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파치노.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할리우드의 대배우 가운데 한 명이다. 4월 25일은 그의 생일이다. 전설로 남을 배우의 삶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미국의 영화 정보사이트 IMDb를 주로 참고했음을 밝힌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알 파치노는 1940년 4월 25일 미국 뉴욕의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그가 아주 어릴 때 이혼했다. 학교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알 파치노는 17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빈민가인 사우스 브롱크스에서 살았던 그는 꽤 거친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 그는 너무 가난해서 연극 무대 오디션에 갈 버스비조차 없었다.
연극무대에서 인정받다
알 파치노는 영화 데뷔 이전 꽤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 섰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열광적인 팬이기도 하다. 1966년 리 스트라스버그의 ‘액터 스튜디오’에서 메소드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1968년 오프-브로드웨이 연극인에게 수여하는 오비상(Obie Award)을 받았다. 1969년 브로드웨이 데뷔 이후에 토니상(Tony Award)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모두가 우려한 <대부> 출연
알 파치노는 1969년 <미, 나탈리>라는 영화로 데뷔했다. 1971년 <백색공포>에서 약물중독자 역할로 첫 주연을 맡았다.
이듬해, 그의 인생은 바뀐다. 알 파치노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에 출연했다. 마이클 콜레오네 역은 많은 배우들이 탐냈다. 로버트 레드포드, 워렌 비티, 잭 니콜슨, 라이언 오닐, 로버트 드 니로가 후보였다. 코폴라 감독은 무명에 가까운 알 파치노에게 그 역을 맡겼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많은 사람들이 코폴라의 결정에 우려를 표했다. 알 파치노 자신도 촬영장에서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모든 걱정과 우려는 기우였다. <대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대성공했다. 물론 그 성공의 중심에는 알 파치노가 있었다.
<대부>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말론 브란도), 각색상(마리오 푸조)을 받았다. 알 파치노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남우조연상은 밥 포시 감독의 뮤지컬 영화 <카바레>의 조엘 그레이에게 돌아갔다.
1970년대의 전성기
<대부> 이후 알 파치노는 전성기를 누렸다. <형사 서피코>(1973), <대부 2>(1974), <뜨거운 오후>(1975)까지 3년 연속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수상은? 실패했다.
오스카 트로피는 계속 그를 피해다녔다. <용감한 변호사>(1979)로 네 번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의 더스틴 호프만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알 파치노가 출연을 거절한 역할이었다. 오스카 트로피와의 악연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전에 알 파치노가 먼저였다.
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알 파치노는 1980년대 접어들면서 주춤했다. <스카페이스>(1983)가 유일하게 눈에 띈다. 하워드 혹스 감독의 1932년작을 리메이크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스카페이스>는 알 파치노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갱스터 영화에 대한 오마주가 담긴 <스카페이스>에서 알 파치노가 연기한 토니 몬타나는 광기 어린 모습을 보여줬다. 차갑고 냉정한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와는 다른 갱스터의 전형을 연기했다. <스카페이스>는 코엔 형제의 각본으로 다시 한번 리메이크된다.
<스카페이스> 이후 출연한 <혁명>(1985)은 알 파치노 연기 인생 최악의 실패작으로 남았다. 이후 그는 연극 무대로 돌아갔고 한동안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다.
1990년대, 전설이 되다
1990년 알 파치노는 <대부 3>에 출연했다. 영화는 전작과 같은 극찬을 받지 못했지만 알 파치노의 복귀를 선언하기에는 충분했다. 같은 해 개봉한 갱스터 코미디영화 <딕 트레이시>로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다섯 번째 후보 지명이었다.
1993년 드디어 알 파치노는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게 됐다. 첫 후보 지명 이후 21년 만이었다. 탱고 춤으로 유명한 <여인의 향기>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시력을 잃은 퇴역 장교 프랭크를 연기했다. 같은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는 <그렌게리 글렌 로스>로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1990년대 알 파치노는 다시 전성기를 맞는다. 할리우드의 전설이 되어간 시기라고 봐도 좋겠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과 다시 함께한 갱스터 영화 <칼리토>(1993),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출연한 마이클 만 감독의 <히트>(1995), 자신이 직접 연출까지 맡은 <뉴욕 광시곡>(1996), 조니 뎁과 출연한 <도니 브래스코>(1997), 러셀 크로와 함께 출연한 <인사이더>(1999) 등 그가 출연하고 감독한 작품들이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데블스 에드버킷>(1997)과 <애니 기븐 선데이>(1999)도 빼놓기 섭섭한 작품이다.
2000년 이후 차기작을 기대하며
2000년 이후 알 파치노는 과거와 같은 영광을 다시 재연하지 못하고 있다. <시몬>(2002), <인썸니아>(2002), <엔젤스 인 아메리카>(2003), <베니스의 상인>(2004), <오션스 13>(2007) 등에 출연했지만 크게 주목받은 작품은 없다. 단독 주연보다는 주로 조연으로 출연한 작품이 많다. 2010년 이후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맹글혼>(2014), <대니 콜린스>(2015) 등에서 주연을 맡긴 했지만 역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다.
<대부>, <스카페이스>, <인사이더>와 같은 영화를 알 파치노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명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알 파치노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2017년 개봉을 기다리는 영화 <다브카>, <더 트랩> 등이 있다.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아이리쉬맨>은 특히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작품이다.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가 다시 만나는 작품이다.
알 파치노에 대한 몇 가지 소소한 사실들
- 알 파치노는 할리우드의 유명한 독신남이다. 한번도 결혼한 적이 없다. 그에게는 세 명의 딸이 있다. 연기 코치 잰 태런트 사이에서 한 명, 오랜 연인이었던 배우 비버리 디안젤로 사이에서 쌍둥이를 낳았다. <대부>에 함께 출연했던 다이안 키튼과도 오랜 연인 사이였다.
- 알 파치노는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스타워즈> 시리즈의 한 솔로 역을 거절한 적이 있다. 또 <지옥의 묵시록>, <7월4일생>, <귀여운 여인>, <크림슨 타이드>의 출연도 거절했다.
- 알 파치노의 모계는 <대부>에 등장한 시칠리아 콜레오네 출신이다. 부계 역시 시칠리아 출신이다. <대부 2>에서 알 파치노의 이름이 왜 마이클 ‘콜레오네’인지 알 수 있다.
- 알 파치노는 지독한 애연가였다. 1994년 하루 두 갑씩 피던 담배를 거의 끊었다. 이제는 아주 가끔 핀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하루 네 갑씩 피웠다고 전해진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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