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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해피엔드〉 네오 소라 감독 “일본에서 계엄이 발생했다면, 한국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까?”

씨네플레이
네오 소라 감독 (사진제공=이화정)
네오 소라 감독 (사진제공=이화정)


용감하고 직설적이고 뻔뻔하며 에너지가 가득한 영화가 도착했다. 일본의 네오 소라 감독이 연출한 <해피엔드>다. 전작으로 이미 감독의 이름을 외운 몇몇 관객도 있다. 고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연주를 담은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2023)가 재작년 국내 개봉했고, 알려졌다시피 그는 류이치 사카모토 감독의 아들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연주를 담은 다큐멘터리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평생의 커리어, 그 기류를 담은 듯 급진적이고, 예술적이며, 품위로 가득 차 울림을 주는 작품이었다. ‘아들’로서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연출가로서의 네오 소라가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를 직접 해석한 충만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이 비범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네오 소라는 뉴욕에서 영화를 공부했고 아버지의 마지막을 담은 작품으로 자신의 영화만들기 공력을 입증했다. 사실 다큐멘터리 이전 뉴욕과 도쿄 두 곳을 오가던 네오 소라 감독의 원래 주력 분야는 극영화였다. 단편 <더 치킨>(2020)이 로카르노영화제, 뉴욕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슈가 글래스 보틀>(2022)은 인디멤피스필름영화제에서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인터뷰 때 그는 자신이 다음 작품으로 ‘Earthquake’(지진)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 <해피엔드>로 제목이 굳혀지기 전, 이 영화의 원래 제목, 태명 같은 가제였다. 사실 그때까지는 어떤 영화가 나올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네오 소라 감독은 ‘지진’이란 제목이 너무 직접적이라, 결과적으로 우회의 제목을 선택했다고 한다. 제목은 바뀌어도 지진을 빼놓고 이 영화의 시작을 설명하기 어렵다. 멀리 관동대지진부터 후쿠시마 311 대지진을 비롯해 최근 남해 대지진까지 끊임없이 닥쳐오는 자연재해. 지진은 일본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가장 확실한 불안 요소다. <너의 이름은> <스즈메의 문단속>처럼 일본 재앙의 중심을 묘사한 신카이 마코토의 시선 이후, 네오 소라의 <해피 엔드>는 지진의 ‘진동’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영화다. 이 불안이 일본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잠식하고 있는지 네오 소라 감독은 십 대 고등학생 유타와 코우 두 친구를 중심으로 풀어 나간다. 지진의 위험에 따른 안전을 이유로 일본사회는 지금 비상계엄 사태에 가깝다. 총리가 내각을 강화하고 헌법 개정으로 긴급사태 조항 가결을 하는 억압적인 사회에서, 아이들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해피엔드>는 ‘근미래’로 가정하고 있지만,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 상황을 십 대 성장물의 형식 안에서 기술한다.

 

〈해피엔드〉
〈해피엔드〉


SF 장르의 문법을 바탕으로 하지만 상당 부분 이 영화는 일본 사회 현재의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일정 부분 <태풍 클럽> <키즈 리턴> <69> <고> 같은 일본의 과거 성장물 안에서 활발히 보았던 십 대 캐릭터를 근미래에 심어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테크노 음악을 연구하는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유타와 코우, 두 친구가 반항의 도구로 삼은 건 교장의 새 차, 노란 스포츠카다. 기발하게도 이 아이들은 밤 사이 주차된 차를 ‘직각으로’ 세우는 범행을 저지르는데, 이 장난은 결국 교장에게 아이들을 감시하고 규율에 복종할 강한 법령을 시행할 빌미를 안겨준다. 이른 바, 학교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스캔하고 벌점을 부여하는 AI 감시 시스템의 실행이다.

이 살벌한 교내 풍경은 일본 사회가 역사 안에서 되풀이하고 있는 차별과 혐오의 문화의 축소판에 가깝다. 차별주의자들이 거리에서 내뱉는 ‘일본을 되돌려야 한다! 자랑스러운 일본을!’이라며 외치는 구호는 기시감이 든다. 재난 앞에서 더 공고해지는 배제의 역사. 2차 대전 원자폭탄 투하로 폐허가 된 나가사키, 가즈오 이시구라의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에서 그곳의 학식 있는 자들은 새로운 사회로 나가려는 젊은 학자들을 향해, 조국 일본을 위해 조국에 헌신한 자신들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며 혐오의 자행을 정당화해 왔던 것과도 겹쳐 보인다.

포용하지 않는 배제의 역사는 고스란히 균열의 빌미를 제공한다. 유타와 코우가 주축이 된 음악동호회 아이들은 작은 동아리방을 중심으로 활동하지만, 곧 이 공간마저도 교장으로부터 빼앗기고 와해된다. 집단과 조직의 안전을 위협하는 제거해야 할 위험 요소, 눈에 가시이기 때문이다. 4대째 일본에 살고 있지만 재일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혐한족에게 비국민으로 분류되는 코우, 흑인이라 차별받는 톰, 일본어가 모국어고 대륙어나 대만어에 서툴지만, 이방인으로 취급받는 중국계 밍, 키가 작고 별종이라 소외되는 아타라까지 모두가 이 사회 기준에서의 핸디캡을 가지고 있으며, 어쩌면 이 ‘약점’들이 이들을 뭉치게 했는지도 모른다.

 

〈해피엔드〉
〈해피엔드〉


<해피엔드>의 출발선이자 관찰대상인 ‘지진’이 흥미로워지는 것은 이때부터다. 그럼에도 한창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에게 정치적 성향은 영향을 끼치고 이들의 입장 역시 변모하기 시작한다. 물리적 재난인 지진은 여기서 다시 한번 상징적 의미로 작용하는데, 이 서로 다른 입장 차는 결국 ‘불알친구’라고 서로를 칭하며 하굣길, 헤어지기 아쉬운 육교 위에 서서 ‘사랑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정도로 공고했던 십 대의 우정에 ‘너랑 나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아’라는 말을 내뱉게 만든다. 관계의 지각변동, 균열, 흔들리는 대지진이다.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일본과 뉴욕을 오가며 성장해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성장해 온 네오 소라 본인의 모습과도 닮아 있는 듯하며, 마찬가지로 글로벌한 활동과 더불어 젊은 시절 탈원전 운동에 앞장섰던 감독의 아버지 류이치 사카모토의 모습을 조금씩 닮아 있기도 하다.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 ‘지진’이야말로 일본사회를 설명하는 핵심 요소다. <해피엔드>는 곧 붕괴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기반 안에서도 여전히 아이들은, 새로운 사고는 성장하고 있고 변화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 변화의 에너지가 총리와 교장의 억압적 행태와 충돌하는 걸 지켜보는 발칙한 영화다. 네오 소라는 이 변화를 모른 척하지 않고 따라가며 성장영화 장르 본래의 고민인 십 대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진원지로 가까이 다가가 기어이 기록할 만한 성장영화를 만들어 낸다.

덧붙여,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지진’, 진동의 세기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넓게 펼쳐진 화면에 묘사된 근미래 일본사회의 풍경을 묘사한 솜씨는 새로운 기운, 화면의 쓰임과 묘사, 스타일이다. 음악을 비롯해 배우들의 연기 어느 하나 신선하고 매력적이지 않은 게 없다. 하마구치 류스케, 미야케 쇼 등의 작품을 연달아 보며 느낀 최근 일본영화가 불러온 새로운 흐름,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기분 좋은 자극이다. 개봉에 맞춰 한국을 찾은 네오 소라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들어 봤다.

 


 

네오 소라 감독 (사진제공=이화정)
네오 소라 감독 (사진제공=이화정)


한국관객과 만나게 됐는데요. 소감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대가 큽니다. 어쩌면 일본에서보다 더 뜨거운 반응이 오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한국 대통령 관련해서 몇 개월간 한국 뉴스를 정말 많이 봤거든요. 단기간에 그렇게 많은 분들이 모여서 시위를 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그런 분위기가 굉장히 뿌리 내려져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일본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이렇게 뜨거운 반응이 있지도, 이렇게 많은 인원들이 모이지도 않았을 것 같아요. 한국 관객들께서는 <해피엔드>가 그리는 상황, 일어나는 일을 더 많이 공감해 주시지 않을까 싶었어요.

 

십 대들의 우정을 바탕으로 한 성장드라마를 바탕으로, 일본 사회가 가진 문제점을 엮어 냈는데요.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크게 이유가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제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제 대학교 시절에 저의 청춘을 생각하면서 그때 느꼈던 감정들, 친구들과 같이 지냈던 경험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제가 정치적인 어떤 성향, 상황이나 문제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311 동일본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문제였는데요. 그때 저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을 때였는데 방학 때는 꼭 일본으로 와서 반원전 시위에 참여하면서 정치적인 성향에 눈을 뜨게 되었어요. 일본은 2010년도 당시 후쿠시마 반원전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고, 미국은 2012년도에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2014년도에는 흑인 인권운동인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있었거든요. 흑인들의 생명도 생명이다, 흑인들도 살아야 한다 그런 운동이었죠. 2016년도에는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반트럼프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어요. 그즈음 저도 정치적인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됐습니다. 작품을 처음 쓴 게 2000년대 중반이었는데 대학 때부터 굉장히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거리가 생기면서 대화를 거의 안 하게 된 거예요. 대학생은 굉장히 이상적인 것에 관심을 두는 청년들이 모여 있고 많은 토론을 하게 되잖아요. 제가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되면서 친했던 친구가 거리를 두거나, 제가 거리를 두거나 하면서 느끼는 경험들이 있었던 거죠. 저는 그때 그게 굉장히 슬펐거든요. 그래서 그 그 슬픔의 감정들, 그때 그 경험들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어떤 계기가 된 것입니다.
 

〈해피엔드〉
〈해피엔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장르에 말씀하신 문제의식을 녹여 내었는데요. 묵시록적인 미래 배경에 일본 사회의 현재를 접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1923년도에 관동대지진이 있었고 그때 조선인 학살이 있었죠. 최근에는 남해 대지진의 두려움이 있어요. 이게 80년에서 100년 사이에 한번은 일어난다고 예측되는 굉장히 큰 지진이라 일본인들이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는 불안의 요소입니다. 만약 가까운 시일 내에 정말 남해 대지진이 일어난다 친다면 관동대지진만큼의 피해가 예상되죠. 그런데 일본인들은 1923년 그때 이후 진정으로 반성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그런 반성이 없는 상태에서 과거와 같은 규모의 일이 발생한다면 일본은 어떤 상황이 될까. 어떤 사상의 실험 같은 것을 이 영화를 통해서 해봐야겠다는 것이 영화를 만든 계기이기도 합니다.

 

지진 발생에 대한 두려움, 안전을 이유로 총리가 긴급사태법령을 제정한 것과 동시에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비행 행위를 방지하고자 학생들을 감시하는 AI 시스템을 도입하는데요. 사회와 학교가 거의 같은 방식으로 통제된다는 걸 묘사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영화 속 근미래를 묘사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윌리엄 깁슨(「뉴로맨서」)이라는 SF 작가가 이런 말을 했어요.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불균등하게 배분되어 있을 뿐이다’. 미래는 사실 여러 장소에 이렇게 던져져 있을 거예요. 그것들을 하나의 영화로 모아놓으면 근미래적인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총리와 교장을 동일선상에 놓은 것은 사실 그들도 직접적으로 나쁜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본인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방향을 지향하게 되는 거죠. 그들은 어떤 구조 안에 있는 사람이고 그 구조 안에서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는 거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어떤 입장이기도 하고요. 교장의 입장을 보자면, 학교를 위해 예산이 많이 필요하고 그러자면 지원금 같은 걸 많이 받아야 되고 지원금을 따기 위해서는 그 정권의 정책을 따라야 하는 거죠. 전 지금의 미국도 거의 이런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학교와 교장의 행동은 이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네오 소라 감독 (사진제공: ⓒ Aiko Masubuchi)
네오 소라 감독 (사진제공: ⓒ Aiko Masubuchi)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이미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시감이 드는데요. 지금 현실을 충실히 반영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입부의 아이들이 교장 선생님의 차를 세운 설정 역시 실제 사건에서 힌트를 얻은 아이디어가 아닐까 싶은데요. 매우 임팩트 있게 아이들의 반항심을 표현하는 요소입니다.

제 경험담은 아니고요. (웃음) 저는 사실 고등학교 때 그 정도로 반항하는 타입은 아니었어요. 물론 반항심, 권력에 대한 저항감은 항상 있었거든요. 틀린 건 틀렸다고 반드시 표현을 해야 된다고, 그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의 표현 방식으로 함께 시위에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옛날하고 비교를 하면 요즘 일본인들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바로 행동하는 순발력이 많이 적어진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차를 세우는 건 제가 지금은 머리가 짧지만, 예전엔 머리가 길어서 미용실에 다녔어요. 미용사가 친했는데 그분이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었어요. 굉장히 불량한 학생이 많은 중학교를 다녔는데, 거기에 전설적인 선배 둘이 있었대요. 어느 날 학교에 갔더니 이 선배 둘이 주차되어 있던 선생님 차를 다 세웠다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엄청 자극을 받고 정말 재밌다라고 생각했어요. 다시 들어보니 영화에서처럼 세운 건 아니라 옆으로 세운 거였는데, 저는 영화에서 같이 직각으로 세운 걸 연상했던 거죠. 그래서 더 임팩트 있게 영화에서는 묘사한 거고요.

 

〈해피엔드〉
〈해피엔드〉

 

더불어 차의 컬러도 파격적인데요. (웃음) 교장 선생님이 선택하실 것 같지 않은 샛노란 차의 선택도 특이했어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세대를 대변하거나, 일본 사회의 획일화된 분위기를 떠올린다면 무채색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사실 여러 가지 색을 다 해봤어요. 그런데 빨간색은 지나치게 상징적인 것 같아 피했어요. 영화 전체 톤이 푸른색, 푸른 세상이니 눈에 띄게 노란색으로 간 거죠. 교장 선생님 역을 한 배우분이 좀 어린애 같은 부분이 있거든요. ‘울트라맨’을 좋아하세요. (웃음) 그래서 교장선생님 같은 권력자들도 알고 보면 그 안에 어린애 같은 부분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한 거죠.

 

〈해피엔드〉
〈해피엔드〉


음악 동호회 친구들은 재일 한국인을 비롯해, 대만 출신이지만 중국어에 능숙하지 못한 아이,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가려고 하는 흑인 등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지금 현재 일본의 지형도를 탐구하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두 가지로 나눠서 말씀을 대답을 드릴 수 있는데요. 실제로 지금 일본은 인구가 점점 줄어들면서 노동력의 다수를 외국인으로 채워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외국인이 정말 많아졌거든요. 그런 현실을 그리고 싶었어요. 두 번째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인데요. 애초에 일본인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것들을 제가 조금 생각해 보고 싶었어요. 지금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현재의 일본인은 근대에 와서, 즉 최근에 발명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좀 들거든요. 메이지 이후에 우리가 국민, 국가라는 개념이 생기고 나서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시기에 형성된 컨셉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일본인이라는 그 규정을 무너트리고 싶었어요. 톰은 세네갈과 일본인 혼혈이거든요. 그 친구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에서 자라 왔어요. 그 친구가 오히려 저보다 일본에서 성장한 시간이 더 길어요. 저보다 오히려 더 일본인이에요. 그런데 언뜻 보면 이미지는 그렇지 않은 거죠. ‘저 사람은 외국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어떤 문화 안에서 형성된 그런 이미지들이 일본인이라는 인종과 연결된 것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해보고 싶었고 그걸 영화 속에서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본인의 학창 시절 경험도 녹아 있다고 하는데, 영화 속 캐릭터 중 가장 비슷한 인물, 투영한 캐릭터가 있다면요.

이야기나, 캐릭터 모두 제 몸에서 나오는 거기 때문에 그래서 다 사실 제 일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갖고 있는 부분이에요. 어떤 날, 혹은 상황에 따라서 입장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죠. 가끔은 교장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그 어떤 상황에 따라서 입장이나 상황에 따라서 또 다른 캐릭터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촬영을 보면 익스트림 롱숏으로 전체를 조망하게 하는 샷을 활용하는데요. 더불어 어떤 상황에서 일시정지를 통해서 그 상황을 들여다보게 하는데요.

솔직하지 않은 이유와 솔직한 이유가 있는데요. (웃음) 솔직하지 않은 이유를 먼저 말씀드리면 큰 스케일과 작은 스케일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큰 스케일의 구조가 작은 스케일의 이 얘기에 굉장히 영향을 주고 있다, 캐릭터들이 이 구조 안에 있다는 걸 관객들이 느꼈으면, 그런 것들을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한 거고요. 솔직한 이유로는 저 사실은 고가 페티시가 있습니다. (웃음) 육교, 순환도로 같은 것 말이죠. 그걸 연결해 주는 큰 볼트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페티시가 있어요. 볼트 하나가 거의 사람 크기예요. 엄청나죠. 더 나아가 프레임을 구상하면서 하늘을 보여주지 않고 굉장히 큰 구조물, 건축물, 빌딩이 계속 나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큰 지진이 온다면 이렇게 거대한 구조물들이 무너지겠지. 그런 것들을 스크린을 보면서 모두가 상상했으면 하는 것까지 넣은 촬영의 연출이었습니다.

 

〈해피엔드〉
〈해피엔드〉


음악의 활용도 궁금합니다. 캐릭터를 설명하는 스코어가 하나, 인물들이 듣는 테크노 음악이 또 하나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음악을 활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두 가지 음악이 서로 영향을 주는데요.

영화의 배경 음악, OST 같은 배경 음악이 있죠. 보통의 다른 영화들 같으면 그 신에서 배우의 감정을 강조하는 음악을 많이들 쓰시죠. 전 그렇게 하지 않고, 만약에 유타와 코우가 서른 살이 되어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봤을 때 느껴지는 감각을 생각해 봤어요. 우리의 청춘이 이랬지, 그때 그랬지 라고 이야기하면서 되돌아보는, 느껴지는 감정들을 묘사하려고 했죠. 당시는 모르죠. 이게 어떤 감정이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렇지만 성인이 되어 뒤돌아 보면 알게 되죠. 그때와 지금 내 세계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요.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슬프잖아요. 우정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간이 끝났으니까. 그런 감정의 거리를 음악을 통해서 표현하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테크노 음악이 중요하게 사용됩니다. 테크노 클럽의 설정 배경과 더불어, 영화에 언더그라운드 테크노씬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유명 DJ 유스케 유키마츠가 직접 출연하는데요. 캐스팅 과정도 궁금합니다.

제가 원래 테크노를 되게 좋아합니다. 뉴욕에 살 때부터 유키마츠의 유튜브라든지 영상 같은 걸 많이 봤고 팬이었었어요. 그분이 일본 오셨을 때 라이브를 보러 갔다가 만나서 알게 됐어요. 그리고 에릭 로메르나, 허우 샤오시엔 영화를 보러 시네마테크 같은 곳에 가면 신기하게도 갈 때마다 유스케 씨와 마주치는 거예요. 이분도 정말 어마어마한 영화 팬이신 거죠. 그래서 처음 각본 쓸 때부터 아예 이 역은 유스케 씨라고 이름을 넣어 놨어요. (웃음) 그리고 제안을 드렸더니 흔쾌히 출연해 주신 거죠.

 

〈해피엔드〉
〈해피엔드〉


거의 연기 경험이 없는 신인 배우들 위주로 캐스팅을 하셨어요. 그 이유와, 더불어 촬영 전 연기 워크숍을 하셨는데 연기 디렉팅 방법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본적인 저의 캐스팅 방침이 뭐였냐면 ‘그 사람 자체가 캐릭터에 되게 가까운 사람을 찾자’였어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배우를 찾자. 훈련된 프로 배우가 아니라 원래 자신의 모습이 영화캐릭터에 가까운 사람을 뽑자라고 했었죠. 그리고 오디션 때 정말 기적적으로 이분들이 저의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직감으로 알겠더라고요. 워크숍을 한 건 아타를 연기한 하야시 유타를 제외하고 나머지 다 네 분은 연기 경험이 없어서 워크숍이 필요하다 생각했어요.

묵시록적인 세계관에서 그래도 ‘해피엔드’라는 제목이 주는 위안이 있습니다. 이 제목은 어떻게 나오게 됐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솔직한 대답과 솔직하지 않은 대답이 있는데요. (웃음) 먼저 솔직하지 않은 대답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사실 어떤 희망 이런 것보다는 영화에서 큰 세계와 주인공들인 청년들이 살고 있는 작은 세계가 그려지고 있는데,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세계로 보면 사실 ‘엔드’인 거죠. 하지만 청년들의 세계에는 우정도 있고 에너지도 있잖아요. 그들 사이에 우정이 있고요. 이건 또 ‘해피’한 거잖아요. 서로 다른 이 두 개가 맞물려졌을 때 오는 그런 감각들을 그리고 싶었어요. 좀 더 솔직하게, 이건 진짜 솔직한 대답으로 말씀드리면 사실 원래 제목은 ‘지진’이었습니다. 제가 사실 상상력이 별로 없어가지고 제목을 그렇게 잘 짓지 못해요. 그래서 너무 직접적인 제목을 지어 버린 거죠. 그런데 관객들이 지진을 그리고 있는 영화라는 걸 바로 떠올리지 않았으면 했어요. 마침 이 영화를 편집할 때 가나자와…에서 큰 지진이 있었거든요(2024년 1월 1일 발생). 그러다가 직감적으로 발음의 울림, 제목의 형태 같은 걸로 볼 때 ‘해피엔드’가 잘 어울리겠구나 하는 것이 직관적으로 들었어요. 그래서 해피엔드로 가게 된 겁니다.
 

〈해피엔드〉
〈해피엔드〉


다큐멘터리에 이어 이번이 장편 극영화 데뷔작인데요. 앞으로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무엇인가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병행할 계획도 있나요.

저는 대학 때도 극영화를 공부했고, 극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제 첫 작품은 이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요. 현재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한 3~4 작품 있어요. 그중에서 어떤 걸 먼저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유머러스함이에요. 저는 정말 유머러스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 이런 분위기는 공통적으로 가져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보고 있으면 제 마음이 점점 시니컬해져서 이 밸런스를 어떻게 맞춰 갈지 고민 중입니다.

 

아버지의 연주를 담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함께 하셨는데요. 연출자로서 작업하면서 돌아가신 아버지, 고 류이치 사카모토의 영향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버지의 영향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제 안에서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거든요. 저한테는 그냥 아버지로서 존재하시는 분이죠. 그렇지 않은 상태였다면 내가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저도 모르는 거죠. 항상 그분은 그냥 아버지였으니까요. 근데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같이 보고, 또 아니면 저에게 영화를 보게 하시기도 하셨어요. 그런 것들이 결국 지금 제 활동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