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왠지 쓸쓸하고 헛헛해지는 건 다 비슷한가 보다. '가을을 탄다'는 의미의 숙어가 일본어에도, 영어에도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무작정 신나는, 아니면 무조건 펑펑 우는 영화보다 여운을 남기는 영화들이 생각나는 것도 이 '가을' 때문인지 모르겠다. 미국 영화 전문 웹사이트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Taste of Cinema)에서 선정한 '21세기 가장 감성적인 영화'를 소개하는 것도 가을을 타고 있는 영화 팬들에게 작은 위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팻걸>

감독 카트린느 브레야
출연 아나이스 르부, 록산느 메스퀴다, 리베로 디 리엔조
제작연도 2000 상영시간 86분
 
<팻걸>은 두 자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언니는 미인이고 동생은 뚱뚱하다. 이 자매를 통해 영화는 두 사람의 성적 욕망과 역동적인 관계를 그린다. 영화는 연인 관계와 모녀 관계, 자매 관계의 감정선을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때때로 두 자매의 대화나 관계가 사랑과 증오를 오가기 때문에 비현실적으로 보이나 자매의 복잡한 관계를 구체화하고 극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두 사람은 혼란스러운 과정을 겪으며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그들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이게 이 영화의 아름다움이다.

팻 걸

감독 카트린느 브레야

출연 아나이스 르부, 록산느 메스퀴다, 리베로 디 리엔조, 아시니 칸지안, 로맹 구필

개봉 2000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상세보기

<아무도 모른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야기라 유야, 키타우라 아유, 키무라 히에이
제작연도 2004 상영시간 140분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린 빈곤과 포기의 드라마는 따듯하고 진취적이며 기발하면서도 세심하다. 엄마가 떠나고 남겨진 네 명의 의붓남매. 그중 장남인 아키라(야기라 유야)는 부모의 세계에 뛰어든다. 빈곤과 사라진 부모의 자리, 그리고 청소년기의 사랑을 <아무도 모른다>는 아키라의 눈으로 보는 '뒷모습'들로 그린다. 청소년기의 끝자락에서, 그 놀라움을 만끽할 새도 없이 현실의 공포에 눈을 뜬 아이는 관객들에게 뼈아픈 기억이 된다. 성장기 소년을 다룬 현실적인 영화는 독창적일 게 없지만, <아무도 모른다>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세계가 있다. 감독은 <아무도 모른다>의 프레임에 움직임과 배경의 흐름으로 깊이를 더해 이 세계가 관객들과 함께 존재한다고 믿게끔 만든다.

아무도 모른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야기라 유야, 키타우라 아유, 키무라 히에이

개봉 2004 일본

상세보기

<비우티풀>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출연 하비에르 바르뎀, 마리셀 알바레즈 
제작연도 2010 상영시간 148분

<비우티풀>은 시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다. 하비에르 바르뎀은 놀라운 연기로 그가 다른 영화에서 연기했던 '악역'들을 잊게 한다. 시끌벅적한 소란 속에서도 알아챌 만큼 뒤섞이지 않는 영화의 사운드 또한 압도적이다. 욱스발(하비에르 바르뎀)이 겪는 죄책감과 강제적인 공감 등의 경험은 속삭이는 듯한 영화의 사운드로 승화된다. 구스타보 산타올라야 음악감독의 스코어도 영화의 본질에 닿아있다. 죽음에 대한 테마는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했지만 <비우티풀>은 한 사람이 자신의 삶 전체를 돌아보는 것과 같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했던 작은 행동들이 서서히 그의 삶을 악화시키는 나비효과로 다가오기도 한다. 영화는 명확하게 자신의 테마를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이냐리투 감독의 '최악'의 작품으로 <비우티풀>을 꼽는다. 느린 속도감, 몇몇 멜로드라마 풍의 장면 등 단점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영화는 아름다운 영화다.

비우티풀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출연 하비에르 바르뎀, 마리셀 알바레즈, 에두아르드 페르난데즈, 디아리아투 다프, 쳉 태 쉔, 뤄진

개봉 2010 스페인, 멕시코

상세보기

<마미>

감독 자비에 돌란
출연 앤 도벌, 안토니 올리버 피론, 쉬잔느 클레먼트
제작연도 2014 상영시간 138분

자비에 돌란은 6편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5번째 영화 <마미>는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하나인 장 뤽 고다르의 신작과 함께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칸 영화제 역시 다른 영화제처럼 함량 미달 영화에 상을 준다는 비판도 있지만 <마미>는 다르다. 비주류인 1:1의 화면비가 가장 눈에 띄지만, 영화가 내포한 문제아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란 주제는 가장 도전적이면서 끊임없이 질문한다. 엄마와 아들, 그리고 이웃집 여성은 모두 결점이 있지만 그들의 유대감이 진심 어린 이야기로 다가온다. 미사여구가 없어도 이 영화의 화면비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고, 인물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게 도와준다. <마미>는 모성애를 시각화시키고 감정적인 영화 경험으로 풀어낸 연애편지와 같다.

마미

감독 자비에 돌란

출연 앤 도벌, 안토니 올리버 피론, 수잔 클레망

개봉 2014 프랑스, 캐나다

상세보기

<피아니스트>

감독 로만 폴란스키
출연 애드리언 브로디, 토마스 크레취만
제작연도 2002 상영시간 148분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는 늘 가슴 아프다. 사실 이 소재는 정서적으로 거의 '하이패스'에 가깝다.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소피의 선택>처럼 비평적으로 찬사 받은 영화들도 있다. <피아니스트> 또한 그렇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행적이 논란인 건 맞지만 그의 작품은 찬사를 보낼 만하다. 파이니스트 스필만(애드리언 브로디)의 이야기는 전쟁의 시작부터 종전까지 이어진다. 영화는 내내 개인의 시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스필만은 전쟁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비극을 다 겪지만 영화는 결코 과장하거나 교훈적으로 풀어내지 않는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대화가 줄어드는 것도, 애드리언 브로디 최고의 연기가 펼쳐지는 것도 이 영화의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피아니스트>는 무시무시한 전쟁 서사시이다.

피아니스트

감독 로만 폴란스키

출연 애드리언 브로디, 토마스 크레취만

개봉 2002 프랑스, 독일, 폴란드, 영국, 네덜란드

상세보기

<더 헌트>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출연 매즈 미켈슨, 토머스 보 라센, 수시 울드
제작연도 2012 상영시간 115분

<더 헌트>는 이미 한니발 렉터를 포함해 사악한 배역을 맡았던 매즈 미켈슨을 유치원 교사 루카스로 출연시켜, 설득력 있는 영화로 거듭난다. 군중심리를 겨냥한 가장 섬뜩한 이야기인 <더 헌트>는 악의 없이 순진무구한 아이의 거짓말로 성적 학대 가해자가 된 루카스가 받는 비난을 담는다. 루카스와 주변 인물들의 친밀한 관계를 보여주고 이후 루카스는 비난 속에 철저히 망가진다. 젠틀했던 한 남자가 감정적인 학대 속에서 무너지는 과정은 호러 영화 못지않고, 이런 일이 얼마나 우스울 정도로 쉬운지, 현실적으로 어떤 연쇄작용을 일으키는지를 보여준다.

더 헌트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출연 매즈 미켈슨, 토머스 보 라센, 수시 울드, 아니카 베데르코프

개봉 2012 덴마크

상세보기

<인사이드 르윈>

감독 조엘 코엔, 에단 코엔
출연 오스카 아이삭, 캐리 멀리건, 저스틴 팀버레이크
제작연도 2013 상영시간 105분

<위대한 라보스키>와 <파고>를 만든 코엔 형제는 유머 감각과 통찰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인사이드 르윈>에서 아주 담담하게 실패한 포크 가수를 그려내는 걸 보면 놀랍고도 즐겁다. 영화 자체는 즐거운 놀라움의 연속이지만, 1960년대 음악계의 획기적인 변화 속에서 부단히 애쓰는 르윈 데이비스의 이야기에 즐거운 구석은 없다. 르윈은 경제적 어려움, 열등감, 이기적인 성격에 시달리고 있고 이 영화는 그의 내면과 외면을 모두 그린다. 무례하고 이기적인 르윈이지만 그의 노래에는 울음이 섞여있고, 관객들은 그의 상황에 공감하고 우리 내면에 있는 '르윈'을 느끼게 된다. 이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객들은 코엔 형제의 다양한 재능을 다시 느낄게 될 것이다.

인사이드 르윈

감독 조엘 코엔, 에단 코엔

출연 캐리 멀리건, 저스틴 팀버레이크, 오스카 아이삭, 존 굿맨

개봉 2013 미국, 프랑스

상세보기

<어둠 속의 댄서>

감독 라스 폰 트리에
출연 비요크, 까뜨린느 드뇌브, 데이빗 모즈
제작연도 2000 상영시간 140분

'전위적인 영화인'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는 뮤지컬의 낙관론적 특징을 빼고 비관론적 시선을 취한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와 <백치들>에 이어 '나쁜 세상에 억눌린 좋은 여성'이라는 주제의 '골든 하트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어둠 속의 댄서>는 비요크가 연기한 셀마를 뒤쫓는다. 점프컷 등을 사용한 편집 스타일은 감독이 원하는 걸 강조하면서 관객들을 우울한 리듬으로 밀어 넣는다. <어둠 속의 댄서>는 여전히 우울한 뮤지컬이지만 비요크가 노래하는 마지막 곡은 슬픔을 이기고 다가올 희망을 기대하게 하며 삶의 작은 부분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의 중요한 의미를 담는다. 

어둠 속의 댄서

감독 라스 폰 트리에

출연 비요크, 까뜨린느 드뇌브, 데이빗 모스, 피터 스토메어, 조엘 그레이, 카라 세이무어, 블라디카 코스틱, 쟝 마르 바, 빈센트 패터슨, 시옵한 폴론, 젤리코 이바넥, 우도 키에르

개봉 2000 덴마크,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미국, 영국, 핀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랜드

상세보기

<파수꾼>

감독 윤성현
출연 이제훈, 서준영, 박정민 
제작연도 2010 상영시간 117분

리스트를 선정한 필자는 <파수꾼>을 두고 세 절친의 관계를 묘사한 한국 독립영화라며 '리스트 중 가장 덜 알려진 영화'라고 언급했다. 기술적으론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이야기는 정말 놀랍다. 자살과 괴롭힘을 주제로 구성한 이 성장 영화는 파격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제시하고 자신의 관점을 관철한다. 멜로드라마 같은 순간도 있지만 확실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을 중심으로 십대들의 균열과 약점을 그린다. 인물들을 통해 우정의 개념을 고찰하고 사회 속 이기적인 태도와 서로를 표면적으로만 보는 시선들을 탐구한다. 이 영화를 본 후 관객이 '집단 따돌림'에 대한 생각을 바꾼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파수꾼

감독 윤성현

출연 이제훈, 서준영, 박정민, 조성하

개봉 2010 대한민국

상세보기

<셰임>

감독 스티브 맥퀸
출연 마이클 패스벤더, 캐리 멀리건, 제임스 뱃지 데일
제작연도 2011 상영시간 101분

<셰임>은 '사랑을 두려워하되 성에 중독된 인물'을 심도 있게 그린 명작이다. 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한 브랜든의 연대기는 외설적인 요소에 중독된 삶이 주변 인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에로틱 드라마들이 섹스란 요소를 지나치게 설명해 의도와 달리 외설적인 영화가 되기도 하는데 <셰임>은 에로틱하면서도 깊이 있는 감정 묘사를 놓치지 않는다. 브랜든은 자신 내면의 균열을 알고 스스로를 바꾸고 싶어 하지만 많은 중독자들이 그렇듯, 간단하게 바꾸지 못한다. 마이클 패스벤더의 연기는 그 균열을 드러내 브랜든을 숭고한 인물로 승화한다. 이렇게 복잡한 캐릭터를, 심오한 감정을 스크린에 불러낸다는 것만으로도 고작 3편(<헝거>, <셰임>, <노예 12년>)만으로 압도적인 평가를 받은 스티브 맥퀸 감독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다.

셰임

감독 스티브 맥퀸

출연 마이클 패스벤더, 캐리 멀리건, 제임스 뱃지 데일

개봉 2011 영국

상세보기

씨네플레이 에디터 성찬얼

재밌으셨나요? 아래 배너를 눌러 네이버영화를 설정하면 영화 이야기, 시사회 이벤트 등이 가득한 손바닥 영화 매거진을 구독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