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그날, 나는 이른 출근길 원효대교를 건너 용산을 지나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경고음이 철길 너머에서 들려왔다. 라디오로 들리는 현장 소식은 참혹했다. 철거에 항의하기 위해 올라간 건물 옥상의 망루가 불탔고, 거기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9년의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재생되고 평가되는 이 사건을 둘러싼 내 기억은 전부 온당한 것일까? 라디오를 통해 현장의 소식을 들었는지, 운전하며 망루의 연기를 본 것인지. 소란스러운 소방차의 소리를 들었던 것인지. 그날의 몇몇 장면은 구체적이지 않다. 오직 분명한 것은 그날 그곳을 지났다는 사실이다.
애써 잊고 싶은 기억. 하지만, 이런 기억들은 더욱 선명해진다.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만큼 떠올리는 시간도 많기 때문일 거다. 2009년 1월 20일 남일당 건물 망루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이 기억은 두려움, 죄책감, 분노, 원망으로 여전히 또렷하다. 영화 <공동정범>(감독 이혁상, 김일란)은 농성을 벌이다 망루 화재의 주범으로 구속·기소 되어 실형을 살고 온 철거민 이충연, 김주환, 천주석, 지석준, 김창수의 기억을 통해 그날의 진실을 규명하려 시도한다.
용사참사를 다룬 전작 <두 개의 문>(2011)이 경찰 자료를 통해 그들의 시선에서 사건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봤다면, 그 속편인 <공동정범>은 그날 현장에서 살아남았지만 가해자로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담아내는 데 힘쓴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공동정범’은, 형법 제30조에 의거해 2인 이상이 공동하여 죄를 범한 때에 각자를 그 죄의 정범으로 처벌한다는 것을 뜻한다. 당시 검찰은 명확한 증거가 없었음에도 화재의 원인을 망루에 끝까지 남았던 모든 철거민에게 돌려 ‘공동정범’으로 기소했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이들은 공동정범으로 몰려 처벌받았다.
영화는 2013년 1월 이명박 정부 말기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철거민 5인의 삶을 따라간다. 아픈 기억을 시간이라는 덮개로 덮으며 마음을 재건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당시의 일을 떠올리는 그들의 말과 표정은 여전히 2009년의 망루 속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못했다. 아내가 아픈 것도 알지 못한 후회와 분노로 아파하고, 여전히 경찰에 쫓기거나 불 속에서 헤매는 꿈을 꾸기도 한다. 망루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구하지 못했고, 나 때문에 다른 이들이 죽은 것은 아닐까 자책한다. 각자의 삶을 지배하는 부정적인 기억은 이들을 더욱 옥죄어온다.
몸과 마음이 무너져내린 이들은 분노의 대상을 찾는다. 이야기가 쌓여갈수록 공동정범으로 묶인 이들이 서로 원망하고 있음을 알고 입장의 차이도 확인한다. 투쟁을 주도한 용산 철거민과 연대 투쟁에 나선 타 지역 철거민은 누가 더 고통받았는지로 서로를 원망하고, 함께 아픔을 보듬고 살자는 쪽과 용산참사의 책임자인 김석기 퇴진 투쟁에 더욱 힘을 쏟자는 쪽으로 갈라선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반목하는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선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그들이 피해자라는 어떤 전형을 그려놓고 거기에 맞게 행동하길 강요해서는 안 된다.
출소 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그들은 그날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당시의 기억을 비교한다. 오래된 시간과 애써 꺼내고 싶지 않았던 마음들이 모여 기억은 조금씩 희미해지고 또 어떤 것은 덧입혀졌다. 그리고, 당시를 기록한 영상들이 자신들의 기억과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서로에 대한 원망의 근거가 된 기억들은 내가 쥐고 있는 진실의 한 부분에 불과함을 깨닫는 순간이다. 영화는 공감과 이해로 공동체가 회복할 수 있음을 말한다.
<공동정범>은 용산참사 피해자들의 마음을 함께 관통하면서도 보편적인 인간성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한다. 피해자는 순결해야 한다는 시선을 덧씌워 그들의 목소리를 막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용산참사는 권력과 자본이 함께 만들어낸 거대한 욕망이 힘없는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이다. 사건 발생 후 9년이 흐른 지금도 명백한 진상 규명과 과잉진압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그 사건으로 인한 피해는 오로지 망루에서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그들이 발을 딛은 지금이 여전히 망루 속의 그날과 같다면, 오늘 당신과 나는 그날의 진실을 아직 규명하지 못한 ‘공동정범’이다.
- 공동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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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혁상, 김일란
출연 이충연, 김주환, 김창수, 천주석, 지석준
개봉 2016 대한민국
씨네플레이 에디터 심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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