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길을 운전하던 어떤 남자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마주친 여자에게 길을 묻는다. 그 여자는 남자에게 길을 가르쳐줬고 그렇게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 남자와 여자는 며칠간 사랑을 나눴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진 두 남녀는 서로를 평생 그리워했다.

아무런 설명 없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떤 영화를 떠올리실지 정말 궁금하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정말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으니까. 당연히 이런 감정을 느껴본 사람들이 많아서 그럴 거고 그런 애틋한 느낌들은 세월이 지나도 마음 한켠에 숨어 있다가 문득문득 고개를 들게 된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이야기다.

영화는 꽤 긴 시간 만나지 않았던 남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와서 절차를 상의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어머니의 유언은 화장을 해 유골을 로즈먼 다리에 뿌려달라는 것.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유언 때문에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유품을 정리하던 중 나온 노트. 그 노트에 적혀 있던 4일간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내용이다.

잡지 사진을 찍기 위해 매디슨 카운티에 온 사진작가 로버트는 매디슨 카운티에 사는 프란체스카를 만난다. 남편과 아이들이 집을 비워 혼자 지내고 있던 프란체스카는 로버트에게 호감을 느낀다.
 
남편은 딱히 나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지만 매일 반복되는 15년간의 일상에 지친 그녀는 로버트를 집으로 초대하고 같이 브랜디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외도를 하게 된다.   

로버트는 그녀와 같이 살고 싶은 마음에 자신과 같이 떠나자고 그녀를 설득하지만, 프란체스카는 사랑과 생활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생활을 택한다. 그리고 죽을 때 내 인생을 내 가족에게 바쳤으니 남은 것은 그 사람에게 주고 싶구나라는 말을 남긴다.

영화 속에서 술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왠지 영화를 보다가 둘이 브랜디를 마시는 장면에서 브랜디의 향이 저 거실을 꽉 채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위스키는 맛으로, 브랜디는 향으로 먹는다고도 하는데 두 술 모두 맛과 향이 훌륭하지만 특히 브랜디의 향에 매료된 팬들이 많다.

보통 포도를 발효시킨 후 이를 다시 증류한 것을 브랜디라고 하지만, 원래 브랜디는 과일주를 증류해 만든 술을 총칭하는 말이었다. 그러다 과일 중 포도를 발효시킨 후 증류한 브랜디가 유명해지면서 다른 과일을 사용해 만든 브랜디는 ‘살구(애프리콧) 브랜디라든가 하는 식으로 다른 과일의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참고로 사과 브랜디는 칼바도스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불린다.

브랜디를 만드는 과정은 대강 다음과 같다. 포도를 발효시켜 원주(엄밀히는 다르지만 대강 와인이라고 생각해도 큰 무리는 없겠다)를 만든 후 이를 보통은 두 번 증류해서 브랜디의 증류 원액을 만든다. 만들어진 증류 원액은 수년간 오크통에서 숙성되는데 보통은 숙성 연수가 길수록 고급 브랜디로 친다.

오크통에서 숙성된 여러 브랜디들은 위스키나 다른 숙성 증류주와 마찬가지로 증류 당시의 재료, 즉 포도의 품질, 증류기의 상태, 원액의 컷 지점(증류기에서 나온 원액은 증류 초기, 중간 부분, 끝부분의 품질이 다 다르며 보통은 중간 부분의 원액만을 쓴다), 오크통의 품질, 숙성 연도와 보관 환경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데 보통은 증류소의 마스터 디스틸러가 이 수많은 원액들을 일일이 향을 검사한 후 섞어서 일정한 품질로 만들어 출하시킨다. 따라서 대부분의 블렌디드 위스키처럼 브랜디 역시 빈티지가 없다.

수많은 브랜디 중 프랑스 꼬냑 지방에서 만드는 브랜디가 특히 유명해서 보통은 꼬냑 이외의 브랜디를 마셔볼 기회가 거의 없는 편인데 아르마냑에서 나오는 브랜디들도 가격대 성능비가 꽤 괜찮다. 까뮤, 헤네시 등의 브랜드가 유명한 편인데 개인적으로는 구하기 쉬운 것들 중 쿠르부아지에 XO와 꼬냑 치고는 특이하게 바다 내음을 품고 있는 일 드 레를 선호하는 편이다.

일 드 레. 일부러 바닷가에서 숙성시켜 갯내음을 배게 만든 꼬냑.

많은 증류주들이 칵테일의 베이스로도 쓰이지만 브랜디는 다른 증류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칵테일의 베이스로 덜 쓰이는 편이다. 아무래도 가격 문제가 제일 클 것이고 향이 강한 술이다 보니 그런 것 같은데, 혹시 브랜디로 만드는 대표적인 칵테일인 사이드카를 좋아하시는 분이 있다면 바에서 흔히들 쓰는 레미마틴 VSOP 대신 헤네시 VSVSOP로 드셔보시라고 권유 드리고 싶다. 새로운 사이드카를 만나실 수 있을 것이다. , 바에 따라서는 추가 요금을 낼 수도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의 감정은 비슷하다는 거였다.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뭔가 세상이 바뀌면서 나도 바뀔 것 같은 희망으로 살았지만 막상 어른이 되었을 때 나는 여전히 나였고 첫 경험을 하고 나면 뭔가 천지가 개벽할 것 같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였다. 결혼 전엔 결혼하고 나면 뭔가 진정한 어른이 될 것 같았지만 글을 쓰는 지금 아들넘이 옆에서 만화책을 읽고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나는 그냥 나였다.

내가 20대 때 느낀 저런 이성에 대한 설렘이 저 나이에도 있을 수 있는 거고, 답답한 현실에 대한 불만 역시 세대에 상관없이 똑같은 거였다. 심지어 두 나이 지긋한 이성이 이런저런 감정을 교환하며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면서 나는 내내 내 미숙했던 스무 살여 무렵 연애할 때가 떠올랐었다. 물론 그 둘은 진하고 향긋한 브랜디 향을 즐기며 가까워졌고 난 소주의 알코올 냄새에 진저리를 쳤었지만.

뭐 좀 진지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를 보며 불편해할 분들도 분명히 있겠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희대의 명문장도 그렇거니와 내 인생을 내 가족에게 바쳤으니 남은 것은 그 사람에게 주고 싶구나라는 마지막 말은 솔직히 나도 좀 너무하다 싶었다. 저런 논리면 같이 산 사람은 자기 인생을 바친 게 아닌 건가. 인생이라는 게 다 서로 주고받는 거지, 혼자만 주는 게 아닐 텐데, 저런 소리 들은 남편은 도대체 뭔 죄인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정작 프란체스카가 로버트를 따라 가족을 등지고 떠났어도 그 사랑이 계속 그렇게 평생의 사랑이었을지는 의문이다. 사람은 방귀도 뀌고 화장실도 가는 거고, 생활이 되면 어차피 빛바래긴 마찬가지다. 그러니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안 진지해졌으면 좋겠다. 내 친구는 이 영화를 보고 주부 대상 아침 막장드라마 전편을 몰아서 본 느낌이란 감상을 남겼는데 그럼 뭐 무협지나 할리퀸 로맨스는 안 그런가. 이런 영화를 보면서 아, 나도 예전에 저런 사랑을 했었었는데’ 하고 마음 한구석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면 이 영화가 할 일은 다 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인간의 사랑이란 그런 거니까.

밤 늦게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길어진 해가 창밖으로 느껴진다. 생각해보니 밤 기분을 너무 오래 끌었다 싶다. 잔 속에 남은 브랜디는 버리고 샤워를 해야겠다. 곧 해가 뜰 것이다.


데렉 / 술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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