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블랙 위도우>

2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인피니티 사가(Saga)의 끝을 장식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기점으로 마블 스튜디오는 히어로들의 세대교체를 치뤘다. 마블 스튜디오를 지금의 위치로 올려놓은 원년 히어로들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웅장한 인사를 전했다.

이들과의 이별을 아직까지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이라면 주목하시길. 아직 우리 곁을 완벽히 떠나지 않은 히어로도 있다. 전편에서의 극적인 선택으로 히어로들의 활약에 숭고함을 불어넣었던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의 마지막 이야기가 7월 7일, 전 세계 동시 개봉으로 극장을 찾는다.

<블랙 위도우> 런던 파인우드 스튜디오 촬영 현장.

블랙 위도우의 솔로 무비가 이렇게 늦게 관객을 만날 것이라곤, 2019년 런던에서 영화 촬영에 한창이었던 배우들과 제작진,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스튜디오를 찾은 각국의 기자들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 예고편 클립을 포함해 <블랙 위도우>에 대한 모든 정보가 철저히 베일에 싸여있었던 지난 2019년 9월, 런던 서쪽에 위치한 파인우드 스튜디오에 방문해 <블랙 위도우>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전해 들었다. 해가 뜨지 않은 새벽녘 버스에 몸을 싣고 출발해, 지는 노을을 뒤로하고 돌아오기까지. 각국의 기자들은 <블랙 위도우> 세트 곳곳을 오가며 주연 배우인 스칼렛 요한슨과 플로렌스 퓨, 각 파트의 제작진과 작품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직전까지도 촬영에 임하느라 바빴던 스칼렛 요한슨, 플로렌스 퓨가 직접 들려준 이야기를 먼저 전한다.


스칼렛 요한슨

“10년 동안 함께 해온 캐릭터의

새로운 면을 탐구할 수 있다는 것”

<블랙 위도우>에서 나타샤 로마노프/블랙 위도우를 연기한 스칼렛 요한슨.

“컷!” 신호음과 동시에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설립한 암살자 양성 프로그램이 이뤄지는 레드룸에 들이닥친 블랙 위도우들의 조급한 발소리, 그 뒤를 따라붙은 적막이 촬영장을 메운다. <블랙 위도우> 배우들의 인터뷰는 레드룸 세트 맞은편에 위치한 천막 안에서 진행됐다. 작은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촬영 중인 <블랙 위도우>의 선공개(!) 장면을 보던 기자들을 먼저 맞이한 건, 자신의 촬영 분량을 마친 뒤 모니터 밖으로 나온 스칼렛 요한슨. 두꺼운 목재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촬영 당시 입었던 슈트를 그대로 착용하고, 얼굴의 피 분장도 지우지 않은 채 의자에 앉아 기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영화 촬영과 함께 진행된 인터뷰였던 터라, 촬영이 시작된다는 현장 소리에 따라 스칼렛 요한슨과 기자들 모두 목소리를 낮춰야 했던 이색적인 경험. 블랙 위도우와 10년 동안 함께한 그였지만, 대답마다 오랜 고민이 따라붙는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도,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히 선택했던 그와의 대화를 전한다.


<블랙 위도우>

Q. 이번 영화는 블랙 위도우에 대한 새로운 면을 탐구한다. 오랫동안 블랙 위도우를 연기해왔는데, 그녀에 대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

스칼렛 요한슨 내 안에 나타샤가 있고, 덕분에 캐릭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의 모든 부분에 접근할 기회는 없었다. 케이트 쇼트랜드 감독은 블랙 위도우의 용기와 인내력, 그 내면에 집중했다. 내면을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나 역시 나타샤에 대해 더 많은 발견을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지닌 다른 강점과 장점, 단점과 그녀가 부끄럽게 생각하는 일부분까지. 10년 동안 연기하고, 성장해온 캐릭터와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건 많은 배우들에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Q.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인가?

스칼렛 요한슨 <블랙 위도우>는 지난 10년 동안의 절정 같은 느낌의 작품이다. 이질적인 느낌 없이, 지난 10년 동안 연기했던 캐릭터가 이 영화 속에서 살아 숨 쉬길 바랐다. 동시에 이번 영화에선 그간 관객이 본 적 없던 블랙 위도우의 색다른 면을 만날 수 있기도 하다. 이 사람은 그동안 어디 있었던 거지?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균형감을 잡고 싶었다. 관객과 팬들이 만족할만한 연기가 됐으면 좋겠다.

(왼쪽부터) <블랙 위도우>에 출연한 레이첼 와이즈, 스칼렛 요한슨, 플로렌스 퓨.

Q. <블랙 위도우>는 가족 영화인가?

스칼렛 요한슨 가족 영화로도 볼 수 있다. 가족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존재다. 우리가 선택한 가족,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우리의 과거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우리의 가족이 우리를 누구로, 어떻게 만드는지, 그게 더 좋은 방향일지 더 나쁜 방향일지. 이 모든 테마가 녹아있다. 뭐, 누가 마블 스튜디오에서 가족 드라마를 만들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나.(웃음)

Q. 블랙 위도우와 함께한 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작별 인사를 건넬 준비가 됐나.

스칼렛 요한슨 글쎄. 잘 모르겠다. 어떤 면에선 받아들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선 어렵다. 착잡하고 복잡하다. 그 누구와도 작별을 고하기란 쉽지 않으니까. 배우의 일이란 때가 되면 누군가를 보내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복잡한 심경이다.

Q, 새로운 출연진과의 작업은 어땠나.

스칼렛 요한슨 대단한 배우들과 함께했다. 레이첼 와이즈와는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일해보고 싶었다. 내면적으로나 외면적으로나, 아름답고 예리하고 풍성한 그녀의 연기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데이빗 하버는 캐릭터에 더 큰 생명력, 흥미로운 특성을 불어넣는 배우다. 가슴 절절할 정도로 부드러운 면과 강인한 면을 자유자재로 오가더라. 플로렌스 퓨는 감수성이 뛰어난 친구다. <블랙 위도우>를 함께하며 그의 연기에 매우 감동받았다. 레이 윈스톤은 레이 윈스톤이다. 모든 일에 헌신적으로 몰두하는, 놀라운 영감을 전하는 배우였다. 정말 좋은 현장이었다. 그러다 동료들이 그리워지고…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어디야? 지원이 필요해~”(웃음)

(왼쪽부터) <블랙 위도우>에 출연한 스칼렛 요한슨, 데이빗 하버, 플로렌스 퓨.

그들이 그립지만, 정말 신선한 현장이었다. 미개척지의 영역이랄까. 블랙 위도우에 대한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비에트 연방 파트를 비롯해, 지금까지 스크린이 조명하지 않은 세계로 갈 수 있는 문을 열 수 있었다. 그래서 정말 재미있었고, 이 작품만의 톤을 구축하는 데에도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관객들도 이런 부분을 즐겼으면 좋겠다.


플로렌스 퓨

“<블랙 위도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작품”

<블랙 위도우>에 옐레나 벨로바를 연기한 플로렌스 퓨.

<블랙 위도우> 촬영 당시의 플로렌스 퓨는 <레이디 맥베스> <미드소마> 등 제 인장이 선명히 새겨진 인디 영화로 호평을 쓸어 담고 이제 막 할리우드에 발을 디딘, 재능 있는 영국 신인 배우였다. <블랙 위도우> 촬영 이듬해 그는 <작은 아씨들>을 통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한 굵직한 시상식의 여우조연상에 호명되며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로 떠올랐다. 그 강단의 싹을 미리 만나볼 수 있었던 자리. “감정이 풍부한, 수수께끼와 같은 멋진 눈을 지닌 배우”란 스칼렛 요한슨의 묘사와 같이, 플로렌스 퓨는 시선만으로 언어의 장벽을 넘어 마음을 사로잡는 배우였다.

“<블랙 위도우> 현장을 통해 신인 시절에 알았으면 좋았을 무언가를 배운 게 있냐”는 질문에 “우리 모두 새롭고 거대한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고, 모든 걸 내 보폭에 맞춰 배워가는 것이 좋은 것 같다”는 답을 건넨 그에게선 대형 시스템을 쫓으려는 신인의 조급함보단 연기 자체를 즐기며 성장하려는 자의 여유가 돋보였다. 이색적인 생동감을 뽐내며 기자들의 질문에 통통 튀는 답변을 들려주었던 그의 마블 입성기를 전한다.


<블랙 위도우>

Q. 옐레나 벨로바는 어떤 캐릭터인가.

플로렌스 퓨 짧게 요약한다면 거침없고, 이상하고, 사교성과는 거리가 먼. 나쁘고, 짜증 나는, 건방진 여동생. 군더더기 없는 직설적인 파이터다.

Q. 스칼렛 요한슨과 함께 일하는 경험은 어땠나.

플로렌스 퓨 스칼렛 요한슨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놀라운 배우다. 유머러스하고 재미있고, 매우 똑똑하다. 첫 마블 스튜디오 영화를 그녀와 함께 촬영할 수 있어 정말 행운이었다. 난 그저 그녀가 준비해온 것을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Q. 당신과 스칼렛 요한슨의 싸움 장면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면?

플로렌스 퓨 고도로 훈련된 암살자 두 명 사이, 감정적이고 필사적인 싸움. 그들은 아주 오랜만에 마주한 자매고, 그 사이엔 많은 감정이 일렁이고 있다. 싸움 신은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촬영한 장면이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어색함을 깨는 덴 최고더라. 그냥 부엌 카운터에 밀어 넣는 거지!(웃음)

Q. 액션, 신체적인 연기를 하며 어려운 점은 없었나.

플로렌스 퓨 이 일의 가장 멋있는 점 중 하나는 누구라도 당장 하고 싶을 법한 스턴트를 할 수 있다는 거다. 마치 액션으로 가득 찬 꿈같다. 어렸을 때 난 늘 남동생과 나무에서 뛰어내리고 레슬링을 하며 놀곤 했다. 일을 위해 이런 액션을 할 수 있다는 것, 이 자체가 일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뿐이다. 내가 하이킥, 발차기를 꽤 잘 하더라. 춤을 배웠던 터라 움직임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이상하게 잘 한다는 건 늘 좋은 일이다.

(왼쪽부터) <블랙 위도우> 촬영현장의 플로렌스 퓨, 케이트 쇼트랜드 감독, 스칼렛 요한슨.

Q. <블랙 위도우>는 액션 영화지만, 캐릭터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플로렌스 퓨 맞다. 특히 이번 영화는 여자들의 슬픈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나타샤와 옐레나뿐만 아니라, 학대받은 모든 여성들, 그 전체의 굴레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되고 싶은지, 그들의 길을 되찾으려 노력한다. 이런 사이즈의 영화가 이런 이야기에 시도한다는 것,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건 놀라울 정도로 무척 드문 일이다. 케이트 쇼트랜드 감독의 민감함, 아름다움, 정직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Q. 필모그래피의 대부분이 여성들 간의 우정과 관련된 영화로 이뤄져 있는 건 우연인가?

플로렌스 퓨 캐릭터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본인만의 결점, 욕망을 가지고 있는 복잡한 캐릭터를 연기하길 즐기는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도 혼란스럽게 얽힌 여성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는데. <블랙 위도우>는 확실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작품이다. 영화적으로 훌륭한 데다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이기도 하니까.

Q. 코믹스에서 당신의 캐릭터는 다음 블랙 위도우가 된다.

플로렌스 퓨 이런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았고, 솔직한 답변도 잘 모르겠다.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건 ‘위도우’가 한 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상엔 많은 위도우들이 있다. 훈련으로 인해 탄생한, 독특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이들을 위도우라 칭하지 않나. 너무 멋진 경험이었고, 앞으로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웃음) 다음엔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모르겠다.

<블랙 위도우>


글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

사진 제공 월트 디즈니 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