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빛 포스터를 보는 순간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비주얼의 제왕이 이번엔 어떤 영화를 만든 걸까?”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이라면 이미 <문라이즈 킹덤><로얄 테넌바움>, 더 멀리는 <스티븐 지소의 해저생활>까지 무척 좋아했던 터라 새 영화에 대한 기대 역시 높았습니다. 특히 <로얄 테넌바움> 좋아하는데, 다른 영화들에선 본 적 없는 괴짜 가족들의 이야기에 반했던 기억이 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에 통통 튀는 개성 강한 캐릭터, 여기에 높은 미술적 완성도를 자랑하는 화면까지 그의 영화들은 언제나 웨스 앤더슨 표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독특합니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도 그렇습니다. 때는 1927, 장소는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가상의 국가 주브로브카 공화국입니다. 그곳에는 블링블링 핑크빛 외관을 자랑하는 화려한 분위기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있습니다. 유럽의 소문난 부자들이 주로 찾는 곳으로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죠. 이 호텔의 지배인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 분)는 사교계에서 인기가 많습니다. 구스타브는 돈 많고 나이 많은 미망인들에게만 접근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중년 부인들은 기꺼이 그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호텔을 다녀간 84세의 미망인이자 유럽 최고의 갑부인 마담 D(틸다 스윈튼 분)가 의문의 살해를 당하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녀는 유언으로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명화 <사과를 든 소년>을 구스타브 앞으로 남기고, 그녀의 아들 드미트리(애드리언 브로디 분)는 이 그림이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넘어간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는 결국 구스타브를 마담 D의 유력 살해 용의자로 지목하고 구스타브를 제거하기 위해 킬러 조플링(윌렘 데포 분)까지 고용합니다. 이제 도망자 신세가 된 품격의 신사 구스타브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충직한 호텔 로비보이 제로(토리 레볼로리 분)와 함께 미스터리 한 모험을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길을 뗄 수 없는 이 영화 속에는 환상적인 볼거리가 가득합니다. 특히 가상의 국가인 주브로브카 공화국에서 사용하는 화폐, 우표, 스탬프, 깃발, 여권 등은 모두 새롭게 창조되어 마치 오래 전 실존했던 유럽의 한 마을을 보는 것 같습니다. 예술작품을 보는 듯한 호텔 인테리어와 세련된 의상, 구스타브가 늘 챙기는 향수 오 드 파나쉬’와 제빵사 아가사(시얼샤 로넌 분)가 만드는 달콤한 디저트까지! 그 사랑스러운 색감과 멋진 디자인을 보고 있으면 마치 잘 만든 아트북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기분이 듭니다.

그중에도 유난히 눈길이 갔던 건 로비보이 제로가 사랑하는 여인, 아가사가 만드는 디저트, 코르티잔 오 쇼콜라였어요. 그녀가 일하는 <맨들스제과점의 인기 메뉴인데, 정말 먹기 아까울 만큼 예쁘게 생겼거든요. 어떻게 만든 건가 살펴보니 슈 반죽을 이용한 디저트였는데, 그 순간 떠오른 건 파리의 <라뒤레>에서 만난 디저트 를리지외즈'(Religieuse)였답니다. 이 디저트는 커다란 슈 위에 작은 슈를 얹어서 오뚝이 모양처럼 만든 것으로, 베일을 쓴 수녀(Religieuse)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영화 속 디저트는 여기에 작은 슈 하나를 더 얹어서 세 개의 슈가 쌓인 형태인데, 이 디저트의 이름이 코르티잔 오 쇼콜라’(여기서 코르티잔은 창녀(Courtesan)라는 의미)라는 점이 재밌습니다.

이 디저트를 만든 장소이자 영화에서 탈출을 돕는 계기가 되는 <맨들스제과점의 실제 배경이 된 곳도 궁금해서 찾아보니 독일의 드레스덴에 위치한 '푼드 낙농업'(Pfunds Molkerei)이라는 유제품 가게라는군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제품 가게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유명한 드레스덴의 명소인데, 내부 사진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고 해요. 홈페이지의 사진을 살펴보니 고풍스러운 느낌이 영화를 꼭 닮아 있는 터라 드레스덴에 가면 꼭 들러보고 싶어졌습니다. 무엇보다 1880년부터 영업을 시작해 두 차례 세계대전 속에서도 살아남았다고 하니 영화의 내용과도 어울리는 장소인 것 같습니다.

영화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화면 비율이나 액자 구성의 화면 등 다양한 기법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무법자 조플링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장면이나 ‘서지X’의 행방을 찾기 위해 올라간 산에서 케이블카를 타는 장면, 눈쌓인 산에서 쫓고 쫓기는 스키장 추격신 등은 웬만한 애니메이션보다 더 환상적인 시각적 쾌감을 선사합니다. 영화는 볼거리뿐만 아니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장소의 흥망성쇠를 통해 동유럽의 현대사를 슬며시 던져놓기도 하죠. 감독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 <어제의 세계>를 읽고 영감을 얻어 이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찬란했지만 어두웠던 동유럽의 모습이 진한 향수 속에 담겨있는 듯합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들은 언제나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그의 미적 감각에 감탄하고, 그가 만들어낸 기상천외한 이야기에 신이 납니다. 또 그의 영화에는 개성 있는 인물들이 가득합니다. 여전히 아이 같은 어른과 어른 같은 아이가 싸우고, 가족은 세상에서 제일 믿지 못할 존재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무겁고 어두운 소재라도 그의 세계 안에서는 가볍고 경쾌한 이야기로 재탄생합니다. 모든 것이 잘 짜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영화가 종합예술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줍니다.


영화 속 메뉴 따라하기

로비보이 제로가 사랑에 빠진 아가사는 주브로브카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 멘들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 가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디저트인 '코르티잔 오 쇼콜라'(Courtesan au chocolat)를 만들죠. ‘아름다운 창녀를 위한 초콜릿 페스트리라는 의미를 가진 이 디저트는 감옥에 갇힌 구스타브의 탈출 작전에 큰 공을 세우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 사랑스러운 과자를 꼭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감독이 과자의 제작 과정을 따로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 사이트에 공개했더군요. 슈 세 개를 쌓아서 장식하는 복잡한 메뉴이지만 의지만 있으면 안 될 것은 없습니다. 아가사의 작전이 성공한 것처럼 말이죠!

코르티잔 오 쇼콜라

재료
슈반죽 : 우유 60g 60g 소금 2g 설탕 5g 실온에 둔 무염버터 50g 박력분 70g 달걀 3
필링 : 우유 250g 설탕 60g 달걀노른자 3개 박력분 10g 녹말가루 10g 초콜릿 60g
데코레이션 아이싱 : 슈가파우더 200g 2큰술 식용색소 조금, 코팅용 화이트 초콜릿 적당량

슈반죽 만들기
1. 냄비에 박력분과 달걀을 제외한 슈 반죽 재료를 넣고 끓인 뒤 불을 끈다. 여기에 체에 내린 박력분을 넣어 섞는다.
2. 가스레인지를 약불에 켜고 1의 반죽이 한 덩어리가 될 때까지 타지 않게 볶는다.
3. 2의 반죽을 믹싱볼에 넣고 한 김 식힌 뒤 잘 섞어놓은 달걀 2개를 조금씩 나눠 넣어가며 섞는다.
4. 매끄럽게 섞인 반죽을 짜주머니에 담고 유산지를 깐 오븐 팬 위에 짠다. 테이블스푼, 티스푼, 헤이즐넛 원두 사이즈로 짠다. 18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20분간 굽는다.

필링 만들기
1. 볼에 달걀노른자, 설탕, 밀가루, 녹말가루를 넣고 섞는다. 분량의 우유는 냄비에 담아 살짝 끓인 뒤 붓고 잘 섞어서 냄비에 다시 옮긴다.
2. 거품기로 저어가며 끓이다가 걸쭉해지면 불을 끄고 버터와 초콜릿을 넣어 섞는다.
3. 크림을 넓은 팬에 부어 윗면을 랩으로 밀착시키고 냉장실에 넣어 차갑게 식힌다.
4. 구운 슈 바닥에 구멍을 내고 3의 크림을 채워 넣는다.

아이싱 장식하기
1. 슈가파우더와 물을 작은 볼에 담아 걸쭉한 점성이 나도록 섞은 뒤 식용색소를 넣어 색을 낸다.
2. 필링을 채운 페이스트리에 원하는 색의 아이싱을 발라 장식한다.
3. 세 개 크기의 페이스트 사이사이에 아이싱을 발라 쌓은 뒤 중탕으로 녹인 화이트초콜릿으로 장식해 마무리한다.


파란달 /  요리 연구가

재밌으셨나요? 내 손 안의 모바일 영화매거진 '네이버 영화'를 설정하면 더 많은 영화 콘텐츠를 매일 받아
볼 수 있어요. 설정법이 궁금하다면 아래 배너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