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리 더 브레이브>의 조슈 브롤린.
마일즈 텔러(왼쪽), 조슈 브롤린.

조슈 브롤린은 영웅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온리 더 브레이브>에서 조슈 브롤린은 ‘그래닛 마운틴 핫샷’의 팀장 에릭 마쉬를 연기했다. ‘핫샷’은 산불 발생 초기 단계에 방어선 구축을 위해 불 바로 앞에 투입되는 소방관을 일컫는 말이다. 브롤린의 굵은 팔뚝과 거친 수염은 애리조나의 거대한 산림을 집어삼키는 화염에 맞서 맞불을 놓는 용기, 남자다움의 상징처럼 보인다. 또한 믿음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팀장이자 베테랑 소방관으로서 그는 모든 걸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 조슈 브롤린이기에 영웅의 면모는 더 인상적이었다. 잠깐만. 조슈 브롤린의 필모그래피에서 영웅이 있었던가. 그의 과거를 돌아보자.

온리 더 브레이브

감독 조셉 코신스키

출연 조슈 브롤린, 마일즈 텔러, 제프 브리지스, 제니퍼 코넬리, 테일러 키취, 제임스 뱃지 데일

개봉 201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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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감독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연 토미 리 존스, 하비에르 바르뎀, 조슈 브롤린

개봉 200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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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악당을 상대한 남자
<온리 더 브레이브>의 거친 남자 에릭의 연장선에 또 다른 거친 남자가 있다.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브롤린이 연기한 모스다. 어쩔 수 없다. 브롤린의 과거는 그의 데뷔 시절이 아닌 2007년에서 시작하는 게 더 바람직해 보인다. 물론 그의 데뷔작이 남다르긴 하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존재감이 더 큰 게 사실이다.

역대급으로 괴상한 단발머리의, 역대급으로 잔인한 살인마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에 비하면 약한 거 아니냐고? 브롤린이 연기한 모스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 미친 악당도 대결 상대가 있어야 빛나는 법이니까. 콧수염, 카우보이 모자, 청바지, 웨스턴 부츠 차림의 사냥꾼 모스를 연기한다. 그는 텍사스의 황량한 사막에서 돈가방을 발견했다. 주변에는 시체가 널부러져 있다. 마약상의 거래가 틀어진 살인 현장이다. 그 돈은 위험하다. 모스는 그 위험을 감수하고 돈가방을 챙긴다. 그렇게 영화가 시작되고 모스는 안톤 시거의 위협으로부터 끈질기게 도망다닌다.


인상적인 데뷔작 이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전과 이후 조슈 브롤린의 대중적 인지도는 확연히 달랐다. 이제 그의 데뷔작을 이야기할 차례다. 그는 198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과 각본을 맡은 <구니스>로 데뷔했다. 많은 ‘아재’들의 마음 속 깊게 기억되는 영화다. 브롤린은 천식으로 고생하던 소년 미키의 형이자 운동광인 브랜드로 출연했다.

<구니스>
NBC <투나잇 쇼>에서 <구니스>의 추억을 이야기 하는 조슈 브롤린.

데뷔작은 인상적이지만 이후 브롤린의 커리어는 특출난 게 없었다. TV시리즈 <비정의 탐정>(Private Eye), <평원의 추적자>(The Young Riders) 등으로 배우 경력을 이어갔다. 1990년대 들어 브롤린은 스크린으로 돌아갔지만 주로 조연, 단역이었다. <야생화>(1994), <갱 인 블루>(1996), <미스터 플라워>(1996), <나이트 워치>(1997), <미믹>(1997)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데뷔작 이후 브롤린은 존재감이 미미했다. 위에 언급한 영화를 본 사람도 브롤린을 기억하는 사람도 얼마 없을 것 같다. 2000년대에 들어설 때도 브롤린은 자신의 진가를 인정받지 못했다. 폴 버호벤 감독의 <할로우 맨>(2000)에서 눈에 띄긴 했다.

<아메리칸 갱스터>
아메리칸 갱스터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덴젤 워싱턴, 러셀 크로우

개봉 200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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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 테러>
플래닛 테러

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

출연 로즈 맥고완, 프레디 로드리게스

개봉 200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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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리들리 스콧, 코엔 형제가 알아본 재능
2007년이 기점이다. 브롤린은 그해 인생이 달라졌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은 이른바 할리우드의 작가 감독들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와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먼저였다. B급 익스프로이테이션영화에 오마주를 바치는 <그라인드하우스>에서 브롤린은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연출한 <프래닛 테러>에 출연했다. 그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은 또 있다. 리들리 스콧이다. <아메리칸 갱스터>에서 타락한 형사 트루포를 연기했다. 덴젤 워싱턴과 러셀 크로우 사이에서도 그는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코엔 형제가 있다. 먼저 언급했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조슈 브롤린이라는 이름은 영화 좀 본다는 관객들의 머리 속에 또렷이 각인됐다.

안톤 시거에 쫓기던 모스 이후, 브롤린은 탄탄대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밀크>(2008),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2010), 우디 앨런 감독의 <환상의 그대>(2010)에 잇따라 출연했다. 특히 <밀크>와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에서 그가 보여준 악역은 인상적이었다. 브롤린은 <밀크>로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다. 코엔 형제의 서부극 <더 브레이브>(2010)도 빼놓을 수 없는 영화다.

<밀크>
밀크

감독 구스 반 산트

출연 숀 펜, 조슈 브롤린, 에밀 허쉬

개봉 200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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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그대>
환상의 그대

감독 우디 앨런

출연 나오미 왓츠, 안소니 홉킨스, 안토니오 반데라스, 조슈 브롤린

개봉 2010 미국,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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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브레이브>
더 브레이브

감독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연 맷 데이먼, 제프 브리지스, 조슈 브롤린, 배리 페퍼, 헤일리 스테인펠드

개봉 2010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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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영화를 접수하다
할리우드에 완벽히 자리를 잡은 브롤린의 다음 행보는 블록버스터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맨 인 블랙 3>에서 젊은 시절의 K를 연기하는 게 시작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은 블록버스터라고 보긴 어렵지만 국내 팬에게는 각별한 영화일 테다. 숀 펜, 라이언 고슬링과 출연한 <갱스터 스쿼드>을 거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도달했다. 그렇다. 그는 마블 최고 악당 타노스를 연기한다. 파란 얼굴에 대머리인 타노스와 실제 모습의 차이가 크긴 하지만 그가 맞다. 2018년 최대 기대작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브롤린의 팬들만 궁금한 건 아닐 거다. 또 다른 개봉예정작인 <데드풀 2>에서도 빌런 케이블을 연기한다. 디즈니의 폭스 인수로 인해 브롤린이 연기하는 두 악역이 한 지붕에 들어오게 됐다. 어딘가 어색한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할까. 뻔한 해결책이지만 타노스 혹은 케이블 둘 하나를 죽여버리면 되지 않을까 싶다.

<맨 인 블랙 3>
맨 인 블랙 3

감독 배리 소넨펠드

출연 윌 스미스, 토미 리 존스, 조슈 브롤린

개봉 201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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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
올드보이

감독 스파이크 리

출연 조슈 브롤린, 엘리자베스 올슨, 샬토 코플리, 사무엘 L. 잭슨

개봉 201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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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감독 안소니 루소, 조 루소

출연 크리스 프랫, 조 샐다나, 브래들리 쿠퍼, 빈 디젤, 조슈 브롤린, 엘리자베스 올슨, 베네딕트 컴버배치, 제레미 레너, 스칼렛 요한슨, 톰 홀랜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크리스 헴스워스, 크리스 에반스, 폴 러드, 마크 러팔로, 안소니 마키, 톰 히들스턴, 기네스 팰트로, 폴 베타니, 돈 치들, 카렌 길런

개봉 201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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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 2>
데드풀 2

감독 데이빗 레이치

출연 라이언 레이놀즈, 모레나 바카린, 조슈 브롤린

개봉 201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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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성과 작품성을 넘나들다
슈퍼히어로 영화에 출연하면서 아마도 몸값이 높아졌지만 브롤린은 작가주의 영화에도 꾸준히 출연했다. 어떻게 보면 상업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균형을 잘 이룬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돈은 마블 영화로 벌면서 꾸준히 오스카 트로피를 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많은 브롤린의 팬들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아닌 작품에서 그를 더 인상적으로 기억할 듯하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인히어런트 바이스>(2014)는 조금 임팩트가 약하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와 코엔 형제의 <헤일, 시저!>(2016)는 이야기가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보다는 <헤일, 시저!>의 영화제작자 에디 매닉스를 더 자세히 기억한다. 밤이고 낮이고 각종 사고를 치는 배우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는 와중에 그는 항공사의 임원 자리를 제안받는다. 가족과 함께 규칙적이고 안정된 삶을 꾸릴 수 있는 시간과 돈이 그 앞에 놓여 있다. 임신, 납치 등 온갖 사건사고를 다 정리한 뒤에야 그는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말한다. 그래도 자신은 영화가 좋다고.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감독 드니 빌뇌브

출연 에밀리 블런트, 조슈 브롤린, 베니시오 델 토로

개봉 2015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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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 시저!>
헤일, 시저!

감독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연 조슈 브롤린, 조지 클루니, 채닝 테이텀, 랄프 파인즈, 틸다 스윈튼, 조나 힐, 스칼렛 요한슨, 엘든 이렌리치, 프란시스 맥도맨드

개봉 2016 미국,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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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만나는 조슈 브롤린
거칠게 조슈 브롤린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봤다.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는 영화로 데뷔했지만 이후 그는 배우로서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배우 활동을 이어 나갔고 2007년을 기점으로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났다. 코엔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그의 인생에서 큰 변곡점이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 조슈 브롤린은 2018년에 세 편의 영화로 만나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데드풀 2> 이외에 한 편 더 있는데 <시카리오 2: 솔다도>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없지만 이 영화를 기대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브롤린과 함께 1편에 등장했던 베네치오 델 토로도 출연한다.

<시카리오 2: 솔다도>
시카리오 2: 솔다도

감독 스테파노 솔리마

출연 베니시오 델 토로, 조슈 브롤린, 캐서린 키너, 이사벨라 모너

개봉 2018 이탈리아,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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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VS 영웅
서두에 내놓은 질문을 기억하는가. ‘조슈 브롤린이 영웅을 연기한 적이 있던가’였다. 정리하면 그는 주로 악인이었다. 타노스는 말할 것도 없고, 오스카 후보에 올랐던 <밀크>의 악역 댄 화이트 연기는 압권이었다. 게다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더블유>에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연기하기도 했다. 역대 최강 악당 안톤 시거에게 쫓기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모스나 멕시코 카르텔을 소탕하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CIA 요원 맷도 그리 착해 보이지는 않는다. 모스와 맷 모두 악당은 아니지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남자다. 1950년대 할리우드를 다룬 <헤일, 시저!>의 영화 제작자 에디 매닉스도 어딘가 뒤에 꿍꿍이가 있는 느낌이다. 물론 그는 자신의 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다시 <온리 더 브레이브>로 돌아가보자. 이 영화에서 브롤린은 거대한 화마와 싸우는 영웅이다. 어딘가 켕기는 구석도 없다. 잔꾀를 부리지도 않는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온리 더 브레이브>는 이 영웅을 연기한 브롤린에게 기댄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악당이 없는 영화이긴 하지만 순수한 영웅을 연기한다는 건 그만큼 더 많은 책임감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 조슈 브롤린이라면 영웅이 될 자격 조건을 갖춘 지 오래다.

<더블유>
더블유

감독 올리버 스톤

출연 조슈 브롤린, 세이드 바드레야, 엘리자베스 뱅크스, 데이빗 본, 데니스 부치카리스, 엘렌 버스틴, 리차드 드레이퓨즈, 스콧 글렌

개봉 2008 미국, 홍콩, 독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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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