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제인> 메인 예고편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돼 영화 팬들의 두터운 지지를 이끌어냈던 <꿈의 제인>이 5월 마지막날 개봉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미옥 역으로 크게 주목 받은 이민지와 감독과 배우로서 독립영화계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구교환이 주연을 맡은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석권해 화제를 모았다. 연기도 연기지만, 배우들이 분한 소녀와 트랜스젠더 캐릭터가 발군이라는 평이 많았다. 소녀와 트랜스젠더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저는 태어날 때부터 진실하지 않았어요. 그거 아세요? 제가 처음 배운 말은 거짓말이었대요. 저는 영원히 사랑 받지 못할 거예요." 미러볼이 풀 죽은 듯 돌아가고, 어린 목소리의 고백이 들린다. 고백의 주인공은 소현(이민지)이라는 소녀다. 우리가 제목 속 제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소현 곁의 전혀 가까워 보이지 않는 또래 무리, 사람 발이 삐져나온 캐리어, 그리고 그들이 그걸 산에 묻는 풍경을 지나야 한다. 소현이 "자는 사이에 몰래 도망친" 정호 오빠와 지내던 모텔에 다시 돌아와 손목을 긋고나서야, 제인(구교환)은 소현과 관객에게 인사를 건넨다. 제인은 그렇게 소현의 죽음 직전에 찾아와 그녀를 구하고, 자기가 무대에 서는 '뉴 월드'로 데려간다. 소녀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줄거리 소개가 다소 뒤죽박죽이라고 느낄지 모르겠다. 다만 이런 불친절함이 <꿈의 제인>이 서사를 끌어가는 방식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소현의 마른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흘러가는 영화는 처음엔 지금 보고 있는 이야기가 현재인지 과거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도통 따라잡을 수 없게 진행된다. 소현의 첫 고백을 같이 들어주던 사람들은 없고, 그 비슷한 공간에 전혀 다른 이들이 소현 곁에 있다. 한결 부드러운 관계로 보이는 그들은 트랜스젠더 제인의 식솔들이다. 그들이 여기에 어떻게, 왜 모이게 됐는지 알 수 없다. 그저 가족'처럼' 모여 사는 아이들은 제인이 제공하는 불안하지만 따뜻한 환경 아래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무표정한 소현의 얼굴에 점점 감정이 떠오를 즈음, '제인팸'은 엄마가 싸놓은 김밥을 입에 우겨넣고 작별로 향한다. 그리고 소현은 다시 오프닝 속 그 무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영화를 맴돌던 우울은 거둬지지 않는다. 제인은 "이렇게 개같이 불행한 인생 혼자 살아 뭐하"냐며, 서로 똑같이 케익을 나눠먹을 수 없다면 모두 안 먹고 말아야 한다고, 더불어 사는 삶을 강조하지만 정작 자신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아무에게도 고백하지 못한 채 욕실에서 약을 털어넣거나 홀로 주저앉아 눈물을 흘릴 뿐이다. <꿈의 제인>은 그렇게 제인의 명암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그의 삶 곳곳에 새겨져 슬픔을 가늠케 한다. '꿈의 제인'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도 제인은 이야기에서 금방 퇴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나머지 시간동안 제인이 곁에 없는 소현이 얼마나 처절하게 살아야 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제인이 내주었던 포근한 품을 끊임없이 되뇌면서 소현의 여정을 꾸역꾸역 따라갈 수밖에 없다.

'가출'과 '트랜스젠더'. 영화 속 요소 그 이상으로 보이기 쉬운 소재다. 집 없는 아이들의 피폐함과 성소수자로서 살아가는 이의 고단함이 곧장 영화 바깥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의 제인>은 그들을 둘러싼 '사회'를 '고발'하는 일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소현이 집을 나와 가출팸에 합류하게 된 이유가 뭔지, 제인이 트랜스젠더로 살기 위해 감수하는 냉대가 얼마만큼인지에 대해서 돌이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건, 저마다 품고 있는 절대적인 외로움과 그걸 어떡해서든 이겨보고자 발버둥치는 이들의 안간힘이다. 제인 없는 소현이 구르고, 구르고, 굴러떨어져 목놓아 심정을 고백하는 대목은 눈물도 흐르기 전에 심장을 얼어붙게 한다.

두 배우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이민지는 자신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거라는 걸 너무  빨리 알아버린 소녀가 순간순간 느끼는 절망들을 이렇다 할 표정 변화를 거치지 않고도 확연히 전한다. 바닥을 모르는 황망함이 언제나 짙게 서려 있지만, 아주 옅게나마 관계의 가능성을 느끼는 순간마다 희미하게 번지는 희망을 놓치는 법이 없다. 또 다른 배우는 병욱 역의 이석형이다. 소현이 속하게 되는 팸의 리더 병욱은 폭압적인 태도로 위태로운 공동체를 유지하려 애쓰지만, 팸 일원들이 자신을 미워할까 초조해 하는 눈빛을 감추지 못한다. 자신의 뜻대로 되길 바라며 무리를 할수록 자꾸 미끄러지는 불안의 굴레가 낯선 배우의 왜소한 체구에 생생하게 드러난다. <파수꾼>의 이제훈 이후 오랜만에 느끼는 감흥이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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