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 장르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2010년도 초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급격히 확장되며 일반 대중에게도 친숙도를 높여 가고 있었던 때만 해도 '얼마 못 갈 유행이다', '조만간 인기가 시들해질 것'이라는 비관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현재로선 그럴 리 없을 것 같다. 마블 영화의 가장 큰 성공 요소는 일반 관객이 봐도 납득할 만할 정도로 현실적이면서도 만화책 독자들이 인정할 수 있도록 만화책 캐릭터들의 특성을 충분히 살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만화책의 현실화'가 대형 스크린에서 이루어지기 전인 1990년대 중반에 지면에서 이러한 시도를 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이 있었다. 바로 <마블스> 미니시리즈다.
4부작 미니시리즈로 기획된 <마블스>는 1994년 초 매월 한 권씩 출간되었다. 글은 <킹덤 컴>, <슈퍼맨: 시크릿 아이덴티티> 등으로 유명한 커트 뷰식, 그림은 만화 팬들뿐만 아니라 미술에 관심 많은 사람도 알 만할 코믹북 아티스트 알렉스 로스가 담당하였다. 판형은 알렉스 로스의 유화 색채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당시 통상적이었던 신문지와 유사한 종이 대신 고급 잡지 등에서 쓰던 질 좋은 종이를 사용하였고, 표지는 하드보드지와 아세테이트 필름의 이중 구조로 이뤄진, 당시로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화려한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
시리즈의 백미는 역시 알렉스 로스의 그림이다. 알렉스 로스는 이 미니시리즈로 인해 바로 만화계의 독보적인 슈퍼스타 자리에 올라버렸으니 <마블스>는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작품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책을 읽으며 어벤저스 캐릭터들을 따라 그렸던 그는 이미 10대 초반에 뛰어난 데생 능력을 보이며 미술학도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다. 실제로 DC 코믹스에서 출간된 그의 회고집 <미솔로지>를 보면 이미 12살 무렵에는 상업 아티스트로 활동해도 될 정도의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블 코믹스의 팬들은 <마블스>의 어떤 점에 열광했을까? <마블스>는 '슈퍼히어로가 지면이 아닌 현실 세계에 실존한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시작되는 스토리이다. 슈퍼히어로의 눈이 아닌, 철저히 일반인의 1인칭 시점에서 모든 스토리 전개가 이루어진다. 주인공은 마블 유니버스 내에 존재하는 가상 신문사 '데일리 뷰글'에 근무하는 기자 필 셸던으로, <마블스> 1권은 그의 1930년대 젊은 시절을, 2~3권은 1960년대 초중반을, 그리고 4권은 1970년대 초반을 다룬다. 시대를 나눠놓은 것은 미국 만화사의 전성기였던 '골든 에이지'(1930년대)부터 '실버 에이지'(1960년대)까지를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유년기에 슈퍼히어로나 거대 로봇이 나오는 만화책을 보면서 현실 세계에서 슈퍼히어로와 로봇이 걸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영화 <퍼시픽 림>도 이러한 판타지를 잘 실현한 영화인데 빌딩 크기의 로봇들을 사람의 시점에서 올려다보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마블스> 2권에도 필 셸던이 자이언트 맨을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서 사진을 찍는 장면이 나오는데, 옆에 있던 동료가 믿을 수 없는 장관이라며 나중에 이 사진이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재미있게도, 마블 편집부는 그 사진을 <마블스> 단행본 표지에 쓰기로 결정했고, 1994년 발간된 단행본 초반 표지에는 필 셸던이 들고 있는 광각 렌즈에 자이언트 맨이 피사체로 잡힌 이미지가 사용되었다.
알렉스 로스는 실제로 가족과 동료를 피사체로 사용해서 캐릭터 데생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실물감과 생동감이 넘쳐난다. 2000년대 후반 <아이언 맨>이 등장하기 이전, 만화 팬들은 실제로 슈퍼히어로들이 존재한다면 펼쳐질 광경을 두 뛰어난 작가의 역작을 통해 먼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원서 그래픽노블 번역가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