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왕좌의 게임> <소프라노스> <섹스 앤 더 시티> <트루 디텍티브> 등 오랜 명작부터 <석세션> <화이트 로투스> <체르노빌> <더 라스트 오브 어스> 등 최근 화제작까지, 전통의 ‘드라마 명가’로 꼽히는 미국 케이블 채널 HBO의 작품들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한국에 상륙했다. 그 외에도 콜린 패럴의 <더 펭귄>, <왕좌의 게임>의 프리퀄인 <하우스 오브 드래곤>까지 시청 1순위를 뽑기 힘들 정도의 라인업이다. 그동안 <왕좌의 게임>을 웨이브를 통해 본 것처럼, HBO 일부 작품이 국내 케이블 채널이나 OTT를 통해 서비스된 적은 있지만, OTT 한 곳이 통째로 독점 서비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HBO는 1972년 설립된 미국의 유료 케이블 채널로, 서사와 묘사의 한계를 뛰어넘는 드라마로 두터운 팬층을 가지고 있다. 다수의 에미상과 골든글로브 수상작들이 이를 증명한다. 국내 OTT 쿠팡플레이가 엔터테인먼트 기업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와 손잡고 HBO와 자매 OTT 회사인 Max의 오리지널 작품 서비스를 시작한 것으로, 현재 140여 작품의 스트리밍이 시작됐고 신작도 계속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이로써 최근 조사 결과, 626만 가입자의 티빙을 제치고 760만 가입자로 토종 OTT 1위를 차지한(전체 1위는 1,416만 명의 넷플릭스) 쿠팡플레이가 1위 굳히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그동안 애타게 기다려온 HBO 시리즈들을 저마다 하나씩 추천하려 한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좀비 아포칼립스의 신세계

페드로 파스칼을 만나기가 이다지도 힘든 일이었단 말인가. 2023년 1월 공개와 동시에 HBO 역사상 최고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던 시리즈 <더 라스트 오브 어스>를 이제야 만나게 됐다. 시즌1은 HBO 맥스 시리즈 중 회당 평균 4천만 정도의 역대 최고 누적 조회수를 기록했고, 곧 4월 13일 공개 예정인 시즌2 공식 예고편도 공개 후 3일 만에 전 세계 여러 플랫폼에서 1억 5,800만 뷰를 기록하며, HBO와 맥스 오리지널 콘텐츠 예고편 중 역대 가장 많이 시청한 예고편이 됐다. 최근 쿠팡플레이를 통해 볼 수 있게 된 HBO 시리즈 중 <왕좌의 게임> 등 거의 모든 시리즈가 일종의 재개봉 개념이라면,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말 그대로 ‘최초 공개’다. 디즈니+ 시리즈 <만달로리안>(2019)과 함께 페드로 파스칼을 할리우드의 대세로 만들었던 전설의 시리즈와의 만남이다.
2003년 기생 곰팡이로 인한 팬데믹이 일어나고 괴생명체가 된 감염자들로 인해 지구는 폐허가 된다. 20년 후 조엘(페드로 파스칼)은 격리 구역에서 바이러스 치료의 열쇠를 쥐고 있는 14살 엘리(벨라 램지)를 데리고 미국을 횡단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기존 좀비 아포칼립스물과 비교하자면, 좀비물이자 크리처물이기도 한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9부작에 이르기까지, 매회 비정함과 애틋함이 교차한다. 시리즈 <워킹 데드>보다 무섭고 영화 <월드워Z>보다 사변적이라고나 할까. 흥미로운 대목은,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사람들, 혹은 최대한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살고자 했던 사람들의 현재와 스치듯 마주했을 때다. 종말 이후 그들에게 찾아온 ‘다정한 고독’이라고 해야 하나.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기존 좀비 아포칼립스물의 전형성을 몇 단계 넘어선다. (주성철 편집장)
스타트업 폭싹 속았수다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 혹은 창업과 거리가 멀지만, 개발자도 아니고 공대 출신도 아니고 그냥 특별한 기술이라곤 없는 문과 출신의 노동자지만, HBO <실리콘 밸리>를 보고 싶었던 이유는 오직 영국 시트콤 <IT 크라우드>를 여러 번 돌려봐서였다. 물론, <실리콘 밸리>는 <IT 크라우드>와는 유머 코드도, 스토리도, 너드의 종류도 다르지만, 궁금하면 일단 '찍먹'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실리콘 밸리>는 간단히 말하자면, 실리콘 밸리의 개발자들이 (회사명도 어딘가 괴상한)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스타트업을 차리는 이야기다. 물론, <IT 크라우드>가 그랬듯 절대 PC하지는 않지만 이런 길티 플레저를 도무지 끊을 수가 없다. 한때 웨이브와 왓챠에서 서비스되었으나 중단되어 볼 길 없던 차에 쿠팡플레이에 들어온 김에 <실리콘 밸리>의 1화를 시작했는데, 초장부터 'I Know H.T.M.L.(How To Meet Ladies)' 티셔츠를 입고 등장하는 주인공 덕에 이상한 매력을 느껴 정주행을 결심했다. (김지연 기자)
<체르노빌> 아직 안 보신 분?

드디어 <체르노빌>을 쿠팡플레이에서 볼 수 있다니. HBO의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은 1986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를 다룬 작품으로, 단 5부작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시리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4호기 폭발 사건과 그 후속 처리 과정을 중심으로 사고의 진실을 밝히려는 과학자들과 이를 은폐하려는 정부 간의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체르노빌>은 실제 사건에 기반한 세부적인 묘사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을 통해 사실성과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작품의 극적인 연출과 음울한 분위기는 사고의 참혹함을 더욱 실감 나게 전달한다. <체르노빌>에 관한 평단의 반응은 지금까지도 로튼 토마토의 95%에 달할 만큼 압도적으로 긍정적이다. <체르노빌>은 단순한 재난 서사를 넘어 인간성과 인류 시스템 체제의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추아영 기자)
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하여 <뉴스룸>

‘기레기’라는 말이 일상처럼 쓰이는 시대. ‘기’를 맡고 있는 입장에서 나는 종종 ‘레기’가 되지 않기 위한 자기검열을 거친다. 특히 영화처럼 주관이 개입되기 쉬운 분야를 다루면서는 더 그렇다. 기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저널리즘의 원칙은 무엇인가. 식상하다고 외면했던 이 질문들이, 요즘은 점점 더 무겁게 다가온다. HBO 드라마 <뉴스룸>은 바로 이 고민에서 출발한다. 한 방송국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 <뉴스 나이트>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앵커 윌 맥어보이(제프 대니얼스). 그는 ‘뉴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인물이다. 하지만 방송국은 광고 수익과 시청률에 따라 움직이고, 그 안에서 뉴스 역시 ‘상품’으로 취급된다. 더 빠르게, 더 자극적으로. 이 괴리 앞에서 윌은 흔들리고, 때로는 그 신념 때문에 위기를 맞기도 한다. 그런 그가 새로운 제작진과 함께 ‘뉴스다운 뉴스’를 다시 고민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드라마 <뉴스룸>은 꽤나 노골적으로 저널리즘에 대한 그들의 철학을 담아낸다. 이것이 작품의 호불호를 가르는 큰 요소이다. 그에 동의하지 못하는 관객은 마치 훈계당하는 듯한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지금의 뉴스 환경에 회의적인 시선을 가진 이라면 <뉴스룸>은 단순한 드라마 그 이상으로 다가올 것이다. 뉴스는 사실로 구성되지만, 그 사실을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뉴스다운 뉴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비단 언론 종사자들만의 몫은 아니다. 건강한 저널리즘은 결국 건강한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장치이기 때문이다. <뉴스룸>은 그 당연한 사실을 다시 되묻는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뉴스는 정말 뉴스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진주 기자)
<더 펭귄> 배트맨 없는 <배트맨> 시리즈의 재미

지난 몇 년간은 실사판 배트맨의 수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DCEU 배트맨을 맡은 벤 애플렉은 약속받은 단독 연출작 취소로 일찍이 배트맨에서 애정을 뗐었노라 고백했다. 그 뒤를 이은 로버트 패틴슨의 배트맨은 새로운 세계관을 토대로 차별화를 두며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워너브러더스와 DC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로드맵과 할리우드 양대 파업 등으로 그 공백기가 벌써 3년을 넘기고 있다. 심지어 2027년 개봉 예정이니 앞으로도 최소 2년은 기다려야 한다. 이 세계관의 긴 침묵에 목말랐을 팬들에겐 이번 쿠팡플레이 HBO 입점이 옹달샘이나 다름없다. <더 배트맨> 세계관을 토대로 한 드라마 <더 펭귄>을 마침내 공식 서비스로 만날 수 있으니까. <더 펭귄>은 <더 배트맨>에서도 얼굴을 비춘 ‘펭귄’ 오즈 콥의 비상을 그린다. 고담시를 꽉 쥔 팔코네 패밀리 소속이지만 멸시받던 오즈 콥은 보스 카르미네 팔코네의 사망을 성공의 기회로 삼으려고 한다. 그 욕망은 치명적인 사고를 불러오며 고담시 뒷골목의 판도를 흔든다.
배트맨 없는 배트맨 작품이 과연 유효할 수 있는가, 그 의구심을 <더 펭귄>은 깔끔하게 씻어냈다. 콜린 파렐은 <더 배트맨>에 이어 이번 드라마에서도 완벽하게 오즈 콥으로 변신해 욕망의 드라마를 주도한다. ‘고작’ 마피아가 어떻게 배트맨의 주적이 될 수 있는지, 그 잠재력을 이번 드라마에서 과시한다. 뿐만 아니라 <더 펭귄> 속 일련의 서사와 비주얼은 고담시가 얼마나 위태로운 도시인지도 체감하게 한다. 지난 2024년 가을, 북미 시청자들에게 호평받은 범죄드라마 <더 펭귄>, 이 피카레스크 드라마를 통해 고담시 음습한 뒷골목으로 발걸음을 내디뎌보자.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