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표정 때문일까. 각기 다른 고독을 품은 네 여인들의 얼굴이 묘하게 닮아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아니 그 이상을 해내지만 삶은, 어떤 관계는 항상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변호사라는 직업의 허울 뒤, 로라(로라 던)의 노동은 변호사가 남성이었으면 승소했을 거란 편견을 견디며, 산재를 보상받을 길이 막혀 생떼를 부리다 급기야 인질극까지 벌이는 의뢰인을 달래는 지질한 일의 연속이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차츰 터전을 옮겨오기 희망하는 지나(미셸 윌리엄스)의 존재는 몬태나의 황량한 대지에서 가볍게 무시된다. 좋은 돌을 발견한 그는 집을 지을 생각에 돌 주인과 흥정에 나서지만, 노인의 시선은 적극적인 지나가 아닌 그녀의 남편을 향한다. 시선이 닿지 않는 말들을, 맥락 없이 이어지던 대화를 필사적으로 꿰어가던 지나의 노력은 “아내가 당신의 직원이냐”라는 무의미하지만, 의도가 분명한 질문으로 돌아올 뿐이다. 건초가 섞인 진흙 위 노동하는 발은 원주민 소녀 제이미(릴리 글래드스턴)의 것이다. 몬태나 외곽 목장에서 말을 돌보는 제이미는 우연히 듣게 된 학교법 특강에서 강사 베스(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만나고 호감을 느낀다. 몇 번의 대화로 둘은 가까워지지만 돈을 벌기 위해 왕복 8시간의 거리를 운전하며 낮에는 로펌 변호사로, 밤에는 강사로 일하는 베스에게 감정은 사치다. 베스가 기별 없이 강사일을 그만두자 제이미는 혼란에 빠진다.

<어떤 여자들>(2016)은 단절된 세 편의 에피소드를 엮은 옴니버스 영화의 형식을 띠지만 인간의 결핍은 필연이라는 삶의 진실을 공유하며 이야기는 느슨한 고리로 연결된다. 동시대 미국을 살아가는 이들 위로 포개지는 정서는 고독이다. 담당 변호사를 인질로 삼은 터무니없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옥중서신에 답장을 요구하는 의뢰인의 뻔뻔함을 로라는 차분히 수용한다. 떠나버린 아내의 다정함을 자신에게서 찾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남자 변호사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요구다. 하지만 로라는 면회를 오며 사 온 바닐라 셰이크를 남자의 손에 쥐여주며 답장을 약속한다. 아무 말이나 좋으니, 짧은 편지라도 써달라는 갇힌 이의 간절함에서, 고용주의 잘못으로 상해를 입었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옷깃을 여미며 쓸쓸히 퇴장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자신의 것과 비슷한 생의 고독을 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외로움의 해소를 바라며 베스를 찾아 나선 제이미는 되려 압도적 고독에 빠지기도 한다. 베스의 자리가 다른 강사로 교체된 그날 밤, 제이미는 4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 베스가 사는 리빙스턴으로 향한다. 밤새 운전을 하고 트럭에서 쪽잠을 자며 행방을 수소문한 끝에 마침내 재회하는 둘.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과로하는 베스의 버석한 얼굴 위로 잠깐의 미소가 스치지만, 제이미의 감정을 책임져줄 여유가 없는 그는 곤란한 얼굴을 한 채 직장으로 사라진다. 거절을 직감하고 서둘러 올라탄 트럭에 번진 제이미의 슬픔과 고독은 롱테이크로 오롯이 포착된다. 강렬한 끌림이었던 만큼 상실감도 크지만 눈물은 차오르되 흐르지 않고, 들썩이는 입술은 결코 오열하지 않는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제이미 역의 릴리 글래드스턴을 비추는 2분간의 롱테이크 장면은 고독은 필연이라는 삶의 진실을 펼쳐 보이는 동시에, 직후 사고 장면과 이어져 그럼에도 일상은 계속된다는 또 다른 깨달음의 토양을 마련한다.

사고는 졸음운전 때문이었다. 제이미가 몰던 차가 돌연 도로를 이탈해 황량한 들판으로 돌진하더니 철조망의 앙상한 벽을 돌파한 뒤 겨우 멈춰 선다. 광대한 몬태나의 자연을 후경으로 우두커니 멈춰 선 차를 보고 있자니 고독과 슬픔으로 점철된 직전의 롱테이크 드라마가 갑자기 현실 세계로 뚝 떨어져 다큐가 된다. 죽지 않는 한 우리는 고독을 끌어안고 살아야 하고, 그것은 에너지를, 잠과 음식을 필요로 한다. 조용히 멈춰 선 차는 마치 잠을 자는 듯하다. 잠시 쉬며 인간은 여리지만 저마다의 세계를 책임질 만큼 강하기도 하다는 다짐을 읊는 듯하다. 열심히 사는 노력들의 결과가 언제나 만족스러울 수는 없지만 일상과 마음을 차분히 펼쳐낸 반복과 순환, 무미한 노동은 적어도 이들을 다시 일어서게 한다. 그렇게 사고 후 카메라가 제이미를 다시 찾은 곳은 마구간이다. 말에게 신선한 물을 제공하고, 잠자리를 청소하고 새 건초더미로 쉴 곳을 정비하는 제이미의 손길이 간결하다. 지나 또한 현실을 담담하게 건너는 중이다. 붕괴 직전의 가족도, 집안 일과 바깥일을 병행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도 여전하지만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위한 선물이 될 집, 그 집의 일부가 될 사암이 마당이 쌓여 있고, 한 손엔 담배가, 다른 한 손엔 한 잔의 포도주가 있으니 시종 무표정했던 그의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번진다.

외로움, 성차별, 가족 갈등 등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여성으로 겪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맞닥뜨린 네 여성은 나름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한다. 어쩌면 하루를 살게 하는 노동의 지평을 넓혀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은 게으른 것일 수도 있다. 나이, 인종, 계급을 관통하는 생의 쓸쓸함은 모두의 몫이라지만 이들이 처한 환경 속에서 그것은 제각각의 무게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단 한 번도 호명되지 않은, 그러므로 사회에서 완전히 소외당한 채 존재하는 제이미는 특히 미국 노동 계급의 잔혹한 운명을 예감하게 한다. 하지만 인적 없는 고요한 아스팔트를 천천히 걸어 목적지에 도착하는 한 마리 말이 선사한 마법의 순간은, 저마다의 속도로 인생을 꾸리는 인간이 타인의 내면에 다가가려 손을 뻗는 선의가 만들어낸 환상이기도 하기에 영화는 좌절과 희망, 그 어느 것도 단언하지 않고 그저 펼쳐놓고 고요히 응시하게 한다.
<쇼잉 업>(2022)에서 예술가를 일상의 잡다함에 둘러싸인 생활인이자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로 그리며 일상성과 평범함에서 예술의 의미를 길어올린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현실 감각은 <어떤 여자들>에서 이어진 유산이다. 여성의 관점에서 미국적인 상황, 풍광, 장르를 새롭게 써내려간 라이카트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영화 <어떤 여자들>은 왓챠, 웨이브 등에서 관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