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은 화려한 컬러와 명징한 화면 구도로 만드는 작품마다 전세계 영화 팬들을 열광시킨다. 한편, 그는 이미지를 다루는 능력만큼이나 음악을 고르고 배치하는 데에도 기가 막히는 감각을 보여주기는 감독이기도 하다. 1998년 발표된 두 번째 영화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원제 'Rushmore')와 함께, 웨스 앤더슨의 끝내주는 선곡 솜씨를 곱씹어보자.
Making Time
The Creation
사립학교 '러쉬모어'에 다니는 맥스 피셔(제이슨 슈워츠먼)는 매사에 열의가 넘친다. '양키 리뷰' 출간인, 프랑스어 클럽 회장, 모의 UN 러시아 대표, 우표 수집반 부대표, 토론팀 반장, 라크로스팀 매니저, 캘리그라피 클럽 대표, 천문학반 창시자, 펜싱팀 반장, 육상 10종 경기 주자, 제2 성가대 지휘자, 폭격기반 창시자, 쿵푸 클럽 노란띠, 스키트 사격반 창시자, 러쉬모어 양봉반 대표, 양키 레이서 창시자, 맥스 피셔 연극반 감독, 파이퍼 컵 클럽 4.5시간 가입 등. 이 모든 게 그게 학교를 다니면서 거쳐온 과외활동이다. 영화는 이 어마어마한 활동을 웨스 앤더슨 특유의 '단독 쇼트와 자막' 스타일로 1분 만에 주르륵 펼쳐낸다. 거라지록 밴드 크리에이션의 데뷔 싱글 'Making Time'과 함께. 바이올린 활로 기타를 연주한 이 곡은 화자가 라디오에서 애창곡을 듣는 동료들 사이에 둘러싸인 채 시계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노래한다.
The Lad With The Silver Button
Mark Mothersbaugh
마크 머더즈보는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이전, 초창기 웨스 앤더슨의 음악 파트너였다. 데뷔작 <바틀 로켓>(1996)부터 네 번째 작품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2004)까지 연이어 작업했다. 전설적인 뉴웨이브 밴드 디보의 키보디스트였던 머더즈보는 다채로운 건반 악기들을 활용해 앤더슨의 아기자기한 동화 같은 세계에 똑 들어맞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의 오리지널 스코어 역시 머더즈보의 작품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해저 보물 탐사 책을 읽던 맥스는 책에 낙서된 문구를 보고 그걸 쓴 사람을 찾아나선다. 머더즈보의 'The Lad With The Silver Button'은 낙서의 주인공을 찾아가 러쉬모어의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로즈매리 크로스 선생님(올리비아 윌리엄스)을 발견하는 과정을 꾸민다. 그리고 맥스가 크로스에게 첫눈에 반했음을 드러낸다. 60년대 록 음악들의 방대한 활용이 돋보이는 영화 속에서 마크 머더즈보의 귀여운 음악은 때마다 맥스의 감정을 대변하며 제 빛을 잃지 않는다.
Take Ten
Paul Desmond
매사에 당당해 보이는 맥스지만, 실은 그는 아버지의 직업을 속이고 있다. 사립학교를 다니기 때문일까. 신경외과 의사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실은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이발사다. 한켠엔 쳇 베이커의 앨범이 놓였고, 폴 데스먼드의 'Take Ten'을 틀어놓는 아담한 이발소는 영화 속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이다. 맥스의 아버지는 아들이 37점을 맞은 시험지를 내밀어도, 87점으로 바꾸고는 "좀만 있으면 A 맡겠는걸" 하며 따뜻한 눈빛을 보낸다. 흥겨움과 나른함을 동시에 품은 데스먼드의 알토색소폰 연주는, 비록 공부는 못해도 좋아하는 것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맥스에게 언제나처럼 용기를 북돋아주는 아버지의 온기처럼 느껴진다. 영화 후반부 다시 한번 등장하는 이발소에선 빈스 과랄디의 재즈 캐롤 'Hark! The Herald Angels Sing'이 조용히 흘러나온다. 맥스가 치열한 로큰롤이라면, 아버지는 안온한 재즈다.
Nothin' In This World Can Stop Me
Worrying' 'Bout That Girl
The Kinks
웨스 앤더슨은 사실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속 모든 로큰롤 넘버를 킹크스의 음악으로 채우고 싶어 했다. 그의 계획은 성사되지 않았고, 영화에 킹크스의 음악은 딱 한 곡이 수록됐다. 그만큼 킹크스의 음악이 쓰인 신이 중요한 신일 터. 맥스와 애증을 나누는 친구, 철강회사 재벌 허먼 블룸(빌 머레이)의 일상을 비추는 신이 바로 그때다. 그는 돈이 아주 많지만, 적적하기 짝이 없는 삶을 지내고 있다. 사람들이 모인 아들 생일파티에서도 허먼은 하릴 없이 골프공이나 풀장에 빠트리면서 아내가 젊은 남자와 희희낙락 하는 걸 지켜봐야 한다. 대뜸 다이빙대에 올라 몸을 빠트려 그 속에서 나오지 않지만 허먼을 염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 못지 않게 강력한 록 사운드를 뿜어낼 줄 아는 킹크스지만, 웨스 앤더슨은 단출한 구성에 쓸쓸하게 노래하는 레이 데이비스의 음성이 담긴 'Nothin' In This World Can Stop Me Worrying' 'Bout That Girl'을 사용해 허먼의 외로움을 대번에 강조한다. 맥스와 허먼은 더욱 가까워진다.
Here Comes My Baby
Cat Stevens
술에 취한 맥스는 크로스 선생님의 친구에게 온갖 무례한 말을 내뱉어 잠시 사이가 소원해졌던 그들은 해저 보물 탐사책을 함께 훑어보다 그녀의 전남편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 하며 다시 관계를 회복한다. 캣 스티븐스의 'Here Comes My Baby'는 다시 사랑하는 사람하는 곁에 서게 된 맥스를 따라가는 것처럼 들린다. 비록 러쉬모어에선 퇴학 당했지만 크로스 선생님의 개인 교습을 받으면서 전학간 학교에 점차 적응해간다. 교과 성적은 여전히 별볼일 없어도, 전방위에 걸친 그의 활약상은 새 학교에서도 여전하다. 궁극의 청량함을 자랑하는 캣 스티븐스의 노래가 이어지는 와중, 맥스는 크로스 선생님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였고, 그녀 곁에는 맥스의 친구 허먼이 자리하고 있다. 허먼을 힐끔힐끔 보는 크로스 선생님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제목 "내 사랑이 오고 있어"의 주인공이 서서히 다른 이에게로 옮겨 가고 있다.
Jersey Thursday
Donovan
도노반의 'Jersy Thursday'는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에 사용된 음악 중 유일하게 침울한노래다. 그럴 수밖에. 사랑하는 크로스 선생님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캠페인을 벌여 폐지된 라틴어 수업도 되살릴 수 있고, 갑부를 설득해 대형 수족관도 세울 준비가 돼 있는 맥스가 그토록 믿었던 친구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겼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사랑이야기에서 이만큼이나 가슴 아픈 순간이 또 있을까! 수업 중에 부득불 들어온 맥스는 크로스 선생님에게 "내 인생을 망쳐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러 왔어요" 라는 말을 남긴 채 문을 콱 닫는다. 나쁜 짓이라곤 못하는 줄 알았는데, 담배를 피면서 공터에 불을 내놓고는 교장 선생을 향해 가운데손가락을 세운다. 낮은 기타 연주 위를 떠도는 도노반의 메마른 목소리가 지금이 가을이라는 걸 새삼 떠올리게 한다.
I Am Waiting
The Rolling Stones
허먼과 죽자사자 복수전을 벌이고, 크로스 선생님에게서 비수 같은 말을 듣고, 친구들 모두가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걸 경험한 맥스는 그 좋아하던 교내 활동을 멈추고 조용히 집과 아버지 가게에서 시린 계절을 보낸다. 퇴학 당하고도 주구장창 입고 다녔던 러쉬모어 재킷도 이제는 입지 않는다. 이 쓸쓸한 11월을 롤링 스톤즈의 발라드 'I Am Waiting'이 채운다. 누군가와 박차고 나갈 곳을 기다리는 이의 심정을 이야기 하는 믹 재거의 목소리는 곧장 맥스의 황량한 마음을 수식한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키 작은 친구 커크는 이발소 일을 돕는 맥스를 저 멀리서 지켜보고, 맥스를 좋아하는 게 분명한 학교 친구 양은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는 맥스에게 자그마한 화분을 건넨다. 그렇게 'I Am Waiting'은 기다리고 있고, 앞으로도 기다릴 거라는 친구들의 메시지가 된다.
Rue St. Vincent
Yves Montand
교장 선생님의 병문안 중에 허먼을 만난 맥스는 그가 크로스 선생님과 헤어졌다는 사실을 듣고 곧장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차에 치였다고 거짓말을 해서 안으로 들어온 그는 로즈매리가 약을 찾으러간 사이 카세트를 꺼내 이브 몽땅의 'Rue St. Vincent'를 튼다. 폭우가 내리는 바깥에서 하늘이 꾸렁꾸렁대는 소리가 새어 들어오는 가운데 그저 촉촉하기만 한 이브 몽땅의 목소리는, 오늘에야 말로 크로스 선생님의 마음을 얻겠다는 맥스의 얕은 수를 나타낸다. 작전이 통하는 듯 로즈매리는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입을 맞추는 맥스를 슬쩍 밀어낼 뿐이지만, 이마에 묻은 피가 가짜라는 걸 알자마자 "(맥스와 허먼) 둘 다 모두 어린애야!" 하고 매몰차게 그를 내쫓는다.
Ooh La La
The Faces
다행히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는 최선의 해피엔딩으로 남는다. "상처 받는 사람이 없는" 결말. 맥스는 비록 크로스 선생님의 연인이 되지 못하지만 양과 함께 첫 연애를 시작했다. (맥스의 작전 덕분에) 서로 옆자리 허먼과 크로스 선생님 사이에선 여전히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아버지는 맥스의 새 학교 선생님과 춤을 춘다. 장고 라인하르트의 'Manoir de Mes Reves'가 흐르는 파티장에서 모두가 웃는다. 맥스는 DJ에게 음악을 바꿔 달라고 청하고, 크로스 선생님과 몸을 포개고 춤을 춘다. 페이시스의 'Ooh La La'는 이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모두가 행복한 이 결말을 수식한다. (훗날 롤링 스톤즈의 기타리스트가 되는) 로니 우즈가 드물게 보컬을 맡은 노래는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여자와의 관계를 조심하라고 전하는 대화를 담고 있다. 크로스 선생님을 마주보고 품에 안은 맥스를 감싸고 있다는 점이 꽤나 아이러니 하다.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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