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A. 로메로 감독(1940~2017)이 7월16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7세. 평생 사랑했던 영화 <말없는 사나이>(1952)의 사운드트랙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고 한다. 1968년 데뷔작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을 내놓은 이래 호러에 대한 애정이 물씬 풍기는 커리어를 이어오며 "좀비영화의 아버지", "시체들의 대부"로 추앙받아왔다. '살아 있는 죽음'을 그토록 사랑했던 로메로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 발자취를 정리해보았다.

<말 없는 사나이>의 메인테마

아동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로메로는 학부를 졸업하고 곧장 단편영화, 광고업계에서 일했다. 그의 초기 커리어에서 늘 먼저 언급되는 이름은, 어린이 프로그램 <로저스 씨네 동네>를 30여 년간 이끌어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회자되는 프레드 로저스다. 일찌감치 로메로의 재능을 알아본 로저스는 <로저스 씨네 동네>의 12개 에피소드('로저스 씨, 편도선 수술 받다', '전구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등)의 연출을 맡겼다. '호러 킹' 로메로의 초기 작업이 어린이 프로그램이라니,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로메로는 "아직도 '로저스 씨, 편도선 수술 받다'는 지금껏 내가 만든 영화 중 가장 무시무시하다고 농을 치곤 한다. 그걸 만들려고 아등바등 할 때 난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으니까"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전설적인 데뷔작

차근차근 경력을 쌓은 로메로는 친구들과 함께 프로덕션 '이미지 텐'을 세워 29세에 데뷔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을 제작/연출했다. 11만 달러를 겨우 웃도는 저예산(컬러영화가 보편화됐던 시기에 흑백영화로 제작된 것 역시 그 때문이다)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제작비 대비 263배에 달하는 수익을 거뒀고, 수십 년 전부터 좀비영화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좀비영화의 시작점'으로 회자되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창궐한 좀비로부터 한 농가가 쑥대밭이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는, 부패한 모습으로 느릿느릿 걸어와 인간의 육체를 뜯어먹는 좀비의 형상을 실감나게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인종-계급-성별에 의한 갈등을 보여주면서 당대 미국 사회에 대한 날선 비판까지 보여주었다. 현대 공포영화의 결정적 순간.

포스터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현장
현장에서 스탭들과 함께
저작권이 소멸돼 유튜브에서도 '합법적으로' 전편을 감상할 수 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감독 조지 로메로

출연 두안 존스, 주디스 오디, 칼 하드먼, 마릴린 이스트만

개봉 196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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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좀비영화
<시체들의 새벽>
<시체들의 날>


로메로의 연출 필모그래피는 좀비영화로 시작해 좀비영화로 끝맺는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어마어마한 성공 이후, 소비에 매달리는 미국 사회의 물신주의를 풍자하는 <시체들의 새벽>(1978), 소련과 군비경쟁을 벌이던 레이건 시대에 대한 조롱을 담은 <시체들의 날>(1985)을 만들었다. 2000년대 초 <28일 후>(2002)와 <새벽의 저주>(2004)와 같은 좀비영화 붐으로 다시 한번 존재감을 과시하며 내놓은 2005년 <랜드 오브 데드>, 2007년 <다이어리 오브 데드>, 2009년 <서바이벌 오브 더 데드>까지 40년간 총 6편의 좀비영화를 연출한 셈이다. 이 작품들은 시리즈를 관통하는 특정 캐릭터나 설정 같은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체'(Dead) 시리즈로 불린다.

<랜드 오브 데드>
<다이어리 오브 데드>
<서바이벌 오브 더 데드>

非좀비물도 많이 만들었다

유작 <서바이벌 오브 더 데드>까지, 로메로는 총 16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영화 <그곳엔 항상 바닐라가 있다>(1971)는 무려 로맨틱코미디였고, 1981년에 발표한 7번째 영화 <모터싸이클의 기사들>은 기사 복장을 한 채 모터싸이클 순회공연을 펼치는 밴드를 그린 액션 드라마였다. 나머지 10개는 모두 호러물이다. 치명적인 생화학 무기를 피해 도시를 탈출하는 과정을 담은 <미치광이들>(1973), 스티븐 킹이 처음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쓴 <크립쇼>(1982), 지능을 가진 무시무시한 원숭이를 내세운 <어둠의 사투>(1988) 등이 특히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터싸이클의 기사들>
<미치광이들>
<크립쇼>
<어둠의 사투>

연기도 했다
<마틴>의 하워드 신부

영화감독들의 흔한 취미인 '자기 영화에 출연하기'를 로메로 역시 즐겼다. 연출한 16편 가운데 7편에 기자, 시장, 신부, TV 감독, 좀비, 경찰관, 인형사 등으로 분했다. 물론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출연 모습이 담긴 이미지조차 구할 수 없을 만큼의 작은 역할이었지만. 로메로가 가장 좋아하는 자기 작품으로 손꼽는 <마틴>(1978) 속 하워드 신부는 출연 분량이 긴 축에 속한다. 유일하게 다른 감독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바로 조나단 드미의 호러 클래식 <양들의 침묵>(1990)이다. 클라리스(조디 포스터)가 렉터 박사(안소니 홉킨스)를 찾아가는 대목에서 위험에 처할 뻔한 그녀를 둘러싸는 FBI 요원들 중 하나가 로메로다. 조나단 드미가 피츠버그에서 촬영하며 그 도시에서 수많은 영화를 만든 로메로에게 카메오 역을 제안하면서 성사된 출연이었다.

<양들의 침묵>
양들의 침묵

감독 조나단 드미

출연 조디 포스터, 안소니 홉킨스, 스콧 글렌

개봉 1991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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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데드>와 <월드워 Z>를 좋아하지 않았다
<워킹 데드>

로메로는 지난 인터뷰에서 "<워킹 데드>와 <월드워 Z>가 좀비물을 죽였다"고 토로했다. 거대한 예산이 투입된 <월드워 Z>가 저예산으로도 가능했던 좀비영화의 제작규모를 턱없이 올려놨고, 좀비 자체도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다는 의견. 더불어 "<월드워 Z>는 고어물에 대한 것도, 호러 요소를 넣은 것도 아니다. 나는 늘 좀비물에 메시지를 담으려고 노력했다"며 지금껏 만들어온 좀비영화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워킹 데드>는 "좀비가 드문드문 등장하는 연속극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로메로의 필모그래피는 2009년 <서바이벌 오브 더 데드> 이후로 멈춰있을 수밖에 없었다.

<월드워 Z>

로메로가 사랑했던 영화들
마이클 파웰 & 에머릭 프레스버거 <호프만의 이야기> (1951)
하워드 혹스 & 크리스찬 나이비 <괴물> (1951)
존 포드 <말 없는 사나이>(1952)
오손 웰스 <오델로>(1952)
엘리아 카잔 <워터프론트>(1954)

로메로가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영화 다섯 편이다. 그가 청소년기를 보냈던 1950년대에 발표된 작품들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괴물>은 공포에 떨면서 본 첫 영화이고, <호프만의 이야기>는 영화를 만들게끔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생애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위에 언급했듯, 존 포드의 <말없는 사나이>(한국 개봉제목은 '아일랜드 연풍')도 꾸준히 리스트에 포함시켜왔다.

<괴물>
<말없는 사나이>
<호프만의 이야기>
호프만의 이야기

감독 마이클 포웰, 에머릭 프레스버거

출연 모이라 시어러, 루드밀라 체리나

개봉 1951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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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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