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광풍이다. 엄청난 이슈를 몰고 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이하 <인피니티 워>)는 개봉 6일 만에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사전 예매율은 96.4%, 사전 예매량만 115만 명을 기록하며, 기존의 1위였던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세운 95.9%, 93만 명이란 수치를 훌쩍 넘겼다. 개봉 첫날 역대 최고 오프닝인 98만 명이 관람했으며, 결국 하루 최다관객수 133만 명을 찍으며 신기록을 세웠고, 최고 예매율도 97%에 달했다. 스크린 수는 2550개를 넘겼고, 상영점유율은 무려 76.6%였다. 독과점 논란이 일었던 <군함도>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였다. 물론 국내에서만 이런 광풍이 분 게 아니었다.

올해 첫 번째 마블 영화였던 <블랙 팬서>가 매출 6억 불을 돌파하며 분위기를 띄워준 북미에선 첫 주말 3일 개봉 수익만 무려 25천만 불을 넘긴 것으로 집계됐다. 기존 1위였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4700만 불을 넘어 새로운 흥행 신화를 작성한 셈이다. 이에 힘입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개봉 첫 주에 전 세계적으로 6억불을 넘긴(정확히는 64천만 불) 최초의 영화가 되었다. 기존 1위는 세계 최고의 영화시장이 된 중국과 동시 개봉해 54천만 불을 벌어들인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이었다. 하지만 이번의 세 번째 <어벤져스>는 아직 중국과 러시아에선 공개되지 않았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기록인지 더욱 실감나는 대목이다.
 

마블 스튜디오의 10년을
기념하는 <인피니티 워>

이 엄청난 흥행 돌풍에 이유가 있다면 <아이언 맨>을 시작으로 <블랙 팬서>까지 벌써 18편이나 만들어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서 떡밥처럼 등장했던 메인 빌런 타노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첫 영화이자 지금까지 나온 역대 캐릭터들(무려 23명의 슈퍼히어로들)이 한데 집결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전 우주에 흩어진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차지하려는 타노스에 맞서 마블의 영웅들이 힘을 모아 대항한다는 비교적 단순한 내용을 가졌지만, 화려한 볼거리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액션, 그리고 제각기 매력을 뽐내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놀라운 균형 감각을 통해 마블 프랜차이즈의 최정점에 이르는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마블 스튜디오의 10주년을 맞아 19번째로 만들어진 이 메인이벤트는 1991년 발표된 짐 스탈린의 <인피니티 건틀렛>과 조나단 힉맨의 <인피니티>를 원작 삼아 무려 32천만 불의 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쏟아 부어 완성됐다. 영화 전편이 아이맥스로 촬영된 최초의 상업영화이고, 촬영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어벤져스> 4편의 촬영이 이어졌다. 제작 내내 캐릭터들 중 누군가 죽는다는 소문이 퍼져 그 대상이 누가 될지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루소 형제 감독은 한데 모이기 어려운 엄청난 인지도의 스타들을 데리고, 자신과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때부터 함께 한 숙련된 스탭들과 함께 이 어려운 미션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었다. 단 음악만 예외였다.

<어벤져스>로 복귀하는 앨런 실베스트리
루소 형제

루소 형제는 지난 두 편의 <캡틴 아메리카> 영화에서 (한스 짐머 수하의 떠오르는 신예) 헨리 잭맨과 호흡을 맞췄지만, 인상 깊은 테마의 부재와 현악 오스티나토가 주가 되며 기시감을 불러오는 짐머레스크 스타일은 그리 만족스런 대답이 되지 못했다. 제작진도 <어벤져스>라는 대작 프로젝트를 수행하기에 그가 중량감이나 경험 면에서 다소 약하다고 판단한 듯 하다. 두 번째 <어벤져스> 영화였던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선 요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잠식하고 있는 브라이언 타일러와 히어로 음악의 장인 대니 엘프만까지 합류하며 규모의 음악을 선보이긴 했지만, 전작이 가진 독창적인 포스와 강렬한 존재감마저 채울 순 없었다. 결론은 단 하나. 1편의 작곡가를 다시 부르는 일이었다.

앨런 실베스트리

<퍼스트 어벤져><어벤져스>의 음악을 맡았던 앨런 실베스트리는 이렇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복귀했다. 앨런은 <인피니티 워>의 촬영이 시작되기도 전인 2016년 여름, 일찌감치 부터 제작진에게 <어벤져스> 3편과 4편 음악으로 낙점됐다. 한번 바뀐 작곡가를 다시 등용하지 않았던 마블의 전례에 비춰보면 이례적인 선택이자 확고한 신뢰의 발로였다. 그는 1980년대부터 다양한 장르의 할리우드 작품들에 기용되며 내공을 다져나가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심포닉 사운드로 이 장엄한 영웅들의 운명을 건 대전에 어울릴 법한 스코어를 직조해냈다. 전형적이라 할 만큼 앨런의 특징들이 명료하게 드러난 음악이었다. 하지만 고심도 많았다.

각 캐릭터들의 테마를
스코어에서 배제한 이유

앨런 실베스트리는 제작자인 케빈 파이기와 연출을 맡은 루소 형제와 처음 가진 회의에서 각 캐릭터들이 가진 고유의 테마들을 자신의 스코어에 포함시켜야 할지에 관해 논의가 오갔다고 밝혔다. 그간 이미 18편의 작품들이 제작되었고, 앞서 언급한 헨리 잭맨이나 브라이언 타일러, 대니 엘프만을 비롯해 라민 자와디나 루드비히 고란손, 크리스토퍼 벡, 마이클 지아치노, 타일러 베이츠, 크레이그 암스트롱, 패트릭 도일, 존 데브니, 대니 엘프만, 마크 마더스바우 등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작곡가들이 선보인 인상 깊은 각각의 주제부들이 있기에 이는 충분히 가장 먼저 고려될 접근법이었다.
 
게다가 앨런은 앞선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도 <고지라><킹콩>, <샤이닝>과 자신의 <빽 투 더 퓨쳐> 등의 테마들을 적절히 섞어가며 능청스럽고 노련하게 구사한 바 있기에, 충분히 좋은 결과물을 들려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시도가 영화의 집중력을 흩트린 채 더 산만해질 거라고 판단했고, 결국 기존의 <어벤져스> 테마만 중용하며 각 캐릭터 별 테마는 배제하게 되었다. 다만 대망의 최종 하이라이트가 될 와칸다의 무대를 위해 잠깐 고란손의 <블랙 팬서> 테마가 흐르고, 어벤져스에 처음 합류하게 될 가오갤 멤버들의 소개를 위해 흥겨운 60년대 올드팝인 스피너스의 ‘러 러버밴드 맨’(The Rubberband Man)이 환영사처럼 삽입되었다.

스피너스의 ‘러 러버밴드 맨’(The Rubberband Man)
타노스의, 타노스에 의한,
타노스를 위한 음악

슈퍼히어로 캐릭터의 테마를 배제한 결과 사운드트랙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바로 타노스의 그림자다. 앨런 실베스트리는 이 영화가 어벤져스가 아닌 타노스의 이야기라 봤고, 그의 서사를 만들어내는데 공력을 기울였다. 물론 도망자였던 캡틴 아메리카가 그림자 속에서 처음 등장할 때나 토르가 새로운 무기, 스톰 브레이커를 들고 참전할 때, 소름 돋게도 그 우렁찬 <어벤져스> 테마가 흘러나와 전율을 선사하지만 전체적으로 <인피니티 워>의 스코어는 영웅담과는 거리가 멀게 시종일관 어둡고 무겁기 그지없다. 타노스가 가진 권능과 고뇌, 내적 갈등에 이입해 그의 심연을 들여다보는데 집중한다. 나지막이 으르렁거리는 브라스와 혼이 신경을 거스르는 날카로운 스트링과 결합해 불길함과 불안함을 강조한다.

<어벤져스 테마 송>

압도적인 코러스와 장엄한 관현악이 휘몰아치는 스케일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타노스의 힘과 능력을 상징하며 짓누른다. (그러기에 잠깐 잠깐 들리는 <어벤져스> 테마가 갖는 힘은 역설적으로 더 커지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앨런이 완성한 이 스코어는 타노스를 위한 용비어천가이자 비가(悲歌)이고, 떠나간 영웅을 위한 송가(送歌)로서 아련한 감성마저 선사한다. 그래서 전편들처럼 시원스럽고 화끈한 스코어를 기대했다면 다소 많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제작진들의 판단과 앨런의 선택은 탁월했고, 지금까지 쌓아온 MCU의 장대한 여정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앨런 실베스트리 - 인피니티 워
엔드 게임으로 남은 <어벤져스> 4편

타노스와 함께 등장하는 빌런 블랙 오더를 위해 만들어낸 진군가도 앨런의 특징을 담아내는 데 손색이 없다. 이미 <프레데터><저지 드레드>, <이레이저>, <에이 특공대>, <.아이.-전쟁의 서막> 등을 통해 밀리터리 사운드를 강하게 부각시킨 바가 있는 만큼, 강렬하고 스릴 넘치는 액션 스코어는 박력 있고, 기교가 넘친다. 타노스가 가모라와 연관된 부분에서 드라마틱하게 울려 퍼지는 곡도 매우 인상적인 감상을 남긴다. 앨런의 음악은 캐릭터가 가진 얄팍한 동기나 사연마저도 그럴 듯하게 메꿔주는 보완재이자 대체재의 역할을 충실히 소화해낸다. 타노스의 시선으로 받아들였을 때 이 <인피니티 워>의 사운드트랙은 더 완벽해진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에겐 ‘엔드 게임’이 남아 있다. 아직 부제가 확정되지 않은 루소 형제의 <어벤져스> 4편은 201953일 돌아온다. 앨런 실베스트리는 이 마지막이 될 영웅담의 음악을 열심히 직조하고 있다. 타노스의 음악이었던 이번과 달리 4편의 음악은 온건히 어벤져스의 영웅들을 위한 찬가가 될 확률이 높다. 그러기에 이번 <인피니티 워>의 암울한 색채가 더 밝은 희망과 미래를 암시한 건지 모른다. 그가 마무리 지을 대서사시의 사운드트랙을 벌써부터 목 빼고 기다린다. <인피니티 워>의 사운드트랙은 두 종류로 발매된다. 1시간 정도의 연주 시간을 가진 일반판은 CD, 2시간 분량을 디럭스판은 음원으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감독 안소니 루소, 조 루소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조슈 브롤린, 마크 러팔로, 톰 히들스턴, 크리스 에반스, 크리스 헴스워스, 제레미 레너, 스칼렛 요한슨, 엘리자베스 올슨, 안소니 마키, 폴 러드, 기네스 팰트로, 폴 베타니, 돈 치들, 베네딕트 컴버배치, 톰 홀랜드, 크리스 프랫, 조 샐다나, 카렌 길런, 브래들리 쿠퍼, 빈 디젤, 폼 클레멘티에프, 데이브 바티스타, 세바스찬 스탠, 채드윅 보스만

개봉 201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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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