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더 알고 싶을 때 우리는 그 안에 새겨진 의미를 하나하나 되짚어 본다.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는 물론, 잠시 긴장을 늦춘 사이에 휙 지나가는 미장센 하나에도 결정적인 지표가 숨어 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의 이름 역시 마찬가지. 유명 캐릭터 이름 안에 담긴 의미들을 살펴봤다.

******* 스포일러 아주 많음 *******

<양들의 침묵> 한니발 렉터

식인은 한니발 렉터의 캐릭터를 나타내는 키워드다. 인육을 먹는 사람을 뜻하는 'cannibal'에 맨앞 철자만 바꿔서 이름을 만들었다. 고대 가장 위대한 군사 전략가로 손꼽히는 한니발 바르카도 작명에 영향을 줬다. 렉터 박사는 뛰어난 지략으로 감옥 안에서도 능수능란히 사람들을 쥐고 흔든다.

'마블' 캐릭터

스파이더맨, 헐크, 닥터 스트레인지의 공통점. 피터 파커(Peter Parker), 브루스 배너(Bruce Banner), 스티븐 스트레인지(Stephen Strange)처럼 이름과 성이 같은 철자로 구성돼 있다. 마블을 비롯한 코믹스 작가들은 대중이 캐릭터들을보다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이름을 지었다. '어벤져스 어셈블' (Avengers Assemble), '판타스틱 4'(Fantastic Four)도 비슷한 맥락이다.

<헝거게임> 캣니스 에버딘

캣니스의 아버지는 그녀의 이름을 식용뿌리("네 자신을 찾기만 하면 절대 굶어죽지는 않을 거야")가 있는 소귀나물속의 일종인 캣니스에서 따왔다. 소귀나물(Sagittaria)의 명칭은 궁수자리(Sagittarius)에서 유래한 것이다. 캣니스는 활 쏘는 데에 능했던 건 그 이름 덕분이었을지도.

<해리포터> 시리우스 블랙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해리 포터는 자신을 따라오는 검은 개를 보고 불길한 죽음의 기운을 느낀다. 이 개가 사실 해리의 대부 시리우스 블랙이라는 건, 별자리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일찌감치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큰개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이 바로 시리우스다.

<해리포터> 볼드모트

볼드모트의 이름은 프랑스어 'vol de la mort'에 착안했다. vol은 비행, mort는 죽음. 직역하자면 죽음의 비행,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볼드모트는 자신의 영생을 위해 사람들을 죽인다.

<유주얼 서스펙트> 버발 킨트

잘 알려진 것처럼, 카이저 소제는 절름발이 버발 킨트다. 사실 그의 정체는 이름에서부터 드러난다. 터키식 이름 Keyser Söze의 성은 say 혹은 talk를 의미하는 단어 'soz'에서 따온 것이다. '말'과 관련된 이름, 바로 'Verbal' Kint다.

<주토피아> 벨웨더

이름으로 반전을 눈치챌 수 있는 케이스는 <주토피아>에도 있다. 창고에 가까운 방에서 세상 온순한 얼굴로 주토피아의 부시장 노릇을 하고 있는 벨웨더는 사실 맹수들의 야수화를 계획한 장본인이었다. '양들의 우두머리'라는 뜻의 이름 Bellwether가 그걸 암시하고 있었다.

인디아나 존스

조지 루카스가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처음 제안한 <레이더스> 주인공의 이름은 '인디아나 스미스'였다. 인디아나는 당시 루카스가 기르던 반려견 이름이다. 알래스칸 말라뮤트 종의 인디아나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츄바카를 구현하는 데에도 영감을 줬다. 한편, 스필버그는 스미스만큼이나 흔한 성인 존스를 선택했다.

<메이즈 러너> 속 소년들

<메이즈 러너> 속 소년 캐릭터의 이름은 저명한 과학자들에게서 따왔다. 토마스는 토마스 에디슨, 뉴트는 아이작 뉴턴, 알비는 알버트 아인슈타인, 갤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척은 찰스 다윈이다. 한국계 배우 이기홍이 연기한 민호는 <메이즈 러너> 원작자 제임스 대시너의 조카사위 이름을 빌려온 것.

<스타워즈> 다스베이더

다스 베이더(Darth Vader)가 'dark father'의 독일어/네덜란드어라는 널리 알려진 풍문이 있다. father는 각각 vater/vader로 얼추 맞긴 한데, dark는 dunkel/donker로 darth와는 거리가 멀어 뵌다. darth가 'dar'k lord of si'th', vader가 in'vader'의 조합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설'에 불과하긴 마찬가지다.

<아메리칸 뷰티> 안젤라 헤이즈

<아메리칸 뷰티>의 주인공 레스터는 집에 온 딸의 친구 안젤라에게 한눈에 반한다. 중년 남성이 미성년자 여성을 탐한다는 <롤리타>의 설정이 대번에 떠오를 수밖에 없다. 안젤라의 성 헤이즈(Hayes)는 <롤리타> 속 돌로레스의 성 헤이즈(Haze)를 변주한 것이다.

<라이온 킹> 속 캐릭터

아프리카의 왕국 '프라이드 랜드'를 배경으로 한 <라이온 킹>은 주요 캐릭터 이름 대부분을 스와힐리어 단어에서 가져왔다. 심바는 '사자', 무파사는 '왕', 날라는 '선물', 라피키는 '친구', 품바는 '멍청이', 사라비는 '신기루'다. 각자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낱말들이다.

<인셉션> 아리아드네

엘렌 페이지가 연기한 아리아드네는 물론 그리스 신화의 그 아리아드네(Ariadne)의 이름을 딴 것이다. 크레타의 미노스와 파시파에 사이에서 태어난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빨간 실타래와 검을 건네 그가 미노타우르스의 미로에서 빠져나오도록 돕는다.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꿈에서 깨어나는 도미닉 코브가 곧 테세우스인 셈이다.

<페이스 오프> 캐스터 트로이

니콜라스 케이지와 존 트라볼타의 호연이 돋보이는 캐스터 트로이는 이름 그대로 그리스 신화의 카스토르(Castor)에서 가져온 것이다. 물론 캐스터의 동생 이름 역시 카스토르의 쌍둥이 동생 폴룩스다. 이름 외에도 영화와 신화의 접점이 또 하나 있다. 죽음이다. 카스트로와 캐스터 모두 창에 찔려 목숨을 잃게 된다.

<매트릭스> 네오

네오(Neo)는 'one'의 철자 순서를 바꾼 것이자 'new'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다. <매트릭스>에서 네오의 존재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네오의 본명 토마스(Thomas)는, 네오이자 토마스인 '쌍둥이'(twin)를 뜻함과 동시에 12사도 중 예수의 부활을 의심한 토마스를 떠올리게 한다.

<업> 엘리와 칼

칼 할아버지는 어릴 적 소꿉친구로 만나 오랜 평생을 함께 한 첫사랑 엘리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파라다이스 폭로를 향해 모험을 떠난다. 칼(Carl)의 뜻은 단순히 남자(man)이지만, 엘리(Ellie)는 번쩍이는 빛(shining light)을 의미한다. 숫기 없는 평범한 남자애였던 칼은 섬광 같은 에너지를 품은 엘리를 만나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싸이코> 노먼 베이츠

영화사에 길이남을 싸이코패스, 노먼 베이츠. 미남에다 온순해 보이기까지 한 그가 바로 연쇄살인마라는 반전은 그 이름부터 암시하고 있었다. 노먼(Norman)은 'normal'을, 베이츠(Bates)는 'baits'과 발음이 유사하다. 평범하다는 게 바로 미끼라는 말장난 같은 작명. 또한 그가 여장을 하고 죽은 어머니인 척 하는 걸 보면 Norman은 'nor man'처럼 보이기도 한다.

<007> 제임스 본드

"간단하고, 낭만적이지도 않고, 앵글로색슨적이면서도, 아주 남성적인...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007> 원작자 이언 플레밍은 조류학자 제임스 본드의 책을 보다가 문득 저자 이름에서 영국 첩보요원의 캐릭터명을 떠올렸다. 스무 번째 시리즈 <다이 어나더데이>엔 제임스 본드의 저서 <서인도 제도의 새>를 등장시켰다. 저자 이름을 티나게 지운 채로.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