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유모차에 탄 그녀가 내게로 왔다.” 예고편 첫 장면에 나오는 문구처럼 대학생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 분)는 심야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새벽녘, 언덕길에서 유모차 한 대가 미끄러져 내려오는 걸 발견합니다. 유모차와 할머니에 대한 괴상한 소문만을 접해왔던 츠네오는 조심스럽게 유모차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고, 그 안에 겁에 질린 채 손에 칼을 쥐고 있던 조제라는 또래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칩니다.
무성한 소문과 달리 이들은 다리가 불편해 걸을 수 없는 조제(이케와키 치즈루)와 그녀를 데리고 홀로 살아가는 할머니였습니다. 조제와 할머니를 집까지 데려다준 츠네오는 아침을 먹고 가라는 할머니 권유에 어쩔 수 없이 비좁은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조제가 만든 달걀말이를 맛보는 순간 얼굴에 미소가 절로 번집니다. 뜻밖의 맛있는 아침식사가 진한 여운을 남겼기 때문일까요? 츠네오는 다시 조제의 집을 찾게 되고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호기심과 연민으로 시작한 츠네오의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진심에 가까워집니다. 조제의 풍부한 상상력과 멋진 요리 솜씨, 그녀만의 신비로운 세계에 마음이 강하게 움직인 거죠. 그녀를 위해 유모차에 스케이드 보드를 달아 거리를 구경시켜주고, 읽고 싶다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을 구해다 주며 닫혀있던 조제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물론 그녀 역시 츠네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요. 연로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들은 동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조제와 츠네오는 처음부터 많이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자유분방하고 쾌활하게 살아온 츠네오와 달리 다리가 불편해 걸을 수 없었던 조제는 할머니의 과잉보호 속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작은 울타리 안에 갇혀 지냈으니까요. 어느 순간부터 츠네오는 조제를 구속처럼 느낍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많은 연인들이 그렇듯 서툰 사랑의 끝을 맞이합니다. 마법 같은 사랑의 유효기간이 다 되었을 때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그 ‘끝’을 짐작할 수 있죠.
이들의 이별은 의외로 담백합니다. 츠네오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은 채 평소 아침에 출근하는 모습 그대로 집을 나서고, 조제는 그에게 장난기 섞인 가벼운 이별 선물까지 건넵니다. 하지만 길을 걷던 츠네오는 거리에 주저앉아 울고 맙니다. 아마도 이 이별은 조제보다 츠네오에게 더 큰 상처로 남을 것 같습니다. 현실로부터 먼저 도망친 쪽이 그이기 때문이죠. 끝까지 지켜내리라 다짐하면서 삶의 전부라고 여겼지만 결국 감당할 수 없었던 것들. 츠네오에게 조제는 바로 그런 존재일 테죠. 그는 자신이 먼저 도망친 그 시간들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조제는 이별 이후 홀로 세상 속으로 들어갑니다. 오히려 그 이전보다 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말이죠.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녀의 주변이 엉망진창이었던 것과 달리, 그가 떠난 뒤 조제의 집안은 말끔합니다. 그녀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직접 장을 보러 나가고 끼니도 거르지 않습니다. 츠네오와 함께 했던 시간, 이별 이후의 아픔이 오히려 그녀에게 ‘성숙’이라는 열매를 맺게 한듯합니다.
이 영화는 사랑을 통해 한 소녀가 어떤 변화를 겪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별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아프지만 한 편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사람을 성장하게 합니다. 그 시절, 그 사랑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영화 속 메뉴 따라 하기
츠네오를 웃음 짓게 한 조제의 달걀말이. 달걀말이가 맛있다고 칭찬하는 츠네오에게 “그럼, 누가 만든 건데!”라며 당돌하게 대답하던 조제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집에서 달걀말이를 만들 때면 부엌 의자에서 ‘쿵’하며 힘차게 다이빙해 내려오던 조제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달걀말이와는 달리 일본식 달걀말이는 달고 짭조름한 맛에 부드러운 식감을 살리는 것이 포인트에요. 포인트를 잘 살려 완성해보세요.
< 조제의 달걀말이 >
재료
달걀 4개, 맛술 1 큰 술, 설탕 1 큰 술, 간장 1 작은 술, 가쓰오부시 육수(가쓰오부시 5g, 물 1컵) 40ml, 소금 조금
만들기
1. 볼에 달걀, 맛술, 설탕, 간장, 가쓰오부시 육수, 소금을 넣고 모두 섞는다.
2. 섞은 재료를 체에 내려 거른다.
3. 달걀말이 전용 팬에 2의 달걀물을 서너번에 나눠 부으며 굽는다. 돌돌 말아 도톰하게 완성한다.
4. 구운 달걀말이를 김발로 말아 모양을 잡은 뒤 차갑게 식혀 적당한 두께로 썬다.
tip> 가쓰오부시 육수를 낼 때는 물을 먼저 끓이다가 가쓰오부시를 넣고 불을 끈 뒤 2분가량 기다렸다가 바로 체에 거른다.
파란달 / 요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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