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설
감독 조선호
출연 홍경, 노윤서, 김민주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이토록 좋은 감성, 손끝에서 마음까지
★★★☆
관객의 마음 안에 인상적인 파동을 만드는 이 고요하고도 맑은 영화는 잠시 주춤했던 한국 멜로의 산뜻한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느껴진다. 청춘은 무력하게만 비칠 대상이 아니라 가장 순수하게 사랑에 뛰어들 수 있는 시절이기도 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청설>은 오랜만에 일깨운다. 시선이 엇갈려도 소통이 가능한 음성 언어와는 달리 서로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는 점에서 수어는 한층 섬세한 언어처럼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진정한 대화의 가치, 소통의 방식이 필요한 시대에 영화가 꼭 알맞게 다시 찾아온 인상이다. 원작과 비교해 훨씬 많은 관객이 자막에 익숙해진 상태로 영화를 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을 텐데, 콘텐츠 관람 환경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이 같은 감상의 변화 역시 퍽 유의미하게 느껴진다. 원작의 세계 안에 한국의 청춘 배우들이 들어가 자신들만의 인상적 얼굴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니, 좋은 이야기의 힘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생각해 보면 과거 멜로 영화를 통한 스타 탄생은 이런 방식으로 가능했다. 배우들이 지닌 좋은 감성을 찬찬한 호흡 안에서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청량청량, 홍경홍경하다
★★★
동명의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 원작이 멜로 속 ‘명량’이었다면, 한국 리메이크 버전은 멜로 속 ‘청량’이다. 코믹한 부분이 줄고 감성적인 이미지가 대거 삽입돼 간질간질하고 풋풋한 설렘을 전한다. 청각장애가 중요한 설정인 영화인 만큼, 인물들 소통에 대부분 수화가 동반된다. 그러나 대사가 빠진 자리를 메우고 있는 건, 엄밀히 말하면 ‘수화’가 아니라, ‘표정’이다. 육성으로 발화하지 않아도, 전이되는 감정. (원작이 지닌 힘이기도 했는데) 수어를 통해 사랑의 핵심을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홍경!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20대 배우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케 한다. <청설>을 관람한다는 건, 홍경이라는 배우의 성장사를 함께 목격하는 일일 것이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감성으로 통하는 한국 청춘 로맨스 영화
★★★
리메이크 영화는 많아도 리메이크의 미덕을 갖춘 영화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동명의 대만 청춘 로맨스 영화를 리메이크한 한국 영화로 각색부터 캐스팅, 세 주연배우의 연기가 돋보인다. 청각 장애에 대한 편견을 다룬 부분이나 여러 가지 소리와 음악으로 감정을 표현한 연출은 2009년 원작보다 낫다. 시대와 공명하는 이야기는 아니어도 청춘 로맨스 장르에 걸맞은 순순한 감성과 풋풋한 성장담이 영화에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이게 한다.
아노라
감독 션 베이커
출연 미키 메디슨, 마크 아이델슈테인, 유리 보리소프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기이하고 요란한 소동극 끝에 자리한 애수
★★★★
션 베이커의 시선은 언제나 민주주의와 자본 우선 경향이 만든 가장 어지러운 나라인 미국의 가장자리로 향한다는 점에서 한결같다. 그곳에는 경제적, 육체적, 윤리적인 것까지 모든 부분에서 주류 사회에서 배제된 아웃사이더들이 있다. 성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스트리퍼인 주인공이 우연한 행운을 거머쥐고, 그걸 유지하기 위해 발악하듯 버티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여정. 이 기이하게 요란하고 웃긴 소동극은 미국 사회에서 타자화된 존재들의 서글픈 행진에 다름 아니다. 그 끝에 션 베이커가 남겨둔 눅진한 애수를 만나 마음이 후벼 파지는 경험을 하기까지, 이 영화는 단 한 장면도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미키 매디슨이라는 확실한 스타 탄생을 목격하는 기쁨도 적지 않다. ‘신데렐라’ 미키 매디슨의 유리구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아노라, 다정하게 불러주고 싶은 그 이름
★★★★
스트리퍼 아노라(미키 매디슨)는 러시아의 재벌 2세 이반(마크 아이델슈테인)과 고객으로 처음 만나 2주 만에 부부가 된다. 이반의 부모가 이들의 충동적인 결혼을 무효로 돌리려 애쓰는 동안 아노라에게 닥치는 모욕은 여성과 성노동자, 이민자를 향한 혐오를 날 것 그대로 드러낸다. 전작들에서 꾸준히 성노동자들의 삶을 조명한 션 베이커 감독은 이번에도 아노라를 쉽게 연민하지도, 이르게 체념하지도 않은 채 지켜본다. 절망 속에서도 기어코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유머 또한 발군. 자신이 하고 있는 노동 외에는 남성과 관계 맺는 방법을 알지 못하게 된 아노라의 마지막 흐느낌이 처참한 눈물 자국을 길게 남긴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
감독 빅토르 에리세
출연 아나 토렌트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영화라는 기적을 믿는 당신에게
★★★★
무려 31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감독의 심정을 알 수 있을까.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영화를 보면서 어렴풋이 짐작해 볼 뿐이다. 촬영 중에 사라진 주연배우 때문에 영화를 완성하지 못한 감독이 22년 만에 그의 흔적을 쫓는 이야기는 영화라는 기억물, 영화의 과거 속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영화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기꺼이 응답하는 영화이자 스페인의 거장 빅토르 에리세 감독이 영화에 바치는 아름다운 헌사다. 마지막 장면에 다다르면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폭풍이 몰려올 테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길 바란다.
위대한 부재
감독 케이 치카우라
출연 모리야마 미라이, 후지 타츠야, 마키 요코, 하라 히데코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가족이라는 이름의 허울을 벗기다
★★★☆
연출력이 범상치 않다. 아버지와 아들을 다룬 이야기도 예사롭지 않게 흘러간다. 영화를 보면 미야케 쇼, 하마구치 류스케에 이어 주목할 만한 일본 차세대 감독의 등장을 직감하게 된다. 치카우라 케이 감독은 미스터리, 서스펜스 장르로 관객을 끌어들여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가족 드라마를 풀어나간다. 기억을 잃은 아버지를 한 사람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복잡다단하게 얽힌 가족이라는 관계를 상기시킨다. 대배우 후지 타츠야와 연기파 배우로 자리 잡은 모리야마 미라이의 연기 격돌도 매섭다.
마리우폴에서의 20일
감독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카메라라는 강력한 무기
★★★☆
러시아에 함락된 우크라이나 남부도시 마리우풀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처참하게 부서지는 도시와 러시아의 민간인 학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카메라를 든 AP 기자들의 20일 기록. 이들이 목숨을 담보로 역사의 목격자이길 자처한 건, 그것이 미래를 바꿀지 모를 ‘진실’이란 믿음 때문이다. 그 자신도 우크라이나 출신인 AP통신 영상 기자(감독)인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에겐 카메라가 총보다 강력한 무기였을 것이다. 저널리즘의 역할, 기자의 직업의식을 숙고하게 하는 영화는 반전 다큐멘터리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적극적으로 개입한 감독의 내레이션은 여러 논의가 뒤따를 수 있는 부분. 영상에 담긴 모습도 비극적이지만, 기저에 흐르는 또 하나의 비극은, 이 전쟁이 아직도 진행 중이란 사실이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외면할 수 없는 전쟁의 비극
★★★☆
2024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봐야 할 전쟁 다큐멘터리 영화다.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상과 2023 퓰리처상 공공보도상을 받은 작품이어서가 아니다. 전쟁에 휩싸인 한 도시가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2022년 러시아에 함락된 우크라이나 도시 마리우폴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은 감독은 “고통스러워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저널리스트의 진정한 기록과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복수는 나의 것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
출연 오가타 켄, 오가와 마유미, 바이쇼 미츠코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범죄의 모든 것을 담은 역작
★★★★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대표작. 사키 류조의 논픽션 소설을 바탕으로 연쇄살인범의 행적을 통해 악의 근원을 파헤친다. 주인공 연쇄살인범의 심리뿐 아니라 그의 가족, 주변 인물들의 관계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어 사건 중심의 범죄 영화와 차별화를 이루는 고도의 범죄 심리극이다. 명확한 주제 의식, 영화 초반부의 사건 현장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비롯해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기세등등한 연출력이 시대의 걸작을 낳았다.
빌리와 용감한 녀석들: 스노우 베어 구조대
감독 가브리엘 리바 팔라시오 알라트리스테, 로돌포 리바 팔라시오 알라트리스테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남극으로 떠난 치킨 히어로 모험대
★★☆
<빌리와 용감한 녀석들> 세 번째 시리즈. 주인공인 치킨 히어로 빌리가 이번엔 서커스단에 납치된 아기 곰과 펭귄들을 고향에 데려다주는 임무를 맡는다. 남극으로 떠난 빌리 가족과 달걀 특공대는 험난한 자연과 혹한의 추위에 맞서면서 구조 작전을 펼친다. 범고래, 바다코끼리 같은 커다란 바다 생물이 등장해 상대적으로 작은 빌리 일행과 대조를 이루고, 펭귄과 바다표범 등 남극 동물들과 힘을 모아 동물 사냥꾼들을 물리치는 장면이 볼거리다.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시리즈의 주제를 이어가면서 흥을 담당하는 펭귄들이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