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완다비전>, <왓 이프(What if...?)>의 스포일러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으므로 주의 부탁드립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즉 닥터 스트레인지 2편은 꽤 기대작이었다. 장장 6년만에 개봉하는 닥터의 두 번째 솔로무비인 것도 있지만, 인피니티 워를 엔드게임으로 이끌며 출연 비중이 크지 않았는데도 짱짱한 존재감을 자랑했던 그의 현재에 대해 많은 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페이즈 4의 이전 개봉작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지난 10여년간 그래왔듯 관객들을 만족시켜 줄 거라는 기대감은 커져 있었다.
여기에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멀티버스를 다룬 시리즈들이 공개되었고, <완다비전>을 통해 스칼렛 위치로 각성한 완다 막시모프가 주역으로 등장 예정이라는 사실이 예고편에서 드러나게 되면서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MCU에서 마법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두 캐릭터가 어떻게 엮여 스토리라인을 메워 나갈지에 대해서였다. 더불어 스파이더맨을 돕는 조력자로서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닥터 스트레인지가 어떤 싸움에 휘말리게 될지도 관심사였다. 거기에 스파이더맨 실사 영화 중 가장 걸작으로 손꼽혀 온 오리지널 스파이더맨의 메가폰을 잡았던 샘 레이미가 연출을 한다는 소식 역시 기대를 증폭시켰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예상은 빗나간 듯 들어맞았고, 개봉 이전 루머도 얼마간은 맞아떨어졌다(이제 루머라기보다는 유출이 맞는 표현이겠으나). 호러를 가미한 히어로무비라는 점도 그랬다. 디즈니의 현재 보유 저작권을 활용한 꽤 재미있는 지점도 있었다. 하지만 평가는 꽤나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거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전세계 관객들에게 있어 여전히 큰 관심사 중 하나인 MCU는, 자체 스트리밍 플랫폼인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스크린을 통해 개봉하는 영화가 주류였던 기존의 채널을 확장해 오리지널 TV 시리즈와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까지 선보이며 MCU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 나가고 있다.
당초 페이즈 4의 타이틀과 장르가 공개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개인적으로는,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일 뿐 실사화 프로젝트에 비견할 수 없을 거라는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부수적인 콘텐츠에 머무를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왓 이프...?>는 MCU 실사영화들의 기존 스토리를 토대로 더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는 데 성공했으며, 멀티버스라는 주요한 소재를 실사화 시리즈와 연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열쇠를 마련하기도 했다. 어쩌면 준비 단계이기도 했을 테고, 디즈니 산하의 MCU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프로젝트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논란도 있었다. 디즈니 플러스는 접근성 높은 OTT 채널이고 많은 사람들이 구독하는 서비스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대중과 관객들에게 열려 있지는 않은 유료 스트리밍 상품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 스크린 개봉작을 전부 보는 것만으로는 이 유니버스의 모든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안 그래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 때에도 높아졌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어왔던 그 진입장벽이 훨씬 더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애석하게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까지만 해도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처럼 보이지 않았던 이 이슈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나고야 만다.
물론 이 모든 채널링 수많은 콘텐츠는 '멀티버스' 즉 다중우주라는 개념을 관객에게 폭넓게 이해시키고, 코믹스 속에 존재하던 개념과 세계관을 실사화 프로젝트를 통해 스크린으로 옮겨오는 토대로서 기능할 것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히어로 코믹스나 서브컬쳐 계열에 조예가 없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다소 어색했던 멀티버스라는 개념이 이제는 비교적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설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MCU가 이 멀티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은 꽤 다양하고 흥미롭다. 이제까지는 판권 문제-소위, 어른의 사정-때문에 원작에서는 절친 혹은 가족인데도 멀쩡히 등장하지 못했던 수많은 캐릭터들이 기존의 실사영화와 다른 유니버스 속에서 원작과 유사하거나 동일한 관계로 스크린 속에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완다비전>에서는 이미 유명을 달리한 MCU의 피에트로 막시모프('스칼렛 위치' 완다의 쌍둥이 오빠) 대신 엑스맨 유니버스에서 꽤 인기를 끈 '퀵실버' 피에트로 막시모프가 등장해 팬들을 흥분시켰으며,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는 드디어 인휴먼즈의 수장 블랙볼트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역대 스파이더맨 3인이 만나 협력하는 모습은 이 멀티버스를 이용한 아주 훌륭한 예시인데, <스파이더맨: 홈커밍>이 선보인 이래 세 명의 피터 파커를 비교하며 이전의 피터 2인을 그리워했던 팬들에게는 선물 같은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멀티버스 개념을 통해 MCU는 이제까지 마블 캐릭터를 다루었던 모든 작품 속 장면을 따올 수 있게 된 셈(물론, 어른의 사정이 해결되어야겠지만...)이다.
즉 멀티버스 덕분에 MCU의 히어로무비는 보다 폭넓은 토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이제는 시간대와 우주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캐릭터 하나를 다루더라도 설정을 바꾸고 주요한 삶의 사건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히어로를 끔찍한 빌런으로 만들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이 모든 걸 시도한 타이틀이 바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다.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고 이 캐릭터는 멀티버스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우주와 우주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때문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두 마법사들은 각자의 욕망 혹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발상을 할 수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단단히 무장도 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번 가능성만 점쳐졌던 오래된 마블의 팀업 '판타스틱 포'의 미스터 판타스틱이 드디어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성공하지 못한 '인휴먼즈'의 블랙 볼트가 다시금(그다지 멋진 모습은 아니었지만) 등장하는 데 성공했다. 거기에 엑스맨 유니버스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프로페서 X(자비에)가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어떤 열쇠와 기회를 주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블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실사화 유니버스는 멀티버스라는 토대 위에서 연결되기 시작한다.
얼핏 상당히 흥미롭게 들리지만, 난데없이 새로운(적어도 이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누군가가 등장하고 갑자기 무언가를 이야기했을 때 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게 '누구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작품 내에서 뭔가를 전부 설명할 수 없다면 결국 진입장벽은 명확해진다. MCU는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통해 일련의 장점 혹은 강점을 얻는 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결국 단점도 감수해야 한다.
일견 야심차게 등장한 캐릭터들은 부질없이 저승행 열차를 탄다. <왓 이프...?>에서 참신한 방식으로 캡틴 아메리카의 기존 스탠스와 유지를 이었던 페기 카터도, 기존과 다른 설정의 캡틴 마블도, 드디어 스크린에 등장해 잠시나마 팬들을 설레게 한 보람도 없이 블랙 볼트와 미스터 판타스틱도 사라진다. 멀티버스를 통해 등장시키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이들을 십분 활용하고 다음 시리즈로 나아가기보다는 어떤 키 카드로 사용했을 뿐 더 이상이 없는 셈(즉, 쓰고 버리는...)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극적인 로맨스를 마무리하면서 슬픔을 간직한 채 무대에서 퇴장했던 완다 막시모프가 왜 그 모든 공작을 벌였는지는, 심지어 <완다비전>을 끝까지 본 사람들도 잘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갑작스럽게 전개된다. 드라마의 종장에서 모든 문제를 받아들이고 한 발짝 나아간 것 같았던 완다는 다시 물러선 듯 이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그건 어떤 측면에서는, 이전보다 강하고 견고해진 닥터 스트레인지를 상대할 만한 빌런이 없었기 때문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상술한 지점 말고도 이 영화에 대해 유독 호평과 혹평이 공존하는 이유는 더 많다. PC함을 고수하면서 개연성을 잃었다고 지적하는 의견도 있고, 등급에 비해 너무 잔인한 묘사를 꼽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MCU가 10년 이상을 지속해 오면서 계속해서 제기되어 왔던 진입장벽인 것처럼 보인다. 이제 MCU는 완전히 새로운 히어로의 기원을 다루는 경우가 아니라면(심지어는 그런 경우에도 일부는)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봐야 할 콘텐츠가 존재하고,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해야 할 수도 있다.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는 연계된 콘텐츠를 소비하게 하니 단편적으로는 괜찮은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체제가 반복되었을 때 정말로 '인피니티 사가'가 그랬던 것처럼 범대중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거기에 슬픈 얘기지만, 영화에 관심이 생겨 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하더라도 콘텐츠를 처음부터 끝까지 여유 있게 볼 사람보다는... 유튜브에서 빠른 요약본을 볼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 같다. 그 이상의 뭔가를 소비하게 하려면 일반적인 재미 이상의 걸출한 매력이 필요할 것이다. 뭔가 더 궁금하게 하고 전체 스토리를 보고 싶어하게 하는.... 하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요약하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수많은 기대 속에 출발했고, 이 기대치에도 '잘 만든 히어로무비'라는 점에서 호평할 수 있는 타이틀이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새로운 이야기라서, 멀티버스라는 개념에 대해 MCU가 상정하고 있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MCU의 마법사 두 명이 맞붙는 장면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히어로 소재의 콘텐츠가 이곳저곳에서 제작되고 있는 근래의 시장 전체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볼만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동시에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높은 진입장벽이 생긴 작품이기도 하며, 팬들에게는 너무 쉽게 소비되는 기존 캐릭터들 때문에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기도 하다. 결국 양날의 검이다.
아마도 MCU는 지금까지의 높은 인기와 대중성, 인지도를 토대로 자체 콘텐츠를 자체 채널에서 공급하고 이 이야기들과 스크린 상영작의 연계를 통해 계속해서 가도를 이어가려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무작위의 어떤 작품으로 처음 이 실사화 유니버스를 접하고, 관심사를 계속해서 늘려 가게 하고 싶다면 진입장벽은 이보다 더 견고해 져서는 안 된다. 적어도 독점 콘텐츠를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주요한 전개 방식으로 가져가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MCU라서 할 수 있는 용감한 결정이겠으나, 언제나 그랬듯이....지나친 자신감은 독이 될지 모른다. 어쩐지 이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왠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게 하는 데가 있다. 넘치는 자신감 때문에 역으로 불안감이 드는...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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