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홍! 김자홍! 지금 막 망자가 된 자홍(차태현)이 자기를 부르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훤칠한 저승사자 같은 해원맥(주지훈)의 옆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덕춘(김향기)이 보인다. <신과함께-죄와 벌>(이하 <신과함께>) 속 김향기는 지금까지 맡았던 캐릭터들보다 훨씬 밝을 거라는 게 대번에 느껴진다. "자홍이 죽은 과정을 바로 앞에서 본 거잖아요. 자신을 희생해서 사람을 구하는 걸 목격하고 굉장히 감동받은 거죠. 덕춘이의 성격이라면 곧장 대단하다는 표정이 나와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라마 <여왕의 교실>, 영화 <우아한 거짓말>과 <눈길> 등 지난 작품들에서 미소보다는 눈물이 먼저 떠오르는 사춘기 소녀를 연기했던 김향기였기 때문에, <신과함께>를 여는 그 웃음이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되 유머와 감동을 한데 담은 영화는, 때마다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덕춘의 마음을 따라 명암을 달리한다.

덕춘은 웹툰 원작과 영화 사이 달라진 게 거의 없는 캐릭터다. 바가지 머리를 한 여자애 같은 외모나 똘망똘망하지만 아주 똑 부러지진 않는 행동, 감쪽같은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만화는 얼굴 표정이나 감정이 전달되는 데에 한계가 있잖아요. 주호민 작가님은 말풍선 속 대사 하나하나에 이 아이가 실존해 있는 것 같은 디테일을 심어놓으셨더라고요. 굉장히 사랑스러운 친구라는 걸 느낄 수 있었죠." 자홍, 강림, 해원맥 등의 영화 속 주요 캐릭터를 향한 의견이 뚜렷하게 갈라지는 가운데, 덕춘에게는 대개 호감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 또한 그 무한한 사랑스러움에 있을 것이다.  

사진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덕춘은 차사로서 자홍의 변호를 맡아야 하기 때문에 대사가 일상생활에서 쓰이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대사 연습을 특히 많이 해야 했다. "덕춘은 설명해야 하는 게 많고 또 자기 감정을 많이 이입해서, 표현할 때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굉장히 어색하게 받아들이질 수 있어요. 제 목소리가 굉장히 낮은데, 덕춘이의 밝은 톤을 유지하면서 낯선 대사를 전달하는 게 중요했죠."

어렵게 촬영한 신들 역시 까다로운 대사와 연관된 것이다. 이를테면 나태지옥에서 초강대왕(김해숙) 앞에서 하는 변론.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그 부분에 '웅변학원 톤으로'라고 적혀 있는 거예요. 웅변이 뭔지는 알아도 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엄마한테 먼저 물어보고 영상들을 찾아봤어요. 보고서 덕춘이 특유의 웅변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덕춘의 변론은 무조건 당차고 올곧은 연사(演士)보다 옛 무성영화 시절 변사(辯士)의 대사처럼 들린다. 수많은 감정들이 어려 있는 듯한 목소리 말이다.

이승으로 내려간 강림(하정우)의 입장에서 변론하는 대목은, 기존의 덕춘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 시나리오를 보면서 걱정부터 앞섰다. "강림과 연결된 거라 단어 하나하나 딱딱 날카롭게 전달해야 하잖아요. 촬영 때 감독님이 '결기 있게'라고 짚어 얘기해주셨는데, 그 느낌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대사는 여기까지 나오고, 하면서 현장 가서 동선을 맞추면서 연습해보니까 결국 되더라고요. 생각보다 잘 나왔어요!" 에디터 역시 동의하는 바다.

여왕의 교실 / 우아한 거짓말

김향기 하면 떠오르는 것. 얼굴 안에 가득 들어차 있는 감정이다. 커다란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지 않더라도, 그 인물이 품고 있는 커다란 마음이 펄떡이는 것 같다. 매순간 감정이 확연해 보일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묻자 김향기는 '현장'의 힘을 이야기했다. "촬영하기 전 현장에 발을 내디뎠을 때 훅 올라오는 게 있어요. 저도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그 감정을 느끼는 상태에서 인물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사를 하고, 상대 배우분들과 호흡을 맞추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인터뷰 당시, 나누는 이야기에 따라 어느새 바뀌어 있는 김향기의 표정들에서도 그 비결을 엿볼 수 있었다.

출처 - 김향기 인스타그램

감정적으로 부침이 많은 캐릭터를 거쳐왔지만 그에 대한 후유증이 깊게 남는 편은 아니라고 한다. "일단 다른 작품을 하게 되면, 거기에 온 신경이 쏠리기 때문에 전에 했던 건 금방금방 잊어버리는 편이에요. 학교 생활을 하다보면 친구들도 만나니까 저절로 풀리는 것도 있고요." 올해 들어 고3이 되는 김향기는 보통 10대 배우들보다 더 학업 활동도 열심히 이어나가고 있다. 1~2부 합쳐 근 1년간 <신과함께>를 촬영할 때에도 학교 생활엔 특별한 지장이 없었다고. "배우 활동을 하면서 학교 친구들이 없으면 굉장히 외로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제가 작품을 그렇게 많이 하는 편은 아니라 학교 생활도 가능했겠죠. 1년에 한 작품씩, 학업도 병행하면서 무리 없이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큰 행운이에요."

늑대소년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많은 아역배우들이 부모의 뜻에 따라 연기를 시작한다. 언제든 스스로 이걸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옛날부터 연기가 힘들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막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요. 그런데 <늑대소년>이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찍고 났을 때 쉬는 동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심심했어요. 그때 문득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확 들어서 그때 내가 연기를 좋아하는구나 느꼈던 것 같아요." 평생 연기 하고 싶냐고 묻자, 곧장 "그럼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릴 적부터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해나갈 연기의 매력은 무엇일까. "다른 인물을 표현하는 거에 푹 빠져서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저한테 잘 맞아요. 사실 그냥 좋아요. 연기하는 게."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은, 다중인격 캐릭터. 드라마 <킬미, 힐미>에서 배우 지성이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걸 보고 크게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같은 얼굴을 하고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물론 엄청엄청~ 스트레스 받고 힘들겠지만, 결국 새로운 매력을 느끼고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근래 본 영화들 가운데 유독 인상깊게 본 연기 역시 <23 아이덴티티>의 제임스 맥어보이, <스텝포드 와이프>의 니콜 키드먼 같은, 우리 주변과 전혀 다른 캐릭터였다. 우리가 지금껏 작품들 속에서 봐온 김향기가 다분히 '현실적인' 인물이었다는 게 새삼 떠올랐다.

사진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아역'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내려놓는 것. 어려서부터 연기를 시작한 배우들이라면 대부분 고민에 빠지는 지점이다. 김향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그에 대한 스트레스가 굉장히 컸다. 다만 지금은 보다 가벼워졌다. "작년부터 생각이 좀 변했어요. 지금 이 현재에 충실하자,라는 생각을 많이 갖게 됐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연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좋으니 이걸 충분히 즐기자, 하고 있어요."

살아생전의 덕춘의 사연을 그리는(그래서 1부보다는 덜 밝은 김향기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2부 <신과함께-인과 연> 외에도 김향기의 또 다른 신작 <영주>가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동생과 힘겹게 살아가던 소녀가 자신의 부모를 죽게 한 사람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스틸 속 영주의 서늘한 얼굴에서 '어린 사람'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 내 자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줄 작품"이라 "배우로서도 성장하고, 나 김향기도 더 단단해질 것 같다"는 의지를 전한 바 있다.

영주
신과함께-죄와 벌

감독 김용화

출연 하정우, 차태현, 주지훈, 김향기, 김동욱, 마동석

개봉 2017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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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