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한 형제>를 관람하지 않은 이들도 알 만한 장면이 하나 있다. 예고편에 삽입된 이광수의 라면 먹방 신이다. 포크로 짚어든 면발을 한 번에 들이마시는(!) 모습. 짤만 봐도 라면 냄새가 코끝을 맴도는 듯하다. 이와 비슷한 위력을 지닌 영화 속 라면 먹방을 모았다. 보고 나면 라면을 찾을 것이 분명하니 다이어터라면 주의하시길. 점심시간 전 이미지를 찾는 과정이 무척 고달팠음을 밝힌다.
봄날은 간다, 2001
<봄날은 간다> 속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의 연애는 라면으로부터 시작됐다. 상우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그의 차에서 내린 은수. 그와의 헤어짐이 아쉬웠던 은수는 곧 다시 상우의 차로 돌아와 라면을 먹자고 권한다.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대사는 “라면 먹고 갈래요?”가 아니라 “라면 먹을래요?”다. 은수의 대사는 영화 명대사로서의 영역을 넘어 연애의 한 단계를 상징하는 대사가 됐다.
파송송 계란탁, 2005
짝퉁 음반을 만들며 삼류 인생을 사는 대규(임창정) 앞에 존재조차 몰랐던 아들 인권(이인성)이 찾아온다. 9년 동안 떨어져 살았던 터라 틈만 나면 싸우기 바쁜 부자. 이들이 유일하게 가까워지는 순간은 함께 라면을 끓여 먹을 때다. 한때 시트콤과 영화를 오가며 최정상의 인기를 누렸던 이인성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이 장면에 재미를 더한다. “파 송송 썰어놓고 뚜껑 닫고 기다려~ 계란 탁 깨서 넣고 뚜껑 닫고 기다려~ 파송송~ 계란탁~♪” 라면에 파와 계란을 넣으며 인권이 흥얼거리는 라면 송(?)은 엄청난 중독성을 지녔다.
황해, 2010
<황해>를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것, 하정우의 레전드 먹방을 탄생시킨 ‘황해 정식’이다. 오독, 베어 무는 소리가 예술이었던 소시지 먹방이 유명하지만 그 이전엔 컵라면이 있었다. 구남(하정우)이라면 두 젓가락만에 컵라면 큰 사발을 다 비워낼 수 있을 것 같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을 망설임 없이 흡입한 하정우를 보고 있으면 그의 입안에 냉각기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황당한 상상을 하게 된다. 습습후후, 음식물 섭취와 호흡을 함께하며 입안의 더운 공기를 순환시키는 기술마저 수준급. 먹방 ASMR을 듣고 나면 곧장 편의점으로 향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내부자들, 2015
이병헌은 라면을 먹는 장면마저 명장면으로 만들어내는 배우다. 어설픈 젓가락질로도 라면을 맛깔나게 흡입하는 상구(이병헌)는 라면 먹방계의 고단수 캐릭터. 엄청난 양의 라면을 입안에 욱여넣은 상구는 곧바로 뜨거운 라면을 뱉고 소주로 입안을 가글 한다. 단순한 행위로 재미를 챙겼음은 물론 캐릭터의 성향까지 드러낸 장면. 알고 보면 이는 이병헌의 아이디어였다. 영화 개봉 후 인터뷰에서 “실제로 가끔 그런다”고 밝힌 이병헌은 이 장면을 “찍으면서도 너무 웃겨 다섯 번이나 NG를 냈다”는 비하인드를 밝히기도 했다.
선생 김봉두, 2003
봉투를 밝히다 오지의 시골 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된 선생 봉두(차승원)는 시골구석에서 매번 라면만 끓여먹는 제 신세가 한탄스럽다. 몇 젓가락 먹지 않고 뚜껑을 덮어버린 그의 라면을 탐내는 이가 있었으니, 재학생 소석(이재응). 소석은 냄비 뚜껑에 코를 박은 채 면 흡입을 멈추지 않는다. “라면 제대로 먹을 줄 아는구나” “천천히 먹어, 입천장 다 까지겠다”라던 봉두의 대사가 곧 관객의 마음. 뜨거움에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먹방을 멈추지 않은 이재응의 고생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99
빗속 슬로우 모션 주먹질 신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명장면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면치기 라면 먹방의 시조새급 장면도 만나볼 수 있다. 우 형사(박중훈)와 짱구(박상면)가 함께 라면을 먹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이 장면에선 라면을 먹는 우 형사와 짱구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잡은 신이 연달아 펼쳐진다. 우 형사의 눈치를 보며 한 가닥씩 라면을 먹던 짱구는 어느새 이성을 잃고 라면을 흡입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한다. 한편의 라면 광고라 해도 손색없을 장면이다.
내 깡패 같은 애인, 2010
박중훈의 라면 먹방을 볼 수 있는 자매 영화론 <내 깡패 같은 애인>이 있다. 삼류 건달 동철(박중훈)과 취준생 세진(정유미). 옆집에 사는 두 사람은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으며 가까워진다. 분식집은 <내 깡패 같은 애인>의 명대사가 탄생한 장소이기도 하다. 시끄러운 여고생들의 수다를 뚫고 세진의 라면을 대신 시켜준 동철은 단무지를 씹으며 말한다. “우리나라 백수들은 착해. 프랑스 백수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 부수고 개X랄을 떨던데.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다 지 탓인 줄 알아요.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당당하게 살아. 힘내 X발.” 분식집과 라면, 현실이 어우러져 4D 체험급 공감을 선사한 대사다.
김씨 표류기, 2009
짜장 라면 먹방도 빠질 수 없다. 무인도에 갇혀있던 김 씨(정재영)는 우연히 스프만 남겨진 짜장 라면 봉지를 발견하고, 짜장면을 먹고 싶다는 일념 하에 식량 생산을 시작한다. 씨앗이 들어있을 새똥을 긁어모아 농사를 짓고, 재배에 성공한 옥수수를 빻아 면을 만든다. 김 씨는 오랜 기간 아껴두었던 짜장 라면 소스를 면에 버무리고, 함께 재배한 콩 등의 야채, 새 알을 곁들여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자신만의 짜장 라면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짠내 폭발, 오열하며 짜장면을 흡입하는 정재영의 실감 나는 연기가 돋보인 장면이다.
벼랑 위의 포뇨, 2008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실린 모든 먹방 장면이 훌륭하지만, 그중 레전드로 손꼽히는 건 역시 <벼랑 위의 포뇨>의 먹방 신이다. 한국식 라면은 아니지만, 인스턴트라는 공통점(!) 하에 소개한다. 사람이 된 물고기 포뇨는 인간 세상의 많은 음식에 흥미를 느낀다. 그중 포뇨의 최애 음식은 햄. 소스케의 집에서 인스턴트 라면을 먹는 장면에서 역시 포뇨의 햄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 손으로 햄을 먼저 집어먹고 뜨거움에 동동 뛰는 포뇨는 역대급 사랑스러움을 자랑한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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