영화 상영의 역사가 가장 긴 곳이다. 1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종류의 영화를 다양한 공간에서 상영했던, 극장의 본 고장이기도 하다. 할리우드가 영화 제작의 본국이라면, 뉴욕은 영화 상영의 본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도 뉴욕은 멀티플렉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이즈의 개성이 넘치는 인디펜던트 극장들이 가장 많은 도시다. 에디슨과 뤼미에르 형제가 짧은 릴 (10분-20분 가량의 단편 영화) 만들어냈던 1890년대부터, 1920년대에 이르러 장편 영화가 등장하던 시기까지 뉴욕은 전 세계에 우후죽순 생겨났던 영화관과 영화관 문화를 선도하는 도시였다. 영화 산업이 더 발전하고 확장하게 되면서 뉴욕은 맨하탄의 지역마다 전문으로 하는 영화산업이 특화되었는데 예컨대 1960년대에서 70년대에는 타임스퀘어를 주변으로 포르노그래피와 B급영화들이 성행했다. 또한 그리니치 빌리지를 기반으로 하는 아트 하우스와 인디 극장들은 독립영화와 아방가르드 영화들의 상영, 그리고 토크 행사 등이 성행하는 식이었다. 현재 타임스퀘어를 가득 메웠던 성인영화/B급영화 전용관 등은 대부분 없어지고 뮤지컬 공연의 산실로 변모했지만 그리니치 빌리지 주변의 작은 예술 영화관들은 아직까지도 다양한 프로그래밍과 게스트로 전세계의 시네필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중이다. 다음 소개할 3개의 극장은 뉴욕을 대표하는 영화관들이자 시네필의 성지로 인식되는 공간들이다.
1. 필름 포럼:
필름 포럼은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한 뉴욕 유일의 비영리 영화관이다 (서울 신촌에도 ‘필름 포럼’이라는 작은 영화관이 있지만 뉴욕에 있는 필름 포럼과는 무관하다). 독립영화 상영을 메인으로 하는 필름 포럼은 1970년에 문을 열었다. 단관에 50개석으로 출발헀던 필름 포럼은 현재 4개관, 500석으로 확장했고 매년 28만명 정도의 관객을 모을 정도로 내실을 갖춘 독립영화 상영관으로 성장했다. 이 극장은 1994년에 역사적 보존의 가치가 있는 공간으로 지정되었다.
필름 포럼의 강점은 크게 두개다: 미국 독립영화를 프리미어 상영한다는 점과 외국 아트하우스 영화를 (엄선하여) 상영한다는 점이다. 미국을 포함한 각국의 클래식 상영 역시 포함한다. 누벨바그의 기수, 아녜스 바르다를 포함한 크리스토퍼 놀란, 켈리 라이카르트 등의 시대를 대표하는 감독들은 모두 필름 포럼에 극한 애정을 표현했던 감독들이다. 감독이자 배우, 앙드레 그레고리 역시 “뉴욕이 자유의 여신상을 잃는다고 해도 큰 폐해가 아니지만 필름 포럼을 잃는다면 가슴이 찢어질 것이다”라고 이 공간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2. IFC 필름 센터:
역시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상영관이다. 더 웨이벌리 극장(The Waverly theater)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 곳은 1960년대 연일 <록키 호러 픽쳐 쇼>를 상영하여 컬트 팬덤을 만들었던 곳으로 전설이 되었다. 현재는 IFC 필름 센터로 이름과 소유주가 바뀌었다. 앞선 필름 포럼이 비영리 영화관인 것과 반대로 대기업인 네트워크(BBC 아메리카, IFC, 선댄스 TV 등을 소유, 독립영화산업의 대기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가 소유하고 있다. 비교적 늦은 2005년에 문을 열었으며 19세기에 지어졌던 교회를 개조해 5개관 극장으로 만들었다. 각 관은 35mm 영화와 고해상도의 디지털 상영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정식 상영되는 영화 말고도 IFC 필름센터에서는 각종 시사회와 뉴욕 다큐멘터리 영화제(Doc NYC Festival), 인권 영화제 등이 열린다.
대기업이 소유한 인디 극장답게 IFC에서는 하이 프로필 게스트와 함께 하는 상영을 주력으로 한다. 예컨대 4월 17일에는 배우 랄프 파인즈의 신작 <네 개의 사중주>(TS Eliot's Four Quartets)를 상영하고 배우와 Q&A를 진행했다. 소호와 차이나타운, 리틀 이태리 등이 인접해 있는 만큼 IFC 주변에는 유독 레스토랑들이 많다. 영화를 보러 가는 것만큼이나 영화 관람 후 식사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반드시 IFC 필름 센터를 권하고 싶다.
3. BAM 로즈 시네마:
Brooklyn Academy of Music, 줄여서 BAM은 1858년에 생긴 콘서트홀이다. BAM 로즈 시네마는 콘서트 홀 안에 위치한 극장으로 1908년에 만들어 졌다. BAM의 극장 역시 고전적인 형태로 지어진 영화관이며 현재도 흑백영화에 라이브 음악을 연주해서 상영하는 등 고전적 형태의 영화 상영/공연을 고수하고 있다.
특별 상영 외에는 독립영화를 주로 상영한다. 현재는 한국에서도 곧 개봉하는 <리턴 투 서울>과 켈리 라이카트의 신작 <쇼잉 업>을 상영 중이다. 콘서트 홀 안에서 운영하는 극장인 만큼, BAM의 가장 큰 강점은 영화 관람과 동시에 음악 공연이나 뮤지컬, 클래식 콘서트 역시 관람하고 올 수가 있다는 점이다. 뮤지컬 공연도 일반적인 장르보다는 아방가르드나 진보적 장르와 이야기를 가진 공연을 프로그래밍한다. 공연과 영화를 모두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BAM을 적극 추천한다.
김효정 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