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는 누가 죽였나, 그것이 알고 싶다. 유화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는 반 고흐가 죽은 지 1년 뒤를 배경으로 한다. 반 고흐는 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 고흐의 지인이었던 우체부 룰랭(크리스 오다우드)은 아들 아르망(더글러스 부스)에게 반 고흐의 마지막 편지를 그의 동생 테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테오의 행방을 찾았을 때 그는 이미 죽고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아르망은 반 고흐의 주치의였던 가셰 박사를 만나러 간다. 아르망은 가셰 박사를 만나기 전, 반 고흐가 사망한 장소인 라부 여관에 묵는다. 아르망은 그곳에서 반 고흐의 죽음에 관해 한 마디씩 보태는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수만 장의 유화와 800장의 편지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세상에 누가 애니메이션을 100% 유화로 작업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마는, 반 고흐의 삶을 스크린에 옮기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기법은 없을 것이다. 반 고흐는 생전에 900여 점의 유화를 남겼으나 팔린 작품은 단 한 점뿐이었다. 살아 있을 땐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던 그가 죽어서는 숱한 이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들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맨 공동감독은 <러빙 빈센트> 프로젝트에 참여할 화가들을 모집했다. 참가 희망자 4천여명의 지원을 받고 3주간 고흐와 고흐의 화풍에 대한 교육을 진행한 뒤 최종적으로 107명의 화가들을 선발했다. 그들은 2년간 62,250점의 유화를 그렸고 완성된 유화에 덧칠하며 움직임을 만드는 식으로 애니메이션을 완성해갔다. 영화에 쓰인 고흐의 그림은 120여점, 화가들은 배우들이 사전에 촬영한 영상을 다시 유화로 작업하는 방식으로 프레임을 채워갔다. CG는 일절 쓰이지 않았다. 미술관에서나 보던 고흐의 그림이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모든 장면이 경이롭다.

<우체부 룰랭의 초상>

삶의 매 순간이 드라마틱했던 반 고흐의 일대기를 모두 담기엔 부담스러운 작업이었을 터다. 반 고흐가 어떤 유년기를 보냈는지, 어쩌다 오베르까지 닿게 되었는지도 스케치하듯 쓱쓱 설명하긴 하지만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그의 생에서도 가장 극적인, 죽음의 시기를 중점적으로 다룬 듯하다. 생전에 반 고흐는 가까운 지인의 초상을 자주 그렸다. 소심한 화가가 모델을 부탁할 만큼 그들은 반 고흐에게 호의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반 고흐는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룰랭은 노병이 젊은 병사에게 하듯, 진중한 마음과 다정함으로 나를 대해주었어라고 표현했다.

우체부 룰랭을 연기한 크리스 오다우드.
아르망을 연기한 더글러스 부스.

룰랭 부부는 가까이 살 땐 반 고흐의 가족이 되어주었고, 반 고흐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늘 그를 염려해주었다. 반 고흐는 룰랭과 룰랭 부인, 그들의 자녀들까지도 종종 그림으로 그렸다. 반 고흐의 삶을 추적해나갈 주인공으로 삼기에 반 고흐와 적당히 연이 있고, 적당히 객관적이며, 적당히 의욕적일 수 있는 사람으로는 룰랭의 아들 아르망이 적격이었다. 반 고흐가 남긴 초상과 기록으로 보면, 아르망은 <러빙 빈센트>에서처럼 실제로도 차분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르망은 편지 전달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테오의 사망을 확인한 뒤에도 보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편지를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르망은 반 고흐가 사망한 곳으로 가 그가 죽기 직전 만나고 다녔을 사람들을 탐문하고 다닌다.
 

<그것이 알고 싶다> 풍의 미스터리한 구성
페르 탕기를 연기한 존 세션스.
가셰 박사를 연기한 제롬 플린.

아르망은 페르 탕기(존 세션스)를 만나 테오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수신인이 사라진 편지를 누구에게 전해야 할까 망설이던 아르망은 일단 반 고흐의 마지막을 살펴준 의사 가셰(제롬 플린)를 만나기로 한다. 가셰 박사 집의 깐깐한 가정부 루이스(헬렌 맥크로리)를 만난 아르망은 반 고흐가 머물다 죽은 라부 여관에 묵는다. 라부 여관의 주인은 간 데 없고, 딸 아들린(엘리너 톰린슨)이 아르망을 맞이한다. 아르망은 아들린을 통해 가셰 박사가 반 고흐의 총상을 치료하지 않고 두었으며, 가셰의 딸 마르그리트(시얼샤 로넌)가 반 고흐와 무척 친하게 지냈고 함께 종종 뱃놀이도 다녔다는 얘길 전해 듣는다.

마르그리트를 연기한 시얼샤 로넌.
뱃사공을 연기한 에이단 터너.
르네를 연기한 마르신 소신스키.

아르망은 뱃사공(에이단 터너)을 만나 그에게서 마르그리트와 반 고흐가 가끔 뱃놀이를 다녔으며, 반 고흐는 모멸감을 참으면서까지 동네의 불량한 부호 청년 르네(마르신 소신스키)로부터 자주 술을 얻어먹었다는 새로운 정보를 입수한다. 아르망은 마르그리트를 만나 가셰가 예술에 깊은 관심을 두어 반 고흐의 천재성을 다소 질투했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듣는다. 마을을 배회하는 동안 아르망은 반 고흐의 죽음이 타살일 수도 있으며, 르네가 술에 취해 자주 빈 총을 사람들에게 겨누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불어 반 고흐가 모든 사람이 생각하듯 그리 광인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 고흐는 어떻게 죽게 된 것인가. 자살인가, 타살인가. 반 고흐의 마지막 편지는 누구에게 전해져야 하는가. 아르망은 고민한다.

만일 실사영화였다면, 반 고흐의 사망 시점을 되짚으며 관련 인물을 탐문하고 사망의 진정한 원인을 추리해내는 스릴러적 구성이 그다지 새롭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러빙 빈센트>는 반 고흐의 명화들, 영혼과 정성을 담은 화가들의 수고에 힘입어 끝내 감격을 맛보게 한다. 스크린을 들여다보는 내내 화가들의 손끝의 움직임이 생생히 느껴지는 기이한 감흥.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우체부 룰랭의 초상>, <가셰 박사의 초상>, <자화상>까지…. 반 고흐가 그렸고 우리에게 몹시 익숙한 그림들이, 마치 해리 포터시리즈의 예언자 일보에서처럼 멈춰 있다 움직이는 순간은 절로 경탄을 터뜨리게 만든다. 비록 생은 불행했으나 반 고흐의 그림과 삶이 시공을 초월해 현재까지 아름다운 영감을 전하는 이유를 알게 한다. 아마도 이보다 반 고흐와 반 고흐의 작품을 힘 있게 표현한 영화는 더이상 나오기 힘들 것이다.

추가
<러빙 빈센트> 스토리텔링 30초 예고편
러빙 빈센트

감독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맨

출연 더글러스 부스, 제롬 플린, 시얼샤 로넌, 에이단 터너

개봉 2017 영국, 폴란드

상세보기

씨네플레이 에디터 윤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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