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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영, 13년 만의 '헤다'로 복귀…영화 〈파과〉 후 연극 무대 돌아와, 개막 전 전석 매진

데일리뉴스팀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 모습 [국립극단 제공]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 모습 [국립극단 제공]

이혜영 배우가 영화 〈파과〉에서 보여준 냉철한 60대 여성 킬러 '조각' 역의 강렬한 인상을 뒤로하고, 헨리크 입센의 고전 연극 무대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국립극단이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지난 16일 개막한 연극 〈헤다 가블러〉에서 이혜영은 죽음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제약에서 탈출하는 주인공 '헤다' 역을 맡았다.

이혜영은 2012년 같은 극장에서 〈헤다 가블러〉의 주인공으로 출연해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과 대한민국 연극대상 여자연기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13년 만에 같은 역할로 돌아온 이혜영에 대해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개막 전 전석이 매진됐다.

이혜영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이혜영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지난 19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혜영은 "초연 때 부족했던 부분을 이번에 완성하기 위해 출연을 결정했다"며 "모든 것을 해체하고 새롭게 준비했으며, 현재 결과에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고(故) 김의경 연출가와의 특별한 인연을 언급하며 작품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드러냈다. "김의경 선생님이 〈헤다 가블러〉를 하자고 제안했을 때 저는 '그게 뭐예요'라고 물었죠. 당시 대학 연극으로는 자주 공연됐지만 상업극으로 기성 극단에서는 거의 무대에 올려지지 않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이혜영은 "이렇게 세련되고 충격적인 작품을 왜 지금까지 공연하지 않았는지 의아했는데, 김 선생님은 '이혜영 같은 배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저는 그 말을 믿었고, 내가 있었기에 이 작품이 공연될 수 있다는 일종의 착각을 갖게 됐다"며 "초연 때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했고, 지금까지도 그 착각을 방해하는 어떤 요소도 만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혜영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이혜영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이혜영 배우는 "초연 때와 다른 것은 단 하나, 지나온 세월"이라고 밝혔다.

"(초연 때보다) 나이가 든 데 대한 부담이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며 "체력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고 전했다. 그는 "'늙어서 연기가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까 봐 제가 헤다라고 믿게 하려고 연습 때부터 공연이라 생각하고 긴장하며 임했어요. 헤다로서 동료들에게 신뢰를 주려 노력했습니다."고 전했다.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 모습 [국립극단 제공]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 모습 [국립극단 제공]

총성으로 시작되는 이번 공연에서 이혜영은 13년 전 초연과는 확연히 다른 헤다를 선보이고 있다. 여전히 고혹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과거 카리스마 넘치던 캐릭터와 달리 권태에 지친 나른한 모습으로 변화를 주었다. 가끔은 헤다의 엉뚱한 면모가 부각되어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국립극단은 헨리크 입센의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며 헤다의 선택에 설득력을 불어넣으면서도 1970년대로 배경을 옮기고 헤다의 캐릭터 해석에도 변화를 줬다. 무대는 현대적인 상류층 거실로 꾸며졌으며, 사이키델릭한 음악과 조명이 어우러졌다.

박정희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히피즘이 성행했던 1970년대 중반으로 배경을 설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헤다 가블러〉는 흔히 여성서사, 여성의 해방이나 자유 의지를 나타내는 작품으로 해석되는데 21세기에 와서는 젠더를 초월한 한 존재, 한 인간의 이야기로 본다"고 설명했다.

배우 이혜영과 박정희 연출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배우 이혜영과 박정희 연출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박 감독은 이어 "지금은 '시의 시대'가 아닌 '산문의 시대'라고 생각해 초연 때보다 원문에 더 충실하려 했고 산문적으로 풀어내려고 했다"며 "초연 때는 헤다를 신이 되려는 여성으로 해석해 이혜영의 카리스마가 훨씬 더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인간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헤다 가블러〉 공연은 당초 이달 8일 개막 예정이었으나 개막 하루 전 브라크 검사 역의 윤상화 배우가 건강상 문제로 갑작스럽게 하차하는 위기를 맞았다. 이로 인해 공연 일정이 조정되고 배우가 교체되는 등 제작진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급히 투입된 홍선우 배우는 단 이틀 만에 모든 대사를 숙지하며 헤다의 불안을 자극하는 브라크 검사 역할을 처음부터 캐스팅된 것처럼 완벽히 소화해냈다.

주연 배우 이혜영은 "개막 전날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모두가 절망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 모습 [국립극단 제공]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 모습 [국립극단 제공]

"마치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처럼 모두가 지난 일주일간 고통과 죄의식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고 지금 이렇게 공연을 하는 게 기적 같네요. 배우가 아파서 쓰러진 와중에 바로 새로운 배우를 찾아야 하는 현실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극장을 찾아주는 관객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라고 이혜영은 전했다.

이번 〈헤다 가블러〉 공연은 배우 이영애가 출연하는 LG아트센터 제작의 동명 작품과 공연 시기가 겹치며 연극계 안팎에서 화제가 됐다. 두 작품을 비교하는 시선에 대해 이혜영은 "배우가 다르고 프로덕션 전체가 다르기 때문에 비교는 불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