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쓰 프루프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커트 러셀, 로사리오 도슨, 바네사 페를리토, 조던 래드, 로즈 맥고완, 시드니 타미아 포이티어, 트레이시 톰스,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개봉 2007년 9월 6일 상영시간 113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 데쓰 프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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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커트 러셀
개봉 2007 미국
2007년 9월,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에 대해 이동진 평론가는 이렇게 썼다.
“되살려낸 70년대 B급 영화의 분위기와 재미 속에 타란티노의 독창적 숨결이 불어넣어진 <데쓰 프루프>는 시대적 뉘앙스와 지역적 문맥이 공유된 환경에서 상영될 때 최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데쓰 프루프>의 1970년대 B급 영화 분위기는 자동차와 미녀라는 두 가지 요소로 만들어진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매끈한 미녀의 몸매와 역시 매끈한 자동차의 보디라인을 훑는다. 이 영화, 별거 없고 눈 요깃거리로만 가득찼다는 식이다. 섹시한 랩 댄스를 선보인 미녀를 태운 자동차는 질주한다.
‘독창적 숨결’이라는 대목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진가가 드러난다. 당연하지만 그는 단순히 1970년대 B급 영화를 똑같이 재연하지 않았다. <데쓰 프루프>의 출연진 가운데 유일하게 익숙한 이름인 커트 러셀은 사실 주인공이 아니다. 그가 연기한 스턴트맨 마이크는 미치광이 변태 살인마다. 그는 ‘데쓰 프루프’(Death Proof)라는 개조된 자동차를 탄다. 워터 프루프(water proof)가 방수(防水), 불릿 프루프(bullet proof)가 방탄(防彈)으로 번역되니 ‘데쓰 프루프’라는 말은 아마도 ‘죽음을 막는다’는 의미의 ‘방사’(防死) 정도가 아닐까 싶다. 마이크는 여자들을 이 자동차에 태우고 위험한 질주를 한다. 일부러 사고를 내고 여자들을 죽여버린다. 데쓰 프루프 자동차가 막아주는 죽음은 마이크에게만 해당한다.
<데쓰 프루프>의 진짜 주인공은 마이크에게 복수하는 여성들이다. 1970년대라면 여자가 주인공이지 않았을 것이다. 복수는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타란티노 버전의 B급 영화에서 매끈한 몸매의 여성 주인공은 남자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조수석에만 앉지 않는다. 직접 운전대를 잡는다. 심지어 달리는 자동차 보닛 위에 올라가기도 한다. 여성이 운전하는 머슬카, 1970년형 닷지 챌린저 440의 배기음이 으르렁댄다. 이렇게 남성과 여성의 위치가 전복된다.
<데쓰 프루프>는 여성들과 마이크의 최종 대결을 위해 존재하는 영화다. 이 최종 대결에 오기까지는 다소 힘든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등장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잡담으로 빼곡하다. 미국식 유머의 향연이다. 드디어! CG가 전혀 사용되지 않은 카체이싱이 등장한다. 무려 20여 분간 지속된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이 장면 이후에는? 짜릿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스타일을 고스란히 담은 폭력의 미학을 보여준다.
서두에 인용한 이동진 평론가가 쓴 글을 더 보자.
“그런데, 그라인드 하우스가 없었고 70년대 미국의 B급 영화에 대한 집단적 향수가 부재하는 머나먼 타국에선 누가 온전히 즐길 것인가. <데쓰 프루프>를 낳은 시공간적 컨텍스트를 짐작하고 하위문화의 키치적인 미학을 이해하려 하는 문화적 소수의 오락거리가 되지 않을까. 값싸고 거칠고 생생한 대중예술이 바다를 건너 문화 엘리트들의 교양으로 소비되는 역설.”
<데쓰 프루프>는 ‘그라인드 하우스’라는 제목 아래 로버트 로드리게스가 연출한 <플래닛 테러>와 함께 미국에서 개봉했다. 두 영화 모두 1970년대 B급 영화, 엑스플로이테이션 필름(exploitation film)의 향수를 담아낸 작품이다. 엑스플로이테이션 필름은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장르다. 대략적으로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자극적인 소재인 폭력, 섹스 등을 내세우며 영화의 흥행에만 몰두하는 저예산 영화를 뜻한다. 엑스플로테이션이라는 말은 ‘착취’라는 뜻으로, 관객의 돈을 뜯어간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그라인드 하우스는 엑스플로이테이션 필름과 같은 B급 영화를 상영하던 미국의 싸구려 극장을 일컫는 말이다. 국내의 동시상영관과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 다르다.
- 플래닛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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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
출연 로즈 맥고완, 프레디 로드리게스
개봉 2007 미국
정리하면 <데쓰 프루프>는 1970년대 미국 문화의 산물이고 한국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라는 말이 된다. 그런 까닭에 이동진 같은 평론가나 영화 마니아인 씨네필 정도만 <데쓰 프루프>에 담긴 시대적, 공간적 맥락을 이해하고 열광했다. 실제로 2007년 당시 국내의 <데쓰 프루프> 관객 수는 고작 9만 1066명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은 9만 여명에 포함되는 ‘문화 엘리트’이거나 여러 매체를 통해 <데쓰 프루프>의 ‘시공간적 컨텍스트’를 학습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 <데쓰 프루프>라는 영화를 아는 사람이 많이 없다는 뜻이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우연찮게 이 글을 읽게 된 사람들이 위에서 언급한 거창한 맥락과 상관없이 <데쓰 프루프>를 보고 싶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정 <데쓰 프루프>는 재밌다. 킬링 타임용 유치한 오락영화라고 생각하고 보길 권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도 분명 그렇게 자신의 영화를 봐주길 원했을 것으로 믿는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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