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세대교체, 페이즈 4의 중심이 될 <이터널스>가 드디어 공개됐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거머쥔 클로이 자오 감독을 필두로 안젤리나 졸리, 리차드 매든, 셀마 헤이엑, 마동석 등 전 세계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 <이터널스>는 공개 후 그 어느 개봉작보다 빠르게 극장가에 관객들을 불러 모으며 흥행 중이다.
개성 있는 히어로를 연기한 배우들의 호연 속에서 눈을 사로잡는 배우가 있었으니. 티모시 샬라메 다음으로 할리우드에서 명감독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배우, 베리 케오간이다. 그는 정신계 능력을 소유한 이터널스 멤버 중 한 명으로, 자신만의 신념과 목도한 인간들의 폭력 사이에 고민하는 히어로 '드루이그' 역을 맡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차기작마저 탄탄대로인 그의 출연작 다섯 편을 선정해 봤다.
<덩케르크> 조지 역
2010년 드라마 <잭 테일러>의 단역으로 데뷔해 <스테이>(2013), <맘말>(2015) 등 다양한 작품에서 연기 내공을 다져온 베리 케오간. 그는 마침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눈에 드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그가 출연하게 된 작품이 바로 <덩케르크>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모티브로 만든 이 작품에서 베리 케오간은 '바다'의 영역에서 등장하는 인물 조지를 연기했다. 친구인 피터(톰 글린 카니)와 함께 덩케르크 해변에 고립된 군인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떠나는 도슨(마크 라이런스)의 배에 탑승하게 된 친구가 바로 그다. 타 인물들에 비해 큰 분량은 아니었으나, 배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긴장감을 불어 넣어주며 영화의 마지막까지 꽤나 깊은 인상을 남기고 퇴장했다.
<킬링 디어> 마틴 역
순수해 보이지만 미스터리한 표정,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베리 케오간만의 고유한 마스크의 시발점은 이 작품이었을 테다. <덩케르크>로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그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킬링 디어>를 통해 연기력을 입증했다. 그는 외과 의사 스티븐(콜린 파렐)에게 다가온 미스터리한 소년 마틴 역으로 출연했다. 웃고 있지만 서늘한 얼굴, 제 나이 또래와 다름없이 선해 보였던 마틴이 지닌 비밀과 저주가 폭로되는 순간 스티븐과 그의 가족들은 속절없이 파국을 향해 달려가야만 한다. 감정이 결여된 듯한 사이코패스와 평범하고 무고해 보이는 듯한 소년을 오가는 베리 케오간의 연기는 함께 호흡을 맞춘 콜린 파렐과 니콜 키드먼의 존재감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 후보 노미네이트 및 수상의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
<아메리칸 애니멀스> 스펜서 역
화가가 되고 싶은 대학생 스펜서(베리 케오간). 무료하고 비루한 일상 속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어 줄 순간을 고대하고 있다. 반면, 스펜서에게는 그와 달리 충동적으로 삶을 살고 있는 친구 워렌(에반 피터스)이 있다. 어느 날, 스펜서는 견학 가게 된 대학 도서관에서 존 제임스 오듀본이 쓴 '미국의 새들' 초판을 마주하게 되고 무려 1200달러의 고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 머릿속을 스쳐가는 '특별해지고 싶다'는 생각 하나. 스펜서와 워렌, 여기에 보섹과 체스가 합류하며 네 남자는 책을 훔칠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미국에서 일어난 실제 강도 사건을 다룬 <아메리칸 애니멀스>는 여러 면에서 선을 넘는 영화다. 네 소년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윤리의 선을 넘고, 영화는 실제 인물들이 등장해 과거를 회상, 첨언하는 방식으로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 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때론 파격적이게 움직이는 베리 케오간의 재주는 영화의 신선한 연출과 맞물리며 시너지를 낸다. <아메리칸 애니멀스>는 어둡고 밀도 높은 긴장감이 흐르는 그의 필모그래피들 중에서도 가벼운 쪽에 속하는 편. 킬링타임 용으로도 제격이다.
<폭력의 그림자> 딤프나 역
순박한 소년의 얼굴을 지나 거칠고 날것의 마스크를 택한 베리 케오간은 <폭력의 그림자>를 통해 이미지 변신을 다시 한번 꾀하는 데 성공했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부문에 공식 초청된 <폭력의 그림자>(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상영했다 - 편집자)는 벗어날 수 없는 폭력의 굴레에 갇힌 한 남자의 지난한 인생을 다룬 범죄 영화다. 작은 동네에서 마약을 거래하고 있는 '데버스' 가문. 그 집안의 아들 딤프나(베리 케오간)는 전직 권투선수였던 암 더글라스(코스모 자비스)를 데리고 다니며 온갖 일을 시킨다. 어느 날, 딤프나의 집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고 복수하고자 했던 데버스 가문의 두 삼촌은 암에게 살인 청부를 하기에 이른다.
불량한 노란 머리, 껄렁한 걸음걸이, 자신의 성미에 맞지 않으면 행하는 폭력. 베리 케오간은 터지기 직전의 폭탄과도 같은 태도로 긴장감을 유발하는데 탁월한 배우다. 그는 <폭력의 그림자>에서 자신의 장기를 가감 없이 발휘하여 2021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 남우조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는 성과를 거뒀다. 베리 케오간이 태어난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인 만큼, 그의 팬이라면 챙겨 보시길.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사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린 나이트> 스캐빈저(scavenger) 역
이쯤 되면 알 수 있는 사실. 베리 케오간은 역할과 분량에 상관없이 관객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될 수 있는 재능을 갖춘 배우라는 것. 크리스토퍼 놀란, 요르고스 란티모스에 이어 <고스트 스토리>(2017)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선택을 받은 베리 케오간은 근작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데브 파텔)의 모험담을 소재로 한 <그린 나이트>에서 베리 케오간은 에피소드 '작은 친절' 속 폐허가 된 땅을 뒤지는 이름 모를 행인 역을 맡아 짧지만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천진무구한 얼굴로 갑자기 나타나 가웨인을 쫓아가며 아무렇지 않게 제 비극사를 늘어놓던 소년은 <킬링 디어> 속의 어느 얼굴처럼 날카로운 낯빛을 띈다.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그 얼굴에서 무엇도 읽어내기가 힘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은 기사 가웨인의 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극의 흐름을 단숨에 틀어쥐는 그의 등장은 <그린 나이트>의 또 다른 백미라 할 만하다.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문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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