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스포일러를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굿 라이어>는 느슨하게 전개되는 스릴러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베테랑 배우들의 품격에서 느껴지는 고전미에 현대적인 장치들이 뒤섞인 느낌을 받는데, 그건 바로 남녀 주인공이 만나는 매개체가 온라인채팅이라는 사실이 하나의 이유입니다. 남자는 담배를 피우면서 프로필에 ‘non-smoking’을 선택하고, 여자는 술을 마시면서 ‘non-drinking’을 선택합니다. 브라이언으로 소개하는 남자는 알고 보니 ‘로이’였고, 에스텔로 소개했던 여자는 ‘베티’였습니다. 이름과 취향을 사실과 다르게 말하는 것은 온라인채팅에서는 너무나 흔한 일이라 쌍방에게 기망행위는 없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는 온라인채팅 만남에서 어느 정도 속여야 처벌을 받는지, 속이면 죄가 되는지 여부를 (잠재적)이용자들은 가장 궁금해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인 간에 인적사항을 속이는 것만으로는 범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분을 속이는 방법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그 방법이 법에 저촉되면 당연히 처벌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신분증을 위조하거나, 출신학교를 속이기 위하여 졸업증명서를 위조하면 당연히 문서위조죄 및 동행사죄(위조문서행사죄)로 처벌을 받습니다. 신분을 속이는 목적은 다양한데, 단순히 상대방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 출신학교, 직업, 심지어 기혼상태를 숨겼다면 그 자체로 형사범죄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민사상 불법행위가 성립할 여지가 있고 상대방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청구 소송을 당할 수 있습니다. 특히, 기혼상태를 숨긴 경우에는 성관계 의도가 태반이기 때문에 민사상 불법행위라고 인정될 여지가 굉장히 높습니다. 판례 중에 유부남이 이혼남이라고 속이고 교제를 한 경우 위자료 1500만원을 인정한 예가 있습니다. 즉, 민법에서 말하는 ‘기타 정신상 고통’에는 ‘상대방을 독신으로 알았으나 사실은 혼인관계가 유지 중에 있어 자기 자신은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내연녀나 불륜관계가 됨으로써 입게 되는 정신상 고통’이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온라인채팅 만남에서 기망에 관한 일반론이라면, 이제 영화 <굿 라이어>에서는 어떤 종류의 기망이 있었고, 기망의 목적은 무엇인지, 결국 범죄에 해당하는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2009년 런던이고, 로이는 약 81세로 추측되며, 베티는 채팅 프로필에 78세라고 소개를 합니다. 로이는 부유한 미망민 베티의 돈을 노리고 처음부터 베티를 타깃으로 채팅을 하고 만남을 갖습니다. 로이가 베티의 돈을 노리고 접근한 ‘의도’ 자체는 아무런 범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로이의 최종 목적은 공동계좌를 만들어서 베티가 자신의 전 재산을 공동계좌에 이체하도록 만들고 공동계좌에 입금된 전 재산(로이의 돈과 베티의 돈을 합한 것)을 인출해서 달아나는 것이 목적입니다. 베티가 전 재산을 공동계좌에 넣게 하려고 신뢰를 보여주기 위해 로이도 자신의 전 재산을 공동계좌에 먼저 이체를 합니다. 사기죄의 기수시기(범죄의 구성요건이 모두 충족되어 범죄가 성립되는 시기-편집자)는 재물이 범인의 사실상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 그의 자유로운 처분이 가능한 상태에 놓이는 것으로 족합니다. 판례는 타인의 명의를 빌려 예금계좌를 개설한 후 통장과 도장은 명의인에게 보관시키고 명의인을 기망하여 돈을 계좌로 송금시켰는데, 범인은 계좌의 현금인출카드만 소지한 경우에도 범인이 언제든지 카드를 이용하여 금원을 인출할 수 있으므로 사기죄의 기수라고 보았고 심지어 범인이 돈을 인출하지 않던 중 명의인이 돈을 다시 인출해 갔어도 사기죄는 성립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로이의 기망에 의해 베티가 전 재산을 공동계좌에 이체했고, 로이는 자신이 가진 키패드를 이용하여 언제든지 전 재산을 인출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으므로 사기죄는 기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기죄가 성립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그러나 로이의 계획은 실패하는데, 베티가 먼저 자신의 키패드를 누르면 공동계좌에서 일정 금액이 타계좌로 이체되도록 조작을 합니다. 그리고 로이에게 로이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자신의 키패드를 눌러서 공동계좌에서 5만 파운드씩 타계좌로 이체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과정에서 로이에 관한 사실이 밝혀지는데, 영국인 로이가 아닌 독일인 한스라는 사람이고, 외동아들이 있는 것도 거짓말이며, 60여년 전 베티의 실제 이름인 릴리라는 소녀를 강간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한스라고 밝혀진 로이는 처음에 부인하고 거짓말을 하는데, 1번의 거짓말이 있을 때마다 베티는 키패드를 누르며 5만 파운드씩 총 9회에 걸쳐 돈을 타계좌로 이체합니다. 일반적으로 공동계좌에서 일방이 상대방의 허락 없이 돈을 인출하는 것은 횡령에 해당합니다. 2명 이상이 출자해서 공동사업을 하는 경우 동업관계로 보고 민법상 조합계약에 해당하는데, 동업재산은 정산을 하기 전에 1인이 임의로 사용하면 횡령입니다. 판례는 동업자 중 1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한 경우에도 임의로 돈을 인출하면 횡령죄가 성립하고, 정산 전에 통지만 하고 임의로 처분하거나 반출해도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합니다. 베티가 비록 로이에게 거짓말 1회당 5만 파운드 이체라고 통지하고 키패드를 눌렀지만 이것을 공동계좌에서 돈을 이체하는 것에 대한 로이의 승낙이라고 볼 수는 없으므로 베티의 행동은 횡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횡령죄가 성립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신분을 속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형사상 범죄가 성립하기 어렵지만 다른 목적과 결부되어 다양한 범죄가 파생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영화는 인터넷채팅 만남을 매개체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앱채팅 만남이 더 보편적이고, 앱채팅 만남에도 기망과 관련된 법리는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영화에서 피해자가 과연 베티인지, 60여년 전 했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채팅만남을 통해서 대갚음했다는 사실이 무척 의미심장한 결론이었습니다.
글 | 고봉주 변호사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