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집회에 등장했던 안남시민연대 깃발. (출처: 트위터)

‘안남시민연대’ 깃발이 광화문에 나부꼈다. 이 문장을 보고 ‘안남시민연대가 뭐지?’ ‘안남시가 어디지?’ 하면서 어리둥절한다면, 당신은 정상이다.

안남시민연대는 <아수라>의 팬들이 만든 가상의 단체다. 영화 속 배경인 안남시는 팬들에 의해서 인터넷상에서 진짜 도시처럼 성장하고 있다. 광화문 집회에 실제로 등장한 안남시민연대의 깃발은 네트워크의 그물을 뚫고 오프라인에 나온 하나의 사례다.

<아수라> 포스터. 아수리언들은 영화 내용과 전혀 관련 없는 이 포스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수라>의 팬덤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11월20일 공식 상영이 끝난 <아수라>를 다시 보기 위해 아수리언(<아수라>에 미친 사람들)들이 CGV대학로의 상영관을 대관해 상영회를 열었다. ‘안남시민의 밤’이라고 불린 이 상영회에는 ‘안남 메트로폴리스 <천당 위에 안남>’이라는 영화 속에 등장할 법한 현수막이 실제로 걸려 있었다. 행사에 참여한 아수리언에게는 안남시민등록증, 김차인 검사 명함, 안남시 메트로폴리스 수건 등 관련 굿즈를 선물로 줬다.

안남시민의 밤에서 제공한 굿즈. (출처: 안남 시티 하드코어 트위터)
한 아수리언이 트위터에 올린 안남 메트로폴리스 수건.

이날 상영회에는 <아수라>의 김성수 감독, 주연 배우 정우성, 제작사 사나이픽쳐스 한재덕 대표 등이 참석했다. 아수리언이 ‘연기의 신’이라 칭송하는 정우성이 말했다. “여러분, 다들 미쳤어요?”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수리언들은 묘하게 미쳐 있다. 지금 시국이 아수라장 같아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아수리언들은 정우성에게 극 중 대사 “박성배 앞으로 나와!”를 요청했다. 정우성은 팬들과 소통하며 영화 속 대사를 하다가 박성배 대신 대통령의 이름을 넣어 “박근혜 앞으로 나와!”라고 소리쳤다.

단체 관람 뒤풀이에 아수리언들이 ‘영화의 신’이라 부르는 김성수 감독이 참석했다. 김성수 감독은 아수리언이 제작한 안남시 머그컵에 관심을 보였다. 박성배 시장을 연기한 황정민은 상영회에 참석하지 못해서 아쉽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아수리언들이 제작한 굿즈를 챙겨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총 관객수 259만 명을 동원해 손익분기점(300만 명)을 넘기지 못했지만 <아수라>의 제작사 사나이픽쳐스 한재덕 대표는 뒤풀이 비용을 계산했다고 전한다.

국립 안남대학교 트위터.

정우성의 발언과 상영회 관련 소식을 접한 뒤 에디터는 ‘안남시’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국립 안남대학교라는 트위터 계정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안남대 계정이 팔로잉하는 계정을 열어보니 아수리언들이 활동하는 트위터 계정이 넘쳐났다.

안남시청 뉴미디어실 트위터.

안남시청 주차장 관리소, 안남시립미술관, 안남 시민일보, 안남대 리볼버연구회, 안남수도사업본부, 안남시청 뉴미디어실, 안남시 도시주택국, 안남시체육회, 안남시정보통, 안남정밀, 안남문화재단, 안남운수, 안남시 여성회관, 안남시 리볼버센터 등의 트위터 계정은 아수리언들이 운영하는 계정임에 틀림이 없었다.

안남대 로고. 영화 속 대사가 보인다.

이쯤되니 정말 궁금해졌다. ‘글로벌 인재 육성의 무덤’이라는 국립 안남대학교 계정을 운영하는 사람과 접촉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열광하게 만들었을까. 에디터는 안남대 계정의 운영자에게 멘션을 보냈다.

국립 안남대학교 트위터에서 에디터에게 답이 왔다. 아수라오명벗기기위윈회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안남대 운영자와 연락이 닿았다. 안남대 계정이 어떻게 나왔는지 물었다. 그는 “트위터에서 <아수라>의 안남시 관련 드립을 치다가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인 대학교 계정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각종 기호들로 만들어진 안남대 로고는 또 다른 아수리언의 도움으로 제작됐다. 그는 안남대 홍보처장으로 임명됐고, 자신은 입시철을 맞아 입학처장으로 발령 받았다고 한다.

국립 안남대 트위터.

안남대 운영자 역시 20일 ‘안남시민의 밤’에 참석했다. 현장은 “콘서트나 부흥회 같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뒤풀이에 참석한 그는 “영화를 제작한 제작자, 감독, 배우, PD 등과 관객이 소통하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뒤풀이 자리에서 아수리언들은 김성수 감독에게 안남시를 배경으로 여성들이 출연하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같은 영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에디터의 짐작과 달리 안남시민의 밤에 참석한 아수리언의 절반가량은 여성이었다고 한다.

안남대 운영자는 “영화를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아수라>를 이른바 ‘알탕영화’로 분류하고 <신세계> <부당거래> <내부자들>과 같은 영화로 생각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네이버에서 VOD 사면 만 원도 안 하니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한다”는 말도 전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했더니 “김성수는 영화의 신이다. 정우성은 연기의 신이다”를 외쳤다. 안남시민의 밤 행사에서 나온 정우성의 발언에 오해가 생길까 걱정하는 모습까지, 역시 진정한 팬이었다. ▶<아수라> 바로보기

안남시 디자인 공무원이 제작한 안남시 컵. (출처: 안남시 공무원 트위터)

안남시 머그컵을 만든 ‘안남시 디자인 공무원’ 트위터 사용자에게도 연락을 해보았다. 트위터에 쪽지를 남겼는데 “지금 업무 중이라 7시 이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답이 왔다. 실제 자신의 업무인지 안남시 업무인지 순간 헷갈렸다.

안남시 디자인 공무원은 김성수 감독의 사인을 받았다. (출처: 안남시 디자인 공무원 트위터)

안남시 컵은 안남시민의 밤 행사를 위해 제작됐다. 안남시민의 밤에 참석하지 못한 황정민은 “컵을 갖고 싶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이에 남시 디자인 공무원이 “박성배님이 안남 컵을 갖다 달라고 하셨다”고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자 컵을 사겠다는 사람들의 쪽지가 밀려들었다. 디자인 공무원은 “생각지도 못하게 자꾸 주문이 들어온다. 혼자서 포장하고 배송하는 일이 힘들다”는 말도 전했다.

<아수라> 관람횟수에 따른 아수리언 등급. (출처: 트위터)

안남시 디자인 공무원은 “(영화 속) 가상 도시인 안남을 구성해나가는 게 게임 같은 재미가 있다고 했다. 팬 카페가 아니고 트위터에서 각자 안남시 관련 계정을 만들어가는 것은 기존의 팬덤 문화와는 확연히 차이나는 지점이다.

“감독님이 좋아하셔서 기뻤어요. 좋아하는 영화의 가상 도시의 굿즈를 같이 쓰는 게 이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라고 말하는 디자인 공무원은 안남대 운영자처럼 정우성의 발언이 왜곡될까 걱정했다.

디자인 공무원에 따르면 한재덕 대표가 “<올드보이>는 팬들과 10주년 행사도 했다”면서 매년 11월20일, 안남시민의 밤을 개최하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안남시청 티셔츠.

“동북아 허브 CITY 안남, 안남시청 공무원 가족들을 위한 티셔츠입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인 안남시 공무원 티셔츠를 제작한 사람도 있다. Jayworks 실크스크린 랩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창현씨다. 민주노총을 패러디한 ‘민주묘총’ 티셔츠도 제작한 그는 “가상을 현실로 이끌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안남시는 현실에 없는 건데 공무원 티셔츠를 만드는 순간 현실로 등장하게 된다. 영화를 보다가 재밌겠다 싶어서 만들게 됐고 트위터에 공지를 올려서 판매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수라>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박성배(왼쪽) 안남시장은 비리 정치인의 표본이다.

아수리언들의 팬덤 생태계는 새로운 형태다. 블루레이로 출시하려던 감독판을 극장에서까지 상영하도록 한 <아가씨>의 팬덤이 디씨인사이드 아가씨갤러리에서 증폭된 것과는 또 다르다. 트위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수리언은 <아수라>라는 영화를 좋아하면서 자연스레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안남시 관련 트위터로 바꾸거나 새로 계정을 만든 경우다. 시국도 아수리언을 결집시킨 요인 가운데 하나다. 한 트위터 사용자가 지난 11월 14일 “다락방에 숨겨둔 리볼버 들고 청와대 가고 싶다”고 쓰자 경찰이 즉각 영장 없이 트위터 사용자의 집을 압수수색한 사건에 아수리언들은 함께 분노했다.

영화 <아수라>에 공감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안남시’를 검색해보면 아수리언들이 만들고 있는 새로운 팬덤 세계를 경험해볼 수 있다. 아수리언과 관련된 더 자세한 기사는 12월 초 발간 예정인 영화주간지 <씨네21>에서도 만날 수 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