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투 서울> 포스터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자란 사람들의 이야기, 이른바 디아스포라 영화가 요즘 영화계 가장 뜨거운 화두일 것이다. 그 많은 영화들은 대개 자신의 경험, 혹은 혈연의 경험이나 지나온 시간을 투영해 관객들에게 정서적 동질감을 일깨운다. 그런 점에서 <리턴 투 서울>은 (이 영화를 만든 주역들처럼) 디아스포라의 경계에서 묘하게 서성인다. 어린 시절 프랑스로 입양된 프레디(박지민)가 우연치 않게 한국에 와 생물학적 부모를 만난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상상하는 감동이나 공감과는 거리를 둔다. 프랑스인이지만 한국인인, 한국 땅을 처음 밟은 프레디가 느끼는 그 정의할 수 없는 이질감을 <리턴 투 서울>은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관객들에게 '다름'을 체험케 한다.

이 범상치 않은 영화를 만든 데이비 추 감독 역시 범상치 않다. 캄보디아계 프랑스인 데이비 추 감독은 프랑스를 떠나 캄보디아 영화계에서 활동 중이고, 이번에는 한국 배경의 <리턴 투 서울>을 연출했다. 그의 폭넓은 활동 반경처럼, 영화는 독창적인 느낌으로 관객을 흔든다. 데이비 추 감독은 어떻게 <리턴 투 서울>을 연출하고 한국에 당도하게 했는가. 씨네플레이는 4월 25일, <리턴 투 서울> 개봉을 앞두고 내한한 데이비 추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데이비 추 감독

이전에 부산국제영화제 상영했었고, 어제는 시사회도 끝내셨습니다. 어떠셨나요?

저에게는 이 일주일이 정말 특별한 일주일인데요. 이전에도 물론 프랑스라든가 미국이라든가 이런 다른 나라에서도 이 영화를 소개하고 관객들과 미디어를 만났지만 한국에서 만난다는 것은 정말 특별합니다. 왜냐하면 여기 한국에서 촬영된 영화이고, 한국에서는 아주 잘 알고 있는 주제를 어떻게 다른 시각과 다른 방법으로 보여드릴 수 있는가 시도한 영화이기에 한국의 관객분들과 언론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저도 상당히 기대가 많이 되고요. 어떤 반응이 있을까, 그것에 대한 긍정적인 스트레스 혹은 그런 부담감이 지금 있는데요. 이 시간들조차도 저에게는 굉장히 귀하고 흔히 만날 수 없는 시간들이기 때문에 즐기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레디(박지민)와 테나(한구카)

실제 친구의 경험담을 토대로 만든 영화라고 알고 있어요. 당시 감독님은 극중 테나(한국어, 불어를 모두 해서 프레디와 가족 간 통역을 하는 인물) 같은 위치에서 그 일을 목격했다고 들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 더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을까요?

질문하신 대로 실제 저의 친구 로르(Laure Badufle)라는, 한국에서 입양된 프랑스인 친구가 있어요. 제가 2011년도에 제 영화로 부산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처음 방문했을 때, 마침 이미 한국에 살고 있던 로르가 그동안 연락만 해왔던 자기 생부와의 첫 만남을 눈앞에 두고 있었어요. 그 친구도 한국말을 못했고, 저도 물론 못하지만, 그 친구에게는 여러 가지로 어렵고 긴장되는 순간이어서 저는 일종의 지지자가 되어주기 위해서 친구로서 응원과 힘을 주기 위해서 그 만남에 함께했는데요. 둘 다 한국어를 못하니 그때 의사소통의 문제가 있었고, 그때 부산영화제에서 만난 황주영이란, 지금은 배우로 활동하시는 분이 불어를 하셨고요. 그때 영화제 현장에서 친구가 돼서 이렇게 세 사람이 친구의 생부를 만나러 갔는데요. 그러니까 테나라는 인물 안에는 약간의 저와 약간의 통역해준 친구, 그 두 사람의 모습이 녹아 있는 것입니다.

테나라는 인물에 한 가지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테나 안에 물론 저도 있고 그리고 아까 황주영이라는 그 친구도 있지만 한국인 인물을 그려낸다는 게 자연스러울지 제 스스로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한국인들을 이렇게 많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그래서 더 한국인다운 인물을 그려내기 위해서 참고한 분이 한 명 더 있는데, 제가 부산 영화제에 다시 방문했을 때 만나게 된 어떤 자원봉사자분이었는데요. 그분이 제 영화를 소개하면서 여러 가지로 그분의 도움을 받아 친구가 되었고, 물론 이 영화의 스토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분이지만 한국인 인물을 그려내기 위해 그 자원봉사자분을 많이 참고했고 그분의 성함이 바로 테나였습니다 그래서 이 인물의 이름도 테나가 되었어요.

테나라는 이름도 한국인에겐 참 드문 이름인데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그분의 페이스북에 항상 Tena를 쓰셨기 때문에 그대로 썼습니다.

<리턴 투 서울>

이번 작품에서 배우들의 캐스팅이 가장 특이한데요. 비전문배우와 전문배우가 섞여있는. 어떻게 캐스팅을 진행했는지, 그리고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비전문배우를 기용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세요.

비전문배우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어떤 신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실용적인 측면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제가 캄보디아 배우들과 자주 촬영을 하게 되는데 캄보디아의 영화업계라는 것이 사실 아직도 젊은 업계입니다. 많이 발달하지 못한 젊은 업계이기 때문에 훈련된 배우들도 많지 않고요. 그래서 제가 여러 가지 디렉션을 주면서 새로운 배우들을 발굴하는 것이 저에게는 더 실용적이면서 편리한 선택이었고. 제가 더 보여드리고 싶은 캄보디아 젊은 배우들의 잠재력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도 그런 선택을 했죠. 하지만 이 <리턴 투 서울>은 한국에 워낙 좋은 배우들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 역할이라든지 고모 역할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은 꼭 관록의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리라 처음부터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프레디 또한 굉장히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절대로 전문 배우를 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찾다 보니까 한국인이면서 또 불어를 유창하게 하는, 한국인이면서 프랑스인 배우들이 정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좀 더 범위를 넓혀서 비전문 배우를 찾아야겠구나라고 처음의 결심이 약간 바뀌었죠.

특히 이 영화에서 비전문 배우들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프랑스어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제작비를 지원하는 프랑스 문화부의 방침 중에 불어를 일정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지원해 줄 수 없다는 그런 규칙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불어를 사용하는 캐릭터들을 넣었어야 했어요. 제가 한국의 배우풀을 조사해 봤을 때 한국인이면서 불어를 연기할 수 있을 만큼 하는 배우는 정말 없었습니다. 영어는 좀 있었지만. 그래서 불어의 뜻은 몰라도 발음이라도 흉내낼 수 있는 그런 배우들까지 다 포함시키는 등 한국 배우를 찾는 데 어려움이 많았는데요. 이제 테나(한구카) 같은 경우 비전문 배우지만 불어를 잘했기 때문에 캐스팅이 된 경우고요. 입양 업체는 원래 '홀트'로 극 중에서는 하몬드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입양 업체 직원으로 불어를 잘하는 두 분이 나오세요. 한 분은 서울에서 불어 선생님을 하시는 분이고 제일 끝에 나온 젊은 직원은 실제로 홀트에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그런 업무를 하시면서 불어를 실제로 하실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비전문 배우들을 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동완 역의 손승범(왼쪽)은 불어를 '외워서' 연기했다고.

이 영화는 굉장히 다른 인물들, 대조적인 인물들의 끊임없는 만남이 이어지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모든 언어, 문화, 전문 배우와 비전문 배우의 연기 등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이 계속해서 만나는 영화라서 제게는 이런 다른 요소들 간 만남의 시학이 있는 그런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전 다른 작품들에서도 비전문 배우들과 작업하는 즐거움이 있기는 했지만 이 작품에서의 비전문 배우 기용은 더 특별하죠. 영화에서 프레디의 남자친구 중에 케이케이(임철현)라는 문신업자가 있었는데요. 처음엔 그 역할을 위해서 전문 배우를 모시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역할이 너무 작아서 그런지 연락한 분들이 거절하셨어요 그래서 결국에는 인스타그램에서 진짜 문신을 하는 사람을 물색했고, 정말 실제 문신을 한 비전문 배우를 만났고, 너무 아름다운 배역으로 완성됐어요. 또 테나의 남자친구, 불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는 동완이 있는데 손승범 배우가 연기했습니다. 사실은 불어를 전혀 못하셨어요. 근데 순전히 발음만 배워서 연기했어요. 영화에서 무슨 시를 읊는 장면들도 나오고 하는데 말이죠.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멋진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막간 질문을 드리자면, 그 케이케이가 보여주는 작품은 누구의 작품인가요?

케이케이 배우가 직접 작업한 거예요. 영화에서 아이패드로 보여주는 작품은 전부 다 케이케이 본인의 작품이고요, 작업실 안에서 보여지는 것들은 저희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으신 분들께서 조금 더 보탠 것도 있어요.

데이비 추 감독

<리턴 투 서울>

언어에 관련된 질문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어떻게 보면 한국인한테는 되게 당연한 건데, 한국에선 어린 친구들이 영어를 빨리 배우니까 번역의 역할을 어린 친구들한테 주는 경우가 많아요. 이 영화는 고모한테 그런 역할을 준 게 신기했어요.

이것도 사실은 제 친구의 실화에서 영감을 그대로 가져온 것인데요. 그 친구가 처음에 서울에 도착했을 때, 2008년 2009년 정도인데 그때 친구가 만났던 한국 가족들 중 그나마 영어를 하실 수 있었던 분이 고모셨다더라고요. 그때라면 아마 지금 한국분들이 젊은 분들이 유창하게 영어를 하시는 것보다는 이세대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관련해서 되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촬영 일주일 전까지도 김선영 배우님한테 오케이를 못 받은 상황이었습니다(웃음). 고모 역할로 한참 전에 출연 요청을 드렸는데 워낙 바쁘셨기 때문에 허락을 해주는 데 시간이 좀 걸렸는데요. 일주일 전에 촬영을 시작하기 일주일 전에 김선영 배우님이 거절을 하시면 더 이상 누구한테 맡겨야 할지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 연락을 주셨는데 감독을 좀 만나야겠다 시더라고요.

고모 역의 김선영(왼쪽), 프레디의 생부 역의 오광록

김선영 배우가 성격이랑 개성이 강하신 그런 분이신데 그때 얘기한 것이 시나리오 정말 좋다, 너무 아름다운 시나리오다, 참 하고 싶은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뭐냐 하면 그 고모의 세대에는 정말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그 세대 여성이 영어를 한다는 게 너무 부자연스럽다 하면서 그 부분을 되게 마음에 걸려 하셨어요. 마치 내가 감독으로 캐스팅 오디션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오디션을 보는 것처럼 김선영 배우를 설득해야 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김선영 배우님께 이 캐릭터가 영어를 잘하는 것을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이런 거였죠. 사실 고모는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등장하는 장면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물은 다른 가족들과 다르게 약간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고 프레디를 대한다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 있죠. 당장 '우리 식구~' 이렇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 아닌데도 뭔가 순수한 호기심과 관심을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는데요. 그래서 우리가 설정한 비하인드 스토리로는 아마 이 고모의 성격이라면 프레디가 외국에 있다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언젠가는 내가 외국에 사는 우리 조카하고 말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면서 조금씩 언어를 배우기라도 했을 만한 그런 인물입니다. 그런 분위기를 풍길 만한 그런 인물이 되었고요. 그래서 그 짧은 출연 장면들에서도 그 번역하고 통역하는 그 모습만으로도 이모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부분들이 굉장히 드러나는 그런 인물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 자체가 엇나감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서로 뭔가 보고 싶을 때는 연락이 안 오다가 포기할 때 보면 연락이 오고, 그런 부분들이요. 언어의 통역 또한 이런 엇나감이랑 또 연결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 영화는 일종의 엇갈림들이 쌓이고 쌓이고 쌓이는 그런 영화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언어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문화라든지 그런 요소들이 아주 다층적으로 엇갈림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실제 입양아인 친구하고도 얘기를 나눠보면,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입양에 관련된 작품에서는 끝에 다들 화해하고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고 이런 엔딩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각각의 다르게 살아온 인생들이 품고 있는 하나하나의 개인성, 개성들이 만나는 그 만남들은 완벽한 만남이라는 것은 없고 어느 정도 항상 엇갈리고 어느 정도 실패하고 좌절한 만남들이 여러 번 반복이 될 뿐이었다고 합니다. 그 안에서 그런 언어라든가 문화라는 것들도 엇갈림의 원인이면서 또 엇갈림의 양상이기도 했는데요. 우리가 그 안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 중 하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한다는 것에 어떤 보편적인 어려움이죠. 이 영화 자체가 그렇게 계속해서 좌절과 그런 불안전함을 주는 만남들이 반복된다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 실패한 만남들로부터 다시 일어나고 그것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끊임없이 그 안에서 성장해 나가는 새로워지는 그 여정에 관한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데이비 추 감독

이번 영화는 처음에 클로즈업에 굉장히 얇은 심도로 시작하는데 진행되면서 점점 프레임이 좀 넓어지는 느낌이거든요. 이런 촬영의 변화로 어떤 효과를 내고 싶으셨는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를 지적하셨어요. 모든 연출가들이 다 그렇겠지만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고민한 부분도 '어떻게 하면 완벽한 거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방금 전 질문에서 실패한 만남들, 실패한 만남들의 연속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그 만남들이 실패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그 사람들 간의 가장 적합한 거리를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연출가들의 과제인 카메라와 피사체와의 거리, 그것을 결정하는 데 이 영화가 특히 어려웠던 이유는 이 프레디에게 한국은 너무나 먼 나라인데 동시에 끊임없이 자기 피 속에 존재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 지나치게 먼 느낌과 떠칠 수 없이 가까운 느낌 그것들 사이에서 어떤 거리가 가장 적합한 최적의 거리일 것인가를 찾는 것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리턴 투 서울>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은 프레디하고 테나의 장면에서 둘 다 굉장히 큰 클로즈업 접사로 찍은 걸 볼 수가 있는데요. 그 상황은 사실 심리적으로는 어떤 상황이냐 하면 불어에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어떤 새로운 곳에 뛰어들어간다고 할 때 '물에 던져버리다'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그러니까 뭔가 계산하지 못한 상태에서 약간 실수하듯이 그렇게 뛰어드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프레디가 한국에 간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내면의 어떤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라는 미지의 공간으로 뛰어드는 데 준비 없이 뛰어들었기 때문에 지나치게 가깝게 뛰어들어 버린 그 상황을 시각적으로 연출한 부분이고요. 그다음에 한국에 있는 여러 가지, 마치 풀어야 할 그 암호처럼 보이는 너무나 많은 신호들을 보면서 프레디는 그것들과 어떻게 하면 이 최적의 거리를 가질 수 있을지 굉장히 혼란에 빠지는데요. 아버지와의 첫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은 좀 잘해내고 싶고 되도록이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하는 그런 욕구가 있는데 특히 입양아를 만나는 부모님들이 첫 번째 보여주는 자세들이 그렇습니다. 보통 어떠냐 하면 그때까지 못했던 부모 노릇을 갑자기 해주려고 한답니다. 그것은 어떤 후회, 죄책감 때문일 수도 있지만 집에 초대하고 '한국 남자하고 결혼해야지' 이런 식으로 갑자기 그동안 못해줬던 좋은 아버지 역할을 갑자기 하려고 하는 것들이 보통 아버지들의 첫 만남에서의 반응인데요. 프레디에게는 그것이 자기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거리 규칙의 위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25년 동안 당신은 내 아버지가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당신과 나 사이에는 존중해야만 하는 거리가 있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나한테 다가오려고 해? 그렇기 때문에 프레디와 아버지의 첫 만남이 일종의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결국은 그 거리 측정의 실패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리턴 투 서울>

미장센 연출에 관해서 또 한 가지 포인트를 말씀을 드린다면 후반부에 가면서 영화의 스타일이 바뀌는 거를 보실 수가 있는데요. 특히 케이케이가 준비한 생일 파티라든가 이런 부분들을 보면 그 이전에 사용하지 않았던 핸드헬드 카메라를 사용해 굉장히 인물에 가깝게 다가가면서 흔들리는 앵글을 볼 수 있는데, 그 상황은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던 한국에서의 첫 기간과는 달리 프레디가 이제 한국에서 일종의 자기 자리를 찾은 것입니다. 그런데 찾은 자리가 굉장히 안정되고 그런 자리가 아니라 약이라든지 파티라든지 이런 것들을 통해서 굉장히 극단적인 자리에 지금 자기를 앉혀놓고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자기 자리로 잡은 것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프레디의 자리이기는 하지만 일종의 어둠으로 가득 찬 자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카메라가 보여주는 화면의 어떤 미장센들도 굉장히 어떤 들끓는 기분으로 불안정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걸 느끼실 수 있죠.

그래서 3부, 일종의 세 번째 파트라고 할 수 있는 그 부분도 미장센에서부터 이 영화의 전체적인 톤이 변하고 있다는 걸 보실 수 있을 텐데요. 조촐하게 식사를 하면서 가족들이 대화를 나누는 그 장면에서 보면 이제 이 사람들은 어느 정도 본인들에게 적합한 거리를 찾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화라든가 이런 만남들도 더 이상 지나치게 감정적이지 않고 좀 더 이렇게 심심하게 무던하게 얘기를 나누는 게 가능한, 그런 그들만의 적합한 거리를 찾았다는 것이죠. 그 사람들의 언어의 차이라든가 문화의 차이라든가 이런 게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그동안 그 사람들이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 내 감정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에게 적합한 거리를 찾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보여주고 있는 평화스러운 분위기가 그들만의 거리를 찾았다는 것을 미장센을 통해서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카메라와 인물 간의 적합한 거리를 찾는다는 것은 사실 미장센 연출에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데, 슬프게도 우리 시대의 영화에서는 그걸 점점 덜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 영화가 저에게 정말 큰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되는 이유 중에 하나가 한국의 영화의 대가들, 이창동 감독님이라든가 홍상수 감독님 봉준호 감독님 이런 분들은 영화에 있어서의 거리를 미장센에서 만드시는 그런 대가들이기 때문이에요. 한국 영화에서 여전히 보여주고 있는 거리에 대한 사유가 저에게는 굉장히 큰 영감이 되고 있습니다.

데이비 추 감독

감독님에 대한 질문을 드리자면, 캄보디아계 사람이지만, 프랑스 출생이고 하지만 캄보디아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시죠. 그렇게 활동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있으셨는지.

부모님은 캄보디아에서 태어나신 분들이고, 저는 부모님이 프랑스에 가신 후 태어나 프랑스인으로 자랐는데요. 25살이 되기 전까지 한 번도 캄보디아를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치 프레디처럼 25살이 돼서야 부모님의 고향인 캄보디아에 가게 됐는데요, 프레디랑 비슷한 상태였다고 할까요. 단호하게 '나는 프랑스인이니까' 그런 자기확신에 가득 찬 상태로 '캄보디아는 여행으로 가는 거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겠어?' 하면서 캄보디아에 갔습니다. 하지만 캄보디아는 저에게 정말 많은 영향과 영감을 줘서 1년 반이나 거기서 머물면서 첫 영화를 만들고 결혼까지 했습니다. 지금 6개월 된 아이가 있고요. 제 인생이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또한 캄보디아에서 계속 영화 활동 하면서 프로듀서로서 다른 캄보디아의 젊은 영화감독들의 영화도 제작하고 있어서 캄보디아에서의 활동은 앞으로도 지속할 예정입니다.

이번 영화로 한국에 오신 것만 세 번째인데, 올 때마다 챙겨먹는 음식이 있으신가요?

10번도 넘게 왔습니다(웃음). 여기서 시나리오도 쓰고 촬영도 하고, 부산도 가고. 적어도 10번, 12번은 왔는데요. 한국은 고기 구워 먹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특히 한국에서 고기 구워 먹을 때 분위기가 서양과 달리 친구들끼리 모여서 왁자지껄한 분위기여서 그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특히 한국에만 존재하는 식사 문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선 저녁을 먹고 술을 한잔 해도, 음식을 또 먹진 않는데 한국에선 술을 드시면서도 안주를 먹죠(웃음). 한 번은 저녁을 세 번 먹기도 했는데, 그런 분위기를 정말 좋아합니다. 세 달 동안 한국에 있으면서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는데, 그때 버거 종류를 계속 먹었습니다.레스토랑 버거 말고 프랜차이즈 버거를 한국에 올 때마다 가장 즐겨 먹습니다. 특히 한국에만 있는 '브루클린 더 버거 조인트'를 정말 좋아합니다.

(왼쪽부터) <동년왕사>(1985), <디어 헌터>(1978),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

한국말로 하면 이제 인생 영화라고 많이 봤거나 자기 인생에 뭔가 되게 중요한 의미를 뒀던 영화들을 얘기합니다. 혹시 몇 편 소개해 줄 수 있을까요?

언제나 어려운 질문입니다. 영국 영화 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에서 그 리스트를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만든 적 있습니다. 그중 몇 가지를 알려드리자면, 미국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베트남 전쟁을 다룬 <디어 헌터>, 왜냐하면 할리우드 영화는 저의 어린 시절에 많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고요. 허우 샤오시엔의 <동년왕사>, 그리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코커 삼부작'(<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삶은 계속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그런 감독들과 영화들을 좋아합니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으로 관객들에게 영화 소개를 부탁드려요.

배우들이 모여 있는 장면들에서, 카메라가 누구 하나를 잡지 않더라도 그 배우분들 한 분 한 분이 아주 섬세한 연기를 하고 계시는 그런 장면을 볼 때 정말 배우분들에 대한 그런 감탄이 들었습니다. 그런 배우분들의 연기가 정말 멋있기 때문에 관객분들도 다 놓치지 말고 배우들의 연기를 주목해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사진 제공=엣나인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