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를 배경으로 한 <파크>(2017), <지오라나 보이 파노라마 걸>(2020)로 청춘의 모습을 담백하게 담아 온 세타 나츠키 감독이 세대가 다른 두 여성의 소통을 다룬 이야기로 돌아왔다. 야마시타 토모코의 동명의 인기 만화를 각색한 영화 <위국일기>에서 그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던 두 여성이 만나 서로를 변화시켜 가는 과정을 천천히 담아낸다. 세타 나츠키 감독을 만나 영화 속 두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영화의 제목인 ‘위국일기’를 직역하면 ‘어긋난 나라의 일기’라는 의미를 지닌다. 영문명인 ’Worlds Apart’도 '다른 세계'라는 뜻이다. 원작의 제목을 빌려온 것이지만, 이 영화의 주제와 연결 지어서 제목의 의미에 관해 설명해달라.
주인공인 마키오와 아사는 각각의 세계를 살아가다가 어떤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서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 이렇게 갑자기 함께하게 된 사람들의 모습이 약간 다른 국가에 있는 사람들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졌다. 이 이미지가 원작 타이틀의 느낌과도 상통했기에 원작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왔다. 영어 제목도 우리가 다른 국가에 살고 있지만 하나의 계기로 서로 알아나가는 여러 계기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서로 알아보자는 의미를 담아서 주변 사람들과 상의한 끝에 영문명을 정했다.
사실 같은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대화하다 보면 말이 안 통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그럴 때 ‘우리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거 같지 않아’ 이런 얘기를 종종 한다. 그런 느낌을 이 영화의 주인공들을 통해서 느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야마시타 토모코 작가의 동명의 인기 만화를 각색했다. 각색하실 때 주안점을 둔 부분과 원작이 워낙 방대한 분량이기 때문에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생략한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원작 만화책이 총 11권이다. 이 분량을 2시간 19분의 영화로 만들어야 했기에 굉장히 어려웠다. 원작에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고, 등장인물도 많기 때문이다. 그것들의 핵심이자 정수를 어떻게 추출해야 할지 무척 고민스러웠다. 근데 어쨌든 작품의 틀은 그동안 잘 모르는 사이였던 마키오랑 아사가 만나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는 거다. 거기서 한 발씩 나아가면서 그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를 주축으로 해서 서사를 전개해 나갔다.
생략한 부분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남성 인물들을 어떻게 그려야 될지 많이 고민했다. 변호사와 마키오의 남자 친구가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이들의 분량이 많지 않지만, 사실 원작에서는 이들에 대한 설명이 많다. 어쩔 수 없이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서 인물의 배경에 대한 정보가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마키오의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엄마에 관한 부분이 시나리오상에도 있었는데, 수정 마지막 단계에서 그 부분을 잘라냈다. 결론을 내자면 모두 마키오를 둘러싼 주변 어른들의 부분을 많이 잘라냈다. 하나를 더 추가하면 원작은 아사의 나이가 고등학교 3학년까지 그려져 있다. 근데 영화는 고등학교 1학년 여름까지만 나온다. 그렇다 보니 아사의 진로 고민에 대한 부분을 그리지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후편에서는 이런 걸 그려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작 <파크>와 <지오라나 보이 파노라마 걸>에서는 10대와 20대 젊은 청춘들의 소통 이야기를 그렸다. 이번 작품 <위국일기>는 삶의 단계가 다른 두 여성의 소통을 보여준다. 이번 작품에서 감독님의 세계관이 더 확장된 것처럼 보이는데, 이 부분에 관해 듣고 싶다.
같은 생각이다. 맞다고 말하는 이유가 마키오는 나와 비슷한 세대다. 그래서 나의 자기 반영까지는 아니지만 내 나이대의 세대를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아사는 지금까지 그려왔던 10대 즉 젊은 축에 속한다. 이 두 세대의 이야기를 겹쳐냈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 그려나가면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근데 이들의 관계는 부모 관계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연인도 아닌 관계다. 분명 우리의 세상에는 이름을 붙이기도 어려운 수많은 관계가 존재하고, 그 속에서 함께 살아 나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마키오는 아사에게 상냥하게 대하지는 않지만, 아사의 감정을 잘 헤아리고 선을 넘지 않는 배려를 한다. 이는 아무래도 그녀가 사람의 심리나 감정을 잘 파악해야 하는 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 같다. 마키오라는 인물을 어떻게 구성하려고 했나.
마키오를 소녀들의 감성을 잘 담은 라이트 노벨을 쓰는 작가로 설정했다. 중고생을 독자층으로 한 소설을 쓴다. 또 마키오는 대사에서도 드러나는데, 말할 때 자기 생각 그대로 얘기하기보다는 듣는 사람한테 미칠 파급력을 생각해서 한마디 한마디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내뱉는 사람이다. 원작에서도 그녀는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사람으로 그려져 있지 않다.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쉽게 친숙해지지 못하는 인물이다. 거짓말도 잘 못하고 사람을 잘 대하지 못하는 그런 성격. 이런 캐릭터의 성격적 특징은 원작에서 그대로 갖고 와서 그렸다.

아사의 심리를 보여주는 영상 스토리텔링도 인상 깊었다. 어둠 속에 혼자 있는 아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아사가 운동장에 혼자 남은 장면은 익스트림롱숏의 사이즈에 부감숏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연출한 의도가 궁금하다.
아사가 어둠 속에 있는 장면이나 부감씬 같은 경우에는 아사가 갑자기 부모의 죽음을 겪었지만, 그것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고독감을 느끼고 있는 아사의 심리를 표현하고자 했다.
언뜻 보면 마키오만 아사를 책임지고 엄마를 잃은 소녀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 같지만, 마음의 상처를 풀어내는 변화는 아사뿐만 아니라 마키오에게서도 일어난다. 마키오의 심리 변화는 아사보다 더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마키오와 아사가 같이 살면서 치유까지는 아니지만 서로 변화하는 과정을 가장 중심적으로 그리고 싶었다. 근데 두 사람이 잃은 사람이 아사에게는 엄마이고, 마키오에게는 언니다. 아사는 엄마가 죽어서 굉장히 슬프고 힘들어하지만, 마키오는 가까워질 수 없었던 존재의 부재일 뿐이다. 둘의 입장이 다르고 생각하는 게 다르기 때문에 둘 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반드시 생긴다.
그렇지만 같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려고 하는 과정들을 보여주고, 최종적으로는 마지막 바다 장면에서 마키오가 어느 정도는 과거를 정면으로 직시하고자 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그런 그녀의 심리 변화 과정을 잘 녹이려 했다. 완전한 변화는 아니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