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를 향한 예술가의 사랑. 영화, 연극, 소설 등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이 보편적 테마엔 폭압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들은 평등할 수 없다. 예술가의 권력 앞에서 뮤즈는 너무도 쉽게 약자가 된다. 그러나 때로 사랑이라는 이상한 힘 때문에 이러한 불균형은 전복된다. 어떤 관계에서는 덜 사랑하는 사람이 강자다.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안 돼?” 피터(드니 메노셰)는 사랑을 갈구한다. 주인공의 이름을 고스란히 제목으로 삼은 <피터 본 칸트>는 사랑 때문에 부서지고 망가지는 어느 예술가의 초상이다. 독일 쾰른에 거주하는 피터는 제법 성공한 영화감독. 비록 지금은 시나리오 작업에 매진한다는 핑계로 집에 처박혀있지만. 곧 피터의 오랜 친구이자 첫 영화를 함께 한 배우 시도니(이자벨 아자니)의 방문으로 칩거 이유가 드러난다. 피터는 지금 애인 프란츠와 헤어져서 힘들어하는 중이다. 슬픔에 젖은 눈과 달리 그의 입은 사랑에 대한 통찰을 술술 늘어놓는다. 오직 쾌락을 믿으며 서로의 선택과 자유를 존중했던 관계에도 여지없이 뒤따르는 혐오. 요컨대 사랑은 언젠가 추잡하게 끝나는 게임이다. “남자는 참 멍청해.” 쓰라린 깨달음을 얻었으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이제 아미르(칼릴 벤 가르비아)가 등장할 차례다.

싱그러운 곱슬머리, 탄탄한 몸, 우수에 찬 눈동자. 시도니와 같은 배를 타고 독일에 당도했다는 23살의 아름다운 청년에게 피터는 단번에 마음을 빼앗긴다. 성공해서 세상에 둥지를 만들어보고 싶은 아미르는 피터의 음흉한 눈길을 곧바로 알아본다. “지금부터 모든 게 달라질 거야. 널 스타로 만들어줄게.” 피터의 침대는 금세 아미르의 차지가 된다. 곧이어 ‘9개월 뒤’라는 자막이 지나가면, 정말 많은 게 달라져 있다. 그사이 함께 찍은 영화는 잡지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만큼 성공을 거뒀으나 피터는 만신창이다. 그는 아미르에게 연신 사랑을 속삭인다. 너의 모든 게 아름다워, 널 정말 사랑해. 하지만 사랑의 응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미르가 장난스럽게 다른 남자와의 하룻밤을 묘사하는 동안 피터는 눈물을 흩뿌리며 고통을 토로한다. 이토록 애처로운 드라마가 펼쳐지는 무대는 화려하게 장식된 피터의 집. 몇몇 대목을 제외하고 카메라는 줄곧 이 장소를 떠나지 않는다. 피터는 “누가 칼로 찌른 것처럼” 가슴이 아프다고 울부짖는데, 영화는 그의 슬픔에 함께 빠져드는 대신 시종일관 실내극의 모양새를 유지하며 인물을 액자 안에 가둬두려 한다.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러한 욕망의 이야기엔 원작이 있다. 프랑수아 오종이 공공연히 애정과 존경을 표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1972)이다. 오종은 주요 인물들의 성별과 직업을 바꿔 그만의 오마주를 완성했다. 영화감독이 경외하는 거장의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게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 성별 반전엔 조금 독특한 데가 있다. 영화감독 피터 본 칸트는 패션 디자이너 페트라 폰 칸트가 아니라 요절한 예술가 파스빈더와 닮았다. 외모만 비슷한 게 아니다. 원작을 보고 “그의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 중 하나를 중심으로 삼은 자화상”이라는 직감이 들었다는 감독의 말을 뒷받침하듯,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에는 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와 배우 귄터 카우프만의 관계가 반영됐다고 알려져 있다. 어쩌면 프랑수아 오종은 그 관계를 원안 삼아 피터와 아미르의 이야기를 새로 쓰려고 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해서 그토록 좋아하는 역사 속 인물을 스크린에 불러내고 싶었던 걸까? 그 속내까지 전부 알 순 없다. 게다가 알든 모르든 영화 감상엔 아무 무리가 없다. 흥미로운 점은 따로 있다. <피터 본 칸트>는 소문난 영화 애호가가 취향대로 영화와 사실을 이어 붙이고 섞어 만든 걸개그림 같은 작품이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다른 모든 인용과 모사를 압도하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단연 피터의 존재다. 감독의 전작 <신의 은총으로>(2019)에 출연했던 드니 메노셰는 실존 인물을 세세히 따라 하려 애쓰지 않으면서도 그와 닮은 이미지를 쓱쓱 그려내는 배우다. 메노셰의 피터는 촉촉한 눈과 덥수룩한 수염만으로도 파스빈더를 떠올리게 한다. 파스빈더가 “배우들에게 매우 잔인”했으며 모순적이고 변덕스러운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는 배우의 능란한 성격 묘사와 함께 크고 작은 에피소드로 만들어져 영화 곳곳에 뿌려져 있다. 파스빈더와 여러 작품을 함께 했던 한나 쉬굴라는 연인을 잃고 앓아누운 피터를 위로하는 엄마 역으로 등장한다. 영화에 순식간에 따스하고 포근한 기운을 불어넣는 쉬굴라는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에서 페트라를 절망에 빠뜨리는 모델 지망생 카린을 연기한 배우이기도 하다. 한편, 파스빈더와 오종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멜로드라마의 거장 더글라스 서크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피터의 집에 난 큼직한 창문은 영락없이 <순정에 맺은 사랑>(1955)을 연상케 한다. 그런가 하면 집안 곳곳을 물들인 붉은 색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것이다. 시도니의 화려한 외모와 의상은 마를렌 디트리히와 엘리자베스 테일러처럼 한 시대를 휩쓴 여성 배우들로부터 영감을 얻은 결과다.

끝없는 참조와 비교 목록엔 프랑수아 오종 본인의 영화도 있다. 오종은 사랑의 불균형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인물을 여러 작품에서 다뤘다. 그중에서도 파스빈더의 희곡을 영화화한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2000)은 끝까지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만 담는다는 점에서 <피터 본 칸트>와 유난히 흡사하다. <워터 드랍스 온 버닝 락>의 주인공 프란츠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가 애인의 가정부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집에 붙박인 존재가 돼간다. 재미있게도 <피터 본 칸트>에는 그런 프란츠의 후예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피터의 어시스턴트인 칼(스테판 크레퐁)이다. 그는 피터와 종속적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중심 사건에서 한 발짝 떨어져 관찰자 역할도 해낸다. 칼이 원작의 마를렌과 어떻게 다르게 묘사되는지, 프란츠와는 어떤 다른 길을 가는지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관람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참고 사항을 거두고 봐도 <피터 본 칸트>는 재밌다. 영화가 다루는 주제가 그만큼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졌어요. 몹시 행복하기도 한데 불행해요.” 어쩌면 피터의 딸 가브리엘이 한숨 쉬며 내뱉는 짤막한 대사야말로 이 말 많은 영화를 요약하는 핵심 문구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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