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수많은 영화가 있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이들을 위해 쓴다. ‘씨네플레이’는 ‘씨플 재개봉관’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봉하면 당장 보러 갈 영화, 실제로 재개봉하는 영화들을 소개해왔다. 이번에 만나볼 영화는 20년 전, 1998년 3월에 개봉한 <LA 컨피덴셜>이다.

LA 컨피덴셜
감독 커티스 핸슨 출연 킴 베이싱어, 케빈 스페이시, 러셀 크로우, 가이 피어스, 제임스 크롬웰 개봉 1998년 3월 7일 상영시간 136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LA 컨피덴셜

감독 커티스 핸슨

출연 케빈 스페이시, 러셀 크로우, 가이 피어스, 제임스 크롬웰, 데이빗 스트라탄, 킴 베이싱어, 대니 드비토

개봉 199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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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타이타닉>이 지배했다.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한 11개의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타이타닉> 천하에서 상대적으로 빛을 보지 못한 영화들이 있다. 하나는 씨네플레이가 이미 이 꼭지를 통해 소개한 바 있는 <굿 윌 헌팅>이다. 이제 나머지 하나 <LA 컨피덴셜>을 만나볼 시간이다.

고전 누아르의 귀환
누아르. <LA 컨피덴셜>을 말할 때 누아르라는 키워드가 필요하다. <LA 컨피덴셜>에는 1950년대 LA를 배경으로 세 명의 형사와 한 명의 고급 콜걸이 등장한다. 따스한 햇살과 눈부신 해변이 있는 ‘천사들의 도시’는 여기 없다. <라라랜드>의 LA는 동화 속 도시였던 걸까. <LA 컨피덴셜> 속 LA는 어둡고 우울한 도시다. 범죄 조직과 부패한 경찰, 음모와 배신, 마약과 매춘으로 얼룩진 도시 LA를 담아낸 <LA 컨피덴셜>은 1940~50년대에 붐이 일었던 할리우드 고전 누아르의 맥을 잇는 작품이다.
 

에드 엑슬리 역의 가이 피어스.

누아르의 혈통은 원작에서 나왔다. <LA 컨피덴셜>은 제임스 엘로이의 ‘LA 4부작’ 가운데 세 번째 작품이 원작이다. 나머지 세 작품은 ‘블랙 달리아’, ‘빅 노웨어’, ‘화이트 재즈’다. 2006년 <블랙 달리아>가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연출했고 평가는 최악이었다.

블랙 달리아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

출연 조쉬 하트넷, 스칼렛 요한슨, 아론 에크하트, 힐러리 스웽크

개봉 2006 독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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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컨피덴셜

저자 제임스 엘로이

출판 알에이치코리아

발매 201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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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색의 힘
제임스 엘로이의 원작은 등장인물도 많고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플롯도 복잡했다. 영화화가 힘들 거라고 생각됐지만 커티스 핸슨 감독과 각본가 브라이언 헬겔랜드는 모범적인 각색을 선보였다. 많은 등장인물을 생략하고 세 형사에게 집중했다. 커티스 핸슨의 이 전략은 케빈 스페이시, 가이 피어스, 러셀 크로우라는 배우들을 만나면서 시너지를 냈다. 브라이언 헬겔랜드는 영화의 핵심적인 내용이 되는 ‘롤로 토마시’라는 이름을 창조한 인물이다. 이 장치는 원작 소설에는 없다. 두 사람의 노력으로 <타이타닉>이 오스카 트로피를 쓸어갈 때 <LA 컨피덴셜>은 각색상을 챙길 수 있었다. 참고로 <LA 컨피덴셜>은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 촬영상을 비롯한 총 9개 부문의 오스카 후보에 올랐다.
 

버드 화이트 역의 러셀 크로우.

<LA 컨피덴셜>은 운이 없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만약 <타이타닉>이 없었다면 지금보다는 더 많이 알려지고 더 많이 회자되는 영화가 됐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LA 컨피덴셜>은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영화다. LA, 뉴욕, 보스턴, 시카고 등 각 지역은 물론이고 전미 비평가협회에서도 작품상, 감독상 등을 휩쓸었다. 특히 <LA 컨피덴셜>은 누아르 장르의 귀환이라는 측면에서 평론가들을 사로잡은 것 같다.
 

잭 빈세니스 역의 케빈 스페이시.

<LA 컨피덴셜>의 포스터를 보자. 포스터를 보면 <LA 컨피덴셜>이 품고 있는 장르적 야망이 보인다. 누구라도 금발의 배우 킴 베이싱어에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그녀는 고급 콜걸 린 브랙큰을 연기했다. 린은 누아르의 필수요소인 팜므파탈 캐릭터다.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타락한 경찰 잭 빈세니스 역의 케빈 스페이시다. 그 뒤로 가이 피어스가 보인다. 그는 정의로운 신참 형사 에드 엑슬리 역을 맡았다. 맨 뒤에 아주 작게 등장한 러셀 크로우는 주먹이 앞서는 정의파 형사 버드 화이트를 연기했다. 포스터만 놓고 보면 분명 주인공은 킴 베이싱어여야 한다.
 

린 브랙큰 역의 킴 베이싱어.

호주에서 온 LA의 형사들?
킴 베이싱어는 <LA 컨피덴셜>의 중요한 인물이지만 관객 입장에서 감정선을 따라가게 되는 주인공은 가이 피어스와 러셀 크로우라고 봐야 한다. 영화의 홍보를 위해서는 킴 베이싱어를 맨 앞에, <유주얼 서스펙트>로 출연진 가운데 그나마 유명했던 케빈 스페이시를 그 다음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가이 피어스와 러셀 크로우는 호주에 온 지 얼마 안 된 신인 배우들이었다. 세 번의 거절 끝에 결국 출연을 결심한 킴 베이싱어는 <LA 컨피덴셜>로 여우조연상을 차지한 이후 점점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에 반해 케빈 스페이시, 러셀 크로우, 가이 피어스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이제서야 언급하지만 성추행 논란의 케빈 스페이시는 2018년 현재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가 나온 영화들을 다시 보는 게 다소 불편하기도 하지만 <LA 컨피덴셜>이 수작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20년 전 유명하지 않았던 신인 가이 피어스와 러셀 크로우, 두 사람은 <LA 컨피덴셜>에서 흑과 백의 조합을 만들어낸다. 정의로운 형사와 과격한 형사의 묘한 대결의 분위기. 두 사람 모두 팜므파탈 린의 매력에 빠지기도 한다. <LA 컨피덴셜>은 이 상반된 두 사람과 그 사이, 회색으로 존재하는 잭이 결국 정의의 편에 서는 이야기다.

험프리 보가트의 후예들
카페에서 벌어진 강도 살인 사건이 시작이었다. 일곱 명의 희생자 가운데 전직 경찰 스탠스랜드도 있었다. 에드와 버드는 각각 수사에 나선다. 에드는 단순 강도 사건이라고 방향을 잡고 흑인 3인조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체포 도중 에드는 그들을 정당방위로 살해한다. 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에드는 훈장을 받는다. 한편, 버드는 이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보고 있었다. 사건의 다른 희생자를 조사하던 중 영화배우와 닮은 콜걸 린을 만나게 된다. 지금부터 이야기는 조금씩 복잡해진다. 에드가 카페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잭과 함께 에드는 사건을 다시 조사하기 시작하고, 버드와 마주치기 시작한다. 그들은 점점 사건의 본질에 다가선다. 카페 사건은 단순한 강도 살인 사건이 아니었다. 그 뒤에 일어난 일련의 살인사건 역시 모두 LA 암흑가를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야망이 만들어낸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 에드와 버드는 LA 외곽의 버려진 모텔에서 만난다. 두 사람은 곧 자신들이 함정에 빠진 걸 알게 된다. 두 사람은 자리를 피하려고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불빛이 다가온다. 두 사람은 권총을 빼든다. 컴컴한 밤. 헤드라이트 불빛, 두 형사, 총격전, 드디어 드러난 진실. 이보다 완벽한 누아르가 또 있을까.

1950년대 올드카를 타고 다니는 양복 입은 형사들이 등장하는 <LA 컨피덴셜>은 복잡하고 정교한 플롯의 영화이면서 동시에 감성의 영화다. 물론 이 감성은 누아르의 정서다. 중절모와 트렌치 코트의 탐정과 같은 낭만은 없지만 <LA 컨피덴셜>의 정서는 분명 과거 누아르의 황금기를 향해 있다. 가이 피어스, 러셀 크로우, 케빈 스페이시까지 그들은 모두 <명탐정 필립>(The Big Sleep)에 출연한 험프리 보가트의 후예들이다.

베로니카 레이크는 하드보일드 소설의 대표 작가인 대실 해밋의 소설을 각색한 <유리열쇠>에 출연했다.

덧, 킴 베이싱어가 연기한 린은 <LA 컨피덴셜>에서 1940년대 필름 누아르의 요정이라 불린 베로니카 레이크와 닮았다고 설정돼 있다. 베로니카 레이크는 <블루 달리아>(1946), <백주의 탈출>(1942), <설리반의 여행>(1941) 등에 출연했다. <LA 컨피덴셜>은 미국 CBS에서 TV 시리즈로 제작 중이다. 2018년 방영 예정이다. 월터 고긴스가 잭, 마크 웨버가 버드, 브라이언 J. 스미스가 에드 역을 맡았다. 커티스 핸슨 감독은 2016년 별세했다. <LA 컨피덴셜>을 제외한 그의 대표작은 <요람을 흔드는 손>, <8마일> 등이 있다.
개인적인 바람 한 가지. <라라랜드>가 과거 할리우드의 고전 뮤지컬 영화를 현대적으로 재연했듯이 LA를 배경으로 한 클래식한 느낌의 누아르 영화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