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의 경계

“머구리는 저승 가서 벌어다가 이승에서 쓴다고 그러거든요. 삶 자체가 매 순간이 생과 사의 경계선이에요.”

‘머구리’는 수심 30~40m 바다에서 해산물을 잡아 올리는 심해 잠수부를 뜻한다. 배와 연결된 한 가닥 호스를 통해 공기를 공급받는다. 호스로 공급받은 공기를 투구 구멍으로 내보내면 아래로 가라앉고, 잠수복에 공기를 풍선처럼 빵빵하게 채우면 위로 떠오른다.

머구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생명줄과도 같은 호스가 끊어지는 거다. 공기가 공급되지 않으면 잠수복, 투구, 납벨트, 쇠신발에다 몸무게까지 더해 120kg이 넘는 몸을 혼자 힘으로 떠오르게 할 재간이 없다. 그냥 물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수밖에. 물속에서 머구리들끼리 마주치면 서로 줄이 엉켜 큰일이라도 날 새라 급히 몸을 돌려 다른 방향으로 가는 이유다.

남과 북의 경계

대한민국 최북단 항구인 강원도 고성군 대진항에서 머구리 일을 하는 박명호씨는 늘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간다. 그의 인생에 이 경계선만 있는 건 아니다. 그와 가족들은 2006년 커다란 경계선 하나를 넘었다. 박명호씨와 아내, 두 아들은 서해바다에서 무동력선을 타고 노 하나에 의지한 채 북에서 남으로 향했다. 해류를 잘못 타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 처형당하거나 어두컴컴한 바다에서 남북한 군인을 만나 총 맞을 수도 있었던 그 25시간을 박명호씨는 결코 잊지 못한다.

“그때 그 공포, 심장이 금방 튀어나올 것 같아요. 남한에 와서 보니까 집사람 얼굴이 새까만 거예요. 하룻밤 사이에 다크서클이 얼굴을 온통 뒤덮은 거죠. 2006년 5월 24일 황해남도 옹진군을 출발해서 5월 25일 인천 옹진군으로 들어왔어요. 죽었다 다시 태어난 거죠.”

믿을 건 몸뚱어리 하나뿐

박명호씨 가족이 어느 날 갑자기 탈북을 결심한 건 아니었다. 가족들이 모두 합의하기까지 6~7년이 걸렸다. 부부뿐이었다면 북에서 계속 살았을 테지만, 두 아들의 미래를 생각해 더 늦기 전에 일생일대의 결심을 했다고 한다.

“썩고 병든 자본주의 사회, 치열한 경쟁, 오직 돈밖에 모르는 세상. 남조선 하면 그렇게 배웠어요. 그러면 가서 뭐 해 먹고 살 것인가. 이것저것 하다 안 되면 머구리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죠.”

17살에 입대해 20년 동안 한 군생활에서 배워 나온 게 머구리 기술이었다. 결국 그는 예상대로 대한민국 최북단 항구까지 와서 머구리 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배까지 사서 안정적으로 일하게 되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남쪽 사람들은 그의 가족들을 처음엔 측은하게 여기고 동정했지만, “자기 사업을 하면서 치고 올라가니 어느 순간부터 제어하려고 했다”고 한다. “탈북자를 노동력으로써만 부리려 하지, 치고 올라오는 걸 허용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그는 말했다.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재력, 지력, 권력, 인력…. 우린 아무것도 없다고. 체력밖에. 그마저 잃으면 전혀 우린 해볼 게 없는 거지. 의지할 데도 없고.”

박명호씨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낮 1시까지 조업 활동을 한다. 점심을 먹은 뒤 동네를 뛰고 체조를 하며 운동하다 보면 하루가 간다. 그가 믿을 건 몸뚱어리밖에 없기에, 좀처럼 운동을 거르는 법이 없다. 또 몸에 좋다는 건 닥치는 대로 먹는다.

<님아…> 진모영 감독의 신작

박명호씨와 그 가족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올드마린보이>는 진모영 감독의 신작이다. 진모영 감독의 전작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다. 98살 할아버지와 89살 할머니의 로맨스를 아름답고도 짠하게 담아내 480만 관객을 모은 화제작이다. 진모영 감독은 <님아…> 후반 작업이 한창이던 2013년 11월, 잠시 머리를 식히고자 통영행 기차에 올랐다가 우연히 여행 잡지에서 머구리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이후 기사 주인공을 비롯해 머구리를 수소문하던 중 박명호씨를 만나게 됐다.

몇 차례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었던 박명호씨는 처음에는 시큰둥해했다. ‘남한에서 성공한 걸로 선전하기 좋은 북한사람’으로만 다뤄지는 것 같아 내켜하지 않았다. 진모영 감독은 “진짜 하고 싶은 거친 이야기를 대담하게 하자”고 설득했고, 박명호씨는 결국 받아들였다.

촬영하는 데만 꼬박 3년이 걸렸다. 시간이 극히 제한된 수중촬영 때문이었다. 원하는 장면을 얻기 위해 한없이 기다리는 건 물론, 추우면 추운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자연과의 사투를 벌였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물은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아름답다. 머구리가 대왕문어를 낚아채고 해수면으로 상승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춤사위를 보는 듯하다. 영화음악 창작팀 ‘보이트-캄프’가 만든 음악은 영상과 어우러져 감동을 끌어올린다.

영화의 톤은 시종일관 밝고 유쾌하다. <님아…>에서 아름다운 노부부를 보며 미소지었던 것처럼 긍정의 에너지로 살아가는 네 가족의 모습에 영화 보는 내내 입꼬리를 올리게 된다.

꿈을 품은 올드 마린보이

<올드마린보이>에서 박명호씨는 북한 체제를 비판하거나 남한 사회를 찬양하지 않는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그에게는 가족과 함께 먹고 살아야 하는 삶의 터전이다. 죽거나 잠수병에 걸려 장애인이 되는 주변의 머구리들을 볼 때마다 그는 두렵다. 그래도 바다에 나가기 싫을 때면 ‘지금 안 나가면 내일 먹을 쌀이 없다’고 생각하며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스스로를 내몬다.

“잠수 일은 지금도 두려워요. 하지만 안 하고 싶다고 피할 수는 없어요. 불안하니까 계속 일만 하는 거죠. 지금도 북한을 넘어오던 그날 밤을 생각하면 잊혀지지 않거든요. 그런데 지금도 그날하고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우리는 여전히 남한에서 불안하고, 나는 아직도 늘 위험하고….”

그의 고향은 함경북도 항구도시 청진이다. 그가 소년이었을 때 놀던 맑은 고향 바다에서 잠수 한번 하는 게 그의 소원이다. “더 늦기 전에 갈 수 있으려나?” 꿈을 가슴에 품은 채 50살 ‘올드’ 마린보이는 오늘도 바다로 나간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서정민

<올드마린보이> 메인 예고편
올드마린보이

감독 진모영

출연 박명호, 김순희, 박철준, 박철훈

개봉 2017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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