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사회자 케빈 하트 자진 하차
케빈 하트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래미, 슈퍼볼과 함께 한 해의 미국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행사다. 사회자는 행사의 권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위트있는 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코미디 배우가 맡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수상자들로부터 다양한 사회이슈가 언급되는 만큼, 사회자의 아이덴티티 자체가 시상식의 방향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렇게 민감한 자리가 된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자 중 상징적인 인물은 누가 있었는지 돌아봤다.
 
오는 2019224일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사회자는 배우 케빈 하트로 정해졌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알리며 큰 영광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쥬만지 : 새로운 세계>(2017), <업사이드>(2017) 등에서 주연을 맡았던 그는 데뷔 초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주목 받았다. 빈민가의 흑인인데다가 키가 작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희화하면서도 결국은 사회 통념을 깨고 성장한 스토리는 많은 감동을 주었다. 다양한 사회할동도 함께 하고 있는 그는 2015년엔 타임지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예술가 100에 들기도 했다.
 
그러나 10년 전 트위터에 남긴 동성애자 혐오 발언이 문제가 되면서 그는 자진하차하게 되었다. 케빈 하트는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며, 예술가들이 축하받는 자리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내용을 트위터에 올려 하차를 공식화했다.

아카데미의 얼굴, 빌리 크리스탈
빌리 크리스탈

아카데미 사회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가 빌리 크리스탈이다. 유쾌하면서도 우아한 진행이 일품인 그는 지금까지 총 9번이나 사회를 맡았다. 가장 최근이었던 2012년 제 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뮤지컬 형식으로 후보작들을 소개하는 등 새로운 시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카데미 시상식의 사회자는 19번이나 사회를 맡은 밥 호프, 5번 진행 했던 조니 카슨 등, 중후한 백인 남성 배우의 전유물로 여겨졌었다. 

다양성을 대변했던 사회자들
우피 골드버그

비록 케빈 하트는 하차했지만, 흑인 배우가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를 맡는 것이 자연스러워진지 오래다. 우피 골드버그와 크리스 록이 대표적이다. 우피 골드버그는 지난 1994년에 열린 6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흑인 여성 최초로 사회를 맡았다. 그녀는 자신을 섭외한 것이 정치적인 이슈로 해석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편, 엄청나게 화려한 의상으로 깜짝 등장해 축제를 즐기는 모습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다. 이후로도 그녀는 세 번이나 더 사회를 맡게 된다.
 
특히 그녀가 첫 사회를 맡았던 6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유대인 학살을 다룬 <쉰들러 리스트>가 작품상을 포함해 7개 부문을 휩쓸었고 여성주의 영화였던 <피아노>의 홀리 헌터가 여우주연상을, <필라델피아>에서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 변호사를 연기한 톰 행크스가 남우주연상을 받았었다. 어느 때보다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시상식이었다.
 
지난 2016년 시상식은 주요 수상후보가 모두 백인이어서 논란이 되었던 시상식이었다. 비난이 거세지자, 아카데미는 2005년에 한 차례 진행을 맡았던 흑인 배우 크리스 록에게 한 번 더 사회를 제안한다. 그는 보이콧을 할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을 나누어 시상하듯이 흑인부문도 따로 마련해야하지 않느냐며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시상을 위해 등장한 3명의 아시아계 어린이들에게 미래에 훌륭한 회계사로 자랄 것이라며, 인종차별적인 농담을 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닐 패트릭 해리스

크리스 록은 흑인 후보자도 없는 마당에 사회자 자리까지 백인인 닐 패트릭 해리스에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바로 전 해인 2015년 시상식의 사회자가 닐 패트릭 해리스였기 때문이다. 그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인데, 2014년 사회자 역시 동성애자인 엘런 디제너러스였다. 보수적인 미국 사회가 ‘관용’을 전시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나, 이런 이벤트가 분명 사람들의 인식을 전환하게 하는 큰 계기가 되는 것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투와 아카데미 시상식
지미 키멜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사건 폭로로 시작된 미투 운동은 지난 2018 아카데미 시상식 최고의 화제였다. 사회를 맡은 지미 키멜은 “오스카 트로피야말로 우리가 정말 필요한 사람이다. 성기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해 폭소를 이끌었다. 이에 많은 수상자들의 개념 발언이 이어졌었다. 

한편, 지나치게 긴 수상소감 때문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상식이 길어지는 상황은 언제나 주최측에게 고민거리였다. 지미 카멜은 가장 빨리 수상소감을 마무리한 사람에게 제트 스키를 선물하겠다고 공연했다. 실제로 <펜텀 스레드>로 의상상을 받은 마크 브리지스가 짤은 소감으로 제트 스키를 타갔다.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 역시 다양한 이슈를 품고있다. 특히, 이번 아카데미는 작품상과는 별도로 ‘인기상’을 신설했다가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영화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위한 시상부문을 신설하는 것이 영화제의 권위를 실추시킨다는 지적이었다. 결국 아카데미는 ‘인기상’을 폐지했지만, 유력한 수상후보였던 <블랙 팬서>의 팬들에게 다른 식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한, 지나친 ‘정치적인 올바름’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영화팬들도 적지 않다. 

이렇게 다각화된 담론들을 주최 측이 어떻게 풀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안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